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sserschmitt Me 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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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이 끝나가던 겨울의 유럽하늘에서 P-47을 타고 초계비행중이던 2명의 미군 조종사는 그들의 머리위를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처음보는 1기의 비행기를 보았다.
"우와! 저게 뭐야.. 꼭 C-47같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야! 너 저렇게 빠른 C-47을 본적있어? 지금 시속 500마일은 되겠어.."
"저놈의 꼬리날개는 P-51을 닯았는데..?"
"너 저렇게 칠해진 머스탱을 본적있어? 독일군 마크잖아! 맙소사.. 프로펠러도 없어.."
그러나 이기체는 그들의 앞에서 먼거리를 선회해서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P-47기들은 급히 회피기동을 한후 이 전투기를 추적했다. 이 빠른 전투기가 그대로 일직선으로 날아갔다면 도저히 쫒아갈 수 없었을 텐데, 이 전투기는 다시 선회를 시도했다. 분명히 다시 공격해오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P-47기들은 이 제트기의 안쪽에서 선회를 하면서 공격 위치를 내주지 않았고, 무리하게 최대 출력으로 상승 선회를 하던 제트기의 한쪽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타원을 그리면서 강하하기 시작했다. P-47의 조종사들이 사격을 하기위해서 위치를 잡기시작하자 이 비행기의 조종사가 탈출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이 기체는 지상으로 떨어져버렸다. 이 모습을 본 P-47 조종사중 한명인 피트 피터스는 귀환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히 그 비행기의 조종사는 초보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엔진도 고장난 듯 했다. 아마도 우리를 향해 무리하게 선회하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 엄청난 속도를 제대로 이용하는 노련한 에이스였다면 아마 우리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독일 공군의 비밀무기였던 세계최초의 실용 제트전투기 Me 262였다. 1944년- 45년 까지 연합군에게 큰 위협으로 간주된 제트전투기 Me 262는 그러나 위와 같은 일화처럼 우수한 조종사의 부족과 자주 말썽을 일으키는 엔진으로 인해서 처음에는 기대했던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기체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술이 개발되고 계속 되는 개량으로 결국 연합군 폭격기부대의 가장 위험한 적수가 되었다.
* 개발 *
이 제트기의 개발은 대전이 발발하기 전이었던 1939년 1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독일의 선도 항공기 업체였던 하인켈사와 메서슈미트사는 제트엔진의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제트전투기의 개발을 시작했다. 하인켈사는 기술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었으나 정치적으로 앞서나가던 메서슈미트사가 먼저 제트전투기의 개발을 수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미 세계최강의 공군을 가지고 있던 독일공군은 이 미래 전장의 주역이될 제트기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이 비행기가 꼭 필요할 것이라는 빌리 메서슈미트 박사의 믿음에 따라 메서슈미트사의 설계팀이 비밀리에 외로이 개발을 진행해 나갔다.
1942년 시험비행을 준비중인 Me 262V3 초창기의 Me 262 시제기들은 이와같이 뒷바퀴가 후미에 있는 프로펠러기의 디자인을 따랐다. 양산형으로 가면서 기수에 앞바퀴가 장치되어 근대 제트전투기의 세발자전거식 바퀴배열로 바뀌게 된다. |
1941년 드디어 원형 1호기 Me 262V1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초창기였던 제트엔진의 진척이 늦었다. 기대와 달리 계속되는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BMW003 터보제트엔진의 개발이 늦어지자, 할 수 없이 시제기는 프로플러엔진 유모210을 달고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1942년 3월 드디어 BMW003엔진이 완성되자 드디어 제트비행기로서의 첫 비행을 시행할 수 있었는데 엔진이 갑자기 말썽을 일으켜 간신히 추락만을 면할 수 있었다.
[ 편대비행중인 시제기들의 사진, Me 262의 측면 모습을 잘볼 수 있다. ]
결국 BMW사의 엔진에 실망한 메서슈미트사는 융커스 유모 109-004A-0 터보제트엔진으로 변경하기로 했고 1942년 7월에 드디어 성공적인 첫 제트비행이 실시 되었다. 놀랍게도 이 엔진이 아직 미완성 단계였음에도 그 최고속도는 시속 700km나 되었다. 이후 계속적인 개량으로 드디어 1943년 11월이 되자 시속 800km를 넘는 이 제트전투기는 양산이 가능한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무렵 이 제트전투기를 시험비행해본 아돌프 갈란트장군은 이때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치 천사들이 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전투기 5대보다 나는 이 전투기 1대를 선택하겠다."
