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카의 미스터리 문양

나스카의 문양

가장 유명한 지상 그림의 하나인 벌새. 전체 길이는 약 50m
지구 반대쪽 남미 페루의 나스카 평원은 페루 남부의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 기슭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연중 안데스산맥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한류인 홈불트해류가 흐르는 바다에서 습기를 거의 실어 오지 못하기 때문에 열대림이 무성하게 자라기 마련인 위도에 놓여있으면서도 지난 1만년 동안 거의 비가 오지 않았다.

너무 건조해 매 2년마다 겨우 12.5mm 정도의 비가 내리며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사막지형이다.
이 나스카 평원에는 벌새, 고래, 원숭이, 거미, 개, 나무, 우주인, 펠리컨 등의 그림이 30개 이상 그리고 소용돌이, 직선, 삼각형, 사다리꼴과 같은 수많은 기묘한 곡선이나 기하학 무늬들이 200개 이상 그려져 있다.

그림 한 개의 크기가 100m에서 300m에 달하는 거대한 것이다.
어떤 것은8km의 직선이 마치 긴 활주로처럼 뻗어 있는 것도 있다. 그림들이 그려진 면적을 모두 합치면 거의 1,300㎢에 달한다.
도대체, 이런 황량한 사막에 누가, 언제, 왜, 어떻게 그린 걸까?

나스카의 토양은 황색의 점토성으로 작은 돌과 화산자갈로 덮혀 있는데 공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검은색이므로 문양은 돌을 살짝 걷어내고 깊지 않은 골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선명하게 구별된다.
또, 선을 따라 돌을 배치하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치 않는다. 더욱이 이 지역은 매우 건조해서 문양은 오래 보존 될 수 있었다.

이미 16세기 스페인의 연대기 작가인 시에사 데 레온이 '나스카 부근사막에 있는 이상한 부호들'에 흥미를 느꼈지만 과학자들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1941년부터 였다.

이 신기한 문양들을 처음 조사한 사람은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의 농업경제학자인 폴 코스크 교수였다. 그는 나스카의 문양이 지면에서는 도저히 그 그림을 알 수 없고, 공중(지상 300m 이상)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거대한 문양들이 정확하게(1km의 길이에서, 평균적으로 옆으로 2m정도 벗어남) 그려졌다는 것이다.


아홉 손가락의 두손
그의 뒤를 이어 독일의 여성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마리아 라이헤 박사가 연구에 몰두했는데 그녀는 나스카인들은 말뚝에 끈을 묶어 직선을 그렸고, 콤파스의 원리 처럼 중심점을 사용하여 곡선이나 원을 그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도 말뚝을 박았던 흔적과 중심점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녀는 나즈카의 문양들이 B.C200 ~ A.D600년경(나즈카기)에 건설되었다고 주장하고있다.
도자기와 남아있는 나무들의 방사성 탄소측정결과나 나즈카의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들이 나즈카선과 유사하였기 때문에 이 근처에 나즈카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걸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즈카의 문양들을 건설 하였던 걸로 보았다.

새. 전체 길이 250m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나즈카 문명이 출현하기 이전에 나즈카의 문양이 건설되었다는 반대 주장도 나왔다.

1968년 천문학자 제럴드 S. 호킨스는 컴퓨터로 나스카의 문양이 천제와 관계되는지 연구를 시도했는데 나스카 문양과 천체와의 연관성을 찾는데는 실패했다.
그는 나스카에 있는 93개의 그림들과 45개의 별에 관해 측정한 자료들을 컴퓨터에 입력시킨 다음 나스카 선들의 배열과 BC 5000년 이후 해와 달과 별이 차지했던 위치 사이에 일치하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대답은 실망적인 것이었다. 일치가 되는 배열도 몇개있었으나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다.
컴퓨터는 나스카 문양의 선들이 달력을 이루고 있다는 통계적 증거를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저명한 문화연구가인 Johan Reinhard는 나즈카의 많은 선들이 종교적인 성지를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나즈카인들은 산을 숭배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안데스 산에는 많은 신들(그들은 독수리나 콘돌의 형상을 했음)이 거주하고있으면서 날씨와 물과 곡식을 풍성하게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 신들의 우두머리인 비로체(Viracocha)는 산, 물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소설가이며 모험가인 토니 모리슨은 나스카의 바퀴 문양과 안데스 지역에서 보여지는 바퀴의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그곳에서의 인디언들은 아직도 고대 잉카의 전통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가족만의 독자적인 문양을 자신들의 영토 안에 그려서 다른 가족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족일수록 더욱 더 큰 문양을 만드는데 나스카 문양도 바로 가족 집단간의 차별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과시용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거미
나스카의 문양에 대한 수많은 추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세인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끈 사람은 이스터 섬의 모아이가 외계인에 의해 만들었다고 주장한 스위스인 다니켄(Daniken) 이다.
다니켄에 따르면 외계인은 고원에 도착해 두개의 활주로를 건설했다. 외계인들이 고원을 떠난 후 원주민들은 사라진 신(외계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랬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원주민들은 새로 문양을 만들었다. 외계인에 대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968년 이런 내용을 담은 책 '신들의 전차'는 놀랍게도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10년 사이에 3천 5백만부가 팔리는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이론은 몇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우주선착륙장으로 쓰일만큼 땅이 충분히 단단하지 않았고, 두번째로 우주 비행장으로서 쓰이기에는 폭이 너무 좁았다.
세번째로 다니켄은 동물모양의 지리문자(Geoglyph)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우주인
하지만 다니켄의 이론은 과거 우주 조종사였던 짐 우드맨의 관심을 끌었다. 1973년 나스카에 도착한 우드맨은 나스카의 문양을 보고 이 그림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고서는 그렇게 거대한 그림을 정밀하게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있는 생명체만이 만들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던 중 나스카의 문양 근처의 도굴된 무덤에서 발견된 직물(1 평방인치 당 섬유수 : 205x110줄)을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낙하산(160x90줄) 소재보다 섬세하게 짜여졌으며, 열기구에 쓰여지는 소재보다 뛰어난 기밀성(氣密性)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도기에는 기구나 연으로 보이는 깃발의 끈을 늘어뜨리며 비행하는 물체의 그림이 수없이 그려져 있었다. 더욱이 나스카의 천에는 날고 있는 남자의 그림이 무수히 그려져 있었다.
현재 중남미의 오지에 사는 원주민들 사이에는 종교적인 의식을 거행할 때 작은 열기구나 연을 하늘로 띄우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꼬리가 나선 모양인 원숭이. 전체 길이 약 80m

