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은 거의 모든 전장에서 점점 앞길이 막히고 전선은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소련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장군 '동장군'의 위력앞에 꽁꽁 얼어붙은 동부전선에서는 파죽지세의 독일군도 별 수 없었고, 독일군이 주춤하는 사이 소련군의 반격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열사의 북아프리카에서는 만성적인 보급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군단이 영국군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했고, 독일이 동부전선에 전념하는 사이 영국은 폭격기 병단을 이용해 독일의 뒤통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2차대전에 뛰어들게 되면서 서부전선의 항공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된후 항상 공격의 선봉에서 적의 공군을 격파하며 위세를 과시하던 독일공군도 이제부터 점점 강력해지는 연합군의 항공전력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날아올라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메서슈미트 Bf 109 스토리의 마지막회로 점점 몰락해가는 독일공군과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날아올랐던 시절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 날아오르는 구스타프

전장의 상황이 점차로 악화되고 연합군의 항공전력이 강화되면서 적의 전투기를 제압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고 있던 Bf 109 전투기에게도 점점 역할의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특히 미-영 연합군이 실전에 투입하기 시작한 랭카스터나 B-17과 같은 튼튼하고 강력한 4발 중폭격기들의 위협이 점점 증대되고 있었기 때문에 Bf 109도 이런 폭격기들을 잡기 위해서 더욱 강력한 화력과 빠른 속도, 높은 고도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는 상승력 그리고 방탄장비등의 강화가 절실했다. 특히 무장 강화의 일환으로 F형의 주익에 곤돌라형의 MG 151 기관포팩을 설치하는 등의 시도가 있었지만 이렇게되면 중량이 크게 증가하여 F형의 DB 601 계열의 엔진의 출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비행성능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나타냈다.

이에 메서슈미트사는 1942년 초부터 새로운 후계기인 Bf 109G형의 설계를 시작했으며 1942년 여름경부터는 Bf 109F형을 생산하던 생산라인은 점점 새로운 후계기인 Bf 109G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로 대체되고 있었다. F형의 생산중단과 함께 전선의 전투기 소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G형의 생산이 급격히 늘어났고, 결국 1942년 가을이 되자 전선의 거의 모든 전투기부대에 Bf 109G형이 배치되었다. 하지만 화력의 강화와 강력한 엔진의 탑재 및 기타 부가장비의 증가는 기체의 중량을 크게 늘리게 되어 Bf 109의 탄생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추구되었던 가볍고 날렵한 제공전투기라는 장점을 잃게 되었다. 늘어난 중량을 커버하기위해서 강력한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Bf 109G형은 F형과 같은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질 수는 없었으며 빠른 속도와 강력한 화력을 주무기로 하는 일격 이탈 전투기로 특성을 바꾸게 된 것이다.

 

[ 훗날의 평가가 어찌되었더 간에 실제로 Bf 109G형은 많은 조종사들의 사랑을 받았던 전투기였다. ]

Bf 109G형은 초기 시험비행 단계에서 몇가지 비행성능의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특히 착륙단계의 비행특성이 크게 저하되어 플랩과 랜딩기어를 내린 상태에서는 접지시에 엔진을 풀쓰로틀로 열지 않으면 곤란할 정도였다. 이로 인해 미숙한 조종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경험많은 조종사들도 착륙단계의 비행특성에 대해 '한마디로 최악이다!'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중에 항공전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게 되면서 독일의 전투기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포케불프사에서 더욱 우수한 Fw 190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이 전투기는 Bf 109를 완전히 대체할 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특히 고공비행 성능과 같은 면에서는 오히려 Bf 109가 더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더구나 Bf 109의 생산성이 더 높았기 때문에 전투기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던 독일로서는 별다른 선택도 없었다. 사실 Bf 109는 전쟁 후반기에는 연합군의 최신예 전투기들에 비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성능을 보이고 있었지만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생산이 이루어졌고 그 숫자는 오히려 더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G 형은 수적으로 볼 때 2차대전 전기간에 걸쳐 생산된 모든 Bf 109 시리즈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생산되었다.

 

[ Bf 109G-0 선행양산형 - Bf 109F와 비슷해 보이지만 고고도 작전을 위해 많은 개량이 가해졌다. ]

Bf 109G 초기형은 F형에 비해 외형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내부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핵심 포인트는 더욱 강력한 출력을 가진 DB 605A 엔진이 장비된 것이었다. 이 신형 엔진은 실린더 블록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몇가지 새로운 설계를 통해 해면고도에서 1475마력, 고도 18700피트에서 1355마력이라는 엄청난 출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반면에 엔진 자체의 크기와 중량이 늘어나 기체 전체의 중량증가를 초래했다.

[ Bf 109G의 심장, 다이믈러 벤쯔 DB 605A 엔진 ]

최초의 선행 양산형인 Bf 109G-0는 2만피트 이상의 고고도로 침투해오는 연합군의 중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고고도 요격기로서 개발된 것으로 높은 고도의 낮은 기압에서도 별문제가 없이 압력을 유지해주는 여압식 조종석을 도입했다. 특히 폭격기 요격시에 적 폭격기의 방어총좌에서 발사되는 총탄으로부터 조종사를 보호하기 위해 조종석에 2중으로된 방탄유리를 도입했는데 정면 창에는 무려 90mm 두께의 방탄유리가 사용되었다. 이외에 고고도의 낮은 온도와 기압에서 자주 발생하여 골치를 썩이는 성에를 제거하기 위해서 방습장비를 추가로 장비하게 되었다. 이외에 F형에서 비행성능의 향상을 위해 도입된 꼬리바퀴의 인입장치가 큰 효용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G형에서는 이를 다시 고정식으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초기분량의 Bf 109G-0형 12기는 기체가 완성된후에도 DB605A 엔진의 마무리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아 결국 F형과 같은 DB601E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으므로 본격적인 G시리즈라기 보다는 실험기적인 성격이 강했다.

 

[ 양산에 돌입한 Bf 109G-1, 고고도 요격기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

 

[ Bf 109G의 조종석 ]

이후 DB605 엔진의 양산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이를 장비한 Bf 109G-1이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이때까지 무장은 F형에서와 큰 차이가 없이 기축의 20mm MG 151 기관포 1문과 기수의 7.92mm  MG 17 기관총 2정이 장비되어 있었다. 후에 북아프리카 전선을 위한 열대형인 Bf 109G-1/Trop형에서는 기수의 기관총이 화력 강화를 위해서 실험적으로 구경 13mm의 신형 MG 131 기관총을 탑재하고 성능을 시험받게 된다.

[ 출격전에 점검을 받는 Bf 109G-1, 고고도 요격기로 설계되었으므로 주로 본토방어 부대에 배치되었다. ]

그러나 G-1형은 GM-1 파워부스터를 장비한 강력한 출력의 DB605A 엔진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공전투기라기 보다는 연합군의 중폭격기를 잡기위한 고고도 요격기로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여압유지 장치를 비롯한 부가장비들의 중량증가로 인해서 그동안 대부분의 전선에서 제공전투를 담당하면서 적기들을 압도했던 Bf 109F형에 비해 전투기간의 공중전에 필수적인 순간 상승력, 선회력등이 크게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조종사들은 이 기체가 전투기간의 공중전에는 부적합하다며 제공전투를 담당하기 위한 개선작업을 요구했다.

