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 비스마르크호의 대서양에서의
마지막 전투와 그 장렬했던 최후
영원한 찬밥 독일 해군
[사진]
비스마르크의 함장 린데만이 승무원들의 사열을 받고 있는 장면... 이당시가 비스마르크의 전성기였다.
이차대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전통적인 해양 강국 영국에 비교해 볼때, 당시 독일의 해상전력이란 것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물론 함대에서 각 전함을 따로 떼어, 일대일로
비교하자면, 성능면에서 독일 전함의 손이 높이 들릴 확률이 더 높다. 즉 독일의 신형 전함들은 항진 속도와 함포 장전 속도 또 정밀 조준 등에서
훨씬 앞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전함일지라도, 2차대전 대서양의
해전이란 것이 아직 거함거포를 우선으로한 포격전의 양상이었고, 이럴 경우, 승패를 가늠하는 것은 질보다는 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관우 운장이
일대일 승부에서는 당대 최고라손 치더라도, 만약 조인, 조홍 급 적장이라도 5 - 6 명이 한꺼번에 덤빌 경우, 그 승패는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좀더 솔직히 또 정확히 말해 한참 불리할 것이다. 즉 독일 해군은 질적으로 뛰어난 소수 정예였지만, 일차대전 때부터 쓰던
전함까지 박박 긁어 모은 영국해군의 물량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몇
안되는 비스마르크의 컬러 사진..... 실루엣 자체가 정말 멋진 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홈지기 개인적으로 전함들 중 가장 멋진 외형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서도, 개전이래 독일
U-boat들의 눈부신 활약이 대서양 심해에서 빛을 발하고는 있었고 이것은 그나마 좁은 독일 해군의 입지를 유지시키는 자랑거리였다.
유보트 에이스들은 따로 떨어져 잠항하다가, 영국 수송선단을 발견하면, 무전으로 다른 지역의 유보트들을 한곳에 집결시켜, 개떼 같이
수송선단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해 혁혁한 전과를 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 수상함들이 판을 치는 대서양은 이들을 계속 모험에 들게
했고, 초일류급 유보트 에이스들도 하나둘 차가운 심해속에 격침되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1941년 초.....
지금도 육군과 공군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독일 해군은
전력을 집중해 뭔가 눈부신 성과를 달성해내야만 했다. 얼마 안있어, 독소전이 시작될 것이고, 육군 공군이 또다시 빛나는 전과를 거둘것이
자명했고, 이대로 앉아 있다가는 찬밥이 아니라, 군에서 완전히 왕따를 당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마지막 벼랑에 몰린 독일 해군은 양단간에
결정을 내야만 했다. 이대로 항구에 정박해 온전히 전력을 보존하며, 계속 무시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위험천만이기는 하나, 대서양에 나아가,
일전을 치를 것인가?
비스마르크의 제원
배수량 : 41700 톤 (완전 적재시 : 50900
톤)
함장 : 251 m
함폭 : 36 m
함고 : 15 m
무장
38 cm 주포 8문
15 cm 보조포 12문
10.5 cm 보조포 16문
3.7 cm 대공포 16문
2 cm 대공포 18문
최고 항진 속도 : 30.12 knot
승무원 : 2200 명
함재기 : Arado Ar 196 4기
비스마르크 대서양에 들다
[사진]전술
함포 장교 출신이었던 비스마르크의 함장 린데만의 모습.. 그는 1941년 5월 비스마르크호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다.
마침내 독일 해군은 유럽 최대의 거함 비스마르크를 출정시키기로 결정을
내린다. 라인연습(Rheinubung)이라는 작전명
아래, 독일 전함을 있는대로 긁어모아, 대서양을 종횡하며, 영국 수송선단을 때려 잡고, 이 빈틈을 이용해 유보트들이 나머지 수송선단을 아작낸다.