최종적인 단서가 된 것은 '불에 탄 구멍'의 존재였다. 지름이 최대 10m나 되는 구멍에 검은돌들이 놓여 있었는데, 이들을 분석한 결과 극심한 열에 의해 검게 변한 것임이 확인됐다.

1975년 11월 우드맨은 나스카 인들이 기구를 만드는 데 사용했으리라 짐작되는 도구와 당시의 기술만을 사용하여 기구를 만들어 실험하였다. 열기구의 형태는 나스카의 직물과 도자기에 그려져 있는 사면체 그림을 본땄는데 피라미드를 엎어놓은 모습과 도 같았다.

며칠동안 나무를 태워 기구를 부풀리고, 기구가 다 부풀자 기구를 고정시킨 밧줄을 풀렀다. 기구는 몇 초만에 120m나 올라가 14분을 비행했다.
이 실험으로 나스카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문양을 그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러나, 나스카 문양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 나스카 문양이 의미 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확실한 근거와 이론은 아직도 밝혀지고 있지 않다

 

 

 - The Nazca Lines -

1. 도    입

기원전 1000년경에 벌써 문화가 꽃피웠던 곳. 1200년대 잉카족은 이 나라의 쿠스코를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한때 인근 에콰도르에서 칠레의 중부까지 세력을 떨쳤지만 1531년 스페인에 의해 멸망. 이때부터 페루는 스페인의 식민지령이 된다.

이후 19세기에 이르러 남미전역에 걸쳐 독립운동의 열기가 고양되자 페루는 1821년에 독립을 선언. 그리고 2년후 남미해방의 아버지 볼리바르가 스페인군을 격파한 1823년에 완전 독립을 달성한다.

페루는 웅대한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찬연히 꽃피웠던 잉카문명의 총본산. 국토는 크게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와 태평양연안지역. 그리고 동부의 산림지역 등 3곳으로 나뉜다. 산악지대의 해발은 줄잡아 5000m에서 7000m사이. 게다가 산중에는 광할한 고원과 호수가 산재해 있다. 한편 동부의 산림지역은 ‘페루의 아마존’이라 불릴만큼 울창한 밀림으로 뒤덮혀 있다.


페루 남부의 태평양 연안과 안테스 산맥 기슭사이에 있는 나스카평원의 메마른 황야에는 고고학상 가장 난해한 수수께끼중의 하나가 펼쳐져있다.1) 이 수수께끼는 사막의 지평선 너머까지 아득하게 뻗어 있는 기이한 선들과 마치 거인의 손으로 그린 듯한 기하학적인 도형들, 그리고 일정한 양식에 맞춘 거대한 새들과 짐승들의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면 이 커다란 그림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들의 전체를 보려면 적어도 300m높이의 공중에서 내려다 보아야한다. 비행기를 타고서야 볼수 있는 그림이다.

나스카 평원은 연중 안데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한류인 훔볼트해류가 흐르는 바다에서 습기를 거의 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열대림이 무성하게 자라기 마련인 위도에 놓여 있으면서도 지난 1만년동안 거의 비가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페루 남부에 있는 불모의 구릉지대는 미국의 우주탐사선이 밝혀낸 화성의 침식된 지형과 비슷하여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규명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전문가들을 이곳에 파견해 연구를 한 일도 있다.