아돌프 갈란트는 이후 이 제트전투기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실전배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그런데 공군원수 괴링이 히틀러에게 이 신무기를 보고하러 간 순간부터 일이 잘못되기 시작했다. 당시 연합군의 맹공에 시달리던 히틀러는 어떻게 하면 연합군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었는데 괴링이 이 굉장한 속도의 비행기에 대해서 양산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자, 갑자기 그의 뇌리에 적의 전투기가 따를수 없는 엄청난 속도의 폭격기에 대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히틀러는 "이 비행기는 폭탄을 달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네, 총통각하 이론적으로는 폭탄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만..."이라고 괴링이 대답하자 히틀러는 곧장 폭격기로서 이 비행기를 생산하라고 지시했다. 갑자기 최고의 전투기로 탄생한 비행기가 폭탄 몇 개 운반하는 폭격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 히틀러의 고집에 의해서 탄생한 Me 262 A-2a 슈트룸포겔, 동체 아래쪽에 500kg 폭탄 2발을 장착하고 있다. 중량문제로 기수의 기관포 4문중 2문은 철거되었다. ]
이시점에서 폭탄을 장착하도록 설계를 변경하는 것도 어려웠을뿐더러 이 기체가가진 전투기로서의 잠재력이 희생당하는 것을 우려한 공군의 조달책임자 에르하르트 밀히장군은 히틀러의 명령을 무시하고 몰래 계속 전투기로서 개발을 진행해 나갔다. 1944년 5월경 히틀러는 자신의 명령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격노한 히틀러는 밀히를 소환해서 소리를 질러대며 책임을 추궁했다. 그러나 밀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히틀러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총통각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의 폭격기를 격추시킬 전투기이지 폭격기가 아닙니다. 게다가 저 비행기가 폭격용 항공기가 아니라 전투기라는 사실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밀히는 곧바로 해임되어 한직으로 쫒겨났다. 이후 히틀러는 폭격기 이외의 용도로 이 비행기를 생산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돌프 갈란트를 비롯한 공군내의 제트전투기 지지파들은 계속 이 비행기를 전투기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전황이 점점 위급해지자 1944년 9월에 이르러 마침내 히틀러가 태도를 바꾸어 전투기로서 생산을 허가했다. 하지만 사실 제트엔진도 끊임없는 말썽으로 계속 개량을 해야했다. 사실상 히틀러가 간섭을 안했다 하더라도 어차피 1944년 중반 이전에는 실전에서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전배치가 늦어지는 사이에 이미 전세는 완전히 연합군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 신형 제트기가 등장을 한다해도 엄청난 수적열세를 극복하기는 이미 물건너간 상황이었던 것이다.
Me 262에 장착되는 융커스 유모 109-004B-4 터보제트에진의 모습. 기체의 원형이 완성된 상태에서 엔진 개발이 지지부진해짐에 따라 실전 배치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항공기술에서 연합군을 항상 앞서 나갔던 독일 기술의 정수이다. |
* Me 262의 형식 *
Me 262역시 여타 독일공군의 전투기처럼 필요에 따라 많은 개량을 하여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주로 활약한 기체는 Me 262A-1a로서 4문의 30mm MK108 기관포를 기수에 장비한 형이다. 독일군에게 슈발베(바다제비)라고 불리운 형으로 초기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유모 109-004B-4 터보제트엔진을 장비하고 있었다.
