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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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__)
저 워록밀게 접었습니다. 크흑!
 
 
안녕하세요.
워록 밀리터리정보에서 활동중인 jhy9070입니다.
(워록상에서의 아이디는 빵맨이 입니다.)
이것은 제가 2월달에 만든것이고요,
꾸준히 업데이트되어 현제 10탄인가 까지 있습니다.
5월달에 다시 최신탄을 제작하기 시작할것이고요.
현재는 쉬고있습니다.
워록에서 빵맨이 아시는분 저 보시면 인사하세요 ^^
                                                                   (그리고 이거 순위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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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l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n 1991 Balaklava was one of the most secret towns in Russia. 10km south eas of Sevastopol on the Black Sea Coast, this small town was the home to a Nuclear Submarine Base.


Almost the entire population of Balaklava at the time worked at the Base, even family members could not visit the town of Balaklava without good reason and identification. The base remained operational after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n 1991 until 1993 when the decommissioning process started and the warheads and low yield torpedos were removed. Then in 1996 the last Russian Submarine left the Base, and now you can go on Guided tours round the Cannel System, Base and small Museum, which is now housed in the old weapons stowage hangers deep inside the hillside.

 

91년에 소련연방이 붕괴되기 전까지 발라크라바는 러시아에서 가장 비밀스런 마을이었다. 흑해연얀 세바스토폴에서 동쪽으로 1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소련 핵잠수함 기지로 사용되었던 작은 마을이다.


발라크라바의 인구 대부분은 이 기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친척들 조차도 타당한 이유와 증명없이는 이 마을을 방문할 수 조차 없었다. 이후 기지는 전략적으로 91년부터 93까지 탄두와 소형 어뢰의 제거작업을 거쳐 해체작업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96년도에는 마지막 러시아 잠수함이 기지를 떠나게 되었고 지금은 지하 수로시스템과 소형박물관으로 운영되어 가이드투어로 방문할 수 있다.

 

thanks~ kasama5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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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오랜 시간동안 NSA의 존재를 부인해 왔습니다. NSA는 극비의 정보기관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NSA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미국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었을때인데요. 이 푸에블로호는 NSA의 정보수집함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NSA는 1952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극비 명령으로 탄생되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적대국, 중립국 심지어 우방국가의 통신까지도 도청하고 암호를 해독하기위한 전자통신 전문 정보기관의 설립 명령이었습니다. 본부는 메릴랜드주의 포트 미트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7만명의 직원이 통신감청과 암호 해독, 미국내 통신보안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적대국, 중립국, 우방국의 군사,외교,상업용 암호체계까지 가리지 않고 모조리 가로채는 정보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수학적 두뇌가 우수한 집단이 모인곳이라고도 합니다.
NSA는 다른나라의 암호 또는 비밀부호를 판독하기 전에 그 나라의 암호문을 입수하는데 , 이를 위해서는 세계 각 지역의 송.수신기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각대사관이나 미군 정보기관 이른바, MI(엠아이)가 그것인데요, 우리나라에도 강력한 엠아이가 있죠. 우리나라에서 대북정보의 90%이상을 캐내고 있는 이들은 미군 정보여단으로서 미 육군 정보보안 사령부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NSA의 예하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수집된 모든 정보가 NSA로 가기 때문입니다.
NSA가 공개된 계기는 미첼과 마르틴이라느 두 직원의 소련 망명때문인데요, 이 두사람은 동서연애를 하던 파트너 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스캔들이 날 것을 우려해 소련으로 망명했는데 이때 NSA의 존재를 발설해서 공개된 것입니다. 이때 더불어 NSA의 자매 기관인 영국의 GCHQ마저 공개되고 이렇게 해서 에셜론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현재는 전세계에 걸쳐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델타포스

 

군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그 이름쯤은 알고 있을 델타포스(Delta Force)는 그 명성에 비해 부대의 공식명칭이나 위치, 조직구성 등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미군의 엘리트 특수임무수행부대로서 전체 미군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만을 모아 구성된 부대로 알려져 있다.

