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거 뱅크(Dogger Bank) 해전

   대전의 와중에, 상대 국민들의 사기저하 방편 중 하나로 영국 본토 동해안에 대한 기습포격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섬나라인 영국 쪽이 독일 쪽보다야 해안을 덮치기 쉬운 편이겠지요. 그리하여 소규모 부대에 의한 2번의 해안도시 기습포격전이 독일 측에 의해 벌어졌었고, 군사적으로는 아니지만 사회불안조장용으로 인한 상대국가국민 사기 저하 목적으로는 괜찮은 작전이 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1915년 1월 23일 16:45분, 3번째로 포격의 임무를 띄고 독일 히페르 해군소장은 순양전함 3척, 장갑순양함 1척, 경순양함 4척을 이끌고 제이드 만을 빠져나가 북해의 도거뱅크 지역의 상대 세력도 기습하고 등등... 을 위해 출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영국도 마냥 당하고는 없는 일, 영국 해군성의 제40첩보국은 이번에는 독일의 이번 작전을 알아내었고, 해군성은 로시드 항의 비티 해군중장 휘하의 순양전함들과 경순양함들, 그리고 트위트 해군준장 휘하의 경순양함과 구축함들에게 1월 24일 07:00분 경에 상대와 접촉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영국 함대들은 독일 함대가 출동한 몇 분 후에 근거지에서 달려나갔습니다.

상대와 처음 접전을 벌인 독일 경순양함 콜버그

   1월 24일 07:14분 경, 독일군의 우현을 담당하던 경순양함 콜버그(Kolberg)는 영국의 경순양함 오로라(Aurora)를 발견하고 교전에 들어갔습니다. 양 함은 각기 2발의 명중탄을 기록하고 2발의 피탄을 당했는데, 이 보고를 받은 히페르 제독은 해역을 순찰하는 함정 정도로 생각을 하고 순양전함의 화력으로 간단히 밟아버릴 생각으로 영국 순양함을 향하여 변침 전진을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경순양함 스트랄순드(Stralsund)가 북북동 방향에서 연기의 행렬을 발견했습니다. 기습의 이점을 상실했다고 느꼈을 히페르 제독은 그 연기들을 보고 '미련없이' 남동 회항 침로를 취하였습니다.

도거 뱅크(Dogger Bank) 해전의 상황.
보다시피, 영국측이 독일측의 꼬리를 따라가는 직선평행침로진행 교전입니다.

   새로 나타난 함대를 전함으로 판단한 히페르 제독은 상대를 쉽게 따돌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둘 간의 사이는 어느 새 2만5000yard로 줄어든 것이었습니다. 상대는 '순양전함!'이었던 겁니다. 독일 함대의 가장 뒤에 위치한 장갑순양함 블뤼헤르는 23Knot를 낼 수 있었는데 반해 영국 함대의 선두 3척의 순양전함은 27Knot를 낼 수 있는 년들이었습니다. 조만간의 상황이었습죠. 비티 제독은 휘하의 순양전함들에게 29Knot의 속력으로 급속 전진할 것을 명하고 퇴각하는 독일 함대를 맹렬하게 추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후위의 두 순양전함 뉴질랜드(New Zeeland)와 인도미터블(Indomitable)에게 이 속도는 시험항해에서도 발휘해 본 적이 없었던 속도였고, 그 결과 둘은 점점 쳐져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쨌든간에, 두 함대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들어갔으나 워낙 함정들이 고속으로 움직이는 데에다가 함정들이 뿜어내는 연기가 시야를 방해하여 쉽게 포격을 개시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독일 최후로 건조된 장갑순양함 블뤼헤르(Blucher). 비록 구식 함형이지만,
영국의 초기형 순양전함들과 견주어 사거리에서 동등하고, 장갑은 더 충실한 함정이었습니다. 그렇지-_-만...

   그래도 08:52분, 순양전함 라이온(Lion)은 독일 함대의 최후위인 장갑순양함 블뤼헤르를 향해 포격을 개시하였습니다. 09:00분 경에는 사거리 내인 2만yard까지 접근할 수 있었고, 09:09분 경 첫 명중탄을 블뤼헤르에게 안길 수 있었습니다. 독일 함대는 상대의 선도함인 라이온을 목표로 09:11분 경부터 4척이 집중포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순양전함 뉴질랜드까지 포격을 개시할 만한 위치에 도달하자, 비티 제독은 각 함마다 한 척씩의 상대를 맡아 포격을 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2번째함인 순양전함 타이거(Tiger)가, 후위에 처진 인도미터블이 쫓아오고 있는 것으로 오판하여, 선두인 라이온과 같이 적의 선도함인 순양전함 자이들리츠(Seydlitz)로 목표를 맞추었습니다. 그 덕에 2번함인 순양전함 몰트케(Moltke)는 적의 포탄을 받지 않고 교전을 벌일 수 있었으며, 자이들리츠를 목표로 한 영국군의 포격은 두 척의 탄착이 뒤섞이는 바람에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 서로를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독일과 영국측의 공격상황.
검은 선은 영국함의 공격방향, 빨간선은 독일선의 공격방향... 인데 어째 추리(쿨럭)

