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rth American P-51 Mustang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0. 5. 12
2차대전의 최우수 전투기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고려점이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P-51 머스탱이 최고의 전투기라는데에는 대개 아무도 이견을 던지지 않는다. 물론 제트전투기인 Me 262나 영국의 스핏화이어, 독일의 Bf 109등등 여러 기종들이 거론되지만 이런 주제로 2차대전사를 공부하다보면 결론적으로 '전쟁에 이긴 전투기' P-51 머스탱이 최고라는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뭐 긴소리 필요없이 하늘의 캐딜락 P-51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 영국을 위해 태어난 북미의 야생마 *
1939년, 독일 루프트바페가 세계최강의 공군으로 그 위세를 자랑하면서 새로운 전쟁의 기운이 점차 온 유럽을 뒤덥게 되는가 하더니 어느새 독일이 주변 국가들을 무력으로 침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일 공군에 대항할 유일한 유럽의 세력인 영국공군 (RAF)은 전투기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열심히 생산을 한다해도 독일에게 대항할 만한 전력을 갖추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영국은 우호적이던 미국에 무기구매 사절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미국은 전쟁의 위협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유럽의 전쟁은 남의 이야기였고, 이때만 하더라도 미국이 참전하리라는 생각을 전혀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전투기의 개발에는 소극적이어서 영국 구매사절단은 허리케인정도의 성능을 가진 미국 최고의 전투기 P-40 토마호크를 구매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P-40의 제작사였던 커티스사는 영국측이 요구하는 만큼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에 영국 사절단이 노스 아메리칸사를 방문하여 커티스사의 P-40을 좀 같이 생산해 주면 어떻겠느냐? 는 제안을 했다. 이런 자존심이 상하는 제안을 받은 노스 아메리칸사의 사장 제임스 킨델버거는 즉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 천하의 영국공군이 겨우 P-40정도의 성능으로 만족하시는 겁니까? 우리에게 4달만 주시오. 그러면 P-40보다 훨씬 좋은 전투기를 만들어 드리죠."
킨델버거는 사실 새로운 신형전투기의 개발을 구상했으나 미군이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아 계획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킨델버거의 제안이 머스탱의 탄생 발단이었다.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4달만에 신형 전투기를 만든다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음에도 영국측은 뭐 손해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국공군의 장성들과 협의후에 영국측은 1940년 5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냈다.
"좋아요! 4달후에 정말로 좋은 전투기를 만들어 낸다면 즉시 3백대를 구매하겠소. 하지만 P-40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면 이 계약은 파기요."
이렇게 머스탱은 탄생의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조국 미국이 아닌 영국을 위해서....노스아메리칸사는 하늘이 주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동분서주 했다. 불철주야 전직원들이 작업에 매달린 끝에 4달이 채안되는 1940년 10월 26일, 117일만에 하늘의 야생마가 탄생했다. NA-73이라고 명명된 시제기는 영국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시범비행을 실시했다. 최고속도가 P-40보다 시속 40km가 빠른 최고시속 640km를 기록했다. 일단 시험비행의 결과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으며 영국측이 제시한 조건에 대부분 충족하고 있었다. 따라서 독일과의 전투로 전투기 부족에 시달리던 영국으로부터 즉시 발주를 받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영국측으로부터 Mustang Mk. I이라고 명명된 (노스 아메리칸사의 제식명칭은 P-51A) 이 야생마는 320기의 발주를 받아 생산되는 족족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실려갔다.
