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시대가 개막되던 1900년 전후에는 확실히 족보가 다른 세가지 자동차의 경쟁시대였다. 자동차의 선조라던 증기자동차와 전기발달의 힘을 입어 일찍내어나 반짝 스타가 되었던 전기자동차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휘발유자동차의 대경쟁시대였다.

 이들은 생존투쟁을 스피드로 판가름했다.

 1898년 영국의 귀족 사세로프 루바경은 어느날 증기자동차를 가지고 있던 친구와 소도내기 시합을 했다.

 루바경은 자기가 직접 설계하여 만들었던 전기자동차로 이 내기에서 최고 시 속 64km를 올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의 자동차들은 아무리 빨라 야 시속 40km를 넘지 못하던 때라 루바경의 스피드는 굉장히 빠른 것이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휘발유자동차의 꽃을 피우고 있던 유럽대륙으로 건너가 벨기에의 자동차광이었던 카뮈 제나티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갔다.

 때마침 그는 파리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 자동차경주에 출전하기 위해 기막
힌 디자인을 착상하여 로켓모양의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다.

 카뮈는 그의 로켓자동차가 완성되던 1899년 4월 루바경에게 스피드 도전을 했다. 당시 프랑스의 입이라던 르프티신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생과 사를 가늠할 때 신사적인 권총결투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확실히 센세이션을 일으키고도 남을 화제였다. 이 소문은 신문을 통해 곧 유럽을 뒤 덮었다.

 29일 오전 10시, 루바경의 마차 모양을 한 전기자동차와 카뮈의 로켓형 전기자동차 두 대가 파리 교외의 앗세루 공터에서 권충이 아니 스피드의 결주를 벌였다. 카뮈는 3km의 자갈길 코오스에서 최고시속 103km의 무서운 스피드로 달렸다.

카뮈의 로켓형 전기자동차

 모여든 2만의 관중들이 손에 땀을 쥐고 열광했다. 루바경의 기록은 시속69km
였고 세계 최초로 자동차가 시속 100km를 넘는 순간이었다. 자동차에 미친 남
편을 미워했던 카뮈의 부인은 차가 골인하자 제일 먼저 뛰어올라가 먼지와 땀
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 남편의 얼구에다 키스를 퍼부으며"비바카뮈! 비바 리자 메곤단트'를 연발했다. 라자메곤단트란 카뮈가 그의 차에 붙인 별명인데"결코
만족하지 않는 자동차"라는 쯧이라고 했다. 

 자동차시대가 개막되던 1900년 전후에는 확실히 족보가 다른 세가지 자동차의 경쟁시대였다. 자동차의 선조라던 증기자동차와 전기발달의 힘을 입어 일찍내어나 반짝 스타가 되었던 전기자동차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휘발유자동차의 대경쟁시대였다.

 이들은 생존투쟁을 스피드로 판가름했다.

 1898년 영국의 귀족 사세로프 루바경은 어느날 증기자동차를 가지고 있던 친구와 소도내기 시합을 했다.

 루바경은 자기가 직접 설계하여 만들었던 전기자동차로 이 내기에서 최고 시 속 64km를 올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의 자동차들은 아무리 빨라 야 시속 40km를 넘지 못하던 때라 루바경의 스피드는 굉장히 빠른 것이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휘발유자동차의 꽃을 피우고 있던 유럽대륙으로 건너가 벨기에의 자동차광이었던 카뮈 제나티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갔다.

 때마침 그는 파리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 자동차경주에 출전하기 위해 기막
힌 디자인을 착상하여 로켓모양의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다.

 카뮈는 그의 로켓자동차가 완성되던 1899년 4월 루바경에게 스피드 도전을 했다. 당시 프랑스의 입이라던 르프티신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생과 사를 가늠할 때 신사적인 권총결투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확실히 센세이션을 일으키고도 남을 화제였다. 이 소문은 신문을 통해 곧 유럽을 뒤 덮었다.

 29일 오전 10시, 루바경의 마차 모양을 한 전기자동차와 카뮈의 로켓형 전기자동차 두 대가 파리 교외의 앗세루 공터에서 권충이 아니 스피드의 결주를 벌였다. 카뮈는 3km의 자갈길 코오스에서 최고시속 103km의 무서운 스피드로 달렸다.

 카뮈의 로켓형 전기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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