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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551-P.JPG
M551 Sheridan는 가볍고 중무장된 정찰전차가 필요한 미군에 의하여 개발되었습니다.
20발의 재래식 포탄과 8발의 미사일(MGM-51(Shillelagh 대전차미사일)을 적재,사용할수 있는 152mm M-81의 건런쳐를 장착하였읍니다.
7.62MM M-240기관총과 M2 12.7MM기관총을 부무장으로 채택하며 차체장갑은 알미늄합금포탑은 철이며 공수가 가능합니다.
300마력의 디트로이트 6기통디젤엔진과 TG-250-2A미션의 조합은 경량의 차체에는 좋았지만 중기관총에 대한 방호력미달등 승무원의 생존성과 험지에서의 기동성저하등 기본적인 문제점으로 인하여 결국 생산이 중단되고 맙니다.

1966년에 처음생산후,1,562대의 M551s가 1970까지 제작됩니다.
베트남전에서의 경험으로 보아 쓸모없는 미사일발사시스템등의 문제점은 1978년부터 단계적으로 미군의 보유장비에서 빠지게 됩니다.
1989년 파나마침공과 사막의방패작전중 사우디에서 사용되며 공중투하가능함과 무장의 필요성때문에 아직도 330대 가량이 82공정사단에 의하여 아직도 사용중입니다.

제원
중량: 17 tons
전장: 22'4"
전폭: 13'6"
전고: 12'6"
속도: 전진45 mph/후진 10 mph
엔진: Detroit Diesel 6V-53T 300-hp 수냉식터보차져 2스트로크 6기통디젤
트랜스미션:Allision TG-250-2A 전진4단 /후진1단  
수직벽통과: 49 in
주포:152mm cannon/Missile Launcher 20XHEAT-T-MP 8 Shillelagh missile  
동축기관총: M240 - 7.62mm  
전차장용: M2 - .50 cal
센서및사통시스템
M129 gunner's telescope,magnification 8x 8field of view (FOV)
M44 gunner's IR night sight magnification 9x6 FOV
IR SACLOS data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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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98-p.JPG
1999년 10월 첫모습을 보인 듕귁의  전차입니다.

엔진: 1,200 hp 공냉식디젤  
속도:65 km/hr (도로)
    47 km/hr (야지)
    35 km/hr (험지)  
중량:50 tons  
승무원:3  
전장: 11 m  
전폭: 3.4 m  
전고: 2 m(포탑끝)  
무장
125mm 활강포
12.7mm 기관총
7.62mm 기관총(공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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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80ud_p.JPG
T-80UD MBT는 Izdeliye 476 탱크를 기초하여 Nikolay A. Shomin의 지휘하에로 T-80 탱크을 기본형으로 하여 제작한것입니다.
T-80UD는 구소련이 만든 전차중 거의 최종형으로 우수한 성능을 발휘합니다.
사통시스템은 포수와전차장 모두가 주포와 공축기관총을 발사하는 것을 가능케합니다.
탱크는 연합한 철판과 반응장갑에 의하여 보호됩니다.
탱크의 멀티연료 2 행정 터보피스톤 디젤엔진은  높은 연료 효률과 긴순항거리를 보장합니다.
엔진시스템은 섭씨55도 및 수중 1.8미터에서의 전차의 운행을 가능케 해줍니다.
T-80UD MBT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에 보급되었습니다.
모스크바인근의 Guards Armoured Division이 T-80UDs를 갖추고 있었을 만큼 탱크의 전반적인 디자인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또한 파키스탄의 요구사항에 맞춘 테스트를 1993년및 1995년에 실시한후 1996년 8월 우크라이나에 320대의 발주를 냈습니다.
첫인도분15대는 1997년 3월 에 2차인도분 35대는 1997년 중반에 인도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그간 몇년간 재고로 있던 52대중의 일부입니다
우크라이나의 T-80UD생산라인이 재가동이 된것은 파키스탄의 구매주문으로 인한것이지만 1997년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이 전차를
제작하기 위한 모든 공정이 준비되었었는지는 불명확합니다.  
무장중 주포는 회전식 자동장전의 125MM KBA1 활강포이며 총 45발의 포탄을 적재하며 그중28발은 자동장전기에 위치합니다.
별도로 12.7MM(450발)대공용기총과 7.62MM(1,250발)공축기총을 갖추었습니다.   
사용포탄은  APFSDS(철갑탄), HEAT (대전차 고폭탄), HE-FRAG(고폭탄 ) 이며 그외에도 특이하게 레이져로 유도되는 미사일을 사용할수 있다는것입니다.
추진체및탄두부 와 발사및조정부두개의 구분으로  이루어진 미사일은 주포에서 특별한 조작없이 자동적재를 이용 발사되며 반응장갑등을 갖춘 상대를
격파할수 있도록 하며 5,000미터의 발사거리를 가지며 대헬기용으로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된 사통시스템은 기동간의 사격에서도 높은 명중률을 보장하며  개량된 관측장비는 주야간의 전투를 가능케 합니다.
NBC방호는 기본이며 별도의 준비없이 1.8미터의 수심을 도하합니다.

승무원:3(자동장전)
전장:(주포포함) 9.72 m
전장:(차체) 7.085 m
전폭: (스커트포함) 3.56 m
전고: (12.7mm MG거치대포함) 2.74 m
최저지상고: 0.515 m
전투중량:46 t
톤당마력수: 21.7 hp/t
접지압: 0.93 kg/cm2
최고속도:도로시 65 km/h
야지최고속: 45 km/h
순항거리:도로 580 km/야지 360-450 km
도하깊이:1.8 m // 5 m
등판각: 63 %
측등판각: 36 %
수직장벽통과: 1 m
참호통과: 2.81 m
엔진:Model 6TD-1 트윈스트록,멀티연료, 수냉식6실린더 디젤,1,000 hp/2,600 rpm
트랜스미션:기계식 전진7단/후진1단
서스펜션:토션바

무장
주포: 125mm 활강포-KBA3  
공축(동축):7.62mm PKT KT-7.62
대공: 12.7mm KT-12.7

혹 설명중 틀린점 있음 욕하지말고 리플달아주세요.^^

출처:http://globalsecuri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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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70-P.JPG
몇번의 전쟁을 치루면서 사용한 전차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1970년대에 주력전차로 만들려던 1965년에 제작한 시험성격의 전차입니다.