Messerschmitte Me 262A-1a Schwalbe | |
분 류 |
단좌 쌍발 제트 전투기 |
동 력 |
융커스 유모 109-004B-4 (추력 : 1984파운드) 2기 |
최고속도 |
시속 870km |
상승속도 |
분당 1200m |
항속거리 |
845km |
무 장 |
30mm Mk 108 기관포 4문 옵션 : R4M 공대공 로켓 24발 |
1945년 3월 화이트 3라는 기체명을 가지고 있던 JG 7 소속의 Me 262A-1a이다. 기체의 전형적인 도색을 볼 수 있다. 전후 Me 262를 몰아볼 수 있었던 척예거는 훗날 미공군이 한국전쟁에서 사용했던 F-80 슈팅스타의 성능이 Me 262와 아주 유사했다고 말했다. 독일이 미군의 항공기술보다 5년정도 앞서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 미군에게 노획된 Me 262A-1a/U4 형으로서 가장 독특한 변종이다. 기수에 장포신의 50mm Mk214-50 기관포가 장비되어 있는 것으로 연합군 폭격기를 잡기위한 무장이다. 시제기 2기만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
그리고 2발의 500kg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던 전투폭격기형인 Me 262A-2a형이 개발되었는데 이 기체는 히틀러가 고속폭격기로서 개발할 것을 주장하여 탄생한 기체로 슈트룸포겔 (폭풍의 새)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폭탄 장착에 따라서 기수의 기관포는 30mm Mk 108 2문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폭탄 몇발 떨어뜨리자고 이 우수한 전투기를 폭격기로서 사용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야전 지휘관들에 의해 전투기로 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 두가지형이 Me 262의 주된 기체로 생산되었으며 그외에 여러가지 야전 변형들이 있으나 대부분 소수만 생산되었고 실전에서의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1945년 KG-51에서 활동중이던 Me 262A-2a형이다. 엔진앞쪽에 폭탄이 보인다. 이론적으로는 500kg 폭탄 2발을 장착할 수 있었으나, 고속 비행에 맞는 정확한 조준기의 결여와 폭탄으로 인해서 이륙거리가 길어짐에 따라서 대개 전투요격기로 사용되었다. |
* 실전 기록 *
1944년 10월 3일 드디어 세계최초의 제트전투기 부대가 오스나브뤼크 부근의 두 기지에 실전 배치되었다. 부대의 편성은 Me 262 전투기 30대로 되었고 동부전선에서 250기의 격추기록을 달성하고 있었던 발터 노보트니 소령이 최초의 제트비행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노보트니는 이 부대를 열렬히 교육했으며 초기의 몇가지 전술적인 문제점을 알아내고 곧장 개선하도록 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우리의 목표는 전투기가 아니다. 우리의 Me 262를 가지고 적의 전투기와 선회 공중전을 벌이려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이 기체는 적의 어떠한 전투기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와 상승력, 화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적 전투기들을 따돌린후 연합군의 폭격기들을 공격하고 이후에 적의 전투기가 반격해오면 즉시 이탈하라!"
1944년 11월 코만도 노보트니 부대를 지휘하던 발터 노보트니의 기체이다. 그는 세계최초의 제트비행부대 지휘관으로서 동부전선에서 눈부신 격추기록을 올린후 이 비행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총 격추 스코어 258기를 기록한후 기지로 귀환하여 착륙을 시도하던중 피격되어 전사했다. |
이른바 코만도 노보트니 (노보트니 비행부대)라고 불리우던 이 비행대는 연합군의 폭격기 부대의 상공에 갑자기 나타나서 30mm 기관포를 퍼붓고는 갑자기 사라지는 전법을 구사했다. 기수에 장비된 30mm 기관포 4문의 화력은 제대로 맞기만 하면 몇초내에 미군의 중형 폭격기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항상 충분한 출격대수 확보가 어려워 4-5기 이상을 넘어서는 편대로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때까지 미군 폭격기를 호위하던 P-51D 머스탱의 조종사들은 격추시킬 독일기를 찾아서 폭격기의 한참 앞에서 비행하는 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독일의 Bf 109나 FW 190은 무스탕보다 속도가 떨어졌으므로 미리 먼거리로 마중나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 유리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들어와 무스탕을 완전히 따돌리고 폭격기를 공격하고 사라지는 Me 262로 인해서 폭격기들의 피해가 커가게 되자 폭격기편대의 바로 옆에 달라붙어 돌진해오는 Me 262에게 사격을 가하는 수동적인 호위 전술로 바꾸어야 했다..
[ JG 7 소속의 Me 262A-1a, 엔진과 기관포 정비를 받기위해 뚜껑을 열어놓았다. ]
이 코만도 노보트니는 첫 한달동안에 연합군 항공기 22대를 격추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Me 262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조종사의 부족과 미군전투기의 압도적인 수적우세, 그리고 아직 문제가 많았던 엔진으로 인해서 부대의 희생이 늘어가고 있었다. 이 초창기의 제트엔진은 12시간마다 완전 분해 정비를 시행해야 했고, 저속으로 시행하는 이륙과 착륙시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으며, 엔진의 부족한 가속력으로 인해서 이착륙시에 적기가 내습해오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Me 262를 이착륙시에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Bf 109, FW 190 전투기 편대가 필요했다.