특히 독일군의 주요전장이었던 동부전선에서는 점점 성능이 좋아지는 소련공군의 신예전투기들과 중고도 이하에서 제공권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Bf 109F형에서와 같이 제공전투기로서의 우수한 성능도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통상적인 전투기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중고도 이하에서는 불필요한 무거운 여압장치를 제거한 G-2형이 생산되게 되었으며, 아직 MG 131 기관총의 신뢰성이 인정받지 못하면서 무장도 기존의 MG 17 기관총이 다시 사용되었다.

[ 통상적인 전투기로서의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 제작된 Bf 109G-2, 아래의 사진처럼 동체하면에 폭탄을 장착하고 주익하면에 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하는 등의 야전 변형도 있었다. ]

이 G-2형은 이후 생산되는 거의 모든 G시리즈의 기본 골격을 이루게 되었다. 물론 고고도 전투를 담당하는 G-1의 개선형도 계속 생산되어 G-3형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 형은 무선장비를 고고도 작전에 용이한 신형으로 교체하고 늘어난 중량을 감당하기 위해서 랜딩기어 바퀴를 대형으로 교체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G-4형은 G-3형의 여압장치를 제거하고 통상적인 작전에 투입이 가능하도록 제작한 것인데 적은 숫자만 생산된후 최대 양산형인 G-6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개발과정을 통해서 초기에 Bf 109G의 개발은 크게 2가지 경로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고고도 요격기형인 G-1, 3, 5형으로 발전하는 계열이었으며 두 번째는 통상임무에 사용하기 위한 G-2, 4, 6으로 발전하는 계열이었고, 이런 방식으로 계속적인 개발과 생산이 이루어지게 된다.

 

[ JG 1 소속의 Bf 109G-2, 조종사가 날개위에서 신문을 읽으며 쉬고 있는 장면이 이채롭다. ]

 

[ 진흙으로 변해 버린 동부전선의 비행장에서 이륙중인 Bf 109G-2 ]

 

[ 동부전선에서 주기중인 Bf 109G-4 ]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물러나 이탈리아에 주둔중일 무렵의 JG 27 소속의 Bf 109G-4, 1연대의 마크가 잘 보인다. 본기의 주익에는 R1 형의 MG 151 기관포 키트가 장착되어 있다. ]

 

[ 출격대기중인 Bf 109G-4, 피곤해 보이는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반기부터는 강력한 연합군의 항공전력에 대항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지고 있었다. ]

 

* 폭격기를 잡아라

1943년에 들어서면서 독일제국의 하늘을 밤낮으로 침투해들어와 실질적인 위협으로 떠오른 영국공군과 미공군의 중폭격기들을 잡기 위해서 Bf 109G 요격기형의 성능개선이 요구되자 고고도 요격 임무를 맡던 G-3형을 더욱 게량한 G-5형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형에는 신형 DB 605D 엔진이 장착되었는데 이 엔진은 대형 슈퍼차저와 메탄올과 물을 혼합해 주사하는 MW50 부스터를 부착하고 있었다. 이 부스터 장치에서 물과 메탄올이 100 옥탄가의 연료에 뿌려지면 순간적으로 1800마력까지 출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나타냈다. 대개 에탄올과 물은 동체하부의 낙하식 연료탱크에 탑재되었다가 조종사가 필요로 하는 경우 엔진으로 주입되어 순간적으로 강한 출력을 낼 수 있어 폭격기 요격에 필수적인 급상승, 고속순항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 더욱 강력해진 고고도 요격기 Bf 109G-5 ]

Bf 109G5/R2 형에서는 원형기에서부터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있었던 이착륙시의 불안정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수직미익과 러더를 약간 크게 디자인하고 뒷바퀴를 약간 길게 설계했다. 그러나 이런 개선작업후에도 이착륙시의 어려운 비행특성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상태여서 미숙한 조종사들을 괴롭혔다. 이무렵 독일의 자원상황이 악화되어 전투기 제작에 필수적인 알미늄, 듀랄루민등의 경금속 자원이 부족하게 되자 기체 강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꼬리날개 부분은 목재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G-5형에서부터 이전에 실험적으로 테스트 되었던 엔진 카울링의 구경 13mm MG 131 기관총을 표준무장으로 장비하게 되었는데  이 기관총은 MG 17에 비해서 사정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높았다.

 

[ MG 131 기관총의 채택에 따라 Bf 109G-5의 기수에 생긴 돌출부를 잘 볼 수 있는 사진 ]

이 MG 131 기관총과 여기에 탑재되는 탄약 (각 300발)을 탑재하기 위해서 기수의 엔진 카울링 부위에 볼록하게 돌출된 부위 (Bump)가 2개 생기게 되었으며 이후 최대 양산형인 G-6형에서도 이무장을 표준으로 사용되면서 이 기수의 형태가 G형 전체를 상징하는 외형처럼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신형 기관총을 표준무장으로 사용하고나서야 비로서 기존의 Bf 109F형에 비해서 화력의 향상이 현격하게 높아진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당시 서부유럽 상공에서 독일공군의 골치거리였던 영국 폭격기들의 주 방어무장이 7.7mm 브라우닝 기관총이었기 때문이었다.

 

[ Bf 109G형의 화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한 MG 131 13mm 기관총 ]

MG 131 기관총의 사거리가 영국폭격기들의 방어 기관총보다 길었기 때문에 독일 전투기들이 영국 폭격기들을 요격할 때 훨씬 먼거리에서부터 기관총의 조준 사격을 시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군의 B-17, 24 중폭격기들이 가세하기 시작하면서는 이런 이점이 상실되게 된다. 왜냐하면 미군 폭격기들의 방어무장으로 사용되던 캘리버 50 기관총은 구경이 12.7mm로서 MG 131과 거의 같은 사거리와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동부전선에 투입된 Bf 109G-6, 이 형이 G형중 가장 많이 생산된 베스트 셀러 모델이다. ]

G-5형의 고고도 작전용 부품을 제거하여 통상의 작전에 사용하도록 제작한 기체가 G 시리즈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Bf 109G-6형이다. 이 G-6형은 약 12000기 이상이 생산되어 모든 G 시리즈를 통털어 가장 많은 기체가 생산되었다. G-6형은 생산량이 많아 다양한 버전의 DB 605엔진을 사용했으며 무장도 다양한 변종을 사용했다. 특히 G-6형은 장비하는 무장에 따라서 R 타입 (Rustsatz) 과 U 타입 (Umrust-Bausatz)의 대표적인 세부 변형이 존재하는데, 특히 이중에서 중장갑을 자랑하는 미군의 중폭격기를 잡기위해 기축의 무장을 대구경의 30mm MK 108 기관포로 강화한 U형이 유명하다.

