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틀란트 해전(Battle of Jutland)

1. 함대 출격

   '유틀란드 해전'은 제1차 세계 대전을 통하여 영국의 '대함대(Grand Fleet)'와 '독일의 대양함대(Horchsee Flotte)'가 총력을 투입하여 맞대결한 유일한 해상 격돌이었습니다. 그 규모와 화력 밀도는 지금까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투였고, 양 측의 순양전함들이 많은 활약과 더불어 희생을 한 전투였습니다. 또한, 용두사미스러운 격전의 결과에 대해서 이래저래 논쟁이 많은 전투이기도 합니다. 전투는 1916년 5월 31일 오후에 시작하여 그 다음날 새벽에 끝났는데, 영국과 독일의 막강한 주력 함대가 치열한 전투를 나눈 곳이 덴마크의 유틀란드 반도 서쪽 해상이었으므로 유틀란드 해전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지요.

   1916년 1월에 온건한 성품의 폴(H. von Pohl)제독 후임으로 '라인하르트 쉐르(R.Sheer)' 해군 중장이 대양함대를 지휘하게 됩니다. 이후 독일 함대의 분위기는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방향으로 바뀌었고, 그리하여 지금까지 수세에 놓여있던 해상 작전 또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쉐르는 대양함대를 이끌고 6월 초순을 기하여 영국의 선덜랜드 일대에 대해 기습 공격을 강행할 작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이용 가능한 독일 해군의 잠수함 부대를  동원해서 5월 23일부터  6월 1일 사이에 영국  해안에 배치시키도록 했습니다. 영국의 대함대와 정면 대결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누어지는 영국 함대는 공격할 복안을 세우고 있었더랍니다.

보다시피, 유틀란트 해전의 전역... 입니다.

   그 한편, 영국 함대의 사령관인 '존 젤리코(J.Jelico)' 제독은 러시아와의 교역을 고려하여 발트해에 이르는 해역 일대에 대한 해상 소탕작전을 6월 2일부터 실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영국의 통신 정보는 때마침 독일 대양 함대가 5월 말경 해 상작전 수행 차 출동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젤리코는 그의 소탕작전 계획을 일단 보류하고 5월 30일 21:30시, 영국 대함대의 주력 부대를 지휘하여 영국 북단의 해군 기지 스카파-플로를 급거 출동해 동쪽으로 나아갔고, 가까운 모레이만의 크로아티아에 있는 '저람(T.H.M. Jerram)' 해군 소장 예하의 노급 전함 8척도 즉시 출항하여 그 이튿날에 주력 전함 부대와 합류토록 지시되었다. 그리고 포드 만의 로시드 기지에 대기하고 있던 '데이비드 비티(D.Beatty)' 해군 중장에게 타전하여 거느리는 고속 노급 전함 4 척과 순양전함 6척을 같은 날 22:15시에 그곳을 떠나 그 이튿날 14:00시 북해의 북위 56도 40분,동경 5도 00분 해역까지 진출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비티 예하의 함대는 젤리코가 거느리는 주력 부대의 전방에서 정찰부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대함대가 동쪽 침로를 잡으며 출격한 지 3시간여가 지난 뒤, 건너편 독일 대양함대는 쉐르 지휘하에 빌헬름스하펜 해군 기지를 뒤로 하며 제이드 만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해군의 비티 정찰부대와 마찬가지로 독일측은 '프란츠 히페르(F.Hipper)' 해군 중장이 이끄는 정찰부대가 순양전함 5척을 주축으로 하여 쉐르의 본대를 앞질러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뒤덮는 연기를 폴폴내며 전진하는 영국 대함대의 위용... 입니다.

   5월 31일의 해가 떴습니다. 오전까지만 해도 젤리코와 쉐르 두 지휘관은 상대방 부대의 출동에 관한 정보를 전혀 입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해안으로 배치된 독일의 U-boot중 2척이 영국 함대의 출동을 순간적으로 목격했지만 그들의 보고는 정확하지가 못했습니다. 젤리코 또한 출동시에 무선 전신의 침묵을 지키도록 지시했기 때문에 새로이 아 는 바가 없었습니다. 영국의 주력부대 노급 전함 24척은 6개 분대로 나뉘어 각 분대별로 4척씩 종렬진을 짓고 나아갔는데,그 주변에는 구축함들이 경계진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력 본대 전방으로는 5mile 거리를 두고 제 4경순양함전대가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그곳으로부터 다시 15mile 더 앞선 위치에는 제 1,2순양함전대가 30mile에 이르는 넓은 폭으로 전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로부터 4mile을 더 앞선 해상에는 제3순양함전대가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선봉진을 이루어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전체 99척의 편성이었습니다. 젤리코의 주력 전함부대는 처음에 독일 잠수함을 경계하면서 14knot의 속력으 로 지그재그 항법을 써서 나아갔다. 영국 주력 전함부대의 남쪽 70-80mile 되는 해상에서는 비티의 정찰부대가 14:00시로 정해진 합류 지정 해역을 향하여 항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대는 비티가 직접 인솔하는 제 1순양전함분대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왼편에 '이반 토마스(Ivan  Thomas)' 해군 소장 예하의 '퀸 엘리자베스(Queen Elizabeth)'급 고속 노급 전함 4척으로 구성된 제 5전함분대가 위치했으며, 제 2순양전함전대는 왼편 전방으로 배치되었고. 독일 함대의 출현에 대비하여 제 1,2순양함전대는 북동 방향으로 25마일의 폭을 펴면서 나가고 있었습니다. 전초부대도 51척의 대 편진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영국 주력함대의 진형

   한편 독일의 대양함대는 쉐르의 기함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sse)'을 선두로 한 제 1전함분대가 중앙에 위치하고 그 전방에는 제 3전함분대, 후방에는 제 2전함분대가 각각 편진했는데, 그들 22척은 단종진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3개 전함분대는 제각기 구축함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습니다. 주력부대 외곽 6mile 되는 위치에는 경순양함과 구축함 각 6척이 배치되었지요. 쉐르의 주력 전함부대는 16knot의 속력으로 유틀란드 해안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의 세력 은 노급 전함 이하 59척이었습니다. 히페르가 지휘하는 독일 대양함대의 정찰부대는 구축함의 근접 호위를 받는 순양전함 5척이 중앙에 단종진으로 위치했으며,그 전방 외곽 8mile 되는 거리에 반원형으로 경순양함 5척과 구축함들이 5개 감시점을 이루며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히페르 부대는 쉐르의 본대로부터 50mile 거리를 두고 앞서 있었습니다. 역시 순양전함 '뤼쪼브(Lutzow)' 이하 40척의 대편진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독일 주력함대의 진형

   영국과 독일 양 함대의 세력 구성은, 전력면에서 간단하게 비교하자면, 노급전함과 순양전함을 합해 37:21로 영국 측이 주력함의 쪽수도 많았고, 당근 화력에 있어서도 구경 12~15inch 주포 344문을 비치한 영국이 독일의 구경 280~305mm 주포 244문에 대해 월등하게 강력한 상태였습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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