정말 그 구상은 멋졌다. 물론 세부적인 여러가지 계획이 있었으나, 당시 출항에 임박해서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오직 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만이 비스마르크의 뒤를 따르게 된다. 두대의 독일 군함은 드디어 운명적인 마지막 항해를 시작한것이다. 물론 비스마르크의 출항은 극비였다.
하지만, 유럽 최대의 괴물 비스마르크의 일거수 일투족은 영국의 정보망하에 있었으니, 영국 해군에 총비상령이 내려진 것은 자명했다. 그럼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항해일지를 살펴보자.....
1941년 5월
19일 새벽... 드디어 비스마르크와 그의 오른팔 프린스 오이겐호는 닻을 올리고 코텐하펜 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코텐하펜 항을 막 나서며, 비스마르크의 함장 린데만은 선내 방송을 통해 "제군들 우리는 이제 대서양으로 나간다. 그리고 영국놈들의 수송선단을 격침시켜 나갈 것이다. 이 항해는 앞으로 몇 개월이 소요될
것이다. 무운을 빈다"라는 사기를 앙양시키는 짧은 격려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항해는 채 10
여일이 못되어 종말을 보게될 운명이었으니, 인간만사를 그 누가 속속들이 예견한단 말인가?
[사진] 스칸디나비아 복잡한 만 사이로 항진중에 영국 정찰기 스핏화이어에 발각된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호... 아래 작게 보이는 선이 비스마르크....
당초 계획은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의 해협을 그대로 통과하려
했지만, 날씨가 너무도 청명해, 발각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되었고,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에 정박키로 했다. 어두워지면, 야음을 틈타, 대서양으로 진입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베르겐에 닻을 내린 두 괴물의 모습이 정찰 중이던 영국 스피트화이어에 포착되었다.
[사진] 비스마르크 사냥의 총진두지휘에 나섰던, 영국의 제독 존 토베이의 모습.... 거의 놓칠뻔한
비스마르크를 끝내 발견하고, 대서양 앞바다에 잠제운 장본인이다.
영국은 대서양 전 함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지중해에서도 함대를 끌어오기로 하는 등,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국의 존 토베이(John Cronyn Tovey) 제독은 먼저 순양함 노포크(Norfolk)와 서포크(Suffolk)로 하여금 그린랜드와 아이슬랜드 사이 덴마크 해협의 좁은 통로를 정찰케했고,
어니스트 홀랜드(Ernest Holland) 제독을 자신보다 한발 먼저 출항시켰다. 당시 홀랜드 제독은 전함 후드(Hood)호를 기함으로 또 다른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Prince of Wales)와 6척의 구축함을 이끌고 결전의 첫 포문은
자신의 것이라는 기대와 최신형 적함 비스마르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아이슬랜드 근방으로 맹진했다.
[사진] 스핏화이어가 발견한 비스마르크의 정찰사진...
5월 22일...
비스마르크는 야음을 틈타 노르웨이를 빠져나와 항로를 북서로 잡고, 덴마크 해협을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때맞춰 대서양의 기상은 점점 악화되어, 짙은 구름이 낮게 깔렸고, 덴마크 해협에 접어들면서, 자욱한 안개로 시계 거리는 더욱
좁아졌고,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호는 쾌재를 불렀다. 서로 놓치지 않기 위해, 점멸등으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항진을 계속했다.
한편 비스마르크가 노르웨이를 벗어났다는 급보를 접한 영국의
토베이 제독은 전함 킹 조지 5세를 기함으로 삼고, 항모 빅토리어스(Victorious)를 대동하고, 순양함 리펄즈(Repulse)와 6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앞서 출발한 홀랜드 제독의 뒤를 따라 출진에
나섰다. 단 두대의 독일 전함을 잡기 위해, 대서양의 굵직한 두 함대가 총출동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비스마르크를 잡기 위해 총출동한 영국 함대
독일 전함 1 척 순양함 1척 vs 영국 전함 5, 순양함 14척, 항모 2척, 구축함
21척
존 토베이 제독 - 전함 킹조지 5세, 항모 빅토리어스, 순양함
리펄즈 -스케퍼플로우 항 출항
전함
로드니 마지막에 합세
홀랜드 제독 - 전함 후드,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
서머빌 제독 - 전함 리나운, 항모 아크로열, 순양함
셰필드
[지도]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항해일지..... 마지막 소드피쉬 2차 공습이
2회에 걸쳐 단행되었고, 비스마르크는 브레스트항을 단 800 km 남기고, 격침된다... 밑에 글을 읽으며, 그때그때 지도를 참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것이다.