[ Bf 109G-6형에서 표준 기축 무장으로 사용되었던 MG 151/20 기관포와 U타입에서 사용된 MK 108 기관포, 포구속도와 발사속도는 MG 151이 더 빨랐지만 파괴력에서는 Mk 108이 더 강력했다고 한다. ]

이 MK 108 기관포는 구경이 30mm였으므로 폭발력이 강했지만 포구속도가 초속 580m 정도로 매우 느린편이었다. 따라서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는 느린 포구속도로 인해 불리했지만 속도가 느린 폭격기 요격임무에서는 느린 포구속도가 별로 장애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가공할 파괴력으로 폭격기 킬러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면서 미군의 폭격기들이 연일 독일 본토를 맹폭하자 화력의 강화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었고 심지어는 주익에 Mk 108 기관포 2문을 추가로 장비하여 총 3문의 30mm 기관포를 장비하는 무시무시한 화력의 Bf 109G-6/U5 형까지도 설계되었지만 지나친 중량증가로 인해 비행성능이 턱없이 떨어져 결국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밤마다 독일의 도시들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골치덩어리 영국 폭격기들을 야간에 요격하기 위해서 '낙소스 Z (Naxos Z)'라 불린 야간 경보-수신 장비를 탑재한  Bf 109G-6/U4N형도 생산되었는데 이 형은 야간에 약 30km 정도의 거리안에서 적의 폭격기가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일종의 레이더였다. 하지만 방향만을 탐지할 수 있었으며 적 푝격기와의 거리는 분간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야간전투기형은 일명 '빌데자우'라 불린 유명한 야간 전투기부대에 의해 사용되어 영국 폭격기들과의 야간 전투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Bf 109의 세부형중에서 가장 많은 생산양을 자랑하던 Bf 109G-6/R6형의 일러스트, 기수에 새롭게 사용된 MG 131 기관총의 채용으로 인해 생긴 돌출부 (Bump)의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다.

 

[ Bf 109G-6/R6 형의 하면 사진, 주익하면의 R 타입 야전 키트를 잘 보여준다. ]

R 타입의 경우에는 기축의 기관포는 MG 151 20mm 기관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익에 옵션으로 장비하는 무장에 따라서 분류하게 된다. 물론 R 타입의 (Rustsatz) 야전키트는 Bf 109F 시절부터 무장강화의 일환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Bf 109G-6 형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G-6형에서 이전 형들에 비해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R 타입의 무장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U 타입의 무장과 구분해서 기술하게 된다.

Bf 109G-6/R1형은 동체하면에 500kg 폭탄을 장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전투폭격기형이고  G-6/R2형은 폭격기 요격용으로 주익하면의 곤돌라에 WGr21 로켓탄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가장 많이 사용된 G-6/R6형은 주익에 MG 151 기관포 2문을 곤돌라를 이용해 추가로 장비한 형이었다.

[ 정비사들이 Bf 109G-6/R6를 격납고로 이동시키는 장면 ]

G-6형에서 사용된 이런 다양한 무장은 독일공군이 미군의 중폭격기를 잡기위해 얼마나 골치를 썩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중에서 WG21 로켓탄의 경우는 폭격기 요격을 위한 것으로서 제대로 명중되는 경우 단 한발로도 중폭격기를 대파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파괴력에서는 기관포에 비해서 월등했지만 정확히 명중시키는 것이 어려웠던데다가 기체의 공기저항을 크게 증가시켜 이를 장비하는 경우 속도가 시속 40km 정도 감소되었고 수평미익에 불안정한 기류를 유발하는 경우가 발생해 비행성능이 크게 저하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정된 숫자만이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 로켓탄을 폭격기에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숙련된 조종사들은 이 로켓탄을 적폭격기 편대의 중앙으로 발사해서 편대 한가운데에서 폭발하도록 타이밍을 맞추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미군의 폭격기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폭발에 놀란 폭격기 조종사들이 편대 벗어나 흩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독일 전투기들이 요격하기에 더 쉬운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이런 방식으로 재미를 본 조종사들은 이 로켓탄을 '풀크 젤스퇴러 (Pulk Zerstörer)'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편대 파괴자 (formation destroyer)'라는 뜻이었다.

 

Messerschmitt Bf 109G-6  Gustav

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5A (1475 마력)

전폭: 9.92m

전장: 9.02m

전고: 3.40m

기체중량: 2700kg

최대중량: 3150kg

최대속도: 623km/h (고도 7,000m)

최대고도: 38550피트 (11750m)

항속거리: 725km

무장: 13mm MG 131기관총 2정 (기수), MG 151 20mm 기관포 (기축)

          - 옵션으로 R6 주익 기관포 야전 키트 장착 가능

 

[ Bf 109G-6의 기수를 정면 모습, 기축의 MG 151 기관포구와 엔진 카울링의 MG 131 기관총구 및 카울링의 돌출부위 (Bump)를 매우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이후 G-6형을 조금더 개선하여 새로운 표준 양산형으로 생산을 계획했던 G-7형이 있었지만 몇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양산에 이르지 못했고 신뢰성이 높았던 G-6형의 양산이 계속되었다. 이외에 주력 변종은 아니지만 고속 정찰기로 사용하기위해 기축의 기관포를 제거하고 신형 RB 12.5/7이나 RB 32.7 정찰용 카메라를 장착한 G-8형도 있었다.

Bf 109G-6형 이후의 주요 개량형 중에서는 G 시리즈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던 Bf 109G-10형이 있는데 이 형은 2000마력을 자랑하는 DB 605DCM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고 주익의 무장은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기축의 무장으로는 MK 108 30mm 기관포가 표준무장으로 채택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개량을 통해 G-10형은 화력의 강화와 빠른 속도를 모두 얻을 수 있었는데, 고도 24250피트에서 시속 693km에 이를정도의 고속을 자랑했으며 단 6분만에 2만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 이륙 활주중인 Bf 109G-10, G 시리즈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

그러나 미군의 중폭격기 요격임무에서는 더욱 강력한 화력이 절실하여 동체 하면에 2문의 MK 108 기관포팩 (탑재 탄수 각 80발)을 추가로 장비할 수 있었던 G-10/U4형도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너무 중량이 늘어나 비행성능이 크게 저하되는 문제가 생겨 야전에서는 대개 이 기관포대신에 동체하면에 고정식으로 탑재하도록 하는 장거리 비행용 연료탱크를 장비하고 작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Bf 109G-6형의 조종석을 잘보여주는 사진, 그렇지 않아도 좁은 조종석에 창틀이 많다보니 시야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원형기가 날아오른 이후에 조종사들로부터 계속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이 문제는 G 후기형에 이르러서야 해결되게 된다. ]

G-10/R2형에서부터는 G-6 후기형에서 일부 시험적으로 사용되었던 '얼라하우베 (Erla Haube)' 혹은 '갈란트 후드 (Galland Hood)'라고 알려진 새로운 조종석이 본격적으로 채택되었으며 G-10/R6형에서는 새로운 피아식별장치 (IFF equipment)가 탑재되어 사용되었다.

