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서클을 보면 구조나 모양이 정교할 뿐 아니라 누워있는 모양이 시계방향이든 그 반대방향이든 질서정연하게 쓰러져서 수확할 때까지 정상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회오리 바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없게 된다. 바람으로 쓰러지는 곡식은 쓰러지는 부분과 안쓰러지는 부분의 구별이 명확치 않다.(사진참조)



바람에 의해 쓰러진 곡식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왜 곡식의 줄기를 자연스럽게 굽어지게 하는데 막대한 돈을 쓰겠는가? 즉 줄기가 자연스럽게 굽어지는 것은 외부의 어떤 에너지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돈을 투자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미스테리 서클이 계속 증가하여 만들어지는데 막대한 투자를 해 가면서 만들겠는가라고 반문한다.”


※ 프라즈마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고도의 기술적 축적이 필요하다.

번개의 프라즈마는 그 온도가 5,000도 정도가 되기 때문에 식물에 닿으면 타버리게 된다. 그러나 프라즈마에는 저온 프라즈마가 있다. 이 저온 프라즈마는 대기중에 존재하지 않고 우주에 있다. 우주에 있는 프라즈마는 헬륨프라즈마로써 이 저온 헬륨프라즈마를 이용한다면 서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나 우주에 있는 저온 프라즈마를 활용하려면 아직은 지구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저온 프라즈마를 활용했다면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의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누워서 자라고 있다.

※ 군사위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가설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해서 허구임을 지적하고 있다.

미스테리 서클은 1940년대에도 생겨났기 때문에 1940년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군사인공위성같은 것은 개발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또 미스테리 서클은 군사보호지역에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군사기밀을 유지해야 할 지역에 왜 만들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또 공공지역이나 고속도로를 가로질러서 만들어지는 것을 감안한다면 군사위성으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당국에서 미스테리 서클의 현장연구를 방해하고 있다는사실은 군사위성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미스테리 서클이 군사적인 목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접근을 방해하는 것은 서클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 외계지적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은폐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도형된 미스테리 서클

※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 미스테리 서클은 영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캐나다, 일본등 세계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서클은 대개 하룻밤사이에도 수십초 수십분 사이에 만들어지고 있는데 하룻밤 사이에 영국의 두사람이 세계 곳곳의 서클을 만들기 위해서 텔레포테이션으로 변환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 또 영국솔즈베리 평원에 만들어지고 있는 서클 중 어떤 것은 지름이 100미터 또는 그 이상의 것도 있는데 이런것을 만들려면 100명이 몇일을 만들어야 할 정도의 규모인데 두사람이 어떻게 만들었다는 것인가 반문한다.

⊙ 또 그 정교한 기학학적인 구조, 예술적 모양, 복잡한 구조를 하룻밤 사이에 15개나 되는 서클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널판지와 끈으로 만들면서 곡식의 줄기를 부러트리지 않고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규모와 시간에 의해서 확연히 구분된다.



에이버리근처의 추수후에도 들판에 흔적이 남아있는 도형


1996년에 영국 윌터셔에 도형된 미스테리 서클은 140개의 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것은 30분만에 만들어졌는데 두사람이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짜와 진짜를 하늘에서 보면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컴퓨터분석에 의하면 그 오차는 엄청나다고 루시 프링글여사는 말해주었다. 지름이 300미터나 되는 거대한 미스테리 서클을 컴퓨터 분석을 하면 오차없이 정확하게 기학적으로 구성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측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을 보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곡식들이 서로 엮어져서 누워있는 것과 줄기가 자연스럽게 굽어져 있는 것을 분석하면 식물을 급속가열한 에너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또 토양도 다르다는 것이다.
2004년 6월말에 솔즈베리 평원의 미스테리 서클을 탐사하였을 때 미스테리 서클이 만들어졌던 들판의 곳식을 수확한 빈 들판에 미스테리 써서클이 만들어졌던 도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첨단과학기술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 미스테리 서클밭에 들어간 후에 인체의 호르몬 변화가 나타난 것은 외부적인 어떤 에너지의 자극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루시 프링글」 여사는 말하고 있다.
또 휴대전화기는 서클안에서 불통이였으나 밖으로 나오면 통화가 가능했다고 보고되었다.
특히 오랬동안 미스테리 서클을 촬영해 온 전문가들의 경험에 의하면 인간이 만든 것과 진짜를 구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느 사람이 만든것인가 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 영국 윌터셔 솔즈베리평원에 있는 고대선사 유적지인 스톤헨지(Stonehenge)에서 매년 하지 행사를 거행한다.
2004년 6월 20일, 스톤헨지에서 거행되는 하지행사 전야제에 참가하기 위해서 저녁 8시경에 스톤헨지를 방문했다. 전야제는 밤 10시부터 개장하여 새벽4시까지 이어지면서 4시경 해가 떠오르면 드루이드교 사제들의 복장한 사람들이 하지행사를 거행한다.