   09:40분, 자이들리츠는 라이온에서부터의 포격으로 후부 포탑을 관통당하는데, 이에 포탑의 화약이 유폭되고, 이 때 발생한 화재가 폐쇄되었어야 할 격문을 통과하여 다음 포탑으로까지 번집니다. 결과적으로 2개 포탑의 포탄이 유폭할 상황에서 간신히 탄약고를 침수시켜 함의 폭침은 면하게 되지만, 159명의 목숨이 날아갑니다. 독일 함대의 집중목표가 된 라이온 또한 여러 발의 명중탄을 맞았습니다. 그 중에 순양전함 데르플링게르(Derfflinger)에게 수면 근처 좌현에 맞은 것이 가장 컸는데, 침수와 함께 피탄 30분안에 좌현 엔진이 완전히 정지하여 속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대열의 마지막에 위치해 있던, 블뤼헤르는 여러 발의 명중탄으로 속도가 17Knot까지 떨어지게 되어 결국 대열에서 탈락하고, 비티 제독은 뒤에 처진 인도미터블에게 블뤼헤르를 맡깁니다. 라이온의 속도가 계속 떨어져 후위 함정들에게 뒤쳐지려고하는 09:58분, 영국 함대는 전방에서 잠망경 비슷한 구조물을 발견하고 이를 어뢰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잠수함으로 판단하여 좌현 90도로 변침을 하였습니다. 독일 측에서는 추격의 저지와 기습을 위해 준비하였던 어뢰정을 철수시키고, 일단의 직선 추격전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독일 기함인 순양전함 자이들리츠. 충실한 방어력 덕분이랄까...
이번도 그렇고 다음 유틀란트 해전에서도 크게 박살(포탄 21발과 어뢰 1발)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함정입니다.
절명 직전까지 두들겨맞고 살아남는게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비티 제독은 상대를 놓아주지 않을 의도 하에, 뉴질랜드와 인도미터블을 이끄는 2함대의 무어 소장에게, 넬슨이 남긴 유명한 말이라는 "적과의 거리를 좁혀라"를 발신하려 하였으나 목록에 없는 이유로 "적의 뒤를 쫓아라"는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라이온은 이전에 이래저래 얻어맞은 까닭에 무선장치가 고장나고 동력이 끊겨 발광램프도 쓸 수 없었으며, 거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명령을 하달받은 장교의 전달 실수로, 명령에 "북동쪽의"라는 단어가 붙어버렸다고 합니다. 마침 그 쪽에는 전열에서 쳐저버린 장갑순양함 블뤼헤르가 비실대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명령을 이해한 무어 소장은 순양전함 뉴질랜드와 인도미터블을 끌고 블뤼헤르를 손 보아주고, 경순양함 아레추사(Aretusha)와 구축함들의 어뢰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 와중에 경순양함 미티어(Meteor)가 블뤼헤르의 저항으로 크지 않은 손상을 입었습니다. 나머지 독일 함정들은 그 와중에 몸을 빼낼 수 있었고, 구축함 어택(Attack)에 옮겨탔다가 순양전함 프린세스 로열(Princess Royal)로 비티제독이 옮겨탔을 때에는 전투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블뤼헤르(Blucher)의 마지막'이라고 하는, 유명하다고 하는 우현으로 전복침몰되는 사진.
몰락하는 모습이지마는, 웬지 멋있습-_-니다. 그래서 유명한가나.
발이 느리다는 약점으로 인하-_-여, 결국은 덜미를 잡혀 이런 꼴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큰 피격을 입은 라이온은 인도미터블에 끌려서 귀환할 수 있었으나, 1915년 4월까지 전열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과실을 따져보면, 영국은 적의 신형 장갑순양함을 격침시키고 순양전함 한 척을 당분간 잠재워둔 전적에 비해 라이온 한 척만이 큰 피해를 입은, 이번 전투에서는 승자의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영국 해군의 승리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가 따랐-_-으나, 독일 함대를 도망가게 놔두었다고 생각한 무어 소장에 대해서 비티 제독과 해군참모총장 피셔는 강한 질책을 하고, 무어 소장은 결국 카나리아 제도로 좌천되어버립-_-니다. 독일 측에서는 격노한 황제의 명령으로 해군참모총장 본 인젠홀(von Ingenhol) 제독이 물러나고 본 폴(von Pohl) 제독이 새로 취임하게 됩니다.

   이 전투의 특기할 만한 사항 하나로, 자이들리츠의 피격에서 교훈을 얻은 독일은 불안전한 탄약 보관문제에 대하여 연구보완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이 조치의 결과는 다음 유틀란트 전투에서 에누리없이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시라-_-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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