미국의 프로토타입은 AP/HE/WP 탄및 시렐러미사일을 사용가능토록 152mm건런쳐를 장비했으며 독일의 프로토타입은 120mm자동포를 장착했습니다.
차체의 장갑은 고강도의 압연철판과 주물을 혼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부무장으로는 7.62mm 기관총을 장착하고 다임러벤츠사의 MB-873 엔진,혹은 콘티넨탈사의 12실린더 공냉식 1495마력의 엔진으로 중량 50톤의 이탱크를 최고 약69KM/H의 속력을 낼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독일의 공동개발로 진행되었던 이 전차는 기존의 전차에 비하면 건런쳐,서스펜션,포탑등의 운용방식등이 혁명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M-1전차의 모델이 된 이전차는 양국간의 의견차이 및 1대당 120만달러 에 달하는 비싼가격때문에 미국은 결국 1971년 MBT-70계획을 취소하게 합니다.    
하지만 1차대전부터 고집되어온 전차의 개념을 바꾼 전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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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urion-P.JPG
세계에서 전차를 맨처음(MARK-I)등장시켰던 영국이 그간의 추락된 명예를 되찾고자
이차대전말기에 야심차게 만든 센츄리온 전차입니다.
이차대전에는 사용을 못하였지만 그후 벌어진 한국전에서의 활약을 시작으로 베트남전때 호주군이 사용(1977년까지 현용으로사용)했으며 1962년까지 총 4,423대의 생산및 총 13종의 변형종을 등장시킨 명전차(?)입니다.
맨처음의 주포가 17PDR(76.2MM)에서 20PDR(83.8MM)로 그후 최종으로는 유명한 L7- 105MM 로 교체하여 사용하게 되며 포클랜드전쟁및 아프리카와 이스라엘에서도 사용합니다. 그후 이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많은 종류의 별종(?)도 만들어집니다.

무장
주포: 105mm gun L7
부무장:12.7mm MG /7.62mm 공축/7.62mm 대공용

엔진:
Rolls Royce, Mk IVB 27L Meteor, V-12, petrol,
            650 hp, coupled to Z51R 수동트랜스미션
            전진5단 후진2단
속도:시속 약35키로
순항거리:약 190키로
승무원:4
중량:57 t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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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p.JPG

사진에도 보이듯 앞부분을 땅에 깔수 있더군요.
설마 전차에 탑승시 저리 고갤 숙이고 타는건 아니겠지요?
에어컨이 없다는 말에 안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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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함 비스마르크호의 대서양에서의
마지막 전투와 그 장렬했던 최후
영원한 찬밥 독일 해군

[사진] 비스마르크의 함장 린데만이 승무원들의 사열을 받고 있는 장면... 이당시가 비스마르크의 전성기였다.
이차대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전통적인 해양 강국 영국에 비교해 볼때, 당시 독일의 해상전력이란 것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물론 함대에서 각 전함을 따로 떼어, 일대일로 비교하자면, 성능면에서 독일 전함의 손이 높이 들릴 확률이 더 높다. 즉 독일의 신형 전함들은 항진 속도와 함포 장전 속도 또 정밀 조준 등에서 훨씬 앞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전함일지라도, 2차대전 대서양의 해전이란 것이 아직 거함거포를 우선으로한 포격전의 양상이었고, 이럴 경우, 승패를 가늠하는 것은 질보다는 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관우 운장이 일대일 승부에서는 당대 최고라손 치더라도, 만약 조인, 조홍 급 적장이라도 5 - 6 명이 한꺼번에 덤빌 경우, 그 승패는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좀더 솔직히 또 정확히 말해 한참 불리할 것이다.  즉 독일 해군은 질적으로 뛰어난 소수 정예였지만, 일차대전 때부터 쓰던 전함까지 박박 긁어 모은 영국해군의 물량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몇 안되는 비스마르크의 컬러 사진..... 실루엣 자체가 정말 멋진 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홈지기 개인적으로 전함들 중 가장 멋진 외형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서도, 개전이래 독일 U-boat들의 눈부신 활약이 대서양 심해에서 빛을 발하고는 있었고 이것은 그나마 좁은 독일 해군의 입지를 유지시키는 자랑거리였다.  유보트 에이스들은 따로 떨어져 잠항하다가, 영국 수송선단을 발견하면, 무전으로 다른 지역의 유보트들을 한곳에 집결시켜, 개떼 같이 수송선단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해 혁혁한 전과를 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 수상함들이 판을 치는 대서양은 이들을 계속 모험에 들게 했고, 초일류급 유보트 에이스들도 하나둘 차가운 심해속에 격침되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1941년 초.....  
지금도 육군과 공군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독일 해군은 전력을 집중해 뭔가 눈부신 성과를 달성해내야만 했다. 얼마 안있어, 독소전이 시작될 것이고, 육군 공군이 또다시 빛나는 전과를 거둘것이 자명했고, 이대로 앉아 있다가는 찬밥이 아니라, 군에서 완전히 왕따를 당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마지막 벼랑에 몰린 독일 해군은 양단간에 결정을 내야만 했다. 이대로 항구에 정박해 온전히 전력을 보존하며, 계속 무시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위험천만이기는 하나, 대서양에 나아가, 일전을 치를 것인가?
비스마르크의 제원

배수량 : 41700 톤 (완전 적재시 : 50900 톤)
함장 : 251 m
함폭 : 36 m
함고 : 15 m
무장
38 cm 주포 8문
15 cm 보조포 12문
10.5 cm 보조포 16문
3.7 cm 대공포 16문
2 cm 대공포 18문
최고 항진 속도 : 30.12 knot
승무원 : 2200 명
함재기 : Arado Ar 196 4기