덴마크 해협의 첫 대면
5월 23일....
아이슬랜드와 그린랜드 사이 좁은 덴마크 해협.... 빙산이 떠다니고, 안개까지 짙게
내려앉은 북대서양의 바다..... 토베이 제독의 명에 의해 이곳을 순찰 중이던 영국 두대의 순양함 노포크와 써포크는
빙산 뒤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괴물을 발견했다. 사실 발견이라기 보다는 조심조심 바닷물을 헤지며, 바닥을 보며 나아가다가, 갑자기 거대한
발을 보고는, 고개를 들었더니, 무시무시한 괴물의 얼굴 바로 아래였다고 표현하는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순양함 둘은 기겁을 했고,
쉴새없이 무전을 날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적 전함 한척, 순양함 한척 발견.... 거리
10 여 km....." 비스마르크의 38 cm 주포의 사정거리가 30 여 km에 이르는 것을 고려해 볼때,
덩치와 완력으로는 상대도 안되는 이 두 영국 순양함의 당시 똥줄타는 심정이 이해가 갈만도 하다.
[사진] 킬항을 나오는 비스마르크의 모습... 정말 육중하고 중후함 마저 느껴지는 카리스마의 전함이다. 노포크와
서포크가 정면에서 이모습을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드디어 비스마르크는 거대한 주포를 열었다. 노포크와 써포크 두 포크
형제는 연막을 피우고는 걸음아 나살려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한참을 앞만 보고 달아나던 두 형제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위 정황을
살펴보니, 따라올줄만 알았던 두 괴물은 육안에서 이미 사라진 뒤였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첫 함포 사격의 충격에 자신의 레이더가 고장을
일으킨데다가, 원래 사자는 작은 먹이감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었던지, 포크 형제 정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물론
비스마르크의 눈이라 할 수 있는 레이더 고장으로 프린츠 오이겐이 선두로 나선 것은 당연했고......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렇게 두 거함의
앞뒤가 바뀐 것이 나중에 영국 전함 후드의 최후를 앞당기는 요인이 되어 버리니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어쨌든 자신들을 군함 취급도 않는데 대해, 두 포크 형제는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으나, 사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의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
노포크와 써포크는 가시 거리 밖에서 레이더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비스마르크의 항로를 따라 가기 시작했다. 물론 영국 함대에 지속적으로 그
위치를 알리며......
거함 후드 북대서양에
잠들다
[사진]
비운의 전함 후드의 함장 홀랜드 제독....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함께 비스마르크에 대적했지만, 적함을 오인함으로써, 최후를 맞게 된다. 함과
함께 바다위에서 전사하는 해군의 모습은, 전투 파일롯 이상 군인의 장렬한 모습을 투영한다고나 할까?
당시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함대는 홀랜드
제독의 함대였다. 홀랜드제독은 아이슬랜드 근방에 출진해 있었고, 노포크와 써포크의 급보를 듣고는 독일의 괴물을 향해 첫 명중탄을 날리리라
마음 먹고, 곧장 두 괴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드디어 오늘의 도전자 독일의 최신형 전함 비스마르크와 1920년대에 건조된 노장
챔피언이지만 아직도 녹슬지 않은 15인치 주포 8문이라는 어마어마한 강펀치의 소유자 영국 전함 후드간의 일회전의 공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후드의
모습... 1920년대에 건조된 구식 전함이었지만, 거포를 탑재한 강력한 전함이었다. 그러나 사정거리가 짧아, 선수를 노출시킨채 돌진해야 했고,
이에 따라 쓸 수 있는 주포가 제한되어, 비스마르크의 주포에 북대서양에 수장된다.
