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리든 큰 소리든 소리는 사람의 심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인들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부분 조용한 것을 최고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자동차에서 소리는 사람이 인지할 만큼 적당히 들려주어야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소리는 아주 묘한 감정을 전해주곤 한다.

미국 모터사이클에서 가장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의 소리는 어떠한가?


'부릉∼부릉, 두두두두….'

커다란 머플러를 통해 울려 퍼지는 깊고 낮은 베이스 톤의 배기음. 그 소리의 주파수는 일정한 진동을 함께 만들어내는데, 바로 그런 소리와 진동이 사람을 은근히 자극시키고 흥분시킨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할리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가장 잘 전달될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모터사이클이 할리 데이비슨이라면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에서는 사운드와 상징성, 그리고 성능에 이르기까지 시보레 코베트가 그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지난해 등장한 6세대 코베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특유의 폭발적인 배기음. 이것은 듣기 싫은 소음이 아니라 스포츠카 마니아들의 좋아할 만한 예술적인 사운드다. 물론 요즘 기술로 소리를 죽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코베트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선 소리가 필요했다. 그 결과 3패스 배플 타입의 머플러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불필요한 소음은 줄인 대신 1,500∼2,400rpm 구간에서는 코베트만의 사운드가 나도록 세팅한 것이다.

코베트는 워낙 토크가 막강하기 때문에 가속 페달을 살살 밟고만 있어도 잘 나간다. 가뜩이나 대배기량의 미국차들은 급가속시엔 소리도 그에 걸맞는 음색을 내뿜어야 맛이 난다.

그런데 이 차를 아주 조용한 렉서스처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차를 타는 맛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소리가 주는 매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포르쉐나 페라리 같은 차들이 고유의 사운드를 유지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메이커들은 엔진 사운드에서도 차의 컨셉에 맞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수준이지만, 아직 한국의 차들에서는 이런 부분에서의 감성적인 터치를 보기 힘들다(투스카니에서 시도하려고 했지만 결국 만족할만한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음).

예를 들어 벤츠에서도 차의 컨셉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이는 같은 엔진을 탑재한 E350과 CLS 350, 그리고 SLK350의 소리 컨셉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차들은 같은 엔진을 탑재하면서도 차의 성격에 맞게 아예 설계 단계부터 테일 머플러 자체를 다르게 구성했다.

 

우선 E클래스는 컨셉 자체가 정숙성과 안락함을 필요로하는 고급 세단이기 때문에 어느 rpm, 어느 속도에서도 정숙성이 유지되도록 머플러가 세팅되어 있다.

이보다 약간 스포티한 CLS클래스는 스포티 사운드 시스템이 있는 머플러를 채택해 구조 자체가 조금 다르다. 그리고 가속 영역에 해당되는 2,000∼3,000rpm 구간에서는 훨씬 스포티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시 그 이상의 고회전에서는 엔진 소리만 차츰 증가할 뿐 정숙해지는 것이다.

 

CLS보다 한층 더 스포티한 SLK350은 미드 파이프(흔히 중통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아예 없어서 어느 rpm, 어느 속도에서도 스포티한 사운드를 계속 들을 수 있다.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컨셉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BMW의 신형 3시리즈를 소개하면서 언급했던 차의 속도 영역 혹은 가속페달을 밟은 속도와 깊이에 따라(감성적인 접근법) 엔진 사운드를 달리한다는 내용이나, 스티어링 휠을 움직일 때 들리는 소리, 파워 윈도우의 작동음 등 여러 가지 사운드 메커니즘 역시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물론 소리는 커서 좋을 때도 있지만, 작아서 좋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에어컨이나 히터 작동시 팬 소리가 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에어컨에서도 소리의 크기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 찬 공기를 내보내는 양과 바람이 나오는 구멍의 크기에 따라 소리의 크고 작음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공기를 많이 뿜어낼수록 빨리 차가워지는데 비해, 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에어컨에서도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취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유럽의 유명 자동차회사들은 자동차의 에어컨을 설계할 때(주로 고급차)도 유럽형과 미국형의 내외부 구조가 다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유럽인들은 에어컨 바람이 몸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을 싫어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따라서 유럽에서 판매하는 고급차들은 대부분에 때문에 바람이 나오는 구멍의 숫자가 많다. 공기도 적은 양이 나오면서 은은하게 식혀주는 방식이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에어컨 바람이 몸에 직접 닿으면서 빨리 식혀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미국형 차를 만들 때는 바람구멍의 숫자를 줄이고, 구멍의 크게도 작게 만들어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나오도록 설계한다.

 

지난달 한국에도 소개된 폭스바겐의 최고급차 페이톤의 실내를 보면 처음엔 에어컨 송풍구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대시보드와 앞유리 사이, 그리고 몇 군데 숨겨진 바람구멍을 통해 탑승자가 원하는 온도에 맞춰 은은하게 바람이 나온다.

 

이때 탑승자들은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나오는지 모르는데, 페이톤에는 풍향을 조절하는 25개의 액츄에이터가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려진 수동으로 조절해 대시보드 전면부의 바람구멍을 보이게 할 수도 있지만, 자동으로 작동하는 동안에는 급냉이나 급온을 요할 때 초기에 잠깐만 열리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리는 커서 좋은 것이 있고, 작아서 좋은 것이 있다. 승용차용 타이어의 경우도 대개 핸들링 성능이 좋을수록 소음은 상대적으로 크고, 조용한 타이어일수록 접지력이나 핸들링 성능은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듯 한쪽이 좋아지면 다른 쪽에서는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에 있어 항상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는데, 너무 조용한 것만 찾는다면 다른 좋은 것은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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