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카날 전투(Battle of Guadal Canal) 둘째 날 - 원맨쇼
과달카날 해전 2일째 - 원맨쇼
이러한 보고를 접한 핼지 제독은 '킹게이트(Kingate)' 제독의 항모 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한 기동부대와 리 제독의 전함 2척이 주축을 이룬 포격부대에게 과달카날 구역을 향해 전속으로 전진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런데 뉴 칼레도니아에서 사크리스토발, 산타크루즈 및 에스투리산토를 연결하는 해역 주변에 일본 잠수함이 출현하여 미국 수상함을 노린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일본 잠수함을 목격한 함대는 지그재그 항로를 취하며 전진하여 목적지로의 접근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특별출연(--) 미국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2차대전 최대의
활약을 보이고 살아남은 미국 항공모합입죠
핼지 제독 예하의 부대들이 북진을 계속하는 동안, 다나까 해군소장이 이끄는 수송선단을 지원하게 될 '미까와' 해군중장은 순양함대를 인솔하여 쇼틀랜드를 떠나 초이셀과 산타이셀의 북방을 돌아 과달카날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그는 중순양함 '마야(Maya)', '스즈야', 경순양함 '덴류' 및 구축함 4척으로 이루어진 '니시무라' 해군소장의 포격부대에게 룽가 갑에 도달하여 핸더슨 비행장을 8inch 소이탄으로 폭격할 것을 명령하고 14일 02:00시가 지날 무렵 사보 북방에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공습권 바깥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니시무라 제독의 소이탄 포격은 핸더슨 비행장에 모여있던 모든 폭격기 18대를 파괴하고 32대를 손상시켰으나, 8inch에 불과하여 지난 10월 13일 '구리다' 해군중장의 전함 '공고(Kongo)'와 '하루나(Haruna)'의 14inch포 사격보다는 성과가 좋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핸더슨 비행장의 남은 비행기들은 일출과 함께 작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본 중순양함 '마야(Maya)', 어디서 들어보았다고 하시면설라무네..
날이 밝자 핸더슨 기지의 육상기와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의 공중추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급보를 입수한 엔터프라이즈는 아직도 과달카날 남서 320km 밖에 있었으나, 일찍 색적기를 내보내며 출격을 서둘렀습니다. 이들은 14일 07시가 조금 지날 무렵 피퇴중이던 '미카와' 해군중장의 순양함대와 쇼틀랜드를 떠나 과들카날을 향해 곧장 전진중인 다나까 해군소장의 선단을 발견했습니다. 미카와 제독의 일본 제8함대는 08:00시 이후 5번에 걸쳐 미군 비행기의 공습을 받았는데, 10:15시 경의 마지막 공습을 치루고 보니 중순양함 '기누가사'가 격침되었고 다른 중순양함 2척과 경순양함 1척 및 구축함 1척이 각각 손상을 입었습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산타이사벨과 뉴 조지아 사이의 중간 수도를 밀고 내려오던 다나까 제독은, 과달카날 제4차 총공격을 수행할 결전병력 및 물자를 실은 11척의 수송선단과 11척의 구축함부대를 이끌고 전투기대에 의한 공중엄호를 받으며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 에스피리산투에서 날아온 B-17기 15대를 비롯한 핸더슨 기지의 폭격대 18대,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의 뇌격기 12대로부터 여러 시간에 걸쳐 공습을 받았습니다. 다나까 제독은 하나하나 격침되는 선단을 때문에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그만 두고 회항할까 고려하다가 끝내 항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16:00시 경 공습이 끝나자 11척의 수송선 중 살아남은 4척과 구축함 11척을 지휘하여 미군기가 사라진 야음을 틈타 다음날 새벽에 에스페란스 해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핸더슨 기지에서 이내 날아온 미군기의 공습으로 나머지 4척에 실려있던 보급품마저 선박과 함께 모두 날아갑니다.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루는 동안 일본군은 겨우 미군기 몇 대를 격추시켰을 뿐이었습니다.
대활약, 하는 미국 전함 '워싱턴(Washington)'
야마모토 연함함대 사령장관을 대신하여 이 지역의 해상부대를 총지휘하고 있던 제 2함대 사령관 '곤도' 해군중장은 기함 중순양함 '아타고'에 좌승하여 11월 12일 밤 핸더슨 기지 포격에 실패하고 돌아온 아베 부대를 중도에서 수용하여 전함 기리시마, 순양함 4척 및 구축함 11척으로 다시 과달카날로 진격해 갔습니다. 아베 제독이 성공하지 못한 핸더슨 기지의 포격을 재차 수행할 계획이었습니다. 일본군의 포격을 저지하고 역습하기 위해 급파된 제64기동부대를 인솔한 리 해군중장이 전함 2척과 구축함 '왈케(Walke)', '벤함(Benham)', '프레스톤(Preston)', '그윈(Gwin)' 4척을 끌고 11월 14을 늦게 과달카날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함대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합동훈련을 해 본적이 없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리 해군소장은 전술적 편성 기동을 요구하지 않고 구축함 4척과 전함 워싱턴, 사우스다코다의 순으로 단종진을 편성하여 처음의 사보 섬의 서쪽을 돌아 아이언-보톰 사운드로 들어섰습니다. 21:48시 150도 침로로 남동남진하다가 과달카날 섬을 멀리 보면서 22:52시 서쪽으로 변침하였습니다. 리 제독의 부대가 레이더로 적을 탐지한 것은 그 몇 분 후였습니다. 한편 곤도 제독은 함대를 셋으로 나누어 경계부대 1진은 하시모도 해군소장의 인솔아래 경순양함 센다이 및 구축함 3척으로 편성하여 사보 북쪽으로부터 아이언보톰 사운드로 들어가게 하였고, 기무라 해군소장이 이끄는 제2진은 경순양함 나가라와 구축함 6척으로 편성, 사보 서쪽으로부터 진입하게 하였으며 바로 그 뒤를 좇아 곤도제독의 기함인 중순양함 아타고, 다까오 및 전함 기리시마가 항진하였습니다. 리 제독이 최초로 레이더로 발견한 것은 하시모도 해군소장의 기함인 센다이었습니다.