비스마르크 대서양에 들다

[사진]전술 함포 장교 출신이었던 비스마르크의 함장 린데만의 모습.. 그는 1941년 5월 비스마르크호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다.
마침내 독일 해군은 유럽 최대의 거함 비스마르크를 출정시키기로 결정을 내린다. 라인연습(Rheinubung)이라는 작전명 아래, 독일 전함을 있는대로 긁어모아, 대서양을 종횡하며, 영국 수송선단을 때려 잡고, 이 빈틈을 이용해 유보트들이 나머지 수송선단을 아작낸다. 정말 그 구상은 멋졌다. 물론 세부적인 여러가지 계획이 있었으나, 당시 출항에 임박해서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오직 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만이 비스마르크의 뒤를 따르게 된다. 두대의 독일 군함은 드디어 운명적인 마지막 항해를 시작한것이다. 물론 비스마르크의 출항은 극비였다. 하지만, 유럽 최대의 괴물 비스마르크의 일거수 일투족은 영국의 정보망하에 있었으니, 영국 해군에 총비상령이 내려진 것은 자명했다. 그럼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항해일지를 살펴보자.....
1941년 5월 19일 새벽... 드디어 비스마르크와 그의 오른팔 프린스 오이겐호는 닻을 올리고 코텐하펜 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코텐하펜 항을 막 나서며, 비스마르크의 함장 린데만은 선내 방송을 통해 "제군들 우리는 이제 대서양으로 나간다. 그리고 영국놈들의 수송선단을 격침시켜 나갈 것이다. 이 항해는 앞으로 몇 개월이 소요될 것이다. 무운을 빈다"라는 사기를 앙양시키는 짧은 격려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항해는 채 10 여일이 못되어 종말을 보게될 운명이었으니, 인간만사를 그 누가 속속들이 예견한단 말인가?  
[사진] 스칸디나비아 복잡한 만 사이로 항진중에 영국 정찰기 스핏화이어에 발각된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호... 아래 작게 보이는 선이 비스마르크....
당초 계획은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의 해협을 그대로 통과하려 했지만, 날씨가 너무도 청명해, 발각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되었고,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에 정박키로 했다. 어두워지면, 야음을 틈타, 대서양으로 진입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베르겐에 닻을 내린 두 괴물의 모습이 정찰 중이던 영국 스피트화이어에 포착되었다.  
  
[사진] 비스마르크 사냥의 총진두지휘에 나섰던, 영국의 제독 존 토베이의 모습.... 거의 놓칠뻔한 비스마르크를 끝내 발견하고, 대서양 앞바다에 잠제운 장본인이다.
영국은 대서양 전 함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지중해에서도 함대를 끌어오기로 하는 등,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국의 존 토베이(John Cronyn Tovey) 제독은 먼저 순양함 노포크(Norfolk)와 서포크(Suffolk)로 하여금 그린랜드와 아이슬랜드 사이 덴마크 해협의 좁은 통로를 정찰케했고, 어니스트 홀랜드(Ernest Holland) 제독을 자신보다 한발 먼저 출항시켰다. 당시 홀랜드 제독은 전함 후드(Hood)호를 기함으로 또 다른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Prince of Wales)와 6척의 구축함을 이끌고 결전의 첫 포문은 자신의 것이라는 기대와 최신형 적함 비스마르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아이슬랜드 근방으로 맹진했다.
[사진] 스핏화이어가 발견한 비스마르크의 정찰사진...
5월 22일...  비스마르크는 야음을 틈타 노르웨이를 빠져나와 항로를 북서로 잡고, 덴마크 해협을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때맞춰 대서양의 기상은 점점 악화되어, 짙은 구름이 낮게 깔렸고, 덴마크 해협에 접어들면서, 자욱한 안개로 시계 거리는 더욱 좁아졌고,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호는 쾌재를 불렀다. 서로 놓치지 않기 위해, 점멸등으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항진을 계속했다.
한편 비스마르크가 노르웨이를 벗어났다는 급보를 접한 영국의 토베이 제독은 전함 킹 조지 5세를 기함으로 삼고, 항모 빅토리어스(Victorious)를 대동하고, 순양함 리펄즈(Repulse)와 6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앞서 출발한 홀랜드 제독의 뒤를 따라 출진에 나섰다. 단 두대의 독일 전함을 잡기 위해, 대서양의 굵직한 두 함대가 총출동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비스마르크를 잡기 위해 총출동한 영국 함대

독일 전함 1 척 순양함 1척 vs  영국 전함 5, 순양함 14척, 항모 2척, 구축함 21척
존 토베이 제독 - 전함 킹조지 5세, 항모 빅토리어스, 순양함 리펄즈 -스케퍼플로우 항 출항
                          전함 로드니 마지막에 합세
홀랜드 제독 - 전함 후드,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
서머빌 제독 - 전함 리나운, 항모 아크로열, 순양함 셰필드

 [지도]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항해일지..... 마지막 소드피쉬 2차 공습이 2회에 걸쳐 단행되었고, 비스마르크는 브레스트항을 단 800 km 남기고, 격침된다... 밑에 글을 읽으며, 그때그때 지도를 참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것이다.
덴마크 해협의 첫 대면

5월 23일.... 아이슬랜드와 그린랜드 사이 좁은 덴마크 해협....  빙산이 떠다니고, 안개까지 짙게 내려앉은 북대서양의 바다..... 토베이 제독의 명에 의해 이곳을 순찰 중이던 영국 두대의 순양함 노포크써포크는 빙산 뒤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괴물을 발견했다. 사실 발견이라기 보다는 조심조심 바닷물을 헤지며, 바닥을 보며 나아가다가, 갑자기 거대한 발을 보고는, 고개를 들었더니, 무시무시한 괴물의 얼굴 바로 아래였다고 표현하는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순양함 둘은 기겁을 했고, 쉴새없이 무전을 날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적 전함 한척, 순양함 한척 발견.... 거리 10 여 km....." 비스마르크의 38 cm 주포의 사정거리가 30 여 km에 이르는 것을 고려해 볼때, 덩치와 완력으로는 상대도 안되는 이 두 영국 순양함의 당시 똥줄타는 심정이 이해가 갈만도 하다.
[사진] 킬항을 나오는 비스마르크의 모습... 정말 육중하고 중후함 마저 느껴지는 카리스마의 전함이다. 노포크와 서포크가 정면에서 이모습을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드디어 비스마르크는 거대한 주포를 열었다. 노포크와 써포크 두 포크 형제는 연막을 피우고는 걸음아 나살려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한참을 앞만 보고 달아나던 두 형제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위 정황을 살펴보니, 따라올줄만 알았던 두 괴물은 육안에서 이미 사라진 뒤였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첫 함포 사격의 충격에 자신의 레이더가 고장을 일으킨데다가, 원래 사자는 작은 먹이감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었던지, 포크 형제 정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물론 비스마르크의 눈이라 할 수 있는 레이더 고장으로 프린츠 오이겐이 선두로 나선 것은 당연했고......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렇게 두 거함의 앞뒤가 바뀐 것이 나중에 영국 전함 후드의 최후를 앞당기는 요인이 되어 버리니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어쨌든 자신들을 군함 취급도 않는데 대해, 두 포크 형제는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으나, 사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의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 노포크와 써포크는 가시 거리 밖에서 레이더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비스마르크의 항로를 따라 가기 시작했다. 물론 영국 함대에 지속적으로 그 위치를 알리며......
거함 후드 북대서양에 잠들다

