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하지만 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남자. 우울할 때 꽃 한 다발 내밀며 나를 위로해 주는 남자.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어 주고 실수는 말없이 눈감아 주고, 살며시 손만 잡고 자도 행복해하는 사람. 떡볶이를 사 들고 퇴근하는
남자, 아내를 위해 아침식사를 차려 놓고 나가는 남자. 젓가락질 못하는 저를 위해 식당에서 "포크 없습니까?" 하고
물어봐 주는 자상한 남자. 한 달에 하루 내게 휴가를 줄 수 있는 사람. 영화나 책 내용을 다이어리에 적어 두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남자.
II.같이 살아 보고 싶은 여자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 주는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 이해심 많고 웃어른 공경할 줄 알고 동기간에 우애 깊은 아내. 나한테 해 주는 만큼 나의 부모님께도 잘할 수 있는
사람. 함께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 별을 보며 막걸리 한잔 나눌 줄 아는 여자. 요리는 못해도 나와 맛있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사람. 빨래는 못해도 내가 골라 준 옷 입고 기뻐하는 사람. 잠 못 이루다가도 내가 팔베개를 해 주면 살며시 잠드는
여자. 내가 돈이 없어도 마음 편하게 해 주는 여자.
***상류층 주부***
오늘은 남편이 일찍 들어왔습니다.
나에게 보여줄 힘이 있다고 계속 칭얼거립니다.
나는 모르는척 하면서 남편과 침대에 누웠습니다.
일(?)이 끝난후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해구신 먹었냐구 했더니 남편은 비아그라 먹었답니다.
남편의 힘자랑에 나는 밤새도록 기뻐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좋은 사람입니다.
내일도 남편은 일찍 들어오겠다고 나보고 골프치러 가지 말라고
그럽니다.
***서민 주부***
오늘도 남편은 뻗었습니다.
제가 하늘을 본지 벌써 어언 1년이 다되갑니다.
작년 말복때...그후로는 남편은 잘 뻗습니다.
허벅지에는 피멍이 가시지 않아 이젠 점이 됐습니다.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티비에서 비아그라만 보면 눈이
똥그래집니다.
내가 칭얼거리면 바로 날라옵니다...재떨이가...
그리고는 미니 입은 아가씨만 보면 피로가 가신답니다.
언젠가는 나도 미니입구 기다렸다가 세상 하직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좋은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외박을 한번도 안했으니까요...
8월말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친 미국 뉴올리언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카트리나가
상륙하기 전부터 거의 일주일 가량 이 허리케인에 관한 기사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보도를 종합해 보자면 피해액은
500억달러 약 50조원에 이르며 사망자는 수천명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 뉴올리언스 시내는 무법천지로 변해 약탈과 강간이 자행되고 있으며
주 방위군은 이들과 사실상의 교전 상태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특히 뉴올리언스에는 사는 수천명의 우리 교민들 중 상당수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주정부 당국의 소개령을 따르지 않고 시내에 남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시내에 남았던 교민들과는 아직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현지로 부터 수많은 사진이 쏟아져 들어 오고 있고 TV에서도 현장영상을 전하고 있으나 기사와 영상만으로는 정확한 현지
상황이 잘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로이터 통신이 지금까지 전송한 사진을 소개합니다. 미흡하나마 이 사진을 통해 현지 상황을 짐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동영상은 영국 공영방송 BBC월드 뉴스의 Live 화면입니다.
BBC월드는 뉴스 시간 마다 현지 상황을 생방송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BBC월드의 영상은 보다 생생한 현지모습을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릴
것입니다. 영어에 능통한 독자들께서는 현지 상황을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
8월29일
.
미국 국립 해양
대기청에서 찍은 카트리나의 위성사진입니다. 카트리나가 멕시코만에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뉴올리언즈 시내에
뒷창문이 깨진 경찰차가 물로 가득찬 뉴올리언즈의 도심지 Canal Street에 버려져 있습니다.
세명의 아이들이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
인근의 침수된 거리를 손을 꼭 붙잡은채 걷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일어날 대참사를 예상하지 못한 표정입니다.
28일 뉴올리언스에서 주민들이
카트리나를 피해 안전지대로 대피하기 위해 루이지애나 슈퍼돔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성조기를
운반하고 있습니다.