사진] 전함
후드를 향해 주포를 날리는 비스마르크.... 검은 포연이 선체보다 몇배나 크게 일고 있다... 아마도 독일 프리츠 오이겐에서 찍은 사진이 아닌가
싶다
5월 24일 새벽 5시 37분... 드디어 독일의 두 거함과 영국의 거함 후드와 프린스 오브 웨일즈가 35 km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영국 전함 후드는 비스마르크에 비해 주포의 사정거리가 짧기 때문에, 사정거리내로 빨리 파고들어야만 했다. 홀랜드 제독은 후드와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전속력으로 적함쪽을 향해 나아가게 했다. 그리고 선두에 선 전함을 비스마르크로 판단하고, 첫 포문을 열었다. 전함 후드의
선수가 독일함쪽을 향하고 있어, 전방 주포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홀랜드 제독은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두에 선 적함을 비스마르크로 오인했는데, 그것은 프린츠 오이겐이었고, 비스마르크는 바로 뒤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림]
정확히 선체 중앙에 가격 당한 후드의 상상도.... 샛노랗게 일어나는 섬광은 탄약고의 폭발을 암시하는 묘사로 보인다.
곧바로 타겟을 다시 수정해 비스마르크를 향해 주포를 돌리고 난리
법석을 치뤄야만 했다. 바로 얼마후, 독일 프린츠 오이겐의 주포가 후드의 선체 중앙을 정확히 명중하면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비스마르크의 38 cm 주포의 다섯번째 일제 사격이 후드의 중앙 선체를 정확히 가격했다.
후드는 운이 없었다. 비스마르크의 명중탄이 곧바로 탄약고의 폭발로
이어졌고, 후드는 두 동강이가 나면서, 차가운 대서양 바닷속으로 격침되어 버린 것이다. 선체 전부가 수면위에서 사라지는데 단 3분이 채안걸렸다고
한다. 홀랜드 제독을 비롯한 1418명에 달하는 전승무원이 폭발과 연이은 격침으로 일시에 전사하고 만것이다. 이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이는
단 3명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림]
선체가 하늘로 들린채 격침되는 후드와 그를 피하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모습... 영국에게 전함 후드의 격침은 충격이었나 보다... 이에 관한
그림이 참 많다.... 후드가 완전히 수장되는데는 폭발후 3분이 채안걸렸다.
기함 후드가 눈깜짝할 사이 수장되는 광경을 지켜본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후드가 침몰하며 일으키는 소용돌이를 피해 젖먹던 힘을 다해 선수를 돌리며, 회피에 들어갔다. 그런데 회피한다는 것이 두 독일
전함에 더 근접하게 되어, 빗발치는 함포 사격에 만신창이으로 두들겨 맞고는, 겨우 활로를 뚫고 날아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마지막 명중된 몇발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사령탑을 날려버렸고, 함장 존 카터럴 리치를 제외한 사령탑 인원 전원이 폭사해 버렸다.
북대서양에서 만난 두 거인의 싸움은 서로 함포를 연지 불과 10분만에
어이없이 승부가 나버린 것이다. 프린스 오브 웨이즈와 노포크는 상처입은 몸을 추스리면서, 비스마르크의 항로를 계속 추적하며, 영국의 주력함대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일전을 치르는 동안 프린츠 오이겐은 손상을 받지 않았으나, 비스마르크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주포 3 발을 좌현에 얻어
맞은 상태였다. 보일러실 일부의 손상과 연료탱크의 균열로 항진 속도가 떨어진데다가, 연료가 새어나오면서, 영국 함대에게 자신의 항로를 노출시키는
단서를 제공케 된 것이다.