[사진] 비운의 전함 후드의 함장 홀랜드 제독....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함께 비스마르크에 대적했지만, 적함을 오인함으로써, 최후를 맞게 된다. 함과 함께 바다위에서 전사하는 해군의 모습은, 전투 파일롯 이상 군인의 장렬한 모습을 투영한다고나 할까? 
당시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함대는 홀랜드 제독의 함대였다. 홀랜드제독은 아이슬랜드 근방에 출진해 있었고, 노포크와 써포크의 급보를 듣고는 독일의 괴물을 향해 첫 명중탄을 날리리라 마음 먹고, 곧장 두 괴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드디어 오늘의 도전자 독일의 최신형 전함 비스마르크와 1920년대에 건조된 노장 챔피언이지만 아직도 녹슬지 않은 15인치 주포 8문이라는 어마어마한 강펀치의 소유자 영국 전함 후드간의 일회전의 공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후드의 모습... 1920년대에 건조된 구식 전함이었지만, 거포를 탑재한 강력한 전함이었다. 그러나 사정거리가 짧아, 선수를 노출시킨채 돌진해야 했고, 이에 따라 쓸 수 있는 주포가 제한되어, 비스마르크의 주포에 북대서양에 수장된다.
사진] 전함 후드를 향해 주포를 날리는 비스마르크.... 검은 포연이 선체보다 몇배나 크게 일고 있다... 아마도 독일 프리츠 오이겐에서 찍은 사진이 아닌가 싶다
5월 24일 새벽 5시 37분... 드디어 독일의 두 거함과 영국의 거함 후드와 프린스 오브 웨일즈가 35 km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영국 전함 후드는 비스마르크에 비해 주포의 사정거리가 짧기 때문에, 사정거리내로 빨리 파고들어야만 했다. 홀랜드 제독은 후드와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전속력으로 적함쪽을 향해 나아가게 했다. 그리고 선두에 선 전함을 비스마르크로 판단하고, 첫 포문을 열었다. 전함 후드의 선수가 독일함쪽을 향하고 있어, 전방 주포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홀랜드 제독은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두에 선 적함을 비스마르크로 오인했는데, 그것은 프린츠 오이겐이었고, 비스마르크는 바로 뒤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림] 정확히 선체 중앙에 가격 당한 후드의 상상도.... 샛노랗게 일어나는 섬광은 탄약고의 폭발을 암시하는 묘사로 보인다.
곧바로 타겟을 다시 수정해 비스마르크를 향해 주포를 돌리고 난리 법석을 치뤄야만 했다. 바로 얼마후, 독일 프린츠 오이겐의 주포가 후드의 선체 중앙을 정확히 명중하면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비스마르크의 38 cm 주포의 다섯번째 일제 사격이 후드의 중앙 선체를 정확히 가격했다.
후드는 운이 없었다. 비스마르크의 명중탄이 곧바로 탄약고의 폭발로 이어졌고, 후드는 두 동강이가 나면서, 차가운 대서양 바닷속으로 격침되어 버린 것이다. 선체 전부가 수면위에서 사라지는데 단 3분이 채안걸렸다고 한다. 홀랜드 제독을 비롯한 1418명에 달하는 전승무원이 폭발과 연이은 격침으로 일시에 전사하고 만것이다. 이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이는 단 3명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림] 선체가 하늘로 들린채 격침되는 후드와 그를 피하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모습... 영국에게 전함 후드의 격침은 충격이었나 보다... 이에 관한 그림이 참 많다.... 후드가 완전히 수장되는데는 폭발후 3분이 채안걸렸다.
기함 후드가 눈깜짝할 사이 수장되는 광경을 지켜본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후드가 침몰하며 일으키는 소용돌이를 피해 젖먹던 힘을 다해 선수를 돌리며, 회피에 들어갔다. 그런데 회피한다는 것이 두 독일 전함에 더 근접하게 되어, 빗발치는 함포 사격에 만신창이으로 두들겨 맞고는, 겨우 활로를 뚫고 날아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마지막 명중된 몇발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사령탑을 날려버렸고, 함장 존 카터럴 리치를 제외한 사령탑 인원 전원이 폭사해 버렸다.
북대서양에서 만난 두 거인의 싸움은 서로 함포를 연지 불과 10분만에 어이없이 승부가 나버린 것이다. 프린스 오브 웨이즈와 노포크는 상처입은 몸을 추스리면서, 비스마르크의 항로를 계속 추적하며, 영국의 주력함대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일전을 치르는 동안 프린츠 오이겐은 손상을 받지 않았으나, 비스마르크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주포 3 발을 좌현에 얻어 맞은 상태였다. 보일러실 일부의 손상과 연료탱크의 균열로 항진 속도가 떨어진데다가, 연료가 새어나오면서, 영국 함대에게 자신의 항로를 노출시키는 단서를 제공케 된 것이다.
소드피쉬의 첫 공습

