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역사, 품질, 아이덴티티를 잘 나타내는 심벌
엠블럼 이야기

 

때론 작은 심벌 하나만 보고 좋아하고, 때론 흥분하고, 때론 즐거운 기억을 되살릴 때가 있다. 주먹만한 엠블럼만 봐도 그 브랜드를 알고, 혹은 그 차라는 것은 눈치를 챌 때처럼 말이다. 어떤 것은 화려하고, 또 어떤 것은 수수하기도 하지만 엠블럼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엠블럼은 가치와 아이덴티티를 전해주는 심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엠블럼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보았다.


나쁜 것에 엠블럼을 붙이지 않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엠블럼은 무언가 좋은 이미지를 표현하는 일종의 상징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상징적인 무늬나 배지(badge), 심벌 등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나라나 지역 혹은 기업이나 제품의 퀄리티나 아이디어, 또는 아이덴티티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자동차의 엠블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절에는 사실 엠블럼이라는 개념을 찾기는 힘들었다. 1기통 엔진으로 바퀴를 구동시키는 것이 우선이며, 벤치 타입의 의자에 지붕도 없었을 정도니 다른 곳에서 멋을 내려는 시도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유럽과 미국에서 자동차회사가 속속 생겨나면서 각 회사마다 자신들을 구분할 수 있는 로고나 마크가 등장하게 되면서 각양각색의 엠블럼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엠블럼은 그 차의 격조나 브랜드를 암시하는 요소가 되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엠블럼이나 로고의 위치가 대부분 엔진 후드의 앞쪽에 자리잡게된 것은 엔진의 열을 식혀주기 위해 차의 라디에이터가 등장한 이후부터라고 하겠다. 1910∼1920년대 차들을 보면 커다란 라디에이터를 전면에 배치했다. 자동차회사들은 라디에이터 앞에 그릴을 씌워 멋스럽게 꾸미면서 그 앞쪽에 자사의 로고를 새겨 넣기도 했다. 그리고 라디에이터 캡에도 멋을 부렸다.

처음에는 그저 밖으로 돌출된 라디에이터 캡은 밋밋하게 두어도 되는 부분이지만, 나중엔  장식적인 요소가 더욱 가미되면서 엠블럼이 그 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라디에이터가 엔진룸 내부로 들어간 뒤에도 그 비슷한 자리에 지금처럼 후드탑 엠블럼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유명하고 멋진 후드탑 엠블럼으로 알려진 것은 롤스로이스의 전통적인 엠블럼인 ‘Spirit of Ecstasy’.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이 엠블럼은 영국의 유명한 조각가 찰스 사이크스가 디자인해 1911년에 처음 선보인 이후 다른 자동차 회사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1930년대 무릎 꿇은 여인상의 엠블럼이 등장해 롤스로이스 팬텀2와 팬텀3, 실버 레이스 등에 달기도 했다. 캐딜락의 30년대 16기통 모델들 역시 예전에는 라디에이터 캡 위에 화려한 여인상의 엠블럼으로 꾸몄고, 뷰익과 오번(Auburn), 링컨 등 클래식 모델에도 이런 경향이 전이되었다.

엠블럼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가장 사람의 모양은 물론 독수리나 백조 혹은 말이나 사자 등 동물 모양, 그리고 유럽에서는 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휘장이나 배지 형태를 채택한 회사들도 있다. 미국의 경우 300개에 가까운 자동차 회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1950∼1960년대를 거치면서 빅3로 통합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엠블럼의 모양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엠블럼도 차종마다 붙이는 방법이 조금씩은 다르다. 대형 럭셔리카들은 후드탑 엠블럼 타입을 주로 사용하며, 스포츠카들은 공기저항을 고려해 후드 위에 납작하게 붙이는 배지 타입이 쓴다. 아우디나 피아트처럼 그릴 앞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엠블럼에는 흥미로운 사연들도 많다. 벤츠의 세 꼭지별 엠블럼은 벤츠의 창업자인 고트리브 다임러가 그의 아내에게 보낸 엽서에 별을 그려 넣고 “언젠가는 이 별이 우리 공장 위에 찬란하게 빛날 것이오”라고 써넣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세 꼭지 별에는 육(陸), 해(海), 공(空)의 세 분야로 뻗어 나가겠다는 의지라는 얘기도 있다.