소드피쉬의 첫 공습
후드를 격침하고 드디어 아이슬랜드와 그린랜드 사이 해협을 통과한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은 진로를 다시 남동으로 잡고 항진을 계속했다. 비스마르크의 연료 손실이 계속되자, 프린츠 오이겐만 대서양에서 수송선단
공격을 감행키로 하고, 비스마르크는 회항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에서 이탈해 진로를 정남으로 잡고 항진했고,
비스마르크는 남동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영국의 노포크, 써포크,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비스마르크를 따라 가시거리 밖에서 좌우에 붙어 추적을
계속했다. 결과적으로 비스마르크호는 자신을 미끼로 프린츠 오이겐의 활로를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겠다.
[사진]
목표는 비스마르크... 항모에서 발진하는 영국의 뇌격기 소드피쉬의 모습.... 이들이 비스마르크 격침의 주역이었다.
한편 킹 조지 5세를 기함으로 한 토베이 제독의 주력
함대는 비스마르크의 이동반경에 들기 위해, 항진 중이었다. 저녁 10시... 토베이 제독은 휘하의 항모 빅토리어스에 명해, 소드피쉬
뇌격기를 출격시켰다. 비스마르크와의 거리 약 120 마일....
제 825 비행대 소속 9기의 소드피쉬 뇌격기들이 편대장 유진
에스몬드(Eugene Esmonde)의 지휘하에
이함을 시작했고, 자정이 되었을 무렵, 비스마르크를 발견했다. 당시 9대 중 1대의 소드피쉬가 항로를 잃어 편대에서 떨어졌고, 남은 8기가 어뢰
공격을 감행했다. 비스마르크의 대공포화들이 불을 뿜는 가운데, 영국 조종사들은 용감히 뛰어들어, 한발의 어뢰를 비스마르크의 우측 선체 중앙에
명중시켰다. 그러나 이곳은 장갑이 가장 두꺼운 부분이라 비스마르크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소드피쉬들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새벽 2시경
빅토리어스호에 착함했다.
5월 25일 새벽....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비롯한 3대의 영국함이 레이더의 촉각을 세우고 비스마르크를 계속 쫓다가, 새벽 4시경....
비스마르크의 갑작스런 항로변경에 영국의 레이더에서 비스마르크가 사라져 버렸다. 써포크는 토베이 제독에게 무전으로 " 비스마르크를 놓쳤다"는 급보를 전했다. 토베이 제독은 안달이났지만,
비스마르크 역시 실수를 저지른다. 즉 비스마르크는 자신이 영국의 감시망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본국에 전과를 보고하는 전문을 계속
날린것이다. 그런데 토베이 제독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실수를 하게 된다. 즉 비스마르크의 무전 발신지를 포착한 직후, 비스마르크의 위치를
해도에 표시하면서, 전혀 엉뚱한 곳에 그려 넣은 것이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 대신 달려온 전함 로드니(Rodney)와 토베이 제독의 킹조지 5세가 아무리 그곳 일대를 뒤져도 비스마르크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황새치에게 발이 묶인
거함
바로 그때 영국 해군에게 또 한번의 행운이 찾아든다. 즉
5월 26일, 초계중이던 카랄리나 수상기가
우연히 비스마르크를 발견해 낸것이다. 희소식을 접하기는 했지만 토베이 제독의 함대는 이미 비스마르크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제공권 영역안으로 들어가버리면, 이번 작전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토베이 제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스마르크의 속도를 죽여야만 했다.
항모
아크 로열 갑판 위에서 출격 준비 중인 소드피쉬 뇌격 편대의 모습....