후드를 격침하고 드디어 아이슬랜드와 그린랜드 사이 해협을 통과한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은 진로를 다시 남동으로 잡고 항진을 계속했다. 비스마르크의 연료 손실이 계속되자, 프린츠 오이겐만 대서양에서 수송선단 공격을 감행키로 하고, 비스마르크는 회항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에서 이탈해 진로를 정남으로 잡고 항진했고, 비스마르크는 남동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영국의 노포크, 써포크,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비스마르크를 따라 가시거리 밖에서 좌우에 붙어 추적을 계속했다. 결과적으로 비스마르크호는 자신을 미끼로 프린츠 오이겐의 활로를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겠다.
[사진] 목표는 비스마르크... 항모에서 발진하는 영국의 뇌격기 소드피쉬의 모습.... 이들이 비스마르크 격침의 주역이었다.
한편 킹 조지 5세를 기함으로 한 토베이 제독의 주력 함대는 비스마르크의 이동반경에 들기 위해, 항진 중이었다. 저녁 10시... 토베이 제독은 휘하의 항모 빅토리어스에 명해, 소드피쉬 뇌격기를 출격시켰다. 비스마르크와의 거리 약 120 마일....
제 825 비행대 소속 9기의 소드피쉬 뇌격기들이 편대장 유진 에스몬드(Eugene Esmonde)의 지휘하에 이함을 시작했고, 자정이 되었을 무렵, 비스마르크를 발견했다. 당시 9대 중 1대의 소드피쉬가 항로를 잃어 편대에서 떨어졌고, 남은 8기가 어뢰 공격을 감행했다. 비스마르크의 대공포화들이 불을 뿜는 가운데, 영국 조종사들은 용감히 뛰어들어, 한발의 어뢰를 비스마르크의 우측 선체 중앙에 명중시켰다. 그러나 이곳은 장갑이 가장 두꺼운 부분이라 비스마르크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소드피쉬들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새벽 2시경 빅토리어스호에 착함했다.
5월 25일 새벽....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비롯한 3대의 영국함이 레이더의 촉각을 세우고 비스마르크를 계속 쫓다가, 새벽 4시경.... 비스마르크의 갑작스런 항로변경에 영국의 레이더에서 비스마르크가 사라져 버렸다. 써포크는 토베이 제독에게 무전으로 " 비스마르크를 놓쳤다"는 급보를 전했다. 토베이 제독은 안달이났지만, 비스마르크 역시 실수를 저지른다. 즉 비스마르크는 자신이 영국의 감시망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본국에 전과를 보고하는 전문을 계속 날린것이다. 그런데 토베이 제독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실수를 하게 된다. 즉 비스마르크의 무전 발신지를 포착한 직후, 비스마르크의 위치를 해도에 표시하면서, 전혀 엉뚱한 곳에 그려 넣은 것이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 대신 달려온 전함 로드니(Rodney)와 토베이 제독의 킹조지 5세가 아무리 그곳 일대를 뒤져도 비스마르크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황새치에게 발이 묶인 거함

바로 그때 영국 해군에게 또 한번의 행운이 찾아든다. 즉 5월 26일, 초계중이던 카랄리나 수상기가 우연히 비스마르크를 발견해 낸것이다. 희소식을 접하기는 했지만 토베이 제독의 함대는 이미 비스마르크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제공권 영역안으로 들어가버리면, 이번 작전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토베이 제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스마르크의 속도를 죽여야만 했다.
항모 아크 로열 갑판 위에서 출격 준비 중인 소드피쉬 뇌격 편대의 모습....
[사진] 영국 지중해 H 함대 제독 서머빌의 모습... 그 휘하의 항모 아크로열에서 발진한 뇌격기들이 비스마르크의 발을 붙듬으로써, 최고의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지중해에서 북쪽으로 급파되어 올라오는 H 함대가 비스마르크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토베이 제독은 H 함대 의 제임스 서머빌(James F. Somerville)제독으로 하여금, 공격케 했다. 당시 H 함대에는 전함 리나운(Renown)이 공격에 나설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이틀전 거함 후드가 어이 없이 당한 충격에 전함 리나운에는 공격 금지 명령이 하달된 상태여서, 우선 항모 아크로열에서 뇌격기를 출격시켜, 어뢰 공격을 감행키로 했다. 그런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비스마르크를 수장시키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5월 26일 오후 2시 50분, 15기의 소드피쉬 뇌격기들이 편대장 로벤 마운드(Loben E. Maund)의 지휘하에 항모 아크로열호에서 발진했다. 그후 정확히 1시간 후인 3시 50분.... 소드피쉬 편대는 전함 한척을 발견하게 된다. 곧바로 어뢰공격이 시작되었고, 11발의 어뢰가 물살을 가르며, 전함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그런데 이것은 소드피쉬의 실수였다. 즉 비스마르크로 오인해 어뢰까지 발사한 전함은 영국의 순양함 쉐필드(Sheffield)호였던 것이다. 쉐필드는 필사적으로 아군의 어뢰를 피하려 선회를 시도했으며, 절대절명의 순간, 영국 해군에 다시 한번 행운이 찾아든다.... 즉 이날 발사된 어뢰 중 2발은 착수와 함께 어이없이 폭발해 버렸고, 나머지는 빗나가고 말았다. 한마디로 신뢰성 떨어지는 자기식 어뢰의 축복이었다. 소드피쉬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채고, 문책을 각오하고 아크로열로 귀함했다.
비스마르크를 향해 맹진하며, 어뢰를 투사하는 소드피쉬들.... 이들은 끝내 2발을 명중시키고, 이중하나는 치명타였고, 비스마르크의 방향타는 사지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첫 공습에 실패했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다음날이면 비스마르크를 영영 놓쳐버린다. 즉 이 속력으로 가면 비스마르크는 프랑스 영해로 진입할 것이다. 다급해진 토베이 제독은 다시 소드피쉬 공격을 명했다. 저녁 7시 15분 아크로열호에서 15대의 소드피쉬가 다시 발진했는데 이번에는 자기식이 아닌 신뢰성이 좀 더 높은 충격식 어뢰를 장착했다. 소드피쉬가 비스마르크를 발견한것은 밤 10시 47분..... 편대장 쿠드(Coode)의 지휘하에 소드피쉬 뇌격기들이 일제히 어뢰를 투하하기 시작했다. 비스마르크는 대공포화 전부를 열고 응사했지만, 어뢰 2발을 직격당하고 만다. 이중 한발은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다른 한발은 극히 치명적이었다. 즉 비스마르크의 후미를 강타하면서, 조타실이 파괴되었고, 방향타가 좌측으로 고정된 상태로 작동불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더 이상 방향 전환이 불가능한데다가, 방향타의 고정으로 계속 북서쪽으로 항진하게 되어, 회피는 고사하고 토베이 제독의 영국 주력함대를 향해 나아가게 된 것이다. 린데만은 본국에 무전을 날렸다 " 현재 비스마르크 작동불능 상태임.... 마지막 탄 일발까지 응전 할 것임...."
 비스마르크를 잡아낸 아크로열호 소드피쉬 편대의 대원들... 그들의 뇌격기에는 드디어 커다란 전함 킬마크를 그려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장렬한 거함의 최후

