1. 법보다는 음악이 좋아요.

  가브리엘 야레는 1949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려는 야심찬 학생이었다. 그러나 법대를 다니던 시절, 그는 음악에의 꿈을 버리지 못해 20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였다. 이 때 그가 주로 한 것은 샹송을 편곡하면서 작곡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법학을 공부하던 청년이 음악계로 뛰어든다는 것은 1990년대엔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인지 몰라도, 1970년대엔 그다지 흔하지 않았다. 히피가 되긴 해도 샹송을 작곡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과연 그만한 재능이 있을 지 주목하였는데, 놀랍게도 가브리엘 야레의 재능은 치기어린 젊은이의 취미생활 같은 음악 동경이 아니었다. 그가 편곡한 샹송은 프랑소아 하디, 미레이 마티유, 자니 할리데이 등 샹송계의 대스타들이 앞다투어 불렀고, 이런 그에게 핸리 두틸러와 모리스 오하나 같은 유명 작곡가들이 기꺼이 사수가 되겠다고 그를 거두어 준 것이다. 그리하여 편곡에서 마침내 작곡가로 전향하게 된 가브리엘 야레는 1974년부터 영화음악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 고다르, 베닉스 그리고 알트만과 밍겔라에 이르기까지.

  가브리엘 야레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것은 장 뤽 고다르와 만나기 시작한 79년부터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는 프랑스 영화계의 젊은 기수였던 고다르를 통해 선율보다는 감정을 중시하고 영화의 러쉬 필름을 보기도 전에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영감 혹은 공감으로 음악을 작곡하는 스타일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6년 베티와 조르그가 장난처럼 연주하던 피아노 곡 뒤에 전자음악을 깔아 '바람 같은 베티 C'est le vent Betty'를 작곡했으며, 이 곡을 포함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베티 블루 37˚2 Le matin>(1986)의 영화음악을 발표하였다. <베티 블루 37˚2 Le matin>(1986) 사운드 트랙에 대한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아주 상이해서, 일부는 그에게 거친 야성과 감성이 살아 있는 음악가라고 극찬을 한 반면에 거친만큼 기본이 충실하지 않고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혹독하게 평한 이도 적지 않았다.

  찬사와 비난이 쏟아졌다는 것 자체를 봐도 그렇고, 또 찬사와 비난의 양극화가 심했던 만큼 그의 재능은 남다른 데가 있었는지, 가브리엘 야레는 2년 뒤인 1988년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1988)로 세자르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89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메로 Romero>(1989)의 영화음악을 맡았으며 로버트 알트만의 <빈센트와 테오 Vincent & Theo> (1990), 장 자크 아노의 <연인 L'Amant>(1991)에서도 영화 속 사랑의 변주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게 된다.

  위에 열거된 영화들에서 알 수 있듯이, 가브리엘 야레는 인생과 사랑이 담긴 영화에 상당히 매료되어 있는 듯 하며, 이런 영화가 관객들에게 남기는 지독한 여운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달콤하면서도 자극적이며 비장한 음악들을 주로 작곡하였다. 그리고 이런 그의 음악에선 오케스트라는 물론 색소폰, 팬플룻 등의 음색을 들을 수도 있으며, 이 악기들의 여운이 길면 길수록 음악이 주는 영화의 감동도 더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작품들로 인해 사람들이 쉽게 '아, 가브리엘 야레는 불 같은 사랑-, 평범하지 않고 피보다 더 붉은 색으로 기억되는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에 재능이 있구나' 라고 치부해 버릴 때쯤, 그는 놀랍게도 <잉글리쉬 페이션트 English Patient>(1996)의 음악을 들고 영화팬들을 찾아왔다. 가브리엘 야레에게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의 영예를 안겨준 이 영화는, 그가 그 전에 주로 참가했던 '집착과도 같은 사랑'의 소재를 벗어나 있다. 카메라가 태양의 긴 그림자를 따라 흐르며 유유히 보여주던 사막의 부드러운 모습처럼, 조용히 이어지는 숙명 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그는 아랍풍의 음악과 다양한 재즈 선율들로 표현해 낸 것이다. 다소 젊은 음악(생소한 전자음 혹은 색소폰 같이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선율의)을 한다고 여겨졌던 가브리엘 야레가 완벽하게 선율이 중시된 잔잔하고 조용하면서도 감동이 느껴지는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그의 넓은 음악세계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에 <잉글리쉬 페이션트 English Patient>(1996)로 거장의 입지를 굳힌 가브리엘 야레는 <리플리 Talented Mr. Ripley>(1999)를 통해 안소니 밍겔라와 다시 작업하였으며, <뉴욕의 가을 Autumn in New York>(2000)을 통해 그의 화려한 재즈풍 악상들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국적인 멜로디를 세련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감싸안아 풍부한 관능성이 드러나는 점이 바로 야드의 음악적 매력일 것이다.

  광란의 사랑이 '청년기'라고 한다면, 마음 가득 편안하게 서로를 아껴주고 챙겨주는 사랑은 '장년기'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이제 50대에 접어든 가브리엘 야레는 청년기와 장년기를 거쳐, 음악으로 사랑이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하는지 보여준 영화음악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른 비트와 강렬한 랩 음악들로 이뤄진 옴니버스 앨범이 '판매'를 위한 사운드트랙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요즘, 완숙한 사랑의 연주가- 가브리엘 야레가 다음에 우리에게 선사할 곡은 어떤 것이 될 지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 1996년 골든글로브시상식 음악상 수상 (잉글리쉬 페이션트)  
- 1997년 아카데미영화제 음악상 수상 (잉글리쉬 페이션트)  
- 1999년 골든글로브시상식 음악상 후보 (리플리)
- 2003년 골든글로브시상식 음악상 후보 (콜드 마운틴)  
- 2004년 아카데미영화제 음악상 후보 (콜드 마운틴)

<주요작품>

데카메론 (The Decameron) 2006년 
브레이킹 앤 엔터링 (Breaking and Entering) 2006년 
쉘 위 댄스 (Shall We Dance) 2004년
실비아 (Sylvia) 2003년
콜드 마운틴 (Cold Mountain) 2003년
좋은 여행 (Bon voyage) 2003년
포제션 (Possession) 2002년
넥스트 베스트 씽 (The Next Best Thing) 2000년
뉴욕의 가을 (Autumn in New York) 2000년
병 속에 담긴 편지 (Message in A Bottle) 1999년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1999년
정상을 향하여 (Premier de cordee) 1999년  
시티 오브 엔젤 (City Of Angels) 1998년
잉글리쉬 페이션트 (The English Patient) 1996년
내 마음의 지도 (Map of the Human Heart) 1993년 
IP5 (IP5: L'ile aux pachydermes / IP5: The Island of Pachyderms) 1992년 
연인 (L'Amant / The Lover) 1991년
빈센트 (Vincent & Theo) 1990년
로메로 (Romero) 1989년
간다라 (Gandahar / Light Years) 1988년
재생자 (Clean And Sober) 1988년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 1988년
Beyond Therapy (Beyond Therapy) 1987년  
베티 블루 (37.2 Le Matin / Betty Blue) 1986년
데인저러스 무브스 (Diagonale du fou / Dangerous Moves) 1984년
달빛 그림자 (La Lune dans le Caniveau / The Moon in the Gutter) 1983년 
말빌 (Malevil) 1980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Sauve Qui Peut (La Vie) / Every Man for Himself / Slow Motion)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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