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sserschmitt Bf 110 Zerstörer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0. 9. 22
2차대전의 독일전투기 하면 누구나 Bf 109나 Fw 190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후광에 가려 주목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독일 공군의 실질적인 주요 전력중 하나로서 어떤 임무에도 다양하게 투입된 독일 공군의 묵묵한 일꾼 Bf 110을 무시한다면 2차대전의 항공전을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 회에서는 독일 공군의 사역마 Bf 110 젤스퇴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전략 전투기 젤스퇴러 *
1차대전이 끝나고 독일공군의 재건이 추진되면서 연료를 조금밖에 탑재하지 못하는 소형 전투기의 한계를 극복하고 폭격기를 완전하게 엄호하여 대항해오는 적국의 단발전투기에게 대적할 장거리 호위전투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독일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전투기를 개발했던 나라는 유럽의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미국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의 전투기를 설계, 제작하는 것은 당시의 기술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독일에서는 항공기의 천재라 불리는 빌리 메서슈미트 박사가 이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Bf 110을 탄생시켰다. 훗날의 평가에서는 실패작으로 평해지고 있지만 사실 2차대전이 시작될무렵 제대로된 쌍발 장거리 전투기는 이 Bf 110 단 한가지 뿐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1940년 6월 전격전 직후 프랑스에 주둔하고 있던 Bf 110C-3형이다. 본 기는 ZG 1 제 1중대 소속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에 투입되었으나 기대와 달리 폭격기 호위임무에서 스핏화이어와 허리케인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
1934년 미래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독일 공군은 메서슈미트사에게 적의 단좌전투기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무장과 빠른 속도를 가진 장거리 전투기를 제작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니까 Bf 110은 그 설계 개념에서부터 장거리 호위전투기로서 개발되었던 것이다. 빠른 속도와 강력한 무장을 가질 수 있다면 기동성이 좋은 소형전투기에 대항해서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이 전투기가 탄생하게된 배경이었다. 1936년 드디어 융커스 유모 210B엔진을 장착한 Bf 110A 시작기가 첫 비행에 성공했고 이후 2년간은 계속 개량이 진행되었다. 이 기간동안 기체의 발전으로 독일 공군이 제시한 조건에 대부분 만족할 만한 성능을 보일 수 있었고 결국 1938년 양산이 결정되었다.
[ 샤크마우스를 도색한 Bf 110C이 당당한 모습으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
이 최초의 양산형은 Bf 110B형이었으며 융커스 유모 210G엔진을 장착하고 있었다. 특징적인 것은 전투기로서는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강력한 무장으로서 기수에 2문의 20mm 기관포와 4정의 7.92mm 기관포를 탑재하도록 했다. 그리고 후방석에서 뒤쪽을 방어하는 1정의 7.92mm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었다. 이 기체의 화력에 대한 독일 공군의 기대는 '파괴자'라는 뜻의 젤스퇴러 (zerstörer)라는 별명에 반영되어 있었다.
이후 1939년부터 엔진을 보다 강력한 다이뮬러 벤쯔의 DB601A로 교체한 Bf 110C형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 형이 본격적인 Bf 110의 대량 생산형이다. 이 모델은 강력해진 엔진으로 속도와 항속거리가 이전 형보다 훨씬 향상되었으며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냉각기의 위치를 낮게 조정하여 난기류 발생을 최소화 시켰다. 그리고 Bf 110C-4형부터는 2명의 조종사들에 대한 보호대책으로 조종석 주위에 장갑판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Messerschmitt Bf 110C-3 Zerstörer | |
분 류 |
2인승 쌍발 장거리 전투기 |
동 력 |
다이뮬러 벤쯔 DB 601A 엔진 (1000마력 X 2) |
최고 속도 |
시속 560km |
항속 거리 |
1080km |
무 장 |
기수 - MG 17 7.92 mm 기관총 4정 (각 1000발) MG FF 20mm 기관포 2문 (각 180발) 후방석 - MG 15 7.92 mm 기관총 1정 |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독일의 전격전에서 Bf 110은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소화해냈다. 폴란드 상공에서는 적의 전투기, 폭격기를 만나는 족족 격추시켰으며 장거리까지 진출하여 적의 비행장을 공습하고 지상부대에 대한 근접 화력지원까지 실시할 수 있었다. 이후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도 독일 지상군을 원호하는 든든한 존재였으며 스투카와 함께 영국해군을 내몰았다. 이후 독일군이 프랑스를 석권할 때까지도 Bf 110은 계속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스투카가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된 적 전투기들의 저항을 만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Bf 110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그것은 항속거리가 짧은 Bf 109E를 대신하여 독일 폭격기들의 장거리 호위를 하는 것이었다. Bf 109E는 폭격기의 호위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이 적의 전투기들을 찾아다니면서 사냥하는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에 방어력이 취약한 독일 폭격기들이 영국의 허리케인이나 스핏화이어와 같은 고성능 전투기들로부터 보호되기위해서는 Bf 110이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야했다.