[사진] 영국 지중해 H 함대 제독 서머빌의 모습... 그 휘하의 항모 아크로열에서 발진한 뇌격기들이
비스마르크의 발을 붙듬으로써, 최고의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지중해에서 북쪽으로 급파되어 올라오는 H 함대가 비스마르크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토베이 제독은 H 함대 의 제임스 서머빌(James F. Somerville)제독으로 하여금, 공격케 했다. 당시 H 함대에는 전함
리나운(Renown)이 공격에 나설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이틀전 거함 후드가 어이 없이 당한 충격에 전함 리나운에는 공격 금지 명령이 하달된 상태여서, 우선 항모 아크로열에서 뇌격기를
출격시켜, 어뢰 공격을 감행키로 했다. 그런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비스마르크를 수장시키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5월 26일 오후 2시 50분, 15기의 소드피쉬 뇌격기들이 편대장
로벤 마운드(Loben E. Maund)의 지휘하에
항모 아크로열호에서 발진했다. 그후 정확히 1시간 후인 3시 50분.... 소드피쉬 편대는 전함 한척을 발견하게 된다. 곧바로 어뢰공격이
시작되었고, 11발의 어뢰가 물살을 가르며, 전함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그런데 이것은 소드피쉬의 실수였다. 즉 비스마르크로 오인해 어뢰까지
발사한 전함은 영국의 순양함 쉐필드(Sheffield)호였던 것이다. 쉐필드는 필사적으로 아군의 어뢰를 피하려 선회를 시도했으며, 절대절명의 순간, 영국 해군에 다시 한번 행운이
찾아든다.... 즉 이날 발사된 어뢰 중 2발은 착수와 함께 어이없이 폭발해 버렸고, 나머지는 빗나가고 말았다. 한마디로 신뢰성 떨어지는 자기식
어뢰의 축복이었다. 소드피쉬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채고, 문책을 각오하고 아크로열로 귀함했다.
비스마르크를 향해 맹진하며, 어뢰를 투사하는 소드피쉬들.... 이들은 끝내 2발을 명중시키고,
이중하나는 치명타였고, 비스마르크의 방향타는 사지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첫 공습에 실패했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다음날이면 비스마르크를 영영
놓쳐버린다. 즉 이 속력으로 가면 비스마르크는 프랑스 영해로 진입할 것이다. 다급해진 토베이 제독은 다시 소드피쉬 공격을 명했다. 저녁 7시
15분 아크로열호에서 15대의 소드피쉬가 다시 발진했는데 이번에는 자기식이 아닌 신뢰성이 좀 더 높은 충격식 어뢰를 장착했다. 소드피쉬가
비스마르크를 발견한것은 밤 10시 47분..... 편대장 쿠드(Coode)의 지휘하에 소드피쉬 뇌격기들이 일제히 어뢰를 투하하기 시작했다. 비스마르크는
대공포화 전부를 열고 응사했지만, 어뢰 2발을 직격당하고 만다. 이중 한발은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다른 한발은 극히 치명적이었다. 즉
비스마르크의 후미를 강타하면서, 조타실이 파괴되었고, 방향타가 좌측으로 고정된 상태로 작동불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더 이상 방향
전환이 불가능한데다가, 방향타의 고정으로 계속 북서쪽으로 항진하게 되어, 회피는 고사하고 토베이 제독의 영국 주력함대를 향해 나아가게 된
것이다. 린데만은 본국에 무전을 날렸다 " 현재 비스마르크 작동불능 상태임.... 마지막
탄 일발까지 응전 할 것임...."
비스마르크를 잡아낸 아크로열호 소드피쉬 편대의 대원들... 그들의 뇌격기에는 드디어 커다란 전함 킬마크를 그려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장렬한 거함의 최후
이제 비스마르크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5월 27일.... 영국 순양함 쉐필드와 작은 폴란드
구축함까지도 상처 입은 비스마르크 주위를 맴돌며, 일격을 노리고 있었다.... 즉 사자를 보면 피하는 것이 하이에나들의 성향이지만, 만약 그
사자가 상처를 입고 있을 경우, 하이에나들은 개떼같이 몰려들어 백수의 왕 사자를 물어죽이는 것이다.... 이제 상처입은 비스마르크는
한낱 구축함까지도 공명심에 불타오르게 만드는 희생제물에 불과한 좋은 먹이였다. 그리고 아침 8시 40분.....드디어
수평선 너머 23 km 지점에 영국 주력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토베이 제독의 기함 킹조지 5세, 전함 로드니, 그리고 첫 대면했던 순양함
노포크까지.....