이제 비스마르크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5월 27일.... 영국 순양함 쉐필드와 작은 폴란드 구축함까지도 상처 입은 비스마르크 주위를 맴돌며, 일격을 노리고 있었다.... 즉 사자를 보면 피하는 것이 하이에나들의 성향이지만, 만약 그 사자가 상처를 입고 있을 경우, 하이에나들은 개떼같이 몰려들어 백수의 왕 사자를 물어죽이는 것이다....  이제 상처입은 비스마르크는  한낱 구축함까지도 공명심에 불타오르게 만드는 희생제물에 불과한 좋은 먹이였다. 그리고  아침 8시 40분.....드디어 수평선 너머 23 km 지점에 영국 주력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토베이 제독의 기함 킹조지 5세, 전함 로드니, 그리고 첫 대면했던 순양함 노포크까지.....
첫 발을 날린 것은 로드니였다. 이어 킹 조지 5세도 포문을 열었다. 절름발이 같이 느리게 그것도 고정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비스마르크는 숙련된 영국 포수들에겐 사격연습의 표적에 불과했다. 서로 포격전이 시작된지 약 20 -30 분 후인 9시 8분....  선체 전면을 가격당한 비스마르크의 전방 주포 2문이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10 여분 후, 후방 주포 1문이 파괴되어 입을 다물고 만다. 또 그 얼마후 마지막 주포 역시 더 이상 응사 불능 상태가 되었다. 이제 대적할 주포가 없는 비스마르크의 선내에서는 급기야 배를 포기하라는 마지막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함장을 비롯한 갑판 상부 구조물에 위치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상태였고 기관장이 대리 함장으로서 수병들의 하선을 지휘하고 있었다.
비스마르크의 최후 사진.....
영국의 전함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 왔고, 무방비의 비스마르크를 향해 발포를 계속했다. 이제 거리는 2000 m.... 로드니의 주포는 40 cm에 달했는데, 다시 로드니의 직격탄 몇발이 비스마르크에 작열하자, 이제 거함은 바다위에 떠 있을 뿐, 갑판 상부 구조물 중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을 지경이었고, 이순간 전투 장면을 처음 보게된다면, 아무리 해군의 저명한 관계자라도 이 전함이 어떤 급의 전함인지 맞추지 못할 정도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이런 대파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그자리에 떠있었다. 해군간에는 이럴 경우, 장렬히 최후를 맡도록 격침시켜주는 것이 하나의 예의인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어뢰를 발사했고, 오전 10시 40분경, 거함은 침수로 격침되면서 선체가 하늘로 들리며 대서양 바닷속으로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그것도 프랑스 해안을 단 하루거리에 두고(브레스트 항까지 800km 거리였다고 한다).....  
[사진] 비스마르크 승무원들 중 생존자들이 영국 군함에 구조되고 있는 모습.... 생존자는 단 115명이었다.
이날 비스마르크호에 명중한 영국의 주포는 직경 13 cm에서 40 cm에 이르는 다양한 포탄이었는데, 역사가들은 400발에서 600 발 정도가 명중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발포된 주포만도 3000 발에 이른다. 그리고 이중 4 - 600 발이 명중한 것이다)
물론 그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뤼첸스 사령관, 린데만 함장을 비롯한 2400명에 이르는 비스마르크 승무원 전원이 전사했으며, 생존자는 단 115명 정도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승무원 중 400명은 실전 훈련을 위해 선승한 해군 사관학교 생도들이었다고 하는데, 그나마 해군 전력이 약하던 독일로서는 막대한 인적 손실이라 아니할수 없겠다.
1941년 5월 비스마르크의 침몰은 해전 사상 거함거포주의의 종지부를 찍었다 할수 있는 대사건이었다. 구식 복엽기의 공격이 이 거함을 격침하는데 결정적인 공헌한 것이고, 이제 제공권이 받쳐주지 않는한 덩치 큰 전함이 더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증명했다. 이후 독일의 해군은 더욱 소극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 이어 투입된 형제함 틸피츠 역시 그 형 비스마르크를 따라 비운의 최후를 맞게 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틸피츠의 최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쨌든 독일 해상전력은 이차대전의 종전보다도 훨씬 이전에 이미 종말을 본것이라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비록 당시 나치 독일의 전함이었으나, 끝까지 그리고 용감히 싸워나간 군인으로서의 비스마르크호와 영국 전함 후드호의 승무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비스마르크의 잔해를 수중 탐사 데이터에 근거해 만들어본 상상도..... 주포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췄고, 사령함과 함교드이 거의 제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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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배수량을 자랑하던
태평양 전쟁 일본의 얼굴 마담 야마토호의 최후
 
1945년 4월초..... 미국은 일본의 앞마당 격인 오키나와에 대대적인 상륙작전을 시작했다. 일본내에서도 이제 영 가망이 없어진 전쟁을 포기하고 무조건 항복을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끝까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이성을 잃은 강경파들의 뜻이 관철되어 버렸다. 일본이 당시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뭔가 행동을 보여주어야 했고, 급기야 69000 톤 급 초대형 전함 (미국 전함 중 최대는 아이오와급으로 58000톤 정도였다) 야마토호를 파견하게 된다.
당시 일본 근해에는 미군 잠수함들이 주기적으로 정찰 잠항을 하고 있었고, 항구를 떠날 때 부터, 야마토는 이미 미국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즉 69000 톤의 거대한 철덩이는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처럼 미국의 감시망 아래 놓인 것이다. 잠수함들은 야마토의 항로를 분석하여, 목표가 오키나와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이제 야마토 앞에 펼쳐진 길은 넓디 넓은 푸른 바다가 아니라, 마지막 지옥의 불구덩이 뿐이었다.
      