롤스로이스와 대적하는 벤츠의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마이바하는 벤츠의 전설적인 엔지니어인 빌헤름 마이바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두 개의 M자를 겹친 이 엠블럼은 ‘Maybach Motorenbau’라는 의미이며, 그 아래 12라는 숫자는 1930년대 마이바하 제플린(Zeppelin)의 전통을 살린 12기통 엔진을 얹었다는 뜻이다.

페라리의 ‘도약하는 말’ 그림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였던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그의 전투기에 그려 넣었던 카발리노라는 말의 그림을 바라카의 부모가 엔초 페라리의 경주차에 붙일 것을 권했고, 페라리는 이 그림을 붙여 자동차 경주에서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페라리의 엠블럼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페라리와 한 식구가 된 마세라티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넵튠(Neptune :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과 같은 바다와 물을 다스리는 신)의 상징물인 트라이던트(Trident : 삼지창)에서 따온 것으로 유명하다.

밀라노에서 출발한 알파로메오(Alfa Romeo)는 엠블럼에도 밀라노의 흔적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왼쪽의 적십자가는 밀라노시의 문장이며, 오른쪽의 불을 뿜는 용은 밀라노시의 수호성인 비스콘티 드래곤의 모양이다.

4링이라고 하는 아우디의 엠블럼은 독일 삭소니 지방에 있던 반더러, 호르히, 데카베, 아우디가 아우토우니온이라는 이름으로 합치면서 4개 회사의 결속을 상징하며 만든 것. 이후 VW그룹에 합병되면서 아우디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항공기 엔진 제조로 시작한 BMW는 프로펠러의 모양을 원과 직선으로 단순화시킨 엠블럼을 갖고 있는데, 청색과 흰색이 교차되는 4분할 원과 바깥쪽에 검은 테두리로 그려진 BMW의 엠블럼은 항공기 엔진 제조로 시작한 회사답게 프로펠러의 모양을 원과 직선으로 단순화시킨 것이며, 원의 색깔 가운데 청색은 독일 바이에른의 푸른 하늘, 흰색은 알프스의 만년설을 뜻한다. 바이에른은 BMW가 태어난 고향이자 본사가 있는 곳이며, BMW의 사옥도 이 엠블럼을 닮았다.

케딜락은 1701년 디트로이트를 처음 개척한 프랑스 귀족이자 탐험가인 모스 캐딜락의 이름에서 자동차 이름이 유래되었다. 왕관과 방패 모양의 이 엠블렘은 캐딜락 가문의 문장이며 7개의 진주가 박힌 왕관은 고대 프랑스의 귀족을 상징하고, 4등분된 방패는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여 수훈을 올린 가문이라는 것을 뜻한다. 요즘 쓰이는 엠블렘은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기존의 컬러 패턴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캐딜락의 미래지향적 설계 철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푸조는 사자 엠블럼을 사용한다. 프랑스 동북부의 벨포르 근처에 공장을 둔 푸조는 이 지역의 수호 동물인 벨포르 라이언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푸조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시트로엥(처음에는 기어를 만들던 회사)은 더블 쉐브론이라고 불리는 엠블럼을 쓰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만든 톱니 형태의 기어를 형상화한 것.