평소에는 스톤헨지가 서 있는 현장은 공개하지 않고 약 30미터정도의 거리에서만 볼 수 있게끔 막아두고 있다가 하지 때만 공개하므로써 스톤헨지의 현장까지 들어가서 돌을 만질 수가 있다. 오후 8시가 되어도 대낮같다. 사방에서 모여든 차량으로 스톤헨지로 들어가는 도로는 차단되었다. 스톤헨지 전면에 수 천대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주차장은 9시가 넘어서야 자동차의 진입을 허용하여 주차하게 하였다.

주차장에서 스톤헨지까지는 약 500미터이상의 거리가 되었다. 하지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대략 1만명정도가 되어 안전을 위해서 많은 예방조치를 하고 있었다.
영국의 여름밤은 너무나 짧다.
구름이 없는 날은 밤 10시가 넘어도 밖은 휜하다.
새벽도 4시가 되면 밝기 시작한다.
영국의 하지를 중심으로 한 밤은 너무나 짧다.


이 짧은 시간에 지름이 100미터이상이 되는 정교한 미스테리 서클을 두사람이 만든다든지 단지 몇 명이 만든다는 주장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규모면에서 어떤 것은 하늘에서 내려다봐야만이 전체를 볼 수 있기때문에 규모나 정교한 면에서 그것을 만들려면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제작을 지휘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 굽어지는 곡식줄기의 변화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스테리 서클의 여러모양으로 만들어지려면 곡식줄기가 굽이져야 한다. 굽이진 체로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일부 서클제작자들은 곡식이 열매를 맺기 전 어릴 때 굽이지기 때문에 굽이진 채로 자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해서 틀린 것이다.


즉 미스테리 서클의 곡식줄기의 굽이지는 길이가 중심부와 가장자리의 길이가 다르다. 특히 굽이져 있는 부분이 마치 수도파이프의 엘보를 덧쉬운 것과 같이 두툼하게 되어있다는 것은 외부적인 에너지에 의했다는 증거가 된다.
또 굽이지는 마디가 두마디 세마디 이상으로 굽어지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러한 현상이 없다. 곡식의 열매가 맺기전에 굽어져서 계속자란다는 것은 미스테리 서클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열매를 맺기 전에만 가능하다는 주장인데 실재로 미스테리 서클은 곡식의 열매가 영글어져가는 6월말 또는 7월에도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좌: 2004년 6월 25일 영국현지에서
우: 자연스럽게 굽어진 것(중앙)과 인위적으로 꺽은(손바닥 상하)줄기의 비교

 


※ 미스테리 서클의 신빙성을 손상시키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전세계적으로 UFO의 출현이 계속 증가되어 그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미스테리 서클도 계속하여 더 많이 더 정교하게 도형되었다. 드디어 미스테리 서클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1991년 영국의 두 사람이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은 후 영국에서는 유명신문사의 주최로 매 년 서클을 만드는 대회까지 개최하여 진짜 서클에 대한 신빙성을 손상시키기 시작하였다.

1996년에 일본의 한 자동차 회사는 미스테리 서클제작자에 의뢰하여 곡식들판에 자동차 모양을 만들어 광고효과를 내기도 하였다.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떠한 모양과 색깔을 지니며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지를..





느릿하게 한 걸음씩 걸어가던 세상이
빠르게 뛰어가는 것처럼 절실히 느껴지는
흘러 만 가는 세월 안에서 내가 간직하고
품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아지는 의미는 하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간직해야 되는 것들 중
가장 먼저 품어야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있음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돌고 있는 세상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고

주어진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간직할 수 있으며
또한 나의 삶이 아름다울 수 있겠지요.





나를 사랑하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때로는 숨막히는 아픔 속에 빠져
나를 잃어버리고 하루의 시간을 멍하니
흘려 보낼 때도 있었고
내게 스며든 깊은 슬픔으로
내내 흘러 내리는 눈물이
마를 사이가 없는 하루도 있었고
얽매어 오는 시간 안에서 간절히 무언가를
찾는 하루도 있었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힘에 겨운
시간들을 감당할 때마다 오늘 하루에
특별한 의미를 두며 다시 일어섭니다.