 

갈란트 후드?   얼라하우베?

Bf 109G 후기형에서부터 새롭게 선보인 신형캐노피로서 조종사 보호를 위한 방탄장비를 강화하고 캐노피 프레임의 설계를 훨씬 실용적으로 변경하여 조종사의 시야 확보를 용이하게 한 것이다. 원래 독일에서는 이 신형 조종석을 처음으로 생산한 공장의 이름을 따서 '얼라 하우베 (Erla Haube)'라 명명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 조종석의 채택을 추진한 아돌프 갈란트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된 '갈란트 하우베 (Galland Haube)'라고도 알려졌으며 이후 서방의 항공서적에서 이것을 미국식으로 표현한 '갈란트 후드 (Galland Hood)'라는 명칭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이 조종석을 가리키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얼라 하우베 (Erla Haube)'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아돌프 갈란트는 영국본토 항공전이 한창이던 1940년 여름에 자신의 Bf 109E에 망원렌즈를 부탁하고 후방의 방탄판을 제거하여 후방시야를 높이려고 개인적인 개선작업을 한적이 있는데 이때 그의 기체를 '갈란트 판쩌 (Galland Panzer)'라 불렀다고 한다. 이것을 갈란트 후드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Bf 109G 시리즈의 생산형중 전쟁의 최종단계에 작전에 투입되고 있었던 양산형은 G-14형으로서 G-6형을 개선한 것이었다. 이형은 DB605 엔진에 순간출력을 강화시켜주는 MW50 부스터를 모든 엔진에 표준으로 부착하고 있었으며 조종석은 '얼라 하우베'형으로 통일 되었다.

[ 동맹을 기념하기 위해 불가리아에 넘겨진 Bf 109G-6, 얼라 하우베 캐노피를 볼수있다. ]

무장에서는 2정의 MG 131 기관총과 1문의 20mm MG 151 기관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런 경무장 (?)에 더해서 폭격기 요격임무와 같이 강력한 화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예비무장으로 R 키트를 이용하여 주익에 2문의 MG 151 기관포를 추가로 장착할 수 있었으며 2발의 WGr21 로켓탄을 장착하고 출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로켓탄은 210mm 구경에 길이가 1미터가 넘는 것으로 폭격기 요격에만 가끔 사용되는 것이었다.

사실 숙련된 조종사들도 이 로켓탄을 비행중인 표적에 명중시키기가 어려웠다고 하는데 일단 명중하면 단 한발로 폭격기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Bf 110에 장비되어 재미를 보았던 '쉬라게 무지크' 방식의 무장이 Bf 109G-14형에서 시도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무장은 20mm 기관포를 상방으로 경사지게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적 폭격기의 후하방에서 따라가면서 사격하는 것인데 Bf 109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하여 실험적으로만 사용되었다고 한다. (슈라케 무지크에 대해서는 기존에 업데이트된 Bf 110 편에서 참고하시기를....)

 

* 종말은 다가오고

하지만 호위전투기없이 연합군의 폭격기만 날아오던 시기가 끝나고 1944년 말부터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P-51D 머스탱을 비롯한 연합군의 전투기들이 독일본토까지 폭격기들과 함께 날아들게 되면서 폭격기 요격을 위한 중무장을 하고 날아오른 Bf 109G들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기체의 중량증가로 인하여 비행성능이 매우 떨어지게 되면서 머스탱이나 스핏화이어와 같은 주요 적기들과 마주치는 경우의 근접 공중전에서 매우 불리해진 것이다. 심지어는 육중한 P-47 썬더볼트와의 근접공중전에서도 수세에 몰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서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은 연합군 전투기들과의 공중전을 전담하기 위해 기수의 표준무장만을 장비한 경무장의 Bf 109G와 폭격기 요격을 전담하기위해 주익에까지 중무장을 탑재한 두가지 그룹의 Bf 109G를 같이 출격시켜야 했다.

[ 미군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109에 탑승하는 조종사, 점점 독일공군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

그러나 이미 수적으로도 점점 열세에 처한 상황에서 이런 운용방식은 미군의 폭격기 요격작전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다. 경무장의 Bf 109G들이 연합군 전투기들과 맞서 싸우는 동안 중무장의 Bf 109G들이 폭격기를 잡는다는 전술을 사용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합군 전투기들의 숫자가 훨씬 우세했으므로 이런 전술은 제대로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젊은 조종사들이 폭격기를 잡기위해 중무장의 Bf 109G를 몰고 날아올랐다가 숙련된 조종사들이 탑승한 연합군 전투기들에게 꼬리를 잡혀 너무나 쉽게 희생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던 것이다.

[ 영국군에 노획되어 성능 시험에 사용된 Bf 109G-6 ]

더구나 중폭격기 요격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던 독일 전투기들과 달리 연합군의 전투기들은 오로지 독일의 Bf 109와 Fw 190을 잡기 위해서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의 우수한 성능만을 추구하면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연합군 전투기들과의 성능차이가 점점 명백해지면서 경무장의 Bf 109G들도 연합군 전투기들과의 전투에서는 점점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944년초에 영국공군은 우연히 온전한 상태로 노획한 Bf 109G (세부형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G-6/U2형으로 추정되고 있음)를 사용하여 영국공군의 신예 전투기였던 스핏화이어 Mk XIV와의 모의 공중전을 여러차례 실시한후 결과를 보고했다. 이 성능비교 시험은 덕스포드의 비밀 비행장에서 실시되었는데, 영국공군은 1940년 영국본토 항공전이 한창일 무렵 Bf 109E와 스핏화이어 Mk I과의 성능비교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이때 그들은 Bf 109E의 성능이 스핏화이어와 대등하거나 앞서는 면이 많아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던데다가 이후에도 영국에 불시착한 Bf 109F와 스핏화이어 Mk V와의 비교 시험에서도 Bf 109F 쪽이 더 앞서는 성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성능비교 시험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비교 시험이 끝난후 많은 양의 보고서가 제출되었는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핏화이어 Mk XIV   VS   Bf 109G

* 최고 속도면에서 우리의 스핏화이어가 Bf 109G에 비해서 거의 모든 고도에서 시속 60km 정도 앞섰으며 16000피트 정도의 고도에서만 두 기체가 비슷하거나 스핏화이어쪽이 시속 10km 정도 빨랐다. 전반적으로 스핏화이어의 속도가 대부분의 고도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 상승능력의 비교결과, 순항속도에서 상승코스로 접어든 양 기체는 16000피트까지는 거의 비슷하게 도달했다. 하지만 풀쓰로틀 상태로 급상승 하는 경우 우리의 스핏화이어가 Bf 109G에 비해서 약간 빨리 상승할 수 있었다.