스포츠카의 왕가 포르쉐는 방패 문양의 정 가운데 앞발을 들어올린 말 그림이 있는 엠블럼을 사용하는데, 이는 말 사육으로도 유명하고 포르쉐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시의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항공기 회사에서 출발해 1939년 처음 자동차를 만든 사브는 초창기에는 SAAB라는 로고를 쓰다가 1969년에는 트럭 전문회사인 스카니아와 함께 ‘사브-스카니아’로고를 썼고, 1984년에는 화가 칼 프레드릭 로이터스워드(Carl Fredrik Reuterward)가 사브-스카니아 그룹(Saab-Scania Group)을 위해 제작한 그리핀(Griffin) 디자인을 채택했다. 반은 사자이고 반은 독수리인 신화적 동물 그리핀은 불침번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사브와 함께 스웨덴에 본사를 둔 볼보는 원래 스웨덴 최대의 볼베어링 회사인 SFK의 자본으로 출발했다. 1920년대 초 이 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던 아서 가브리엘슨과 구스타프 라슨이 ‘볼보 AB’이름을 차에 썼는데, 이는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라는 뜻. 이후 볼보 창업자들은 SFK와의 특별한 관계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회전하는 베어링을 형상화한 화살표 모양의 엠블럼을 차에 달았고, 그것이 볼보를 상징하는 엠블럼으로 썼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차종별로 별도의 엠블럼을 부착시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회사의 전통적인 엠블럼 외에 차종별로 독특한 엠블럼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닷지의 바이퍼라는 스포츠카에는 별도의 살모사 모양의 엠블럼이 적용되고, 포드 머스탱에는 야생마 엠블럼이 대표적인 예다.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와 전통이 짧은 일본 메이커들의 엠블럼은 주로 자사의 로고를 변형한 타입을 사용한다. 토요타의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의 엠블럼의 L자는 럭셔리 리무진이라는 의미이고, 혼다는 H 이니셜을 쓴다. 닛산은 영문 로고체를 그대로 사용하고, 닛산의 고급차 브랜드인 인피니티에는 길과 무한대를 뜻하는 엠블럼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H라는 이니셜에 스티어링 휠을 연상케하는 엠블럼이다. 여기서 외부의 타원은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현대자동차를 뜻하며, 비스듬히 눕힌 H자는 속도감을 주는 동시에 두 사람이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은 노사, 고객과 개업이 신뢰와 화합을 뜻한다고 한다. 현대의 최고급차 에쿠스에는 최정상의 품격을 표현한다는 의지에서 개선장군의 말, 천마의 날개를 형상화한 후드탑 엠블럼을 달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한때 밀레니엄 엠블럼을 쓰다가 다시 영문 로고로 바꾸었고, 기아의 고급차인 오피러스에는 별도의 엠블럼을 붙인다. 오피러스는 라틴어 ‘Ophirus’의 약자로 보석의 땅, 금의 땅이라는 전설 속의 지명. 영어로는 ‘Opinion Leader of Us’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통 프리미엄 세단의 가치와  세련된 감각을 표현하려는 의도다. 

GM대우는 GM이 회사를 인수한 뒤 경영정상화와 방향 정립을 위해 기업 CI를 바꾸는 차원에서 새로운 심벌을 채택했는데 좌·우측의 고리는 각각 과거의 전통과 미래의 성공적인 도양을 상징하며 GM과 대우의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드라이빙 이노베이션을 실현을 비롯해 여러 고리의 상호 연결을 통해 끝없는 성장을 위한 로드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쌍용은 3개의 원이 오버랩되는 스리서클 엠블럼이 기본이고, 고급차인 체어맨에는 비상하는 새의 날개를 형상화한 후드탑 엠블럼이 적용되는데, 이는 최고의 목표와 성취를 위해 늘 진보하는 정신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최고의 리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른바 클래식카 마니아들에게 있어선 대량생산과 대량 판매에만 치중하는 현재의 자동차들에서 예전처럼 장인정신이 사라지고 화려한 엠블럼을 찾기도 쉽지는 않다는 것이 아쉽겠지만, 여전히 엠블럼은 가치를 소유할 수 있는 브랜드이자 심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엠블럼은 단지 자동차의 전통과 격조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아우디의 콰트로 25주년 기념, 포드 100주년 기념 등 기억될만한 주제를 선정해 특별히 만드는 엠블럼도 있다. 자동차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엠블럼 마케팅이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같은 엠블럼 마케팅은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정신과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가는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이미 엠블럼 문화는 우리네 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업계의 강자 인텔은 ‘인텔 인사이드’라는 엠블럼으로 뛰어난 성능을 가진 PC를 대변하는 CPU로 인식되면서 CPU 업계의 맹주로 자리잡은 것이 기업형 엠블럼 마케팅의 좋은 예다. 온라인 레이싱 게임인 카트라이더에서는 승률이 높거나 난이도가 높은 코스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록한 게이머에게 엠블럼을 달아주는 식으로 게임 참여의 동기를 부여했다. 검색 포탈 사이트 네이버에는 항상 깃털 달린 모자가 붙어있고, 유행처럼 번졌던 아바타 역시 개인을 상징하는 엠블럼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눈과 머리는 제품보다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엠블럼에 이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한국차의 역사가 긴 것은 아니더라도 특화된 엠블럼을 이용한다면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흥미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엠블럼이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자동차 자체의 품질과 아이덴티티가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요즘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트렌드 가운데 하나가 그 회사를 상징하는 엠블럼이나 심볼을 디자인의 한 부분에 크게 투영하고 있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엠블럼이 주는 의미가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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