이 평원의 유달리 건조한 특성 때문에 나스카족이 적어도 1500년전에 만든 이 신기한 그림들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 정상적인 기후라면 이 그림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없다. 그림의 선들은 철과 산화철을 함유하고 있는 자갈들을 두 줄로 나란히 늘어놓아 만든 것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자갈들은 떠내려 가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제자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2. 초기의 연구자들과 이론들

이미 16세기 중엽 스페인의 연대기작가인 Sierra de leon이 나스카 부근 사막에 있는 이 이상한 부호에 흥미를 느껴서 그의 저서에 언급하기도 하였지만 과학자들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에는 오랜시간이 흘러야 했다.

1920년대 이래로 이 지역을 답사한 고고학자들은 그 그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무슨 목적이 있었는지 연구하기 시작한다. 우주선의 착륙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스카 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이론밖에 될 수 없다.

그 그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스카인들의 천문학, 지리학, 농업, 관개, 도로, 미술같은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다 고려해야 한다. 최근에 Anthony Aveni라는 학자는 고고학적인 입장과 나스카문화에 기초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나스카그림에 대한 초기이론과도 부분적으로 부합된다.


▲ 초기의 이론들

라인들이 70년전에 발견된 이래로 그에 대한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왔고 독창적인 것은 1960년에 G. von Breunig의 이론이다. 그것은 운동경기 목적으로 라인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선수들이 경주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계속 확장보수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나스카에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에 유추해서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지방의 각 주자들이 고유한 의상을 입고 나와서 운동경기를 했다고 그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William H. Isbell이라는 학자는 거의 동시대적인 페루의 피라밋을 만든 집단과 나스카 그림들을 만든 노동집단의 유사성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나스카사회에서는 종교의식에 필요한 예측할 수 없는 잉여노동력을 보장하기 위한 상비군을 인구 조절 목적으로 두었다고 하였다.

이런 비과학적인 이론중 마지막 것은 E. von Daniken2)에 의해서 제안되었다. 그의 이론은 현실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 E. von Daniken의 이론

「오늘날의 소도시 나스카 근방,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고원 위에 언젠가 외계인들이 착륙해 지구 근저점에서 작전중인 그들의 우주선을 위해 임시 비행장을 건설했다. 그들은 이상적인 지형위에 두 개의 활주로를 만들었다. 혹시 그들은 우리가 본적이 없는 재료로 활주로를 표시한 것이 아닐까? 외계인들은 다시 한번 임무를 마치고 그들의 행성으로 돌아갔다.

놀라울 정도의 외경심을 갖고 이방인들의 작업을 지켜본 고대잉카인들은 ‘신들’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렸다. 여러 해를 기다렸지만 소망이 이뤄지지 않자, 그들은 ‘신들’이 작업할 때 보았던대로 평지위에 선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활주로에 보충물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신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잉카인들이 무슨 잘못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하늘의 존재들’을 노엽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때 ‘신들’이 다른 별에서 찾아왔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별을 향한 선들을 계속 그리도록 충고했다.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고, 별을 향해 그려진 길들이 생겨났다. ‘신들’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났다가 다시 죽었다. 외계인이 만든 원래의 진짜 활주로들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였다.

잉카인들의 뒤를 이은 인디오들은 하늘에서 강림했던 ‘신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한 새로운 표시들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 그리기로는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자, 거대한 동물 모양의 그림을 파기 시작한다. 우선 사람들은 비행을 상징하는 온갖 종류의 새들을 그렸고, 훗날 거미와 원숭이, 물고기 등의 환상적인 윤곽들이 거기에 덧붙여졌다.

솔직히, 이것은 나스카의 ‘음각 그림들’에 대한 가설적인 해석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심히 그냥 지나쳐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완전히 무지하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겠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체계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3)

그렇지만 이것이 현상을 기존 연구방법의 거대한 모자이크 속으로 멋지게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고대 잉카 민족에게 나스카의 환상적인 선들, 즉 활주로를 건설하도록 충동질을 했을까? 그 작업은 현대적 기계와 장비를 쓰지 않는다면 수십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만약 그런 수고를 했는데도, 높은 곳의 ‘선들’이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것은 완전히 정신나간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날아 다니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을까? 이 흥미진진한 질문에 답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역사의 유적확인은 더 이상 고고학자만의 일이 아니다. 여러분야의 학자들로 이루어진 협의회나 수수께끼의 확실한 해답으로 우리를 인도할 지도 모른다. 또한 토론과 정보교환이 문제를 해명할 수 있는 어떤 논거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의 연구가 어떤 결정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까닭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먼 옛날에 우주 비행사가 있었다구요?’라며 비웃는데 있자. 게다가 교과서적인 고지식한 학자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껏해야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정신 병리학자에게 보내는게 낫다고 까지 생각한다.」4)


3. 발전되고 정형화된 다섯가지의 주요한 이론들

▲ 라인과 천문학

앞에서 서술했던 초기 이론들의 중요성은 그들의 설명에 보다는 창의적인 면에 가치가 있다. 나스카 그림들에 대한 해석들은 이러한 초기이론에서 출발해서 과학적이고 고고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되서 다섯가지의 이론으로 정형화되었다.