 
마토..... 세계 최대의 배수량... 전사한 야마모토 사령관의 기함
[사진] 야마토의 18.1 인치 주포의 모습... 특이하게도 이것이 대공용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마치 산탄총처럼.....
4월 7일, 하늘은 온통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혀 있었다. 높은 구름이면 몰라도, 이렇게 낮은 구름이 끼인 날씨는 전함들에겐 반갑지 않은 징조라 할 수 있다. 왜냐면, 화창하게 개인 날이야 아무리 고공에 있더라도 적기를 발견하여 대공포화로 대항할 수가 있지만, 이렇게 구름이 낮게 깔린 날은 구름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일시에 급강하해오는 항공기를 발견하고 대공화기를 발사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마토의 대공 방어 시스템은 극히 취약했다고 한다. 대공 포탑이 회전하는 속도가 느려 이렇게 급작스런 공중 공격을 대처하기에는  역부족, 더 정확히 말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야마토는 특이하게 18.1 인치 주포도 대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항공기가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발사하면, 산탄 처럼 파편으로 격추시키는.... 그러나 실전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이제 미국의 1000 대가 넘는 항공기들이 세번에 걸친 공중 공격을 위해 발진했다. 야마토는 일본 해군, 아니 일본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특별한 전함이었고, 미국에게도 마지막 남은 적수다운 적수였다.   
야마토(大和)의 어원