* 젤스퇴러의 시련 *
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Bf 110은 스투카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었다. Bf 110은 자랑거리인 빠른 속도와 강력한 무장으로 영국 전투기들에게 맞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되었다. 하지만 허리케인에 버금가는 빠른 속도를 가졌음에도 커다란 덩치로 인해서 기동성은 수준이하였는데, 이것이 큰 약점으로 떠올랐다. 적 전투기들보다 높은 고도에서 강하하면서 단숨에 화력을 집중하여 떨어뜨리는 작전이 Bf 110이 영국 전투기들에 대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만일 이 첫 번째 공격에서 적기를 명중시키는데 실패한후 속도를 잃고 근접 공중전이 벌어지는 경우에는 허리케인이나 스핏화이어의 조종사들에게 이 둔중한 적기는 손쉬운 먹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영국 상공에서 Bf 110은 처음으로 임자를 만난 것이었다. Bf 110의 둔한 기동성으로는 영국 전투기에게 한번 꼬리를 물리면 절대로 뿌리칠 수가 없었고 가속력도 부족하여 일단 이런 상황이 되면 절망적이었다.
1940년 8월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의 ZG 1 제 3중대 소속의 Bf 110C-4/B형이다. 이 형은 550파운드 폭탄 2발을 장착가능했던 야보 (전투 폭격기)형이다. |
영국 본토 항공전의 초기에 예상외의 큰 손실을 입은 Bf 110 부대는 취약한 후방의 방어를 위해서 서로 엄호를 해주는 원형 방어진을 구성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서로 엄호를 하는데 신경을 쓰다보니 폭격기대에 대한 호위라는 본연의 임무에서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을 지키는데도 벅찬 상태였던 Bf 110의 조종사들이 폭격기에게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날렵한 스핏화이어의 조종사들은 이 한덩어리로 뭉쳐있는 Bf 110의 무리에 대해서 양떼를 쫒는 늑대처럼 농락했다. 날렵한 스핏화이어는 이 방어 원형진의 주위를 맴돌면서 한 대씩 격추시켰고, 운이 좋은 경우는 한차례의 사격으로 2-3대의 Bf 110에게 명중탄을 뿌릴 수도 있었다.
[ 런던시내 한복판에 떨어진 Bf 110C, 영국 본토항공전에서는 대부분의 기체들이 이처럼 처참한 운명을 맞게된다. ]
결국 Bf 110의 손실율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자 독일 공군은 Bf 109E 부대를 이 Bf 110의 후방에서 엄호하도록 하는 궁여지책을 쓸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폭격기 호위를 위한 엄호 전투기들이 또다시 전투기들에게 엄호를 받는 웃기는 상황이 되 버린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영국 본토 항공전의 후반기에 독일 공군이 빠진 전술의 와해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영국 본토 항공전은 독일 공군의 첫 번째 실패로서 기록되게 되었다. Bf 110의 피해도 엄청나서 전격전을 시작할 무렵 약 280여대가 배치되어 있던 것이 영국 전투가 끝나자 가동기수가 100여기 미만으로 줄어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Bf 110은 지중해,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부전선으로 투입되어 적의 고성능 전투기가 없는 지역에서는 계속 일선기로서 어느정도의 활동은 지속하게 되었다.