나스카 연구자이기도 한 고고학자 Paul Kosok은 동짓날에 태양이 특정한 지역에서 라인의 길을 똑바로 비추는 것을 관찰하고 나스카 라인과 천문학과의 관계를 도출해내었다. Kosok는 그의 이론에서 나스카 라인은 지평선의 천체의 행성들이 뜨고 지는 것을 지평선에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라인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에 착수하기 보다는 나스카 문명시기에 발생했으리라고 생각되는 사회 발전상에 대한 자료들을 먼저 종합하였다. 그는 라인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 ‘라인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천문학자였으며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권위있는 성직자였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엄격한 사회구조을 유지하기 위해서 라인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 성직자들은 해안에 있는 사람들의 특정한 정치적 권위도 완전히 무시하였을 만큼 지위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다른 천문학자들은 나스카의 동물그림과 천체의 별자리와의 관계를 연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연구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간과하였다. 나스카의 그림들이 그 위치나 모양에 있어서 실제 별자리들과 얼마나 유사성이 있는지 그리고 나스카시대의 사람들이 과연 천체를 관찰할 만한 문명을 소지하고 있었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후에 천문학자인 G. Hawkins박사5)는(그 당시 스톤헨지의 천문학적 관계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이론에 동의를 표하고 라인근처에서 활동하는 천체들에 행성에 관해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확한 측정과 분석을 사용했기 때문에 앞선 두 이론들보다는 보다 더 과학적이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그도 문화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언급했던 라인과 별자리와의 관계는 북쪽 위도상에 위치하는 관측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그가 지정했던 특정한 날이 안데스지역의 관측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나스카 라인들과 천문학과의 관계의 개연성을 연구한 모든 일련의 이론들은 지나치게 그 성격을 단순화한 나머지 안데스 사람들의 복합적인 문화요소들을 너무 쉽게 간과해버렸다.


▲ 라인과 기하학

이러한 일반성들은 두 번째 이론에서도 명백하게 반복이 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라인들은 나스카인들의 대뇌운동의 산물일 것이며, 그들이 정밀하게 관찰하여서 습득한 기하학의 반영이며 그들의 고도로 발달된 비례개념을 투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Maria Reiche박사6)는 이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인데 그녀는 사막에 있는 그림들의 길이와 각도를 세밀히 연구・비교한 결과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에도 문제점은 있다. 그녀는 나스카 평원에 있는 모든 라인들은 측정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표본만 정해서 결과를 산출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녀는 측정의 조합에 있어서 32.6m, 26.7m, 32.5m등의 세 수치만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에 있어서 수치가 반복된다는 것은 이론이 일반화되는데 필수충분적인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단지 세 가지 수치의 반복으로 이론을 정형화하는 것은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나스카 라인들을 그리기 위해서  나스카인들이 세련된 기하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녀의 이론은 그 건설과정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1981년 Earthwatch7)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이 그들만의 나스카라인을 직접 그려보임으로서 증명이 되었다. 그들은 단지 몇 사람과 두 개의 막대기, 그리고 끈 하나만을 가지고서 북쪽 평원지대에다 나선형의 라인을 만들었다. 그들은 고도의 기하학과 대규모의 잉여노동인력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대략적인 육안으로 조악한 도구들만 사용해서 직선과 곡선들을 만듦으로서 지질학과 라인과의 이론의 입지를 어렵게 하였다.


▲ 라인과 관개수로

세 번째 이론은 기하학보다는 좀 더 직접적으로 나스카문화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라인과 농업・관개수로와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나스카 평원의 자연환경을 살펴보면 대지는 무척 건조한 반면 비는 오랜 기간 동안 거의 내리지 않아 물은 안데스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평원지대의 하층토에는 지하수로와 우물이 지나고 있는데 이 이론에서는 이러한 수로들의 위치가 라인의 위치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veni에 따르면 라인에 있어 중심이 되는 위치가 대부분 강둑이나 곡물창고, 그리고 산맥에 있어서 주요배수로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평원주위로 물을 돌리는 것도 안데스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 이론은 라인의 실효성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목적에 대해서 타당한 설명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들 그림과 부등형 도형들의 모형, 그리고 라인과 물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 라인과 도로시설