전후에 미군이 촬영하여 공개한 Me 262의 조종석 내부이다. 당시의 러더 페달의 모양이나 조종간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계기판은 상당히 이전의 프로펠러기들과 유사하다. |
그러나 마침내 이 비행대는 1944년 11월 8일 지휘관인 노보트니를 잃으면서 더 이상 전투에 참가할 수 없었다. 이날 Me 262 5기 편대를 이끌고 폭격기 요격에 나섰던 노보트니는 258기째의 적기를 격추했으나 격렬한 미군 전투기들의 반격으로 3기의 Me 262를 잃었으며 노보트니의 Me 262마저 착륙을 시도하던 중 P-51 머스탱 편대의 공격을 받아 땅에 쳐박히면서 폭발하고 말았다. 마침 지상에서 이모습을 지켜보던 아돌프 갈란트는 우수한 부하의 손실에 슬퍼하면서 이 부대를 작전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 P-47의 건카메라에 잡힌 Me 262 최후의 순간, 가장 취약했던 착륙 직전에 포착된 것으로 잠시후 기총사격을 받고 격추되었다. ]
한편, 제트전투기가 성과를 올리기 시작하자 독일공군은 Me 262만으로 구성된 JG-7을 창설했다. 이 부대는 1945년 3월부터 2개월정도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이기간동안 연합군의 4발 중폭격기 300여대를 포함한 470여대의 적기 격추를 기록하는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이때부터는 Me 262의 주익아래에 24발의 공대공 로켓탄 R4M을 장비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단 한발만 명중해도 미군의 중폭격기를 산산 조각낼 수 있는 신무기였던 R4M은 예상대로 큰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 미군에게 노획된 JV44소속의 Me 262, 최후의 순간 갈란트의 지시로 엔진부분이 파괴되어있다. ]
또하나의 Me 262비행부대인 아돌프 갈란트 지휘하의 JV44도 1945년 4월 4일부터 채 한달도 안되는 기간동안 연합군기 56대를 격추하며 맹활약했다. 그러나 이미 독일은 붕괴된 상태였고 이런 전과도 연합군에게는 극히 적은 손실에 불과했다. 그리고 1945년 5월 6일 독일의 항복으로 종전이 되면서 이 제트기는 더 이상 날 수가 없었다. Me 262는 총 1400여대가 생산되었다고 하며 이중 실전에 배치된 것은 절반정도였다고 한다. 종전이 임박한 무렵에는 완성품 Me 262 수십대가 실전부대에 넘겨지지도 못한채로 연합군에게 노획되기도 했다.
일러스트로 보는 전형적인 Me 262의 전투방식 (1945년 3월경) | |
- 1 - 미군의 B-17 폭격기들이 영국기지에서 출격한다. 독일 영공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호위기로서 따라온 P-51D나 P-47 전투기들이 따라붙게 된다. 호위 전투기들은 Me 262의 출현에 따라 밀착 방어를 하게 된다. | |
- 2 - Me 262의 예상 접근로에 유럽기지에서 발진한 미군의 전투기들이 미리 발진하여 차단하기 위한 공중 초계를 시작한다. | |
- 3 - 미군의 폭격기대가 독일 영공에 나타나면 독일의 레이더가 감지하고 방공 전투기부대에 발진 명령이 떨어진다. | |
- 4 - 일단 Bf 109G나 FW 190과 같은 레시프로 전투기들이 먼저 출격하여 미군의 전투기들과 전투를 벌인다. 이동안 Me 262는 출격 대기상태에 있게 된다. | |
- 5 - 미군 전투기들이 독일의 전투기들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는 연락이 있게되면 Me 262가 즉시 출격을 하여 폭격기대 쪽으로 날아간다. | |
- 6 - 날아오른 Me 262는 호위전투기를 피해서 우수한 상승력으로 폭격기대와 호위전투기보다 높은 고도로 올라가서 공격 위치를 잡는다. | |
- 7 - 이후 호위 전투기의 방어가 취약한 곳을 찾아 급강하 하며 30mm 기관포나 R4M 로켓탄을 퍼붓는다. 이후 호위전투기의 출현이 없으면 다시 상승하여 같은 공격을 반복한다. | |
- 8 - 하지만 대개 미군의 호위전투기들이 첫 번째 공격이후에는 Me 262를 방해한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공격비행을 하지 않고 즉시 이탈하여 기지로 귀환한다. | |
- 9 - 마지막으로 기지 상공에서 착륙하기위해 감속하는 Me 262. 하지만 이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착륙 자체도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데다가, 이때를 노리고 덤벼드는 미군의 전투기들의 위협이 있으며 가속능력이 부족하여 미군 전투기의 습격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
* 마치면서 *
독일의 마지막 희망을 짊어지고 전장에 나섰던 Me 262는 단지 독일공군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의미를 떠나서 2차대전이 끝난후 다가올 제트시대의 새물결을 선도한 존재로서 항공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걸작항공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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