* 강하능력의 비교결과, 강하로 진입하는 순간에서는 Bf 109G의 가속이 약간 더 빨랐다. 하지만 속도가 시속 611km 정도로 이르게 되면 스핏화이어의 가속능력이 더빠르게되어 109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 선회능력의 비교에서는 늘 그래왔듯이 우리의 스핏화이어가 Bf 109G에 비해서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 결론적으로 스핏화이어 Mk XIV는 Bf 109G에 비해 모든면에서 우월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대등한 조종사가 탑승하고 있다면 공중전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

이런 어려운 상황은 그동안 독일공군이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하고 있었던 동부전선의 하늘에서도 점점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수한 조종사들과 많은 전투기부대가 미-영 공군의 폭격기들을 요격하기 위해서 서부전선으로 이동하자, 그동안 독일공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던 소련공군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해졌다. 더구나 소련이 야심차게 제작한 신예전투기들이었던 야크-3, 야크-9, La-7등의 전투기들은 근접공중전에서 Bf 109G와 대등하거나 약간 상회하는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독일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몇배나 많은 적기들과 맞서싸우며 악전고투를 벌이게 되었고 결국 동부전선의 붕괴상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영웅의 귀환, Bf 109G의 슈퍼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이 300기 격추를 돌파한후 귀환하고 있다. 이 드라마와 같은 사진은 종군기자에 의해서 연출 된 것이라고 한다. ]

한편, 동부전선의 지상전에서 소련의 맹공이 연일 이어지면서 독일 지상군이 연일 패퇴를 거듭하게 되자 지상군을 근접지원할 수 있도록 Bf 109G-14형을 기본으로 하여 장갑판을 강화화하고 동체하면에 폭탄을 장비하도록 하는 대지공격형 전폭기인 Bf 109G-16형이 설계되기도 했지만 이 기체가 본격적으로 전선에 투입되기도 전에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나게되었다.

[ 연합군에 노획된 Bf 109G-10]

Bf 109G형은 F형과의 교체가 한창 이루어지던 1942년 중반이후 42년 말까지 2664기가 생산되었지만 점점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전투기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던 1943년에는 6418기가 생산되었고, 이후에는 생산공장들이 독일의 전 지역으로 더욱 분산되고 이외에도 헝가리, 루마니아등의 동맹국으로까지 분산되면서 총 생산양은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이무렵 이들 항공기 공장에 대한 연합군의 폭격작전이 더욱 증가하고 더 우수한 성능의 FW 190이 본격적으로 생산되었지만 Bf 109의 생산양은 오히려 더 증가하여 1944년 한해동안의 생산양이 총 14212기에 이르를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동맹국들에 대한 전투기 수출도 이루어져 G형의 경우 불가리아에 145기, 핀란드에 70기, 루마니아에 70기, 일본에도 2기가 수출되었으며 헝가리에도 59기, 스페인에도 25기, 체코에도 15기가 수출되었다.

[ 조종사의 부족이 심각해지자 초보 조종사들을 교육하기 위해 급히 2인승으로 개조한 Bf 109G-12 ]

흥미로운 사실은 1945년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독일국내의 통신망이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에 독일 각지에 흩어져있는 생산공장에서는 전쟁이 끝난 것을 몰랐기 때문에 한동안 전투기 생산작업이 계속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전후에 생산된 Bf 109G형은 총 2969기나 된다고 하며 이중 1074기가 레겐스부르그의 공장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 이 기체들은 대부분 생산되자마자 폐기처리되거나 독일을 점령한 연합국들에게 훌륭한 전리품으로 인정되어 압류되었다.

* 너무 늦었고 너무 적었다.

최종 양산형인 Bf 109G 시리즈 이외에도 Bf 109 가문에는 몇가지 특이한 개량형들이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양산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적은양만이 생산되었거나 시험비행 단계에서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을 것이지만, 이런 기체들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도록 한다.

[ Bf 109G-6 형의 바로 앞에서 촬영한 사진]

1943년, 고고도 작전을 위해 생산된 Bf 109G-1형의 성능이 기대에 못미치자 메서슈미트사는 본격적인 고고도 요격기를따로 설계하려고 했다. 이 계획으로 생산된 적은 수의 실험기들이 있었는데 이형이 Bf 109H형이었다.  이 형은 Bf 109G의 발전형이라기 보다는 G형과는 별도의 개발과정을 통해 제작된 것으로 Bf 109F형의 기본틀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이 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고고도 작전을 위해서 주익이 1미터 정도씩 더 연장되었던 것이다. 수평미익도 약간 길계설계되었는데 늘어난 부하를 감당하기 위해서 Bf 109E형까지 사용되었다가 폐지된 수평미익 지지대가 다시 부활되었다. 최초의 Bf 109H-0형은 F형까지 사용되던 DB601E 엔진을 사용했다가 H-1형에서는 G형에 사용되는 부스터가 장비된 DB605A 엔진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H형은 1944년 까지 계속 성능시험을 받게되었는데 고고도 작전을 위해 설계된 기체답게 고도 470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으며 최고속도가 시속 755km에 이르를 정도로 고속성능도 가지게 되었다. 무장에서는 기수의 7.9mm  MG 17 기관총 2정과 기축에 30mm MK 108 기관포를 표준으로 장비하도록 했으며 나중에는 주익에 2정의 13mm  MG 131 기관총을 추가로 장착하도록 강화되었다. 그러나 메서슈미트사로서는 아쉽게도 이 기체의 길어진 주익이 강하중에 불안정한 진동을 유발하는 등의 몇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고 있었던 데다가 라이벌인 포케불프사에서 같은 용도로 개발하고 있었던 Ta 152H를 선보이면서 이 기체에 비해 Bf 109H형의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독일공군측에서 메서슈미트사에 더 이상의 개발을 중단하도록 명령하여 결국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메서슈미트사는 비밀리에 1750마력의 강력한 유모 213E을 장착할 수 있도록 하고 무장을 1문의 MK 108 30mm 기관포와 2문의 MG 151 기관포로 강화한 H-2형과 1700마력의 DB605L 엔진을 탑재한 H-5형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모두 점점 열악해지는 사정과 독일공군의 채택거부로 인해서 생산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 비록 제대로 활약할 기회는 없었지만 Bf 109 가문에서 최고의 성능을 가졌던 Bf 109K-6 ]

1944년 가을경에는 Bf 109K 시리즈의 개발이 추진되어 몇몇 시제기들이 시험비행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 형은 Bf 109G를 근간으로 하여 몇가지 구조적인 변경을 시도하고 MW50 부스터가 장비된 DB605D 엔진과 이후에 계속 생산되는 이 엔진의 변형들을 표준으로 장비한 것이 특징이었다. K형은 K-4, K-6, K-14의 3가지 형이 생산되었는데 K-4형은 2문의 20mm MG 151 기관포를 기수에 장비하고 기축에는 30mm MK108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여 Bf 109 전시리즈 중에서 가장 강력한 표준무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 '얼라 하우베'를 완전히 제식으로 채용하면서 고고도 요격작전용의 여압식 조종석도 표준으로 장비되었다. 이 형은 해면고도에서 시속 610km, 고도 2만피트에서 시속 732km의 최고 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410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고 상승력도 뛰어나 16400피트까지는 3분, 32000피트까지 6분 30초면 올라갈 수 있었다. K-6형 같은 경우는 K-4형에서 기수의 무장을 MG 131 기관총으로 변경하여 기체의 중량을 줄이고 주익에 옵션으로 MK 108 기관포를 장착하거나, 또는 같은 30mm 기관포이면서도 훨씬 빠른 고속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개선된 MK 103 신형 기관포를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K-14형은 주익의 무장을 젼혀 장비할 수 없도록 하여 고도 3만7천피트에서 시속 737km의 최고속도를 기록했다.