26일,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따라 소방서 공중 정찰을 하던 중 남부 마이에미 데이드 카운티의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마을이 물에 잠긴채 지붕들만
보입니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 8월30일
빌럭시에 있는 새들러 아파트의 참사
현장입니다. 29일, 태풍 카트리나는 빌럭시 인근의 콘도 미니엄 100채를 파괴했습니다.
빌럭시에 있는 한 텔레비전 방송국의
모습입니다. 29일 강력하게 몰아친 카트리나로 인해 방송국 탑과 지붕이 사라진 모습입니다.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말을 타고 홍수가 난 거리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29일 루지이애나에 몰아친 카트리나로
인해 물속에 잠긴 거리에 전봇대가 거리의 한쪽편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카트리나가 29일 플로리다주 데스틴을
휩쓸고 지나간 후 바다에 근처 주차장이 크게 훼손돼 있는 모습입니다.
29일, 빌럭시 Thomasville
아파트에서 미시시피 걸포트의 경찰관이 카트리나가 맹렬하게 몰아쳐 자신의 순찰차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모습입니다.
카트리나에 의해 해안가에 물이 차올라
있는 모습입니다. 카트리나로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루이지애나의 작은 섬에 있는 비행장이 폐쇄되었습니다.
29일 플로리다 펜서콜라의 I-10
고속도로에서 카트리나의 공격으로 차가 파손된 모습입니다.
29일 카트리나가 지나간 미시시피주
뉴올리언스 시내에서 한 남자가 카메라로 부서진 차를 찍고 있습니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
8월31일
지난 31일
도깨비뉴스 핫앤쿨에 "뼈대만 남은 다리"라는 기사로 나갔던 사진입니다.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미국 미시시피주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교각만 앙상하게 남아있습니다.
29일 뉴올리언스
상공에서 바라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모습입니다. 엄청난 잔해들이 물 위에 떠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후
29일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있는 도로가 물에 잠겨 있습니다.
30일, 뉴올리언스의
거리가 물에 잠긴 모습입니다. 도로가 조각이 난채 물 속에 잠겨 있습니다.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망가진 도로 모습입니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
9월1일
31일 교도소가 물에 잠기자 교도소
수감자들이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의 내려앉은 도로 끝에 몰려 구조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31일 카트리나의 공격으로 멕시코만에
정박해 있던 시추선이 앨라배마주 도핑 섬 연안까지 밀려왔습니다.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를 휩쓸고 지나간 카트리나에 의해 컨테이너들이 물 속에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31일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가 지나간 후 물에 잠긴
고속도로의 모습입니다.
31일 보트들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휩쓸려 땅 위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31일 루이지애나에 있는 골프장이
카트리나가 지나간 후 물에 침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 9월2일
1일 뉴올리언스에서 카트리나 때문에
지붕위에 피신해 있던 주민들이 헬리콥터로 구조되고 있습니다. 서로 꼭 껴안은채 헬리콥터로 구조되고 있습니다.
1일 뉴올리언스에서 카트리나 때문에
물에 잠긴 가옥 지붕 위에 피신해 있던 주민들이 헬리콥터로 구조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의 모습입니다. 거리의 시체들이 썩기 시작했으며, 수천명의 생존자들은 먹을 것이라도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필자 주>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그동안 성원해 주시고 애독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께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NARA에 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권중희 선생님, 그리고 사진 자료를 입수하는데 도와주신 재미동포 자원봉사자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곁에서 원문을 번역해 주신 박유종 선생님, 길잡이가 되신 이도영 박사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캐너를 빌려준 동포 주태상씨 그리고 이선옥씨, 권헌열씨, 정희수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에 이 자료를 독자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입수한 사진 자료는 모두 480여 매이나 그중에서 중복되거나 비슷한 것, 그리고 사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제외한 자료를 30회에 걸쳐 모두 공개하였습니다.
박도 기자는 서울에서 33년간의 교단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강원도 산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 회원으로 작품집에는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와 산문집 <샘물 같은 사람> <아버지의 목소리> <일본기행> 항일유적답사기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한국전쟁 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이 있다.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2. 금강철교ⓒ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