주어진 나의 하루를 스스로 소중하게 만들어 갑니다.
하루를 살아가며 느끼고 담아야 되는 것들
그저 눈을 뜬 아침을 맞이 하는 것이 아닌
어제와는 다른 하루.





새로움을 주며 밝아오는 아침으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도화지 위를 소망하는 꿈으로 스케치하고
샘솟는 희망으로 하나 하나 채색해 채워갑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나온 삶이 아닌 나를 사랑하며
오늘을 사는 생각과 나의 태도입니다





오늘의 시간도 내일이면 어제가 되어 버립니다.
내일이란 시간에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을
아쉬움과 후회로 보내게 되는 삶이 아닌
다가온 하루를 아낌없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나입니다.
내가 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존재합니다.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하며
오늘도 나의 소중한 하루를 만들어 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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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한잔 나누고 싶다.
당신과
차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굴러가는 돌맹이를 보고도 웃는
당신과
차 한잔을 나누고 싶습니다.

잡초에서도 향기를 느끼는
당신과
차 한잔을 나누고 싶습니다.
넉넉함으로 나를 감싸주는
당신과 
차 한잔을 나누고 싶습니다.

작은 이야기도 귀를 기울리는
당신과
차 한잔을 나누고 싶습니다.
웃어주고 보듬고 잡아주는
당신과 정말
차 한잔을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 인상이 정말 좋으시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인상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예쁜생각 많이 하는 마음에서 어둡던 인상도 밝은 표정으로 변할거라고 생각합니다. 표정은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라 합니다. 내 표정은 내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행복한 표정 우울한 표정 불안한 표정 수천 가지나 되는 표정은 곧 내 마음입니다. 그래서 연륜으로 세상을 말씀하시는 분들은 얼굴만으로도 대강 그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있다고들 하십니다. 표정은 세련된 화장으로도 멋진 옷으로도 바꿀 수 없겠지요? 오늘 거울 앞에 앉아 제 마음을 비쳐봅니다. 제 마음에 따라 움직인 표정을 보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화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활짝 웃어 보았습니다. 당신 인상이 정말 좋으시네요. - 좋은글 中에서 -

       
 
[ㅋㅋㅋ] 중상 ? 아니면사망 ? ...

엘로힘(elohim)은 고대 히브리어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 이라는 뜻의 복수형이다. 단수형은 엘로하(eloha)

이 단어는 영어 성서에는 GOD이라는 유일신으로 잘못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성서에는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그들의 신을 여전히 엘로힘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서의 하느님, 코란의 알라로 알려진 신의 존재는 말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 즉 외계인들이다.

그들은 2만 5천년전 우주를 여행하던 중 아름다운 행성 지구를 발견한다. 지구에 정착한 엘로힘은 생명공학을 이용하여 생명체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인간 역시 그들의 작품이다.

이 진실은 인간이 과학을 이해할 때까지 오랫동안 숨겨져 왔다.

1973년 12월 13일 인간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성장했다고 판단한 외계인 엘로힘은 당시 프랑스의 자동차 잡지기자였던 클로드 보리롱을 만나 이 사실을 전하고 지구인들에게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제가 약 8년 전에 엘로힘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 이라는 뜻인지 궁금해서 대형 서점과 국립도서관의 히브리어 사전을 몽땅 뒤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딱 한 권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존재들"

다른 히브리어 사전에는 모두 "신들" 이라고 해석 되어 있는데 그 사전만은 엘로힘이 "신들" 이 아닌 "존재들"이라고 해석되어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다른 히브리어 사전은 거의 모두 한국사람이 쓴 것이었는데 그 사전은 외국인이 쓴 것이었죠.

정말로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잊어 버릴 까봐 사전 이름과 저자를 제 수첩에 적어놨었져.

"신약성서 신학 사전 킷텔단권, 원어사전"
저자 "제프리 W.브라밀리,
출판사 "요단출판사"


이 사전의 376페이지를 보면 엘로힘에 대한 자세한 해석이 나와 있습니다.

 



rae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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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힘과 엘, 그리고 야웨

들어가기 전에 : 이 글은 일반적인 교회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의 글이다. 그들은 성경이 4개의 전승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 오직 한개의 사료층이고 더 심한 경우는 성경의 앞부분의 5권을 모세가 저술했다고 믿고 있다. 난 성경의 사료층이 4개(혹은 이의 변형)로 이루어졌다는 사람들과 토론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일단 그렇게 인정하면, 더 이상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료가 4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개신교의 벨하우젠의 유명한 주장이며, 가톨릭도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 전반에에서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것이지 결코 본인의 단독의 주장이 아닌 것이다.