그럼 여기서 잠시 야마토의 어원에 대해 알아보자...
대화(大和)라고 표기되는 야마토란 말은 서기 4세기 전후, 일본의 야마토시대(다이케 시대)에서 기원한다. 당시 일본은 한반도 남단의 가야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가야는 적대 관계에 있던 신라를 치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병사를 징병해, 신라에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다급해진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고, 5만에 이르는 대병을 이끌고 남하한 광개토대제의 도움으로 가야세력을 일소해 버린다.
하루 아침에 터전을 잃은 가야인들은 자신들의 세력권 아래에 있던 일본으로 건너갔고, 지금의 일본 나라 지방을 근거로 세력을 넓혀 야마토국(大和國)을 세운다. 당시 나라현의 지명이 대화(大化 다이케)였고, 나중에 국호를 대화(大和 야마토)로 하면서 야마토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일본 천황의 원류도 역시 야마토국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니, 한반도 가야의 지배층이 이후 일본의 지배층을 형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인의 정신적인 지주 야마토라는 것은 바로 한반도에서 기원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임나 일본부설이란 것이, 이야기의 중심세력을 한반도 출신 가야인에서 일본 본토인으로 바꿔치기한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인 야마토의 근본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야마토 시대부터 일본의 사회 전반은 한단계 수준이 올라가는데, 일본인들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의 식민지인 가야국의 지배 세력이 고구려에 패주하여 일본으로 건너 간후, 식민지의 영향을 받아 문화수준이 향상된 것이라는 이야기 밖에 안되니, 일본인의 주장은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이다. 당시 가야는 일본이 꿈꾸지도 못하는 금속 제련 기술을 보유한 국가였다. 기술력이 앞선 국가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왜냐면, 고대사에서 금속 기술이란 군사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고대사라는 것은 앞뒤 정황을 살펴 보면, 억지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일본인들은 고대사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특히 가장 영향을 끼쳤던 한국에 대해....   
4월 7일, 12시 37분......
드디어 미국의 첫번째 공중 공격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항모 베닝턴과 호넷호에서 발진한 132대의 전투기와 50 기의 급강하 폭격기, 98기의 뇌격기가 가려진 구름을 뚫고, 하얗게 물보라를 길게 끌며 항진하는 커다란 괴물을 향해 기수를 내리 꽂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은 300 대에 달하는 온갖 종류의 미국 항공기들이 내는 윙윙거리는 소음과 늦게 나마 야마토가 쏘아 올린 대공포화의 검은 연기와 폭발음으로 가득했다.
덫에 걸린 맹수처럼 온갖 대공화기를 하늘에 쏟아붇던 야마토는 공격 개시 얼마되지 않아 벌써 첫번째 상처를 입는다. 즉 휴 우드(Hugh Wood)가 이끄는 미국의 SB2C 헬다이버 급강하 폭격기들이 약 900 m 상공에서부터 급강하에 돌입해, 고도 240 m 에서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당시 우드의 비행대원으로 참전한 프란시스 페리(Francis R. Ferry)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적함을 명중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미국 급하강 폭격기들의 공격에 명중당해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야마토의 모습
먼저 2발의 투하용 폭탄이 야마토의 우현을 명중시켜 야마토의 25 mm 대공기관포들이 파괴되었다. 연이어 2발이 더 명중.... 이번에는 야마토의 6 인치 포탑을 보기 좋게 명중.... 그중 한발은 갑판위에서 폭발..... 야마토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갑판아래 주요 구조물은 온전했지만, 갑판 위는 폭발한 화염에 휩싸여, 삽시간에 불길이 전갑판으로 번져갔고, 이 불은 야마토가 최후를 맞는 순간까지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이것은 2시간후 야마토가 최후의 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할 때, 폭발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얼마후 6 인치 포탑 안의 탄약고에 불이 붙으면서, 6 인치 포탑 뚜껑은 폭발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때 어벤저 뇌격기들이 풀어 놓은 어뢰들이 물살을 헤치고 야마토의 좌현을 향해 곧장 미끄러져 갔다. 이중 2발, 야마토의 좌측 선체를 강타....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린 좌측 중앙 선체에 바닷물이 침수되기 시작해, 야마토는 좌측으로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전함이 한쪽 선체에 어뢰공격을 받아 침수되기 시작하면, 어떻게 방어 조치를 할까? 일단 뚫린 구멍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러나 물길이 심하게 새어 들어 오는 상황에서는 이 보수작업을 할 수 없다. 이때는 반대측 선체의 일부에 의도적으로 물을 채워, 균형을 맞춘 후, 손상 받은 곳의 물줄기를 줄여 놓고, 땜질을 시작한다) 야마토는 좌측 손상된 부위의 수리를 위해 우현에 펌프로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피해를 입고 달아나는 야마토.... 그러나 가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13시 정각.....
두번째 공중 공격을 알리는 투하용 폭탄들이 야마토를 향해 일시에 쏟아졌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한발의 명중탄도 맞지 않아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 때, 이번에는 재차 어뢰 공격을 받게 된다. 4발의 어뢰 정확히 좌현을 명중..... 첫 공격에서 2발의 어뢰에 거덜난 야마토의 좌현은 이제 거의 걸레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좌측에 집중된 어뢰로 좌측 엔진실이 침수되었고, 두개 동력원 중 하나가 멎어 버린 것이다. 이제 항진 속도는 18 노트로 떨어졌고, 좌현 손상을 보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야마토는 이때 좌측의 침수로 선체가 16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였는데, 우현에 물을 채워, 가까스로 기울기를 5도까지 돌려 놓았다.
야마토는 기우뚱한 모습으로 일본 본토를 향해 달아나는 수 밖에 달리 묘책이 없었다. 일본의 대망이라는 소설을 보면, 덕천가강가의 가신 무장 중 한명은 병사들 훈련을 시킬 때면 언제나 웃통을 벗어 제쳤다고 한다. 그의 몸에는 숱한 전쟁에서 입은 수많은 상처 자국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상처는 하나같이 가슴과 배 앞쪽에 집중되어 있고, 등은 마치 여자의 등처럼 깨끗했다고 한다. 즉 그는 전쟁에서 한번도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음을 병사들에게 말없이 전달한 것이다. 야마토도 이 당시 그들이 늘 말하는 사무라이 정신을 살려, 끝까지 분전하다 최후를 맞을 수도 있었겠으나, 그들이 목표하던 오키나와를 향해 항진한다는 것은 영영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제 단 1 퍼센트라도 더 가능성이 있는 본토를 향한 도망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야마토는 이 마지막 출항을 시작할 때부터 무사히 귀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오키나와로 갈 수 있는 정도의 연료만 탑재했고, 돌아올 연료는 아예 없었다고 전해진다.)
[사진] 야마토의 최후.... 투하용폭탄에 의해 불길이 무기고에 옮겨 붙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격침된다. 이 검은 연기는 지상 6000 미터까지 치솓았고, 125 마일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공격이 뜸해지는가 싶더니 30분후, 비장한 미국의 마지막 공격이 재개되었다. SBD 급강하 폭격기들이 투하한 폭탄 세발이 정확히 이미 타격을 입은 좌측 상판을 뚫었고, 3개의 어뢰가 다시 좌측 선체에 꽂혀, 야마토의 좌측은 손상을 받았다기 보다는 아예 좌측 선체가 터져버렸다고 해야겠다. 쉽게 표현하자면, 내용물을 많이 집어 넣어 보기에도 빵빵한 김밥이, 썰기도 전에 옆구리가 터져 버린 그런 형국이었다. 좌현에만 도합 9발의 어뢰가 명중된 것이니.....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우현 뒤쪽 선체에 어뢰 한발 더 명중..... 이젠 쌍코피..... 야마토는 좌후방의 침수로 기울기가 다시 16도에 이르게 되었고, 반대측을 펌프질로 침수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울어버린 선체를 세울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의도적인 침수를 하기전에 경고를 하지 않았고(사실 경고할 수 있는 장치란 게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강제로 선체를 폐쇄시키고 펌프로 물을 쏟아 부어, 애꿎은 수병 수백명이 선체에 갇힌 채, 익사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야마토 항진 속도 8 노트로 현격히 감소.... 조종 불능....
14시 정각, 야마토 엔진 올 스탑.... 배를 포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고철덩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떠있을 것 같던 야마토는 14시 10분.... 갑자기 엄청난 폭발과 함께 일시에 격침되어 버렸다. 이 마지막 폭발은 첫 공격에 갑판에 명중한 투하용 폭탄에 의해 번진 불길이, 날아간 6 인치 포탑의 빈 공간으로 번져, 야마토의 탄약고에 옮겨 붙으면서, 남아 있던 모든 폭탄들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다. 얼마나 큰 폭발이었던지 검은 연기가 해발 6000 m 위까지 치솟았고, 125 마일 밖에서도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야마토의 최후를 보기 위해 고공에서 선회중이던 일부 미국 항공기들이 갑작스런 이 폭발에 희생되었다고 전해진다. 한 시간 30분에 걸친 공격에 총 14발의 어뢰가 명중했으며, 3000 명의 승무원 중 단 269 명만이 구조되었다. 야마토의 침몰은 그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1차대전까지의 거함거포주의의 종말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공중 엄호가 없는 함대라는 것은 바다에 떠있는 고철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그림]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우주전함 야마토의 한 장면..... 이들은 이차대전 기간 중 이루지 못한 스스로의 한을 이영화로 풀려고 한 것일까?  미국인을 너무도 빼닮은 외계의 적들을 격파하며, 삶의 터전(식민지)을 찾아 머나먼 항해를 계속한다. 앞에 선수부에 뚫린 구멍은 파동포가 발사되는 발사구에 해당한다..... 어릴 때 참 좋아하던 만화 영화인데.....
배수량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야마토는 진주만 기습을 성공시킨 죽은 일본 합동 함대 사령관 야마모토의 기함이었고, 이차대전 일본의 얼굴 마담이었으나, 종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고철덩이가 되어 태평양에 수장된 것이다.
오랜전 일본은 그들의 정신적인 쇠덩이인 이 전함의 이름을 따, 이것을 우주로 쏘아 올린 우주전함 야마토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픽션으로 나마 실전에 못다한 승리를 부여해 혼을 달래려 했는지, 우주 전함 야마토는 그들의 적이었던 미국인을 쏙 빼닮은 노란 머리의 외계인들을 대파하며 승리에 승리를 거두어 나간다.
우주전함 야마토가 발사하는 파동포..... 이것은 또 하나의 신풍이 아닐까?
우주전함 야마토의 목표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가는 것인데, 쉽게 말해, 식민지 건설이 그것이며, 야마토가 자랑하는 파동포는 고대부터 그들을 구한 신풍(가미가제)과 일견 흡사한 것이기도 하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반전을 이끌어 내고, 몽고의 말발굽으로 부터, 자신들을 구했던 신의 바람처럼...... 파동포는 절대절명의 순간, 적의 전함을 싸그리 쓸어 버리고 유유히 워프로 공간을 뛰어 넘어 우주를 나른다.  홈지기도 개인적으로 어릴 때, 이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했고, 지금도 어릴 적 생각에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만들어낸, 또 누가 느껴야 할 향수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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