1942년 영국공군 제 26 비행중대 소속의 머스탱 I 이다. 앨리슨 엔진을 장착한 기체이며 저공에서 정찰임무와 지상공격 임무에 사용되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기수 스피너 바로 뒤 아래쪽에 12.7mm 기관총이 보인다. 머스탱 I 형은 이처럼 기수에도 무장이 있었다. 주익에는 7.7mm 기관총 4~6정이 장비되어 무장은 강력한 편이었다. (이형은 미국에서는 P-51A로 불리웠음) |
같은 기체의 상면도이다. 초기 머스탱의 캐노피 모양과 영국식의 실전도색을 잘 볼 수 있다. 이 기체의 엔진을 교체한 형이 mustang II 형이므로 외형상의 차이는 없다. |
RAF의 조종사들은 새로 도입된 미국산 전투기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성능은 만족할 만하며 확실히 P-40보다는 뛰어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고도 4000m를 넘어서면 앨리슨 엔진이 갑자기 출력 저하를 일으켜 독일 전투기와의 공중전은 무리였던 것이다. 따라서 영국측은 이 전투기를 대지상 작전용으로 한정해서 사용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군도 이 신형기의 공중전 성능을 테스트하였으나 영국공군에서와 같은 문제점이 발견되어 주력 전투기로 채택하지는 않았다. 단지 저고도에서의 우수한 성능은 인정되어 'A-36 아파치'라는 이름으로 급강하 폭격용 기체로 148기가 생산되는데 그쳤다.
* 계속되는 개량으로 다시태어나는 머스탱 *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이 전설적인 전투기는 평범한 전투기가 되었거나 급강하 폭격기 A-36으로 기억되버릴 신세가 되었을 텐데, 영국측이 이 야생마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게 되었다. 영국의 기술진은 저공에서는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는 이 전투기가 중간고도만 넘어서면 맥을 못추는 점에 주목했다. 여러가지 시험을 거친결과 기체자체의 설계는 매우 우수하며 중고도를 넘어섰을 때의 형편없는 비행성능의 원인으로는 미국제 엘리슨 엔진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기체의 엘리슨 엔진을 떼어내고 스핏화이어에 장비되던 머린 엔진을 달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에 머스탱 5기를 차출하여 당시 스핏화이어 Mk. IX에 사용되던 머린 61 엔진을 장착해 보았다. 1942년 10월 드디어 시험비행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하늘에 날아오르자마자 머스탱은 갑자기 돌변했다. 이 녀석은 고도에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녔고 속도가 이전보다 50마일이나 빨라져 고도 7800m에서 시속 704km라는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한 것이다. 게다가 이 궁합이 척맞는 엔진을 장비하면서 연료통의 용량이 컸던 머스탱은 스핏화이어보다 3배나 먼 항속거리를 과시했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하늘을 질주하는 야생마 그 자체였다. 영국은 즉시 이 기체에 자국의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을 달고 생산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 환골탈태한 새로운 머스탱을 Mustang Mk. II라는 제식 명칭을 붙였다.
미 제 355 전투비행단 소속의 P-51B 이다. The Hun hunter from Texas 라는 이름을 기수에 새긴 것으로 격추대수 14 1/2을 기록한 헨리 브라운 대위의 기체이다. P-51B형은 사진과 같은 녹색 도색의 기체를 많이 볼 수 있다. |
이러한 결과에 놀란 것은 미국측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에 빠져든 미군은 독일전투기에 대항할 쓸만한 전투기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세계최고의 성능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자국산 전투기를 만난 것이다. 즉시 영국의 협조로 미국의 팩커드사에서 롤스로이스 엔진을 라이센스 생산하기로 하고 P-51B라는 제식명칭으로 2000기의 발주를 받아 양산에 들어갔다. 1943년 5월 드디어 첫 P-51B가 시험 비행을 했고 1943년 10월 제 354 전투비행단에 장비되어 전투에 투입되었다. 한편 미국은 영국식의 무장 (기수에 caliber 50 12.7mm 기관총 2정, 주익에 부라우닝 7.7mm 기관총 4~6정)과는 달리 주익에 caliber 50 기관총 4정을 장착하여 생산했다. 이후 주익에 연료탑재량이 늘어난 P-51C형이 생산되었고 무장도 주익에 Caliber 기관총 6정이 장착되어 강화되었다. P-51C형에 이르러서는 외부 연료탱크 채택으로 항속거리가 자그마치 최대 3347km에 달했다. 이 P-51B/C형은 총 3748기가 생산되었다. 영국측도 P-51B/C를 Mustang Mk.III라는 이름으로 계속 도입했다.