언젠가 엘로힘이 복수형이라고 했더니 강건일씨는 그것은 문자적으로만 복수형이지 단수형이라고 봐야한다고 쓴 글이 있었다.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 사람은 뭘 찾아봤는지 궁금하다. 유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한 말 혹은 글에서는 유일신에 대한 글말고 뭐가 나올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과연 적절한 질문이었는가? 아니면 상대를 이기기 위한 wishful thinking인가? 한번 자기 자신을 짚어보길 바란다.

일반적으로 엘로힘이라고 쓰여져있는 이유는 사실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보인다. 기독교 목사들과 유대인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기독교 목사들의 일부는 그것이 삼위일체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유대인들은 그것이 장엄복수라고 주장한다. 장엄복수라는 주장은 사실 널리 퍼져있어서 목사들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좀 까다로운 단어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나 기독교 일부목사들의 생각과는 달리, 엘로힘은 원래 하느님을 가르키는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자기의 이름은 야웨라고 말했지 다른 그 어떤 말도 그 이름으로 가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야웨라는 단어만이 하느님의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야웨에는 장엄복수가 없는가? 이 말은 곧 엘로힘이란 단어를 장엄 복수로 해석 한 것이 바로 신학자들이 유일신사상을 지키기 위한 생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한다. 정말로 장엄해야 할 신의 이름은 엘로힘이 아니라 야웨이기 때문이다.

창0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0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장엄복수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위의 26절에는 엘로힘은 장엄복수로 쓰이고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로 아래 27절에는 그냥 단수로 쓰고 있다. 바로 연이어서 쓰는데 과연 어느쪽에 장엄복수가 들어가야 하는가? 보통은 내가 나 자신을 이야기할 때 굳이 나자신을 존칭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3자의 시각에서 즉 피조물의 시각에서 오히려 존칭을 써야하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표현을 매우 주목해야 한다. 우리라고 표현하면서 이것이 복수가 아니라 의미로 단수라고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한번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003:022 And the LORD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to know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 ever:



one of Us 우리들 중 한 (신)이 될 것이다." 라는 표현은 장엄복수라는 개념에 큰 손상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즉 복수형의 의미가 정말로 복수의 신을 의미한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동사만 복수형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의미가 완전히 복수형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유일신 사상이 있을 때는 성서저자는 단수형(El)을 쓴다. 사실 야웨는 하나의 신이므로 자신을 표현할 때 단수형을 많이 사용했다.

021:033 And Abraham planted a grove in Beersheba, and called there on the name of the LORD, the everlasting God.



이것은 다시 풀어서 다음과 같다.

"Abraham planted a tamarisk tree in Beer-sheba, and called there on the name of Yahweh, the Everlasting El" (Bethel Translation).

031:011 And the angel of God spake unto me in a dream, saying, Jacob: And I said, Here am I.



031:012 And he said, Lift up now thine eyes, and see, all the rams which leap upon the cattle are ringstraked, speckled, and grisled: for I have seen all that Laban doeth unto thee.



031:013 I am the God of Bethel, where thou anointedst the pillar, and where thou vowedst a vow unto me: now arise, get thee out from this land, and return unto the land of thy kindred.



이것도 좀더 자세히 쓰면,

"angel of God" (elohim) appeared to Jacob in a dream and said, "I am the El of Bethel...."



야웨를 El로 표현한 것은 이외에도 많다. (Genesis 35:1,3; 43:14; 46:3; 48:3; 49:25; Exodus 15:2; 20:5; 34:6) 이것은 성경의 저자가 아직도 유일신교와 다신교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엘로힘이 야웨를 가르키는 경우와 복수형으로 쓰이는 경우에 문법적으로도 혼재된 특징을 보인다. 야웨를 의미할때는 정관사 (ha)를 빼고 주어로 쓰인 경우에는 동사를 단수로 받았다. 그리고 정관사를 넣으면 신들이라는 의미가 되서 동사도 복수로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십계명의 제2계명일 것이다. 십계명중 2번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앞에 다른 엘로힘을 너는 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여기서는 놀랍게도 다른 신을 엘로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여기서는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다른 신들을 의미하고 야웨를 가르키지 않는다. 하지만 엘로힘에 관사가 있을 때가 꼭 이방인들의 신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KJV이다.