이야기 주역 중 하나, 일본 전함 '키리시마(Kirishima)'
워싱턴의 조준경에 센다이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23:12분, 그로부터 15분 후에 워싱턴은 1만8500yard 거리에서 센다이에게 16inch 함포의 사격을 시작하였고, 1분 후에 사우스다코다도 사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접촉과 개전의 보고를 센다이릉 통해 입수한 곤도 제독은 처음에 미국 순양함 2척과 구축함 4척 정도로 생각하고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치울 것으로 자신하여, 곤도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대형함들은 사보 섬 저편에서 그대로 행동하면서 하시모도와 기무라 두 제독이 지휘하는 경순양함과 구축함들이 먼저 돌진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리 제독 휘하의 구축함 4척은 어둠 속에 나타난 일본 구축함들과 포화를 주고 받았는데, 23:33시에 사우스다코다가 돌연 전기계통 고장으로 레이다를 비롯, 전기를 사용하는 전투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때쯤 일본 구축함 2척이 사정에 이르러 어뢰를 발사했으나 어느 것도 명중되지 못하였습니다. 대신 미국 구축함들은 전투 와중에서 모든 구경의 포를 뒤집어 썼고, 4척 중 왈케와 프레스톤은 침몰하고, 벤함은 선수에, 그윈은 선미에 큰 피해를 입어 전열에서 이탈하여, 23:35시까지 미국 구축함 4척 모두가 전열에서 이탈했습니다. 일본은 구축함 '아야나미'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습니다. 사우스다코다는 야전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기함 워싱턴과 헤어져 기동하던 중에, 곤도 제독의 전함과 중순양함 2척과 격전을 벌이게 되었고, 결국 사우스다코다는 곤도와 기무라 두 제독의 집중적인 공격으로 인해 적어도 42발의 포탄을 맞고 통신 레이더, 수상 레이더, 3개의 화력제어 레이더, 탑재 수상기와 함상 구조물에 피해를 입고 전장에서 이탈하였습니다.
미국 전함 '워싱턴(Washington)'의 야간사격장면
이제 전투가 가능한 리 제독의 함정은 달랑 전함 워싱턴 혼자, 제독은 그러나 굴하지 않고 홀로 싸울 결의를 하였습니다. 야습과 혼전 속에 일본 함대가 발사한 조명탄으로 전함 기리시마의 위치를 확인한 워싱턴은 24:00시를 기하여 모든 함포 사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두 함의 거리는 겨우 8400yard였으며, 2차대전 태평양 전쟁 처음으로 벌어진 전함 대 전함의 전투(--)였습니다. 1만2650yard로 거리가 벌어지는 7분동안 레이더 조준 아래에 워싱턴이 발사한 16inch 포탄 75발중 9발, 5inch포탄 107발중 40발이 기리시마의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기리시마는 전투력을 상실하고 화재와 더불어 타력마저 잃어 버린 채 함체를 움직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의 레이더와 함포는 중순양함 아타고와 다까오를 향하였고,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게 된 곤도 제독은 휘하 함대를 규합하여 북방으로 패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날 밤 일본함대는 34발의 어뢰를 발사하였으나 모두 불발을 기록하였습니다. 폭발과 화염속에 총원을 퇴함시킨 기리시마는 11월 15일 03:20시 자매함 히에이가 어제 침몰했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라앉았습니다. 구축함 아야나미도 되돌아가지 못하고 아침 경에 침몰하였습니다. 미국 구축함 벤함은 철수 중에 포기되어 동료함 그윈의 함포사격을 받고 침몰하였으며, 전투 후 일본군의 어뢰공격을 무사히 피한 워싱턴은 아침나절에 사우스타코다와 구축함과 합류합니다.
과달카날 해전 2 Round의 상황도..
이번 전투는 거의 워싱턴 혼자서 결판을 지은 전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가장 Best한 전함 Action중의 하나... 겠지요.
짧은 마무리
과달카날 해전은 전쟁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가 되는 전투였습니다. 4차 공격에 실패한 일본군은 결국 공세를 포기하고 다음 해 2월까지 기존에 과달카날에 있던 병력들을 철수시킵니다. 이 전투를 기준으로 하여 전쟁의 주도권은 이제 미국에게 넘어가고, 일본은 계속 밀려가면서 종국에는 본토마저 쑥밭이 되어 버리게 되지요. 또한, 과달카날 해전과 비슷한 시기에 북아프리카에서는 독일 롬멜의 부대가 엘 알라메인에서, 독일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괴멸되고, 태평양에서도 파푸아 등지에서도 연합군의 반공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칠은 이 때를 "The Beginning of the end"라는 표현으로 말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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