 

 

델타포스 기본장비

 

 

 

델타포스는 테러가 빈발하던 시기인 1977년 11월13일 찰스 벡위드 대령이 영국의 SAS연대를 본떠 발족한 미 육군의 대테러 전문부대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등의 특수부대나 미 해군의 SEAL 등이 델타포스의 창설에 영향을 주었다. 합동특수전사령부 예하로서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포트 브래그에 위치해 있으며 `제1 특전단분견대 델타'로 불린다. 3개의 작전대와 1개 지원대, 1개 통신대, 1개 항공소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작전중인 델타대원들

 

 

 

여군으로 구성된 `퍼니 플래툰'도 운영하고 있으며 대테러작전, 특수수색 및 정찰, 인질구출작전 등이 주요 임무. 지원병력을 포함해 총 대원은 약 2500명. 흔히 `오퍼레이터'라고 불리는 델타포스의 작전대원은 200~300명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소 편성 단위는 흔히 `Chalks' 또는 `Troops'라 불리는 `반'이다. 4개의 반이 모여 중대를, 다시 2~3개 중대가 모여 대대를 구성한다. 델타포스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80년 4월에 감행된 이란에 있는 미 대사관 인질구출작전을 통해서다. 당시 델타포스가 탄 수송기와 헬기가 충돌하는 바람에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작전이 취소됐다. 89년에는 파나마의 군부실력자였던 마누엘 노리에가를 붙잡아 미국으로 압송하는 개가를 올렸다.

 

영화 블랙호크다운에 한장면

 

 

 

걸프전에서는 특수정찰 임무수행과 함께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기지 폭파 임무를 맡았다. 이후 델타포스는 콜롬비아 등 일부 중남미 국가에 밀파돼 마약밀매단을 소탕하거나 보스니아에서 밀로반 카라지치 등 전범들의 검거와 제거공작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델타포스 개인장비

 

 

 

 

미 해군특수전사령부 예하의 SEAL은 바다(SEa), 하늘(Air), 땅(Land)을 조합한 이름에 나타나 있듯 작전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또 특수작전에 필요한 모든 전투기술은 이 SEAL에 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의 임무 모두를 `완수'로 귀결짓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SEAL의 명성과 역량에 대한 평가를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이것은 저절로 얻어진 산물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길 “가장 편한 날은 `어제'였다”고 하지 않는가.

 




SEAL은 존 F 케네디의 특수부대 창설지시에 따라 해양작전을 전담할 미 해군의 특수부대로서 1962년 첫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SEAL은 2차 세계대전 때인 1943년 봄 미 해군 건설공병대대(SeaBees)에 소속된 해군보병 자원자들로 조직된 해군전투폭파부대(NCDU)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태평양함대와 대서양함대에 각각 1팀씩 분리, 위치한 이들의 임무는 정찰과 함께 상륙작전시 해변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씰팀 주요 화기들




1947년 미 해군은 이들을 수중타격에 중점을 둔 즉, UDT(수중폭파팀)로 재편성했다.
UDT는 6·25전쟁에 참전해 그 명성을 드높였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데 이어 원산·진남포 등지에서 교량과 터널 폭파, 항구와 강안에서 기뢰제거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62년 UDT의 탁월한 능력을 인정하고 있던 미 해군은 UDT 대원의 일부를 중심으로 마침내 2개팀의 SEAL을 창설하고 UDT와 함께 해군작전지원단 예하로 두었다.
쿠바사태 당시 최초로 작전에 동원됐던 SEAL은 베트남전을 통해 남다른 기록을 양산해냈다.
우선 대원들은 당시까지 실전배치가 안된 M -16소총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6~8명 단위로 움직인 대원들의 주임무는 수색정찰 및 지휘관과 정치적 인물에 대한 저격이었다.
베트콩들은 그들 사이에 `녹색 얼굴의 사람'이라고 알려진 SEAL 대원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SEAL 대원들은 베트남에서 철군할 때까지 200대1이라는 놀라운 사상률을 기록했다.
SEAL은 단 46명만이 희생당했으므로(대부분 빈약한 정보 때문에) 베트콩 9200명 정도가 이들 손에 쓰러져 나갔다는 말이 된다.

 




참고로 베트남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우리 해병대청룡부대와 육군맹호부대도 사상률이 각각 25대1, 17대1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의 SEAL 현황을 미 해군특수전사령부 속에서 살펴보자. 지휘부 아래 제1, 제2 특수전단이 있는데 각각 태평양과 대서양 방면을 담당한다.
또한 SEAL팀에 최신 `MK-V '정(艇)을 비롯한 각종 작전용 보트 운용 등을 지원하는 제1, 제2 특수주정대(SBU)와 교육훈련 기관인 특수전센터, 대테러작전을 주로 수행하는 해군특수전연구발전단(DevGru·옛 SEAL 6팀)이 있다.

 





각 특수전단은 3개의 SEAL팀을 비롯해 1개의 SEAL구조정(SDV)팀과 기타 EOD 등 특작팀을 함께 운용한다.
UDT가 보이지 않는 것은 83년 UDT를 해체하면서 대원의 주특기에 따라 SEAL팀과 SDV팀으로 나누어 소속시킨 데 따른 것이고 따라서 UDT의 임무는 SEAL에 포함되었다.