이 K형의 경우 K-4, K-6형은 전쟁말기 실전에 모습을 나타냈지만 K-14형은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사실 이 기체들은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들인 P-51D나 스핏화이어 후기형등과도 대등한 수준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전에 투입된 700여기의 K형들은 그 수가 전쟁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적었으며 더구나 기나긴 전쟁으로 조종사 자원이 바닥났던 전쟁 말기에는 이 기체들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조종사들이 거의 없어 대부분 제대로 이착륙도 할줄 몰랐던 햇병아리 조종사들이 탑승한채로 날아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출격한 조종사들은 대부분 연합군 전투기들의 쉬운 표적이 되어 살아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Bf 109G/K 일러스트 Collection ◆

 

1943년 튀니지 지역에 배치된 JG 2 전투비행단 11중대장 율리우스 마임버그 대위의 Bf 109G-1, 고고도 요격기로 설계된 기체였으므로 주로 연합군 중폭격기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던 서부전선이나 이탈리아 전선에서 사용되었다.

 

1942년 5월 프랑스에 배치된 기체로서 역시 JG 2 전투비행단의 Bf 109G-1이다. 기수의 강아지는 제 1중대의 엠블렘이다. 이무렵 JG 2는 한창 Fw 190으로 기종을 변경하고 있었지만, 제 1중대는 고고도 요격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Bf 109G-1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943년 이탈리아전선에 배치되었던 JG 51 전투비행단 소속의 Bf 109G-2/Trop, 기수의 독수리 문양이 '묄더즈 비행단'이라고 불리던 JG 51의 부대마크이다. 트롭형의 특징적인 방진필터를 볼수있다.

 

초록색의 하트를 부대마크로 사용하던 JG 54 전투비행단 제 4중대의 Bf 109G-2, 1942년 여름경의 도색으로 동부전선의 각부대마다 다르게 응용한 특징적인 하계용 도색을 사용하고 있다.

 

1943년 5월, 동부전선에서 활동중이던 JG 52 전투비행단 5중대 소속의 Bf 109G-4, 이 형까지는 기수의 무장이 MG 17 기관총이었으므로 기수의 돌출부 (Bump)는 보이지 않는다. JG 52는 동부전선에서 가장 용명을 떨친 전투비행단으로 Fw190을 채택하지 않고 오로지 Bf 109만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Bf 109G5/U2 형으로 전쟁이 끝난후 3년이 지난 1948년 핀란드 공군에서 사용하던 기체이다. 기수의 국적마크는 전후에 새롭게 도안된 핀란드 공군의 국적마크이다. 이 기체는 이후에서 상당기간 현역으로 활동했다고 하며 Bf 109에서는 드물게 사용되던 샤크 마우스를 도색하고 있다.

  

1942년 6월, 이탈리아 칸셀로에 주둔중이던 JG 53 전투비행단 6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연합군의 폭격기를 잡기위해 주익 하면에 R6 야전 키트를 장착하고 있다.

 

1944년 1월 이탈리아 오베리토에 주둔중이던 JG 53 소속의 기체이다. 기수의 스페이드 마크가 JG 53의 부대마크로서 이무렵 본격적으로 시작된 연합군의 이탈리아 침공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1944년 11월, JG 52 전투비행단 4중대장으로 활동할 당시의 슈퍼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의 Bf 109G-6, 기수의 특징적인 문양은 매우 유명한 것으로 이른 바 '덩클 튤립 (검은 튤립)'으로 불리던 하르트만의 개인 도색이다. 훗날 소련공군 조종사들이 이 문양을 본후 교전을 희피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하르트만은 이 도색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신참 조종사들에게 도색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형 알러하우베 캐노피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1944년 11월 이탈리아의 공식적인 항복이후에도 항복을 거부하고 북부 이탈리아를 근거지로 연합군과 끝까지 싸웠던 ANR 소속의 Bf 109G-6, 독일공군은 이 ANR에게 많은 지원을 했다. 본 기체의 조종사는 이탈리아 공군의 유명 에이스 유고 드라고이다.

 

1944년 11월, 동부전선에서 활동하던 크로아티아 전투비행단 소속의 Bf 109G-10/U4, Bf 109G-10부터는 러더의 형태가 기존 형들에 비해 달라진 것이 특징이다. 이 부대는 형식적으로는 크로아티아 의용 조종사들로 구성되었다고 선전되었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에 독일공군 조종사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1944년 11월 북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ANR 소속의 Bf 109G-10, G-10형은 G-6형과 달리 기수의 돌출부 (bump)가 없는 경우가 많다.

 

1944년 6월 독일 본토의 야간 방공임무에 투입되었던 Bf 109G-10/U4N형이다. 이 기체는 야간작전을 위한 소형레이더를 탑재하고 있었다. 기수의 멧돼지 마크가 부대마크로서 이른 바 '빌데 자우 (야생 멧돼지)'라 불리던 유명한 부대이다.

 

1945년 1월 JG 2 소속으로 본토방어전을 위해 투입된 Bf 109K-4, 후부 동체의 노란색과 흰색의 띠는 이 기체가 이른 바 '제국 수비대 (Defence of Reich)' 소속임을 표시하고 있다.

 

1944년 10월 라인강 방어작전에 사용되었던 JG 27 전투비행단 1연대의 Bf 109K-4, 한때 북아프리카에서 용명을 떨치던 부대였지만 이무렵에는 역전의 에이스들이 대부분 전사하고 햇병아리 조종사들만이 남아 막강한 엽한군의 항공전력에 맞서고 있었다.

 

* 전쟁은 끝났지만...