035:007 And he built there an altar, and called the place Elbethel: because there God appeared unto him, when he fled from the face of his brother.



하지만 이것은 KJV의 이야기고 원문 대로 번역하면 의미가 약간 달라진다.

the gods (ha-elohim) were revealed (niglu)

즉 자기 자신을 엘로힘으로 표현하고 복수형으로 받았다. 참고로 niglu에서 u 는 영어의 s 처럼 복수형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어판 번역은 KJV 버전이 교리에 맞추기 위해서 문법적으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원문과 차이가 나는 번역은 이것 말고도 여럿이 있다고 한다.

아래의 문장들에서는 두가지를 나타낸다. 신은 야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엘로힘은 야웨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라는 점이고 결코 장엄복수로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엘로힘은 십계명의 2계명에서는 야웨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신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른 신을 가르치면서 엘로힘이라고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엘로힘이 장엄복수라는 것에 대해서 믿을 수 없는 주장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흔하다.

아래는 출애굽 과정에서 하는 말이다.

"Who is like unto you, O Yahweh, among the elohim (gods)?"(Ex. 15:11).

누가 당신같겠습니까? 신들 가운데, 야웨여



시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In Psalm 95:3, it was declared that "Yahweh is a great El (god) and a great King above all elohim (gods)."



이러한 글들을 통해서 우리는 더 이상 엘로힘이 장엄복수라는 말도 믿을 수 없고, 또한 의미는 단수지만 문법적으로만 복수형을 취한다는 것도 사실 믿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문법적으로 복수이지만 단수를 취하는 경우는 영어의 경우에 흔히 나타나지만 그 경우 근본적인 의미는 집합명사일 때이다. 집합명사라는 것은 집합을 이루는 여러개의 집합을 단수로 받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그 구성원이 여러개라는 의미이다.

왜 이런 혼동이 오는가? 그것은 사실 어려운 이야기이겠지만 skeptics의 입장에서(그리고 사실 고등비평을 하는 신학자들도 동의하겠지만 신학자에 대해서는 일단 제외시키자)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사실 엘은 가나안의 신의 이름이다. 엘은 신들중의 신의 이름이며 그 이름으로 이미 장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우가리타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엘의 이름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우가리트 문헌에서 몇마디 인용해 본다.

신들의 자식들의 엘이여
엘의 자식들의 모임에
엘의 자식들의 회중에..
엘과 아쉐라여
엘은 자비로우며
엘은 확고하며
엘은 평화입닏.
엘이여 서두르십시오
엘이여 우리를 구원하십시오
짜폰산을 위해, 우가리트를 위해
엘은 훌륭합니다.

이런 가나안의 엘은 아브람의 부족들이 가나안땅에 이주하면서 융화되기 시작하고 결정적으로 야콥의 씨름사건을 계기로 유대인과 융화되게 된다. 이 과정은 야곱의 신 (야웨)와 가나안의 신 (엘)이 겨루었고 거의 완전히 동화되게 된 것이다. 이후에 엘이라는 이름은 인명에 무척이나 많이 쓰이게 된다. 예를들어 엘리야의 엘야후이며 이것은 엘은 야웨이다라는 음역할 수 있다. (야는 야웨의 축약형이다.) 엘은 처음에는 고유명사였지만 야웨라는 단어가 있으므로 보통명사화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은 초기만 해도 일반적인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엘이라는 신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벧엘이니, 이스라엘이니 하는 것은 모두 엘을 의미하는 것이지 야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야웨라는 이름 대신 엘로힘을 사용한 엘로히스트들은 신학자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경에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 것은 엘로히스트들이 신이 자기의 이름을 알려주기 전에 야웨라고 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신이 자기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전에는 엘로힘이나 엘이라고 불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엘로힘이나 엘은 따지고 보면 가나안의 신의 이름이며, 설사 그렇게 동화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야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가나안에서는 엘을 믿었지만 여러신들의 다신교 사상이었다. 다신교 사상이었으므로 여러 엘이 나타날 수 있고, 엘을 믿는 사람들은 다신교에서 유일신교로 변화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엘로힘을 사용할때는 복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막연한 신들이라는 단어로 바뀌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야웨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엘리야는 엘은 야웨라는 의미의 이름이고, 앞서 지적했듯 벧엘의 엘은 야웨를 의미한다고 믿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야웨는 엘의 전통을 가진 가나안신들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다신교의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다. 이것에 대한 사례는 생각외로 많다. 즉 솔로만까지도 야웨는 신들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신이지 유일한 신은 아니다. (Solomon said, "Great is our God above all gods" (2 Chron. 2:5). )

