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public F-84 Thunderjet ◇
한국전쟁에서 F-86 세이버만큼의 유명세는 얻지 못했지만 치열한 전투에 휘말린 지상군을 지원하는데 있어서는 최고의 항공기로 꼽혔던 것이 F-84 썬더제트이다. F-84는 지상공격에 있어서도 빠른 속도의 고속 제트전투기가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실증한 기체였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회에는 전장에서의 높은 신뢰성과 빠른 속도 그리고 강력한 타격력으로 조종사들의 사랑을 받았던 전장의 날쌘돌이 썬더제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제트엔진을 가진 썬더볼트의 후예
2차대전의 명전투기 썬더볼트를 제작했던 리퍼블릭사는 전쟁이 끝나가자 전후의 창공의 주역은 제트엔진을 장착한 기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으며 1944년 말부터 제트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최초의 방안은 P-47의 동체를 변형하여 제트엔진을 장착하는 것이었지만 커다란 성형엔진을 위해 설계된 P-47의 통통한 동체는 도무지 제트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리퍼블릭사는 결국 전혀 새로운 기체로 설계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 YP-84 원형 2번기, 혁신 적인 날씬한 동체가 기존의 리퍼블릭사의 프로펠러기들의 육중한 이미지와 상반된다. ]
그리하여 이 신형기는 P-47의 후예로 설계되었지만 P-47과는 전혀 개념이 다른 가느다란 동체에 얇은 직선익을 채택한 새로운 기체로서 태어나게 된다. 후에 한국전장에서 선보인 F-84의 날씬한 동체의 비결은 제네럴일레트릭사의 TG-180 (J35) 엔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이 엔진은 이미 비행을 시작한 F-80이 채택한 엔진보다도 작은 직경을 가지면서도 더욱 강력한 파워를 낼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엔진을 장착한 신형기의 동체는 가늘어졌으며 항력을 감소시키는데 더욱 유리한 조건을 얻게 된다. 설계팀은 이 동체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기흡입구를 기수의 정면에 배치하도록 하였다. 조종석에는 시야 확보를 위해서 물방울형의 캐노피를 설치하고 여압시스템과 사출장치를 설치했다. 이 신형기는 XP-84로 명명되어 미공군의 시험비행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된다.
[ 역시 리퍼블릭사가 제작한 원형기중의 하나로서 YP-84a-45-58482라고 명명된 기체이다. 빠른 속도를 얻기위해 공기 흡입구가 측면에 설치되었으나 별 소득이 없어 채택되지 못했다고 한다. ]
1946년에 실시된 시험비행에서 XP-84는 해면고도에서 시속 960km의 최고속도를 선보였고 12분만에 3만5천 피트까지 상승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미공군은 이 전투기를 정식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으며 리퍼블릭사는 자사의 전투기에 '천둥 (thunder)'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전통을 적용하여 P-47 썬더볼트의 후예를 의미하는 썬더제트 (thunderjet)라는 별칭을 붙이고 즉시 양산체재로 들어갔다.
최초의 양산형은 1947년부터 생산된 P-84B형으로 앨리슨사의 J35-A-15C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으며 고정 무장으로 6정의 12.7mm 기관총을 장착하고 있었다. (기수에 4정, 주익연결부에 2정) 이후 엔진을 신형 전기장치를 갖춘 J35-A-13C로 교체한 F-84C형이 생산되었으나 곧 또다시 J35-A-17D의 신형 엔진으로 교체한 P-84D형으로 이어진다. 이때까지의 변화는 엔진의 교체말고는 없었다.
[ 정식으로 공군에 채택된후 양산된 F-84E형, 당시의 주력기이던 F-80을 능가하는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어 큰 기대를 받았다. ]
1948년 미공군은 전투기의 제식기호를 P에서 F로 변경하였으며 마침 때맞추어 F-84E형이 제작되게 된다. 이 E형에는 몇 가지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었는데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도록 APG-30 레이더 조준기를 장착하게 되었으며 주익의 끝단에 230갤론의 연료탱크를 고정 장비하게 되었고 동체를 12인치 늘려서 조종석의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했다. 특징적으로 동체아래에는 인입식의 JATO (jet assisted take off) 연결장치를 설치했는데 이 JATO를 사용하면 최대 이륙중량을 22460파운드까지 늘릴 수 있었다. (사실 이 보조 추진장치는 일종의 로켓이었기 때문에 RATO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하늘의 천둥
이 F-84E는 한국전쟁이 발발할 무렵 미공군의 6개 항공단에서 사용 중이었으나 한국전쟁 초기에는 미공군 사령부에서는 제5 공군이 가지고 있는 F-80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고성능의 F-84를 파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미 본토에서만 운용되었으다.