Bf 109시리즈는 원형기가 날아올랐던 1936년부터 거의 10여년간 독일공군의 최일선 전투기로 활약한 기체였다. 전쟁기간내내 독일과 동맹국에 분산된 생산공장에서 너무나 많은 기체가 생산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생산기수의 집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략 3만3천기 이상이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독일공군이 전쟁기간동안 생산한 모든 단좌 전투기의 6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 기체는 전후에 독일의 기술력을 넘겨받은 체코나 스페인에서 변형기들을 생산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계속 생산된 변형기들까지 계산하면 15년정도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에어쇼에 등장한 스페인 히스파노사의 Ha 1112, Bf 109G형의 핏줄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영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Bf 109 계열기중에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수가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2차대전을 다루는 항공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기체이다. ]

특히 전후에 상당한 무기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체코에서는 Bf 109G-14형을 기본으로 하는 변형을 자체 생산했다. 이 기체는 Avia S-99, S-199등으로 명명되었는데 DB 엔진을 조달할 수 없어 융커스 유모 211F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엔진과 기체의 밸런스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 그다지 좋은 비행성능을 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스페인에서도 전후에 Bf 109G-2 형을 기본으로하는 변형을 자체 생산했고 이 시리즈는 히스파노 Ha 1112로 명명되었다. Ha 1112에는 여러 가지 엔진이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스핏화이어에 사용되던 머린 엔진을 장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스페인제 Ha 1112 시리즈는 1970년대까지도 스페인 공군에서 사용되었으며 이후에 잔여기체들은 각국의 영화사와 박물관으로 판매되어'공군대전략 (Battle of Britain)', '멤피스벨 (Memphis Belle)', '다크블루 월드 (Dark Blue World)'등의 많은 유명 항공전 영화에서 Bf 109의 대역으로 등장했다. (2차대전이 끝난후 제작된 많은 전쟁 영화에서 진품 Bf 109는 거의 볼 수 없으며 대부분 스페인에서 생산한 HA 1112가 Bf 109의 역할을 맡게 된다. 물론 이 기체도 Bf 109시리즈의 설계를 기본으로 제작된 일종의 후계기이니 전혀 엉뚱한 기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헝가리에 남겨진 Bf 109G-10, 헝가리 공군은 본 기체들을 전후에도 상당기간 주력 전투기로 사용했다. ]

물론 2차대전중 사용되었던 진품 Bf 109G의 잔존기들도 전후에 각국에서 상당기간 일선전투기로 사용되었다. 이중에서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루마니아, 헝가리등에서는 상당수의 기체가 남아1955년까지도 공군 전투기로 사용되었으며, 핀란드 공군도 1950년대 중반까지 최일선 전투기로 사용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나찌라고 하면 철천지 원수로 여겼던 이스라엘에서조차 독립전쟁이던 1차 중동전에서 체코에서 생산한 Avia 전투기들을 수입하여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다.

* 연재를 마치면서

메서슈미트 Bf 109 시리즈는 2차대전 기간내내 독일공군이 참가한 모든 전선에서 연합군을 괴롭혔지만, 히틀러의 헛된꿈과 함께 점점 독일의 운명은 파멸로 치닫게 되었으며, 결국 제 3제국이 완전히 파멸할 때까지 이 전투기와 조종사들은 조국을 지키기위해 계속 날아올라 강력한 적기들에 맞서 죽을 때까지 싸웠다.

Bf 109는 2차대전 기간중 항상 독일공군의 핵심전력이었으며 한때는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서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존재였다. 주로 동부전선에서 소련공군을 상대로 총 352기 격추라는 세계최고의 격추기록을 달성한 슈퍼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의 경우 자신이 처음부터 탑승하기 시작한 Bf 109에게 큰 매력을 느껴 Fw 190이나 Me 262로의 기종전환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끝까지 Bf 109를 타고 날아올랐다고 한다. 훗날 그는 서부전선에서도 Bf 109G에 탑승하고 P-51D등의 연합군 전투기들을 10여대 격추시켰다고 하니 조종사의 기량만 따라준다면 Bf 109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연합군에게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비록 나찌독일을 상징하는 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메서슈미트 Bf 109는 너무나 인상적인 행적으로 인해 영국의 스핏화이어와 함께 쌍벽을 이루며 아직까지도 항공기 매니아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항공전의 역사가 이어지는한 영원히 전설적인 불멸의 전투기로서 기억될 것이다.

foxmouse: 그동안 업데이트가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유로 몸도 마음도 지친상태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두달이 넘어서야 Bf 109편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계속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 여하간 연재가 끝날 때는 늘 그렇지만... 시원섭섭합니다. GWP의 다음회에는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마이너 아이템인 하인켈 He 112에 대한 이야기를 계획중입니다. 그나저나 요즘같이 지내서야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 없겠네요.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foxmouse: Bf 109 리뷰가 업데이트 된후 리뷰에 몇가지 잘못된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메일과 게시판을 통해서 제보되었습니다. foxmouse가 리뷰를 할때 참고로 했던 서적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이 글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여 원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오류에 대해서 보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불타는 하늘을 방문해주시는 모든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류에대한 지적을 받았지만 불타는 하늘의 원문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겠습니다.)

* 조규철님 (zetaplus2)의 지적

우선MG-131 장착 실험기체는 G-1/trop 이 최초가 아닙니다. 이미 41~42년에 갈란트의 F-2를 개조해서 장착한바 있으며 소수의 F-4형 시제기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F-2에는 갈란트 스페셜이라는 기체가 두개 존재하는데 하나는 카울링의 MG17을 MG131로 교체한 기체와 다른 하나는 주익에 MGFF/M기관포를 기존 E형 처럼 장착한 형입니다. 중량 증가로 인한 엔진세팅변경으로 100옥탄가의 휘발류를 사용했습니다.)

Bf-109 G-5/6/14에 DB605 DCM엔진이 탑재되었다고 하셨는데 잘못됐습니다. G-10형을 제외한 G-5,G-6,G-14는 DCM엔진에 준하는 AS엔진이 탑재된 통칭 AS버젼이 있습니다. (G-5/AS, G-6/AS, G-14/AS) 카울링부분(기수무장부분)은 G-10,K-4처럼 재설계되어, 외양식별은 기수하면 오일쿨러 앞부분 좌우에 돌출된 오일범퍼가 없으면 AS버젼 있으면 G-10으로 볼수 있습니다. DCM을 탑재한 G-10,K-4는 기수 하면에 죄우에 돌출된 오일범퍼가 있습니다. 그리고 AS버젼은 대전말기에 극소수가 생산된 버젼으로 일선부대에 "몇기씩" 기존 기체들과 혼성편재되어 사용됩니다. 5/6/14의 통상버젼 즉 일반생산된 기체는 95%이상이 DB605A 1475마력을 탑재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의 바르크호른의 G-5는 DB605A엔진을 탑재한 기체입니다. 일반기체 모향 MG131으로 인해 둥근벌지가 생긴 기체엔 AS나 Dcm엔진이 탑재된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K-4의 무장은 통상 MG131 2문에 Mk108 1문으로 기수에 MG151 2문이 탑재됬다고 하신건 소수의 실험기입니다. 그 실험기 조차 20mm MG151/20이 아닌, 15mm MG151/15가 탑재되었습니다.

* kweassa님의 지적

안녕하세요.

아주 오래동안 수많은 2차대전 항공기 관련 서적에서 볼 수 있었던 오류가 여기에서도 보이네요. 아마 사용하신 자료의 오류일 듯 합니다. 처음에 이 글 시작할 때는 오류만 간단하게 지적하고자 했는데, 각각 근거를 달다보니 109 "Kurfurst"형에 대한 보론 정도로까지 분량이 늘어나버렸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

리뷰 3편, "제국의 수호자"편에서;

" K-4형은 2문의 20mm MG 151 기관포를 기수에 장비하고 기축에는 30mm MK108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여 Bf 109 전시리즈 중에서 가장 강력한 표준무장을 가지고 있었다. "

이 문장이 보이는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MG151 기관포를 기수에 장착한 Bf109는 역사상 단 한대도 없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오해로, 신형 MK103 30mm 기관포를 축에 장착했다는 얘기도 다른 자료들에서 가끔 보이는데, 이것도 사실무근입니다. 또, K-14 형이나 K-6형 등에서 날개에 15mm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는 것도 오류입니다.