P-51B형의 정면 모습이다. 기수의 기관총이 사라지고 날개에만 4정의 12.7mm 기관총이 장착된 것이 보인다. P-51C형에 기총이 6정으로 강화되었다. 주익 파이런에 장착된 연료탱크로 인해서 더욱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어서 호위 전투기라는 임무에 매우 어울리는 기체가 되었다. |
미군이 본격적으로 독일 지배하의 유럽에 대한 주간폭격작전을 시작하면서 B-17, B-24와 같은 중형 폭격기들이 스스로 충분히 방어를 하면서 폭격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와달리 독일 전투기들의 요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애초에 원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주간 호위전투기가 없었던 영국이 독일 전투기의 방어망을 폭격기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음을 통감한후 야간폭격에 전념했지만 미군은 자신들의 중폭격기들이 충분히 자체무장으로 독일 전투기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1943년 8월 17일의 슈바인푸르트 대공습작전에서는 B-17의 대편대가 용감하게 주간폭격 작전에 나섰으나 독일 전투기들이 대거 요격해와서 무자비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날 온통 미군 폭격기들은 독일 전투기들의 사냥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총 출격기 230기중 60기가 돌아오지 못했고 더 많은 기체들이 큰 피해를 입어 다시 출격할 수 없었다. 미군은 크게 당황하여 즉시 폭격기 부대를 보호할 호위전투기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 먼거리를 전부 호위할 수 있었던 전투기는 없었다. P-47이나 스핏화이어는 항속거리가 짧아 프랑스 근처에서 되돌아와야 했으므로 미폭격기편대는 계속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호위임무도중 단독으로 독일 Bf 110 편대를 상대하여 괴멸시킨 유명한 미군의 유명 에이스 짐 하워드의 P-51B형이다. 시계 개선을 위하여 캐노피의 가운데 유리창이 볼록한 형태의 이른바 말콤 캐노피가 보인다. 그는 플라잉 타이거즈 소속으로 일본기 6기를 격추한 경력이 있어 2가지의 격추마크를 장식하고 있다. '딩 하오'라는 기체명도 중국에서 활동할 시절을 기념하여 붙인 것이다. |
그러던 중 P-51이 나타났다. 이 머스탱의 최대 항속거리는 충분히 폭격기들을 호위하고도 남는 거리였던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Bf 190이나 FW 190에 비해서 전혀 손색없은 공중전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Caliber 50 12.7mm기관총 6정의 강력한 화력은 독일 전투기를 박살내기에 충분했으며 폭격기 요격을 위해 중무장을 하고 날아오른 독일전투기들은 중량문제로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는 머스탱에게 열세였던 것이다.
머스탱은 얼마안가 은빛 날개를 휘날리며 전 유럽하늘의 지배자가 되어 버렸다. 독일 하늘은 온통 은빛의 머스탱들이 휘집고 다녔으며 전쟁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수적으로도 독일전투기를 완전히 압도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머스탱들은 폭격기 호위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독일전투기들을 찾아다니면서 격추시키는 자유추적 임무에도 투입되었다.