[ 미그-15의 등장에 따라 긴급하게 한국으로 보내지기 위해서 항모에 탑재중인 F-84E, 그러나 공중전에서는 역부족이었다. ]
그러나 1950년 11월 소련공군의 비밀무기 미그-15의 등장으로 항공전의 판도가 큰 변화를 겪으면서 F-80을 능가하는 신형기들이 긴급하게 필요하다는 한국 주둔 미공군의 요청으로 F-86A 세이버와 함께 F-84E 썬더제트도 태평양을 건너 파견되었다. 최초의 F-84E부대는 제27 전투비행단으로 기존에는 F-82G 트윈머스탱을 장비하고 있던 부대였다. 당시 이 부대의 임무는 B-29의 호위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미그-15의 성능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서 F-80보다 성능이 뛰어난 F-84 썬더제트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1951년 1월 21일 F-84E가 최초로 미그-15를 격추시키는 성과를 올리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후퇴익을 가진 미그-15에게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더구나 B-29의 호위 임무에 투입된 F-84의 경우는 미그-15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치고 빠지는 미그-15들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F-84는 미그기와의 공중전에서는 역부족임을 실감하고 지상공격 임무로 돌려지게 된다. 그러나 F-84 조종사들은 미그-15와 조우하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공중전에 임했으며 조종사들의 뛰어난 기량으로 한국전쟁이 끝날때까지 9기의 미그-15를 잡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보다 갑절이 많은 18기의 썬더제트가 미그-15에게 희생되었다.
1953년 대구비행장을 베이스로 지상공격 임무에 투입되고 있었던 미공군 제49 전투폭격비행단 소속의 F-84E이다. |
* 썬더볼트의 명성을 이어...
이후 미공군은 미그-15와의 공중전은 전적으로 F-86 세이버가 담당하도록 했으며 F-84는 지상공격임무에 투입하도록 했는데 여기서 F-84의 지상공격능력이 빛을 발하게 된다. 특히 1951년 7월경부터는 더욱 추력이 강한 J35-A-29 엔진을 장착한 F-84G가 전선에 투입되어 F-84E와 함께 맹활약했다.
[ JATO 이륙중인 F-84E, 1951년 대구 비행장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
썬더제트는 슈팅스타에 비해서 속도가 빨라서 대공포화에 피탄될 확률을 줄일 수 있었으면서 무장 탑재력도 쓸만했으며 F-80에 비해서 빠른 속도와 경쾌한 기동성을 가지고 있어서 임무 수행중 미그-15의 기습을 받더라도 효과적인 회피가 가능했기 때문에 생존률이 높았다. 게다가 F-84G형에 이르러서는 항속거리가 무려 3000km를 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장시간 전장의 하늘에 머물러 있을 수 있어서 많은 조종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마치 2차대전 당시 지상공격임무에서 맹활약했던 P-47 썬더볼트의 명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활약상이었다.
[ F-84의 무장능력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주익에 로켓탄과 동체 하부에 2발의 폭탄을 장착하고 전선으로 출격하기 위해 대기중인 모습이다. ]
F-84의 평가가 높아지고 F-51이 점점 구식으로 되어가면서 곧 지상공격 임무를 맡은 많은 전투폭격기대대가 F-51이나 F-80에서 F-84로 기종 개편을 시작했다. 한국 전쟁 중 F-84는 총 86400회의 출격을 감행했으며 총 56000톤의 폭탄을 적진에 투하했다고 한다. 한국 전쟁에서 F-84의 총 손실대수는 122기로서 미그-15에게 격추 당한 18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저공에서의 임무수행도중 대공포화에 희생되었다.
Republic F-84G Thunderjet | |
분 류 |
1인승 전투폭격기 |
동 력 |
앨리슨 J35-A-29 터보제트 엔진 (추력 5600 파운드) |
최고속도 |
시속 1001km |
상승속도 |
10670m 까지 7.9분 |
항속거리 |
3217km (외부 연료탱크 장착시) |
무 장 |
기수 - 12.7mm 기관총 4정 |
* 후퇴익의 천둥
사실 리퍼블릭사는 노스아메리칸사가 후퇴익의 신기술을 적용한 F-86의 개발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내심 경계하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후퇴익의 기체는 저속에서 불안정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항공기 개발사들이 도전을 기피했지만, 고속 제트기의 시대에 후퇴익의 주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퍼블릭사는 F-84의 생산을 계속하면서 남몰래 F-84의 후퇴익 버전의 개발을 1949년경부터 추진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F-84E의 동체를 기본으로 해서 주익을 38.5도의 후퇴익으로 변경하는 것이었는데 리퍼블릭사의 자체코드는 XF-96A이었다.
