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규모 현재보다 훨씬 컸다


[한겨레] 재지정 논란을 빚었던 국보 1호 서울 숭례문(남대문)의 500여년전 원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크고 장대한 건축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숭례문의 석축기단과 홍예문(통로)의 상당부분이 땅 속에 파묻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재청과 관할 서울 중구청은 지난달 중순 공원화 재정비 사업을 위해 홍예문의 남북쪽 입구와 상부 누각의 계단 입구 등 다섯군데를 시굴조사했다. 그 결과 1m 넘는 깊이의 땅 속에서 조선초 세종 때 것으로 추정되는 하부 석축 기단과 지대석, 박석(바닥에 까는 돌) 등을 무더기로 발굴했다. 원래 석축, 홍예문의 높이·폭 등이 지금보다 훨씬 크고 장대한 규모였으나 후대 도두 쌓은 흙에 묻혀 규모가 쪼그라든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홍예문 부근 지하층에서는 깊이 1.7m 지점까지 1.5m 크기의 대형 무사석(석축 기단을 구성하는 돌)과 맨 아래 기초석인 지대석, 문 지방석, 확석(문짝을 들어매는 홈 파인 돌쩌귀), 검은 얼룩 묻은 박석 등의 부재들이 원래 연결된 상태 그대로 발견됐다. 홍예문의 경우 원래 문짝 부분의 3분의 1정도가 묻혀 있었으며, 다른 곳에서도 기단 석축과 박석이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확인되어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옛 사서를 보면 조선 태조 7년(1398)에 숭례문을 완성한 뒤 세종 30년(1448)에 대대적으로 재건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이런 기록과 지층의 깊이 등으로 미뤄 발굴된 대형 시설물들은 세종 당시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묻힌 부분을 합칠 경우 숭례문은 좌우 길이만 최소 30m(현 22.9m)를 넘으며, 현재 3m안팎에 불과한 홍예문의 높이도 4m이상 올라가 장대한 위용이 될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손영식 전통건축연구소장(문화재전문위원)은 “조선말기 대규모 성토작업이 있었고, 1907~08년 일제가 남대문을 관통하는 전차선로를 내면서 문 주위로 흙을 1m가량 쌓아올려 아래쪽 기단과 박석들이 완전히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왕도의 정문에 걸맞는 숭례문의 장대한 본래 면모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발견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문화재위원)는 “지하 1m이상 깊이에서 500여년전의 대형 기단부와 부재가 그대로 남아있어 현장을 본 전문가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 홍예문의 높이가 광화문, 수원 팔달문보다도 낮고 석축 기단과의 비례도 어긋나 도읍의 정문에 걸맞지 않다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제야 의문을 풀게 됐다”고 말했다. 손영식 소장도 “홍예문과 석축의 아랫 부분을 모두 드러내면 숭례문이 훨씬 장대한 외관을 띠게 될 것”이라며 “문 주위의 잔디 성토층을 걷어내고 묻힌 구조물들을 드러내는 원상 복원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문화재위원회는 이와관련해 지난 15일 건조물 분과(위원장 박언곤 홍대 교수)회의를 열고 숭례문 권역의 추가 발굴과 중구청의 현행 재정비 계획을 잠정 보류할 것 등을 의결했다. 추가 발굴 조사의 성과와 더불어 문화재청과 중구청쪽이 어떤 식의 새 복원안을 내놓을 지가 주목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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