이 오류가 추적되는 것은, 서구에서 2차대전 비행기들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한 1세대에 속하는 그린(Greene)과 노와라(Nowarra)씨의 저작들에서부터 출발하는데, 그 두 사람의 저작에서 Bf109K형의 기수에 MG151 15mm 기관포가 사용되어 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에델(Ethel), 그린셀(Grinsell), 프리먼(Freeman) 등의 공저로 되어 있는 "Great Book of World War Two Airplanes"에서도 그린과 노와라의 기초조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각각의 저자들이 각각 집필한 109에 대한 여러 저서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후에 거의 모든 서적에서 서로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이 오류가 퍼져나갔습니다.

MG151 기관포는 기본적으로 관통성 AP탄을 사용하는 15mm 기관포로써 제작되었습니다. 후일, 탄의 크기를 20mm로 늘리고, 폭발성 HE탄을 사용하였으며, 그것을 발사할 수 있도록 포신을 개량한 것 외에는 MG151/15와 MG151/20 기관포는 크기 면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다음, 1944년 10월 표준, 11월 개정판으로 명시되어 있는 Bf109K-4 파일럿용 핸드북의 사진들에서 MG131의 장착형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의 장착형태에서 보듯, MG131 기관포도 빠듯하게 자리에 꼭 맞는 형태입니다. MG151은 MG131 보다 길이가 2배 가량 되는, 훨씬 거대한 무기인 만큼, 카울링에 어떻게해서든 어거지로 장착되었다면 아마 포신이 프로펠러 근처까지 왔을 겁니다. 기실, 다른 109 기종들에서 기축에 장착한 한 정의 MG151도 기관포 후위를 가리는 덮개가 조종석에서 파일럿 가랑이 사이에 위치할 정도이니까요.

이 오류는 Bf109K 기종에서, E형 "에밀"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날개무장 기관포의 부활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Bf109K-6 및 K-8형은 실존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 전투기들의 도면은 남아있습니다. 기획단계였는지, 실제 제작되었는지는 불투명합니다. 어쨌든, 그 도면에 의하면 날개 부위의 무장으로 MG151 기관포가 지정되어 있었는데, 1944년 시점에서는 MG151/15, 15mm 기관포는 단종되어 있었습니다.

즉, 1944년 이후에 독일군 문서에서 등장하는 모든 "MG151"은 전적으로 MG151/20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당시의 독일군 관계자들에게는 따로 주석이나 주해가 필요 없는 상식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후세의 연구자들에게는 오해와 오류의 원인이 되었겠지만요.

예컨데, 1944년 6월 23일의 작업으로 기록된 전투기 도면에, "BF109K-8, 1 Motor MK103 2 Flügel MK151"라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윌리엄 그린씨와 같은 초기의 연구자들은 어떤 경위에서인지, 이 내용을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저서 "War Planes of the Third Reich"에 의하면;

"…후일에 생산된 Bf109K-4형은 기축에 표준장비인 MK108 대신, 30mm MK103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MK103 포신의 외부를 감싸고 있는 지름 2.5인치 덮개로 인해 전투기 장착을 위해서는 포신을 교환해야 하는 귀찮은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MK103은 다른 K형들에도 사용되었는데, 전적으로 폭격기요격 임무를 가정하여 제작된 Bf109K-6형의 경우에는 축 기관포 외에도 날개에 곤돌라 장착을 통해 각각 MK103을 기관포를 추가로 장비하고 있었으나, 기수의 15mm 기관포는 기존의 MG131 13mm 기관총으로 교환되었다..."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무려 세 정의 MK103에 두 정의 13mm 기관총을 장착한 프랑켄슈타인 괴물과도 같은 Bf109K-6형이 실제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후일의 연구에 의하면 물론, 이와 같은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MK103의 장착은 실험적인 형태로, 실용화 단계에 조금도 근접하지 못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Flügel MK151(날개의 MG151)"이 "기수의 MG151 15mm"로 둔갑한 것입니다. 설사 기수에 MG151을 장착했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히 15mm가 아니라 20mm MG151/20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구요.

따라서, 결과적으로 정리하자면;

1) G형의 후속기종인 K형이 기획되면서, 늘어가는 미군 폭격기의 위협을 상대하기 위해 E형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날개무장 기관포를 부활시키고자 한 시도는 사실입니다.

2) 이와같은 무장형태는 "표준형" K-4외에, K-2, K-6, K-8, K-14 등의 기종에서 계획단계에 있었으며, 이 계획은 날개에 MK108을 장착하거나, 기존의 109G에서 비행성능에 악영향을 끼친 곤돌라와 같은 외부장착형 20mm 기관포를 날개 안에 장착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그 시점에서는, 어느 위치에 장착하던간에 장착되는 "MG151"은 MG151/20 20mm 기관포이지, 15mm 기관포가 장착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4) 어떠한 경위로 인해, 날개 내부에 장착하도록 계획되어 있던 MG151/20 20mm 기관포가 15mm 로 오해를 받은 후, 기수의 MG131 대신 장착되었다는 '신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MG131이 장착되는 카울링 구간에 MG151을 장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5) 독일군에 존재한 유일한 K형은 K-4 뿐입니다. 종종 언급되는 여타의 K형들은 실존하지 않았거나, "프로토타입"단계라고 부르기도 힘든, 지극히 실험적인 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꽤 확실한 증거들이 많다고 합니다. 또, 1945년도의 공중전 피해를 기록한 독일군 자료에는 K-4형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K-2: 한 대의 실험기 제작

K-6: 한 대의 실험기 제작

K-8: 실존하지 않음. 도면만 존재

K-14:

K-14형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설이 있습니다. 카이든과 같은 연구자들에 의하면 두 대가 제작되어 JG52에 제공되었다고 하고, 이와같은 주장은 80년대 까지는 정설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K-14"라고 알려진 이 전투기들은, 신형 DB엔진인 DB605L을 장착한 K-4형이었으며, 실제 K-14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즉, 실제로 K-14형이 제작된다면 장착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DB605L 엔진을 K-4에 장착시켜 K-14에서 예상할 수 있는 성능수치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 제작된 특별한 실험기들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정식으로 제작되어 DB605L 엔진을 탑재한 K-14형 또한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DB605L을 장착한 K-4형의 속도, 메서슈미트AG, 아우크스부르크 문건

6) 아이러니컬하게도, E형 이후로 다시 한번 날개무장을 지니게 된  Bf109는, 대전 후 스페인에서 생산되어 멀린 엔진을 장착하고 히스파노 20mm로 무장한 기종이 유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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