다음은 자연과 라인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당시 나스카인들과의 관계를 전개시킨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라인들은 도로시설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고대 페루인들에게 길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중요하였으며 그들은 도처에 도로시설을 확충하였다. 나스카라인과 잉카시대 이전의 도로시설이 그 직진으로 뻗은 곧은 길이나 커다란 부등사변형 모형, 그리고 쌍을 이루는 평행적인 모양이 매우 유사한 점등은 이 이론을 뒷받침해준다. 이것은 부등사변형 모양의 라인을 설명할 수 있지만 농업이론에서와 같이 동물모양의 그림들을 설명해 주지는 못하며 그들이 왜 도로목적으로 만들었는가 대한 충분한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도 부족한 면이 있다. 그들은 아마도 그들의 힘을 과시할 목적으로 라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이 이론에서는 라인들이 예술적인 형태의 측면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림들은 정확하게 그 지면에 부합하는데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을 미술가가 단지 발견만 한 것 같다. 하지만 나스카 라인들을 미술작품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는데 그 그림들을 보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고 높은 위치에서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나스카인들이 하늘에서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현대인의 관점에서 나스카 그림을 보는 것) 앞서 제시했던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들은 라인을 그 당시의 나스카문명에 전혀 기초하지 않고 오늘날의 현대사회의 생각과 사회체계로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4. 나스카 라인에 대한 보완・통합된 이론

지금까지 나스카 라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연구자들이 너무 한쪽으로 비중을 많이 두었다는 데 있다. 모든 이론들은 한 시대상만을 생각하거나 한 가지 경우에만 방향을 잡았었다. 이에 Anthony Aveni는 Persis B. Clarkson, Gary Urton, 그리고 Helaine Silverman등의 일련의 학자들과 이러한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나스카 라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고학, 천문학, 사회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으며, 지금까지 모든 이론들을 폭넓게 수용하여 통합된 이론을 도출해 내었다.

우선 그들은 현장조사에 앞서 가능한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국제항공사진 협회에서 보내온 나스카라인에 대한 모든 사진들을 천문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하였고 나스카인들이 라인들을 만들 당시에 그곳이 지리적으로 전략적인 위치였는지도 조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콜롬부스 이전의 텍스트들의 부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른 안데스 문명과의 유추를 통해서 계속 연구를 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라인의 많은 목적들을 통합시킨 발전된 이론을 정형화 할 수 있었다.

이 이론의 첫 번째 주요한 요소로는 라인이 통로로서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술했던 이론들과 부합하는 내용이지만 여기에서는 라인을 도로목적으로만 제한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것은 예술적인 한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잉카문명 이전 시대의 종교의식에 있어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다른 측면으로는 라인들이 안데스 문명의 ceque 시스템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ceque 시스템은 안데스인들이 그들의 도시를 수도로부터 정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사용했던 것으로 41개의 곧은 라인들이 방사상으로 퍼져 나가서 7개의 건물과 huacas라고 불리는 관측소를 구획짓는 것이다. 각각의 ceque는 다른 사회계층이 존재하였고 ceque의 위치를 통해서 혈족관계에 있는 여러 집단들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으며 종교단체나 활동에 대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이 ceque시스템은 안데스문화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ceque시스템은 종교, 사회조직, 수로, 날짜, 천문학 등에 나타난 안데스인들의 생각이 통합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원에 형성된 것과 라인들과 다양한 측면을 지닌 ceque시스템과는 많은 유사성을 가진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천문학도 이러한 유사성을 뒷받침해 준다. ceque들 중 일부는 식물재배시기의 중요한 날이나 하지때나 동짓날의 행성의 위치와 정렬되어 있으며 플레이아데스 성단이나 불꽃성단과의 관계도 나타난다. 나스카인들에게 특정한 날에 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였는데 예를 들어 태양이 천정점에 있을 때에는 평원의 물이 범람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스카인들은 라인의 위치를 통해서 천문학적인 요소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모든 라인중심부에서 천문학적인 관계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개의 특정한 라인중심부에서는 그것이 잘 나타내어짐을 알 수 있다. 천문학과 관계가 있는 라인들은 거의 평원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으로 나스카라인에서 천문학의 역할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남아있는 라인들에 대한 설명으로는 미흡한 점이 있다.

나스카 라인의 해석에 있어서 가장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는 물과 관개수로에 대한 관계이다. 왜냐하면 라인의 중심부의 위치는 지표수의 위치와 대체적으로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소수의 예외만 제외하면 라인의 중심부는 강의 상류나 지류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거의 대부분의 나스카라인의 중심부분이 나스카강의 발원지와 관계하고 있다. 라인의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는 부등형사다리꼴 모양의 라인이 배치되어 있는데 사다리꼴 모양의 라인은 고도가 더 높은 지대에 위치하며 물이 흐르는 방향과 평행하게 나아간다. 이 연구에서는 가까운 곳에 있는 하천의 유속이나 방향성을 연구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나가고 있다. Aveni는 항공사진들을 이용해서 예전의 관개수로라고 생각되는 곳의 너비, 길이, 배치등을 연구한 결과 기하학적인 모양의 라인의 축과 물의 흘렀던 방향과 상당한 긴밀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나스카라인과 관개수로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킨다. 다소의 오차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라인의 60%정도는 상류를 가르치고 있고 나머지 40%정도를 하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기하학적 모양의 라인들이 땅의 지형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나스카인들에게 있어서 물에 대한 소중함을 투영한 결과라고 Aveni는 말하고 있다.