첫 발을 날린 것은 로드니였다. 이어 킹 조지 5세도 포문을 열었다.
절름발이 같이 느리게 그것도 고정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비스마르크는 숙련된 영국 포수들에겐 사격연습의 표적에 불과했다. 서로 포격전이 시작된지
약 20 -30 분 후인 9시 8분.... 선체 전면을 가격당한 비스마르크의 전방 주포 2문이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10 여분
후, 후방 주포 1문이 파괴되어 입을 다물고 만다. 또 그 얼마후 마지막 주포 역시 더 이상 응사 불능 상태가 되었다. 이제 대적할 주포가 없는
비스마르크의 선내에서는 급기야 배를 포기하라는 마지막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함장을 비롯한 갑판 상부 구조물에 위치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상태였고 기관장이 대리 함장으로서 수병들의 하선을 지휘하고 있었다.
비스마르크의 최후 사진.....
영국의 전함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 왔고, 무방비의 비스마르크를 향해
발포를 계속했다. 이제 거리는 2000 m.... 로드니의 주포는 40 cm에 달했는데, 다시 로드니의 직격탄 몇발이 비스마르크에 작열하자,
이제 거함은 바다위에 떠 있을 뿐, 갑판 상부 구조물 중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을 지경이었고, 이순간 전투 장면을 처음 보게된다면,
아무리 해군의 저명한 관계자라도 이 전함이 어떤 급의 전함인지 맞추지 못할 정도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이런 대파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그자리에 떠있었다. 해군간에는 이럴 경우, 장렬히 최후를 맡도록 격침시켜주는 것이 하나의 예의인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어뢰를 발사했고, 오전 10시 40분경, 거함은 침수로 격침되면서 선체가 하늘로 들리며 대서양 바닷속으로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그것도 프랑스 해안을 단 하루거리에 두고(브레스트 항까지 800km 거리였다고
한다).....
[사진]
비스마르크 승무원들 중 생존자들이 영국 군함에 구조되고 있는 모습.... 생존자는 단 115명이었다.
이날 비스마르크호에 명중한 영국의 주포는 직경 13 cm에서 40
cm에 이르는 다양한 포탄이었는데, 역사가들은 400발에서 600 발 정도가 명중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발포된 주포만도 3000 발에 이른다. 그리고 이중 4 - 600 발이 명중한 것이다)
물론 그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뤼첸스
사령관, 린데만 함장을 비롯한 2400명에 이르는 비스마르크 승무원 전원이 전사했으며, 생존자는 단 115명 정도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승무원 중 400명은 실전 훈련을 위해 선승한 해군 사관학교 생도들이었다고 하는데, 그나마 해군 전력이 약하던 독일로서는 막대한 인적 손실이라
아니할수 없겠다.
1941년 5월 비스마르크의 침몰은 해전 사상 거함거포주의의 종지부를
찍었다 할수 있는 대사건이었다. 구식 복엽기의 공격이 이 거함을 격침하는데 결정적인 공헌한 것이고, 이제 제공권이 받쳐주지 않는한 덩치 큰
전함이 더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증명했다. 이후 독일의 해군은 더욱 소극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 이어 투입된 형제함 틸피츠
역시 그 형 비스마르크를 따라 비운의 최후를 맞게 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틸피츠의 최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쨌든 독일
해상전력은 이차대전의 종전보다도 훨씬 이전에 이미 종말을 본것이라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비록 당시 나치 독일의 전함이었으나, 끝까지 그리고
용감히 싸워나간 군인으로서의 비스마르크호와 영국 전함 후드호의 승무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비스마르크의 잔해를 수중 탐사 데이터에 근거해
만들어본 상상도..... 주포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췄고, 사령함과 함교드이 거의 제모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