시미 III 라 이름 붙여진 본 기체는 제 325 전투비행단의 지휘관 체스터 슬루더 대령의 기체이다. 본 비행단은 꼬리날개에 체스판 마크를 도색하여 'Checkertail Clan'이라고 불리웠다. P-51C형은 외형으로는 P-51B형과 구분하기 힘들다. |
더구나 우수한 독일 조종사들이 대부분 전사하여 미숙한 조종사들이 타고 날아오르는 독일의 Bf 109나 FW 190은 경험이 쌓여가는 미군 조종사들이 조종하는 머스탱의 밥이 되었다. 심지어 독일 비행장 상공에도 나타나 무자비하게 기총소사를 해댔다.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은 은빛 날개의 머스탱을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폭격기 사냥꾼에서 쫒기는 먹이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물론 머스탱에게도 약점은 있었는데 냉각기에 한발이라도 피탄을 당하여 냉각수가 유출되는 경우에는 기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944년 8월 미 제 487 전투비행단 의 지휘관이었던 존 메이어의 P-51D 이다. 그는 공중에서 24기를 격추했고 지상에서 13기를 격추했다. 그는 나중에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여 미그-15 2기를 격추하기도 했다. 후에 베트남전에서는 4성 장군으로 진급하여 전략 공군 사령부를 지휘했다. |
* 유럽 하늘의 왕자가 되어...*
한편 P-51B를 실전에서 조종하던 조종사들은 차츰 시야에 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P-51B형의 레이저백(Razorback)형 캐노피는 조종사들의 후방 시야에 제한을 주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개발한 가운데가 볼록한 말컴 캐노피가 일부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시야 개선에 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일부 조종사들은 이 말콤 캐노피를 장착한 P-51B형이 P-51D형보다 더 우수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특히 영국의 신형 스핏화이어나 타이푼에 물방울 (bubble)형 캐노피가 도입되어 호평을 받게되자 노스 아메리칸사도 1943년 11월에 이르러 즉시 개선된 P-51D 형을 내놓았다.
P-51D형의 상면도이다. 기존형에 비해서 매우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주익에 6정의 12.7mm 기관총구가 보인다. 전쟁 말기에는 이런 은빛 무도장의 머스탱들이 전선을 누비고 다녔다. |
기체의 디자인이 P-51B형에 비해서 매우 세련되게 바뀌었으며 새로 도입된 버블 캐노피는 시야에 관한 불평을 일소해 버렸다. 특히 P-51B형에서 일부 문제가 되었던 기관총의 잼현상은 모터를 사용한 급탄장치가 장착되어 해결되었다. P-51D형은 이후 대량 생산되어 계속 전쟁에 투입되었으며 영국군도 Mustang IV라는 이름으로 도입하여 사실상 전체 머스탱을 대표하는 기체가 되었다.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은 P-51D형을 진정한 머스탱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숫자상으로도 머스탱의 총 생산기수 15586기의 절반을 넘는 7956기가 생산되었다. 이후 최대속도가 시속 784km에 이르는 궁극의 머스탱인 P-51H형이 제작되었으나 소수만이 제작되어 실질적인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제 301 전투비행단 소속 찰스 화이트 중위의 크리머스 드림이라는 이름의 P-51D이다. 이 기체는 전선에 최초로 배치된 P-51D형중 하나로서 캐노피 아래에 나체의 여성을 그려 놓아 유명해졌다. |
제 2 전투비행단 소속의 프레디 오 대령의 기체이다. 그는 붉은 색 글자를 좋아하여 기체 큼직한 붉은 식별 마크를 도색했다고 한다. |
North American P-51D Mustang | |
분 류 |
단좌 전투기 |
동 력 |
팩커드 롤스로이스 머린 V-1650-7 엔진 (1490마력) |
최고속도 |
시속 704km |
상승속도 |
분당 703m |
항속거리 |
3347km |
무 장 |
주익 - cal 50. 12.7mm 기관총 6정 (탄수 : 내측 2정 - 각 400발, 외측 4정 각 250발) |
마치면서...
2차대전의 전투기중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평가받는 머스탱은 대전 중반기부터는 하늘의 왕자였으며, 수많은 에이스들이 P-51을 타고 독일 하늘을 날아다녔다. 대전 전기간을 통털어 9100대에 가까운 적기들을 하늘에서 격파했는데, 이 수치는 적기 총 손실의 49%에 이르는 것이었다. 특히 연합군 전투기 중 가장 빠른 속도를 가졌던 머스탱은 독일의 제트전투기 Me 262가 큰 위협으로 떠오른 후에도 계속 임무를 수행하여 많은 수의 Me 262를 격추하기도 했다. 2차대전이 끝난후에도 많은 기체들이 세계각국에 공여되어 활동을 계속했으며 특히 한국전쟁에서도 우수한 기동성과 무장 탑재능력을 인정받아 지상공격의 임무에서 큰 활약을 했다.
'군사무기.비행기.전차.개인화기.항모.전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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