물에 대한 중요성은 다시 한번 ceque시스템과 천문학을 생각하게 해 준다. 많은 ceque의 마지막 창고들은 물의 흐름이 바뀌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Ceque시스템과 연관있는 많은 종교의식들은 나스카인들과 물과의 관계를 제례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라인이 단순히 보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이론을 다시 살펴보자. 나스카인들에게 있어 걷는다는 행위는 물의 흐름과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라인은 물의 흐름과 상응하며 라인의 중심부는 평원의 중요한 지점과 대응하기 때문이다. Ceque시스템과 많은 종교의식을 가진 나스카인들에게 있어서 라인의 목적이 물과 천문학에 대한 중요성을 조합해서 나타낸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생물체를 표현한 그림들-거미, 벌새, 고래 기타 다른 그림들-은 어떤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서 만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동물그림의 거의 대부분은 북쪽 평원의 5%지역에 위치하며 다른 선형라인과도 그 건조시기를 달리한다. 동물그림들 주변에서 발견된 도자기의 파편을 분석해 볼 때 적어도 선형라인들보다는 앞서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동물그림들은 잘 정돈되거나 배치되어 있지 않으며 어떠한 정형성도 발견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 그림들은 좀 더 초창기에 국지적인 한 문명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5. 맺    음

Helaine Silverman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스카 라인에 대해서 연속성・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연구한 많은 이론들은 라인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해석을 손상시켰다.” 이것은 지금까지 제시되었던 이론들이 안고 있었던 문제점을 명확하게 지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한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라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스카라인을 현재의 문명속에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가지고서 이론을 만들어내었다. 그들은 라인이 어느 한 시대에 1차원적인 사고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였고 나스카인들이 가졌을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Anthony Aveni와 그와 의견이 맞는 다른 학자들은 다목적적인 측면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라인에 대한 모든 이론들을 정립하여 통합하였다. 결국 라인은 나스카인들의 삶에 있어서 천문학, 물, 종교의식, 그리고 ceque시스템이 조화되어서 나타난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이다. Aveni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과거문명에 대한 신앙체계와 사고방식을 그들의 이론에 투영해 내었지만 우리는 나스카인들의 눈을 통해서만-그들의 문화에 대한 모든 것들을 올바로 이해했을때에만-진정한 라인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붙   임 #1

Maria Reche. 독일의 과학자로서 평생을 나스카에 대한 연구로 몸바쳐왔으며 페루 연안의 고대 부족의 천문학적 지식에 접근했던 그녀는 그토록 사랑했던 건조한 계곡에 묻힐 것이다. Reiche는 수학자이자 고고학자로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말년의 그녀는 신경이 날카로왔고 거의 귀머거리에다 장님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애도를 표하며 거행됬던 그녀의 화려한 장례식에 대해 알았더라면 아마도 매우 불평했을 것이다.

“나는 나스카의 평원지방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녀는 자기를 독일에 붙잡아 두려는 가족에게 그렇게 말해왔었다. 그리고 그녀가 1949년에 나스카에 대한 주제로 책을 내기 전까지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나스카라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10년동안이나 그 지역 주민들은 그녀들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450㎢나 펼쳐져 있는 지역의 거대한 기하학적 무늬를 측정하며 혼자서 황량한 나스카지대를 배회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나스카 라인에 대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관광객들이 페루를 찾는 주요한 명소가 되었다.

그녀는 독일의 드레스덴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수학과목을 이수하였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는 염증을 느낀 그녀는 어디론가 다른 나라로 갈 것을 마음먹던 차에 아들의 가정교사를 찾는 쿠스코의 독일영사의 제안으로 우연히 페루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녀는 쿠스코의 안데스 고원도시에서 잉카문명에 대해 매혹되었고 가정교사의 계약기간이 끝남에 따라 San Marco대학의 Julio Tello라는 고고학자의 밑에서 번역가의 일을 하게 된다. 그녀의 열의에 긍정적이었던 Tello는 그녀를 지리적으로 나스카의 계곡과 비교적 가가운 Paracas에 있는 고고학 발굴단의 일원으로 참여시킨다. 어느날 Tello와 다른 고고학자들간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고 Nazca지역에 땅에 새겨진 거대한 음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며 이로써 그녀에 대한 나스카 라인에 대한 연구는 계속된다.

