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사이에 개봉되었던 <고양이의 보은, 猫の恩返し>이라는 작품을 기억하고들 계시리라 생각된다.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흥행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흥행수입 64억 6천만 엔을 기록하며 2002년도 방화부문 흥행 1위는 물론 역대 순위에 있어서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음가는 엄청난 흥행 성공을 기록했다.


그런데 <고양이의 보은>이 개봉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계 최대 뉴스가 된 것은 이같은 흥행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엄청난 흥행 기록보다 더 중대한 긴급조치가 이 작품의 상영 종료와 함께 취해졌다는 것이 문제다.

본래 이 작품은 <귀를 기울이면>의 감독이었던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이루지 못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2세 발굴 의지에 의해 기획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지명했다는 신예 모리타 히로유키(森田宏幸)가 감독으로 초용 되었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1999년도 작품 <이웃의 야마다군>에서 기량을 발휘했던 그는, 콘도 요시후미를 대신할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로 낙점 받으며 착실히 때를 기다려 온 기대주였고 마침내 <고양이의 보은>에서 이같은 지브리 가족의 기대에 부응해낸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토쿠마 서점의 설립자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토쿠마 야스요시(德間康快)의 부재였다.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최상의 제작여건을 마련해 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가 2000년 9월 20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토쿠마 서점의 후임 사장으로 취임한 마쯔시타 타케요시(松下武義)는 어처구니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된다.

토쿠마 前 사장에 의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다이에(大映) 영화사를 라이벌 카도카와(角川) 서점에 매각해 버리는 한편, <고양이의 보은>의 흥행수입 64억 6천만 엔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작품의 후속으로 진행 중이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의 감독을 전격 해임한 것이다.


본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스튜디오 지브리 2세 발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토에이 동화에서 <디지몬 어드벤처>의 감독 호소다 마모루(細田守)를 스카우트해 와서 맡긴 작품이었다. 하지만 신인 감독에게 맡겼던 <고양이의 보은>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비해(!) 현격히 흥행수입이 모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차기작을 제작중인 감독을 해고하고 다시금 미야자키 하야오를 감독으로 기용하는 안전보험을 택한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연출한 신작을 좀 더 빨리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선 물론 반가운 일이었지만, 이미 연령 상의 이유로 수차례 은퇴를 고려한 바 있었던 그의 후계자 지목이 계속해서 지연될 경우 일본 애니메이션계 전체에 있어서도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까지 일본 극장 시장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그가 1선에서 물러난 이후 그의 공백을 메울 포스트 미야자키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극장 애니메이션은 1990년대 초반과 같은 암울한 동면에 들어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지만, 국내 대중문화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故 이주일 선생과 가수 조용필씨의 경우도 이들의 성공 인생 음지에는 대를 이어 받을 장자가 없다는 점이고 단순히 재산을 물려받는 법적 상속권자로서만이 아닌, 그들의 재능과 입지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인기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 아닌, 자신만의 작가 정신으로 예술적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장인에게 명맥을 이어받을 만한 직계 제자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예술가 한 명을 잃게 되는 것 이상의 커다란 손실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일찍이 쿠로사와 아키라를 스승으로 섬긴 스티븐 스필버그는 로버트 제메키스나 프랭크 마샬 같은 후계자를 이미 오래전에 양성해 냈고 테즈카 오사무의 직계 제자인 린 타로와 토미노 요시유키는 각기 매드하우스와 선라이즈 스튜디오를 통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2세 감독들을 배출해 오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보다 10살이나 연하인 오시이 마모루가 벌써부터 30대의 오키우라 히로유키(沖浦啓之)를 팍팍 밀고 당겨서 후계자 자리에 앉혀 놓는 모습도 확인해 볼 수 있는 가운데, 정작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국민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산 상속자가 아직까지 없다는 것은 한 그루 나무보다 숲을 일궈가야 할 스튜디오 지브리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과연 구조조정의 방화벽을 뚫고 일본 아니메의 다음 세대를 책임 질 포스트 미야자키는 등장할 것인가? 일단 그 해답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차차기작 <털벌레 보로(가제)> 때까지 유보된 상황이다.



                                                                                                                                             

참고적으로 토쿠마 야스요시 사장의 사망 이후 심각한 경영 악화에 빠진 토쿠마 서점은 미쯔이스미모토 은행의 금융지원하에 강력한 구조조정이 시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다이에 영화사와 토쿠마 JAPAN(음반)과 같은 알짜 계열사를 매각해야 했으며, 결국 2005년 3월 스튜디오 지브리와도 결별하게 된다.




  사진은 지난 달 태풍 '나비'의 영향으로 버드나무가
  꺽인 스튜디오 지브리 제3 스튜디오의 모습 (ㅠ.ㅜ)


  사진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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