 

 

이영화에 시갈 형님도 씰로 나옴 



SEAL 대원은 약 2000명선. 작전은 최소 2명으로 구성, 수행하는 예도 있지만 부대 기본단위는 소대로서 16명으로 구성된다.

각 팀은 작전지구가 정해져 있어 그 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2팀은 북극지역에서 작전수행이 가능한 유일한 팀으로 혹독한 겨울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남미지역을 담당하는 4팀은 정글작전에 강하며 스페인어까지 구사한다.
사막전은 3팀과 8팀의 몫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태평양 방면의 제1특수전단 예하의 5팀은 바로 한국을 중심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그린베레



그린베레(Green Berets)는 미 육군특전부대(Army Special Forces)와 그 대원들을 상징한다.



우리에게는 '그린베레'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미육군특전단의 부대명은 그린베레가 아니라 'Special Forces'이다.

육,해,공 군별까지 완전히 다 붙혀서 말하면 ( U.S. Army Special Forces ) 가 되지만 대부분의 육군의 부대가 그러하듯 굳이 육군이라는 말을 더 덧붙히지 않고 일반적으로 그냥 짧게 Special Forces 라 부른다.





● 임무



1. 비정규전Unconventional Warfare(UW)

2. 직접 작전Direct Action(DA)

3. 특수 정찰Special Reconnaissance(SR)

4. 외국의 내부의 방어 (FID)

5. 대테러임무(CT)

6. 심리작전(PSYOP)

등등 특수전에 해당하는 모든 작전을 그 임무로 하며 타국가의 군대양성과 지도 역시 그들의 임무 중에 하나이다.





● 편성



제1특전단-- 워싱턴의 포트 루이스에 주둔, 한국과 일본에도 파견. 작전지역은 태평양과 동-아시아이고, 대테러임무 델타분견대가 있다.

제3특전단-- 노스캐롤라이나의 포트.그래브에 주둔 카리브해와 서아프리카 담당한다.

제5특전단-- 캔터키주의 포트 캠벨에 주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가 작전지역이다.

제7특전단-- 포트 그래브에 주둔 중.남아메리카 지역이다. 파나마에 C중대가 있다.

제10특전단-- 콜로라도 카슨에 있으며, 유럽과 서아시아가 그 작전지역이다. (제19. 20특전단은 예비역이며, 주방위군임무를 수행하고, 전시 증원 그룹이다.)

 

프레데터에 아놀드 또한 그린베레로 설정되어있다





● 역사



미특전단 그린베레의 소수 팀이 아프간전에서 탈레반군과 알카에다요원 1천300여명을 괴멸시키고 적군탱크 50여대를 비롯한 중무기를 파괴했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 2002년 1월8일)



미특전단 그린베레 아프간전의 핵심 임무를 맡다. 그것은 소수 팀들이 침투하여 적진 한가운데에서 대담하게 폭격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마자르-이-샤리프 탈환작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돌파구였다. 바로 그것을 계기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카불·칸다하르 등 탈레반 세력권의 주요 도시들이 줄줄이 함락됐고, 결국 탈레반 정권은 붕괴하고 말았다. 이것은 美 육군 최정예부대 특전단이 거둔 극적인 승리였다.

-----------------------------(뉴스위크 2002년 1월16일)



아프간 전쟁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그린베레의 출발은 195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대전 중 적국에서 기간에 관계없이 비정규전적인 게릴라 활동을 펼치며 많은 전과를 거둔 `그림자 전사'인 전략사무국(OSS)을 해체시키고 중앙정보국(CIA)을 창설했다.

그러나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미 육군에서는 여전히 OSS적인 부대를 더욱 필요로 했다.



1952년 미 육군은 특전부대를 창설하고자 했다.



창설의 주역은 OSS 출신의 아론 뱅크 대령과 러셀 보크만 대령. 그들은 비정규전적인 게릴라 형태의 부대를 미 육군에 적용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뱅크 대령은 창설을 위해 부대원을 모집하는 데 있어 신병들을 원하지 않았다.

2개국어 이상 구사능력과 계급은 하사관 이상, 기본적으로 공수낙하 능력 등 뛰어난 체력과 전투기술, 경력은 물론 지식, 사명감을 요구했다.

까다로운 조건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가 `매우 특별한' 것임을 쉽게 알게 해준다.



때문에 1952년 6월19일 포트 브래그에서 최초의 특전부대인 제10 특전단이 10명으로 창설 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전단에는 수백명의 지원자들이 몰려들었으며, 육·해·공 어디를 통해서든 적 종심 깊이 침투, 기간에 관계없이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는 대원들이 충분히 확보됐다.