[ 후퇴익을 가진 F-84F 썬더스트릭, 그러나 등장시기가 늦어 한국전쟁에 참전하지는 못했다. ]
그러나 이런 야심찬 계획과는 달리 실제로 시험비행을 실시했을 때 그 성능이 F-84E를 상회하기는 했지만 F-86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미공군의 발주를 받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계획 자체가 취소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 발발한 한국전쟁이 이 기체에게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었다. F-84E의 지상공격능력에 고무된 미공군이 더 성능이 뛰어난 후퇴익 공격기의 개발을 리퍼블릭사에 요구한 것이었다. 이로서 이 시험기는 XF-84F라는 코드로 변경되어 다시 개발될 수가 있었다. 이 신형기에 큰 기대를 걸었던 리퍼블릭사는 '썬더스트릭'이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부여했다.
1959년 그리스 공군 소속의 F-84F이다. F-84F는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전력으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원조형식으로 NATO회원국에 공급하였다. |
그러나 이 신형기는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점들과 장착이 예정되었던 J65 새파이어 엔진의 면허 생산이 지연되면서 개발이 늦어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미공군은 전장에서의 F-84의 수요가 모자르게 될 것을 걱정했고, 리퍼블릭사에 F-84F가 개발될 때까지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을 감안해서 리퍼블릭사에 기존의 F-84E를 베이스로 추력을 5800파운드로 강화한 J35-A-29 엔진을 탑재한 기체를 생산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것이 썬더제트의 최후기 모델인 F-84G형이다. 그러니까 F-84G는 형식번호는 F형보다 뒤였지만 F-84F가 개발될 때까지만 잠정적으로 생산되기로 했던 직선익의 모델이었다.
1962년 터키 공군 소속의 F-84G형이다. 형식번호는 G형이지만 F형보다 머저 생산된 직선익의 기체로서 F-84E와 겉으로는 구별이 어렵다. |
하지만 F-84F는 계속 개발이 지연되어 1952년말에서야 시험비행을 실시할 수 있었고, 결국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실전배치 되지 못했으며 결국 F-84G가 한국전쟁에서 가장 맹활약하게 되었다. F-84G는 F-84E에 비해서 지상공격능력을 더욱 강화한 기체로서 시속 1000km까지 이르는 속도로 고속 공격기로의 이미지를 굳혔으며 제트전투기로는 최초로 공중급유 장치를 장비하고 전술핵탄두를 장비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게 되었다. 특히 F-84G의 날렵한 기동성은 공중곡예에도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아 1953년 발족한 미공군 곡예비행팀 '썬더버드'가 최초로 장비한 기종으로도 유명하다. 이 곡예비행팀이 썬더버드로 명명된 것은 F-84G의 별명인 썬더제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였다.
[ 미공군 곡예비행팀 썬더버드의 최초 사용기체가 되는 영광을 얻게된 F-84G, 물론 이것은 F-84가 가진 민첩한 기동성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후퇴익의 F-84F는 F-86보다는 성능이 뒤떨어져 미공군의 주력 전투기 경쟁에서는 밀려났지만 지상공격기로서는 인정받아 2000기 정도가 생산되었고 많은 물량이 나토 회원국과 그 외의 우방국들에게 수출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썬더스트리크는 후퇴익의 형태로 인해서 이후 제작된 많은 항공 영화에서 미그-15의 대역을 맡기도 했었다.
Republic F-84F Thunderstreak | |
분 류 |
1인승 전투폭격기 |
동 력 |
앨리슨 J65-W-3 터보제트 엔진 (추력 7800 파운드) |
최고속도 |
시속 1125km (마하 0.91) |
상승속도 |
분당 2630m |
항속거리 |
3770km (외부 연료탱크 장착시) |
무 장 |
기수 - 12.7mm 기관총 6정 |
[ RF-84F 썬더플래시, 고속 정찰기형으로 공기흡입구가 동체 양측에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다. ]
그외에 F-84F의 독특한 변형으로 RF-84F 썬더플래시라는 기체가 있는데, 이 RF-84F는 F-84F가 가진 고속 성능을 이용하여 적진 상공을 고속으로 돌파하면서 사진을 촬영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고속 전술 정찰기로서 개발되었으며 정밀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기수에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하도록 설계되었고 따라서 공기흡입구가 주익 연결부위로 이동 배치되어 마치 다른 전투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58년 서독공군에서 사용중이던 RF-84F이다. 당시 서독공군의 마킹을 잘 볼 수 있다. 옆에서 보면 F-84와 유사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다. |
* 마치면서...
비록 F-86 세이버의 명성에 가려 썬더제트의 존재는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F-84 썬더제트는 한국전쟁에서 지상공격임무를 맡았던 조종사들이 가장 타고 싶어했던 기체였으며 그 견고함과 신뢰성으로 인해서 많은 조종사들이 전장에서 피탄된 후에도 생환할 수 있었다. 썬더제트는 2차대전에서 맹활약했던 P-47 썬더볼트의 영광을 이어받았으며, 훗날 베트남전에서 지상공격기로서 맹활약하게되는 F-105 썬더치프에까지 이르는 리퍼블릭사의 명전투기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군사무기.비행기.전차.개인화기.항모.전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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