참 고 문 헌


1. http://unmuseum.mus.pa.us/nazca.htm

2. http://www.ctv.es/USERS/tonivive/nazca.htm

3. http://www.anthro.mankato.msus.edu/latinamerica/south/cultures/nazca.htm

4. http://www.dreamscape.com/morgana/rosalind.htm

5. http://www.peru-explorer.com/nasca.htm

6. http://www2.eridu.co.uk/eridu/minisites/nazca.html

7. 리더스 다이제스트, 동아출판사

8. 미래의 수수께끼, 삼진기획

9 신의 지문(上),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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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고된 미스테리서클



보고된 날짜 및 장소 : 2002/7/21 햄프셔주 하이클레레 근처 비컨 힐(피라미드형)






보고된 날짜 및 장소 : 2002/7/28 햄프셔주 A303 Andover By-Pass






보고된 날짜 및 장소 : 2002/7/28 월터셔주 데비지스 근처.Etchilhampton Hill






보고된 날짜 및 장소 : 2002/7/28 햄프셔주 엔도버 근처, 웨이힐




미스테리서클 과연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사람이 만든 미스테리서클은 시들어서 곧 죽지만, 외계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미스
..테리서클은 마디가 생겨 꺽어진 상태로 계속 자란다.

..이렇게 마디가 생긴 밀의 조직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전자렌지 속에서 고온으로
..순간적으로 데워졌을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동서양 예언의 총결론'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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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써클(날짜는 모름)  (0) 2005.06.04

태을점을 중심 오십토(五十土)


2002년 6월 3일 미스테리 서클

장소 : Halewick Lane, Sompting, Nr Worthing, West Sussex.

보고된 날짜 : 2002년 6월 3일













노자는 중앙 오십토(五十土)어머니의 자궁(十)에 비유 하기도 했다.

그 곳 중앙 오십토(五十土)어머니의 자궁(十)은 무궁무진을 뜻하는 자리이며 인간이 처음 태어나는 곳이다.

2002년 6월 18일 월터셔주에서 발견된 열십(十)자 모양의 미스테리서클

2002년 6월 18일 미스테리 서클

장소 :월터셔주 에버베리 근처 에버베리 매널

보고된 날짜 : 2002년 6월 18일

















외순장 16토와 33점 매화점은 중앙의 태을점을 중심으로 361점 바둑판의 전체 대세를 가늠하

는 태극운동을 용사하는 기본점이 된다. 오십토(五十土)는 도서(圖書)란 말의 유래가 된 하도

(河圖)와 낙서(落書)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도는 우주의 생성이치를 밝혀 주는 창조의 설계도

요, 낙서는 역사의 전개방향을 밝혀 주는 비도(秘圖)인데 우주를 잡아 돌리는 근원적인 생명

의 원천으로서 중앙에 五土(양토)와 十土(음토)를 배치하고 있다.

""중앙 五土(양토)와 十土(음토)는 하늘 조상(우주인)을 알아보라는 뜻"

<예)"곤지 곤지 잼잼"(간난아기에게..) "땅에 씨앗 뿌린 조상"

< "연지 찍고 곤지찍고" (결혼전)

"천상의 우주인 엘로힘(조상)이 지상으로 온다 그들을 맞이하자!!"







라엘 방문때 UFO가 북두칠성으로 나타났다. 우성인(牛性人)이 북두칠성(斗牛)이 우성인(牛性人)인데 우성인(牛性人)이 북두칠성(斗牛)이며, 하나님(上帝)의 아들(子)이라 했다. 즉 궁(弓)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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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웹사이트에 2002년 첫번째 미스테리서클을 공중촬영한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나요? 안 기다렸다구요? --;;

2002년 미스테리 서클 시즌을 맞이해 첫번째로 나타난 미스테리 서클은 영국 햄프셔주 소벨톤 근처 롱로드(Long Road)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고된 날짜는 2002년 4월 12일입니다.

피터 소랜슨씨가 나쁜 날씨에도 불구하고 2002년 시즌의 첫번째 미스테리서클을 공중에서 비디오로 촬영하였다고 합니다. 햇빛이 없는 가운데 적어도 비는 맞지 않았다고 ..

그 미스테리서클은 작지만 잘 짜여진 링모양이었구요..두개의 점모양의 원이 있었는데 어떤 '사인'같았으며 그것은 과거 몇년간 여러번 햄프셔주에서 보여졌던 것이라고 언급하네요.

위치는 월롭스 우드 농장인데, 소벨톤 근처라고 합니다.(미스테리서클 번호를 매기는 것 같은데 SU 626-175 라고 적혀있습니다.)

비디오를 촬영한 피터 소랜슨씨는 포토샵을 이용해 색깔을 밝게 처리했지만 서클 모양은 전혀 변화시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제가 아래 사진을 보니 마치 보석을 위에 두개 단 반지 같이 보이는군요..여러분 눈에는 어떻게 보이세요?









위에는 도깨비 서클이라고 제가 이름졌어요 =>UFO대사관처럼 보이죠??


 2002년 두번째 미스테리 서클

장소 : North Down, nr Beckhampton, Wiltshire.

보고된 날짜 : 2002년 5월 6일

2002년 세번째 미스테리 서클

장소 : Newton St Loe, nr Bath, North Somerset.