철저히 부대임무와 수행능력에 맞춘 부대원 선발과 교육훈련은 그들 스스로 미 육군의 엘리트 중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고 육군 당국 또한 충분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제10 특전단은 1953년 첨예한 냉전의 현장 서독으로 파병되었으며, 일부가 남아 곧이어 창설된 제77 특전단(1960년 창설된 7특전단의 전신)의 근간이 되었다.

오키나와에 위치,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담당하는 제1 특전단은 1957년 창설됐다.



이 즈음인 1958년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는 12명의 `A(알파)-팀' 또는 `A-분견대'가 기본 임무수행 단위부대로 정립돼 `소수정예'를 과시했다.

그러나 특전대원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층 드높인 장본인은 1961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40대의 젊은 존 F 케네디였다. 케네디는 세계적으로 게릴라의 활동이 빈발했던 당시 그 게릴라를 제압할 방법을 군이라는 조직에서 찾았고, 그중 특전부대가 이상적인 수단임을 깨달았다.



케네디는 특전부대의 확대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61년 9월부터 제5, 제8, 제6, 제3 특전단이 잇따라 모습을 보였다.

케네디의 이같은 특전단 확대 지시는 특전단에 대한 신뢰의 한 단면이지만, 훗날 이들의 교육기관인 특수전센터·학교 이름에 케네디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특전대원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거기에는 케네디의 `그린베레'가 있었던 것이다.



1961년 1월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F 케네디는 포트 브래그를 방문, 제18공정군단 예하 제82공정사단 등을 사열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가 더욱 좋아했던 것은 `특전부대(Army Special Forces)'였다.



케네디는 특전부대 증설 및 창설을 지시한 후 그 해 10월12일 이 일로 분주한 포트 브래그를 찾았다.

그는 특수전센터 지휘관 야보로 준장이 쓰고 있는 그린베레를 보고 “장군, 멋지군요. 그 베레를 좋아합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야보로 준장은 “예, 각하. 저와 대원들은 오랫동안 원해 왔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로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야보로 장군은 상급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그날도 그에게 빗발칠 따가운 시선을 잘 알면서도 그의 특전대원들을 위해 대통령 앞에서 그린베레를 썼다. 그린베레는 공식적인 군모가 아닌 탓에 포트 브래그의 사령관은 `누구든 걸리면 영창'이라는 엄포와 함께 그린베레 착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야보로 장군은 훗날 “최고의 엘리트 대원, 최고의 엘리트 부대에 부응하는 의미심장한 심벌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듯, 비공식적으로나마 오랫동안 특전대원들이 애용해온 그린베레를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아 부대의 자존심과 대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 육군에서 누가 그린베레의 원조인가는 확실치가 않다.

야보로 장군을 비롯한 1950년대의 특전대원 일부가 관련 기록을 남기거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구전시켜왔지만 누가 처음으로 그린베레를 썼는가, 또는 누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냈는가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그린베레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1953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제10특전단에 소속된 OSS 출신의 허버트 브루커 소령이 주인공이었다.

부르커 소령이 독일로 파견을 나가자 그를 유심히 봐오던 제77특전단의 로즈 피젤 중위가 그린베레를 구해 그의 팀원들과 함께 훈련장이든 어디서든 그린베레를 쓰고 다녔다.

이후 특전대원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 포트 브래그의 `스모크 밤' 언덕은 그린베레로 가득찼다.



베트남전은 그린베레 특전대원들의 무대가 되었다.

장기간 세계 어느 곳에 투입돼더라도 외부의 지원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들은 주요시설 타격을 비롯해 민사심리전, 전투교육훈련 지원, 심지어 교량건설, 의료지원까지 수많은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미국 군대가 쌓는 업적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케네디의 말을 현실화하듯 수많은 영웅과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후로 특전부대의 작전지역은 더욱 넓어졌다.

중남미의 군부독재정권을 돕는 암살, 납치, 사보타지 교육 등도 있어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1980년대 도미니카 내란 예방 등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지에서의 작전은 특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 년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소련군에 대항하는 무쟈히딘(이슬람게릴라)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현대전술과 스팅거 지대공유도탄 사격을 가르쳤다.


1989 년에는 파나마 침공에 참가하였다 .

1991 년의 걸프전쟁에서는 이집트군 코만도부대를 훈련하였고 이 전쟁후에도 소말리아에서 반아이디드파 조직에게 훈련을 시켰으며 무기를 공급하였다 .

2001 년 아프간전에 참가하여 테러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바 있다.

 

출쳐-네이버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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