* 밤의 사냥꾼으로 *
하지만 이 Bf 110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이 숨어있었다. 그것은 전쟁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독일 점령지역에 대한 영국 폭격기들의 야간 폭격 작전에 대항하기위한 야간 전투기로서의 능력이었다. 2인승기라는 장점으로 밤에 적의 폭격기를 찾는데는 단좌기보다 적합했고, 오랜 체공시간과 모스키토를 제외한 다른 영국 폭격기보다는 빠른 시속 550km의 속도, 그리고 고유의 강력한 무장은 폭격기 요격에 매우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1944년 스타데 지역이 주둔 하고 있던 독일 야간 전투기부대 소속의 Bf-110G-4d/R3형이다. 본기는 기수에 장착된 SN-2 기상레이더로 야간에 적의 폭격기를 스스로 찾아 파괴할 수 있었다. 레이더 조작수가 추가로 탑승하여 승무원은 3명이었다. |
DB601E엔진을 장착하고 있던 Bf 110F형부터 이런 야간 전투기 임무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폭격기 공격을 위해서 Bf 110F-4형부터는 30mm 기관포 2문을 동체하부에 장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Bf 110 야간전투기의 가장 특이한 무장은 일명 슈래게무지크 (schräge musik)이라고 불리던 동체 상부에 전상방으로 경사지게 설치된 20mm 기관포 2문으로서 이것이 필살 병기였다.
[ 리히텐슈타인 기상 레이더를 장비하고 영국공군의 야간공습을 기다리고 있는 Bf 110G-4, 야간 전투기로 변신한 Bf 110은 독일공군의 야간전투기 부대에게는 최적의 항공기였다. ]
이 슈래게무지크는 야간 전투중 영국 폭격기의 바로 후하방으로 접근하면 영국 승무원들이 발견하지 못한다는 전투 경험에 착안한 무기였다. 따라서 영국 폭격기들을 발견하면 그들의 아래쪽으로 몰래 접근하여 영국 폭격기가 눈앞에서 바로 머리위로 왔을무렵 슈래게무지크를 집중 사격하여 폭격기의 배면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비장의 무기가 최초로 실전에 몇차례 사용되었을 때 영국 폭격기 조종사들은 바로 옆을 비행하던 동료기가 갑자기 불덩어리로 변해 버리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는 독일군이 신형 고사포를 도입했다고 추측했을 정도였다.
|
Bf 110의 필살 병기 슈래게 무지크의 장착 위치 및 발사 모습을 보여주는 일러스트로서 적 폭격기 바로 아래에서 약간 뒤를 비행하면서 위쪽으로 발사하는 방식을 이해 할 수 있다. 독일 공군은 이 병기가 노출되지 않도록 예광탄을 절대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
이후 Bf 110은 계속 야간 전투기로 활약했는데 엔진을 더욱 강화한 Bf 110G형은 신형 37mm 기관포를 동체에 장비했으며 야간에서 적의 폭격기를 찾아내기위하여 리시텐슈타인 SN-2 레이더를 장비한 형도 출현했다. 이후 Bf 110G형은 1943년부터 종전때까지 독일 공군의 주요 야간 전투기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압도적인 전력의 연합군에 대항해서 제 3제국이 멸망하는 시점까지 끝까지 싸웠다.
이 Bf 110의 에이스로는 '트론의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하인츠 볼프강 슈나우퍼가 유명한데 그는 종전때까지 계속 Bf 110으로 출격하여 연합군기 121기를 격추하여 야간 전투기부대의 신화적인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군사무기.비행기.전차.개인화기.항모.전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 폭격기 ◇ Junkers Ju 88 ◇ (0) | 2005.10.21 |
---|---|
독일 폭격기 ◇ Dornier Do 17 ◇ (0) | 2005.10.21 |
독일전투기 ◇ Heinkel He 100 ◇ (0) | 2005.10.21 |
독일전투기 ◇ Heinkel He 112 ◇ (0) | 2005.10.21 |
독일 전투기 ◇ Junkers Ju-87 Stuka ◇ (0) | 2005.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