보고된 날짜 : 2002년 5월 23일










엘로힘(Elohim)의 대사관 미스테리 써클





   미스테리 서클이란 들판 한가운데 원형형태 또는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농작물이 눌려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최초 발생 후 지금까지도 그 생성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현상의 특징을 보면 우선 야간에 만들어지며 짧은 시간내에 만들어집니다. 날씨, 지형, 자연조건과는 무관하게 발생합니다. 미스테리 서클 주위에 어떤 종류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미스테리 서클 모양은 대부분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배열로 나타납니다. 어떤 것은 예술작품과 같은 완벽한 조형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과 단지 어떤 물리적인 힘을 이용한 지적행위의 결과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미스테리 서클의 발생가설 가운데는 외계의 메시지라는 설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는데 이는 일부 UFO 목격장소에서 미스테리 서클의 출현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아래에 있는 미스테리 서클들은 라엘리안 무브먼트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건설하고자 하는 엘로힘의 지구 대사관과 같거나 유사한 것들만 제가 모은 것입니다. 엘로힘의 지구 대사관 모형도와 비교해 보세요.









  엘로힘의 지구 대사관 모형





  엘로힘의 지구 대사관 모형도









  엘로힘의 지구 대사관과 같은 미스테리 서클

스톤헨지-에이브베리-글래스톤베리를 잇는 마의 삼각지대 동쪽에 옛 색슨족의 수도였던 윈체스터(Winchester) 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마을을 높이 167m의 텔레그래프 힐이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바로 아래에 천연의 원형 극장처럼 생긴 치즈풋 헤드가 위치합니다. 치즈풋 헤드 근처에서 1991년 7월 30일 엘로힘의 지구 대사관과 같은 아래 미스터리 서클이 발견되었습니다. 위에 있는 엘로힘의 지구 대사관 모형도와 비교해 보세요





















엘로힘의 지구 대사관과 유사한 미스테리 서클들



2001년 8월 1일 월트셔주(잉글랜드 남부의 주) 알톤 발네스 근처,
우드보러프 힐에서 발견(아래 세 사진은 같은 미스테리 서클입니다)















1994년 7월 옥스퍼드셔주(England 남부의 주)에서 발견








1999년 6월 23일 월트셔주 스탄톤, 세인트 버나드에서 발견








1999년 4월 19일 햄프셔 월로프에서 발견








1993년 8월 1일 월트셔주 첼힐에서 발견











엘로힘의 대사관에 대해 알고 싶으면 클릭!!








2001년 독일 미스테리 서클 ②







발견된 날짜 : 2001년 6월 30일

발견한 장소 : 헤센, 구덴스버그

위치 : 51?1'46,8"N 09?3'10,8"E

농작물 : 밀

토요일 저녁에 헤센의 돌라 근처에 있는 구덴스버그 밀밭에서
미스테리 서클 연구자인 프랑크 라우멘과 딜크 몰렐이 새로운
미스테리 서클을 발견했습니다. 첫번째로 지표관찰을 해보니
미스테리 서클은 몇몇 초승달 같은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었습
니다. 이 미스테리 서클은 이제 독일에서 여섯번째 확인된 미
스테리 서클입니다. 모두 지에렌버그-카셀 지역 안에 있습니다.
































그 림
























2001년 독일 미스테리 서클 ①







발견된   날짜    :   2001년   8월   5일

발견된 위치 : 51?1'03,0"N 09?1'27,2"E

농작물 : 밀

2001년 8월 5일 클라우스 리스트만이 독일
구덴스버그 근처에서 이 미스테리 서클을
발견했습니다.












































클릭! www.rael.org



미스테리 서클과 외계인


이 미스테리 서클 사진은 인터넷의 과학및 UFO관련 사이트에서 자주 볼수 있는것중 하나입니다.
미스테리 서클사진에는 외계인의 모습이 그려져있습니다. 명백하게 사람이 만든 장난이다 라는
분석과 고도의 지능을 가진 어떤것이 만들었다는 평가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방대한 크기로
사람이 조작했다면 상당한 노력과 고도의 수학적 능력이 있어야 할 미스테리 서클입니다.
이 미스테리 서클의 원 사진을 확대하여 (하단)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원반에 나선형으로 나있는 요철을 중심에서부터 8+1비트씩 묶어 해독하면 다음의 문장이 된다.]
"Beware the bearers of FALSE gitts & their BROKEN PROMISES.Much PAIN but still time.
XXXXXXX.There is GOOD up there.We oppose DECEPTION.Conduit CLOSING."
(가짜선물을 주는 자들과 그들의 거짓약속들을 경계하라. 고통이 있었지만 아직시간은 있다.
[XXXXXX는 깨진부분].저 바깥에는 선한 존재들이 있다. 우리는 속임수에 반대한다.")
(해석내용 출처 http://www.sunj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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