성경은 유일신을 기초로 한다고 말한다. 유일신과 다신교는 좀 쉽게 생각하면 쉬운 것 같지만 사람들은 다신교를 쉽게 유일신교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들중의 신을 섬기는 것은 그 신만을 섬긴다고 해도 다신교이지 유일신교가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신들중의 신이라는 표현은 생각외로 많이 발견된다. 물론 성경에는 오직 야웨만이 신이라는 구절도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저자들이 유일신 사상과 다신교 사상을 왔다갔다 하면서 썼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유대인의 역사가 다신교의 전통속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신교로 발전해나갔음을 이해하면 뭐 이해될만도 하지 않은가?

이러한 다신교의 관습은 이사야서에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이것은 바빌론 유배기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이다. 특히 "제 2의 이사야서"라고도 불리는 이사야 40-55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사야서는 한명의 이사야가 아닌 2명의 이사야가 쓴 것으로 최근에 인정받고 있다.)



네 앞에 엘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내 뒤에도 있을 수 없다. (43:10-11)

내가 처음이요, 내가 마지막이다.
나 이외에는 신들이 없다. (44:6)

내가 야웨가 아니더냐?
나 이외에는 더 신들이 없다.
정의와 구원의 엘(신)
나를 제외하면 없다. (45:21)


이러한 사상이 물론 쉽게 나온 것은 아니다.

신명기의 6장 4절의



들어라 이스라엘아, 야웨는 하느님이시며 야웨는 하나이다.

라고 명백히 한다.



이런 구절은 사실 후대에 나타나며, 초기에는 이렇게 명확한 구절은 없다. 이말은 다시 말해서, 이제 다신교와 유일신교의 체험속에서 유일신교로 완전히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강건일씨는 심심하다면 talkorigins 정도는 읽어보길 바란다. 나야 성경을 공부했으니 문제가 없지만 자료를 찾던 중에 talkorigins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덜 자세하게 쓰여졌지만, 남을 비난하기전에 도대체 다른 sketpics 들은 뭐라고 하는지 한번 살펴보는 습관도 배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야훼를 야웨로 쓴 것은 그게 더 정확한 발음이라고 해서 쓴 겁니다.)



http://www.rathinker.co.kr/reading/el.htm
엘로힘(Elohim)
이는 히브리어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지칭한 말로,
엘로아(Eloah)의 복수형이나, 보통 단수로 사용되었다.
신약 시대 엘리(마태 27:46)는 엘로힘이 변형된 말이다.
이밖에 엘로힘은 천사들(창세 6:1~4),왕(시편45:6),영(사무 28:13),
이교도의 신(출애굽기 18:11),다윗 왕조(즈가12:8)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천주교 용어사전/최영락 사제님/작은예수)






2

하느님의 이름들 가운데 복수형태인 엘로힘이
"야훼" 다음으로 자주 등장한다.
구약 성서 전체에서 이 이름은 2,600번 사용되었는데
사용빈도로는 신명기(374번),시편(365번),창세기(219번)
순으로 나타난다. 형태가 복수이기 때문에 복수의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
즉 이방신들이나 인접한 민족들의 우상들을 언급할 때 이 이름이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 복수형태를 단수 형태의 동사나 형용사가 뒤따른다.
이 경우의 복수형태는 충만함 또는 초월을 표현하는 복수로 설명 할 수 있다.


(시편의 작은사전/J.-p.프레보스트/p143/가톨릭출판사)






3
이름이 그의 본성과 인격적 성품을 나타내기 때문에
성서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훼는 계약적인 이름이고,
엘로힘은 일반적인 이름이며, 강한, 앞에 있다는 뜻이 있다.
성서에서 여호와 다음으로 많이 쓰였다.
구약성서에는 이 단어가 약 2,500회 이상 쓰였다.
형태상으로는 복수이지만, 구문에서는 단수를 취한다.
단수동사와 단수형용사가 함께 쓰인다.
참 하나님께 적용된 이 복수형은
위대 또는 장엄을 복수형으로 표현하는 헤브라이어의 관용적 용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방신들이나 천사들 또는 재판장들에 대해서
하느님의 대리인이라는 뜻으로 이 말이 쓰일 때
엘로힘은 어형에서뿐만 아니라 의미상으로도 복수이다.


(야후 백과사전 http://kr.encycl.yahoo.com/final.html?id=743141)






4
ELOHIM : 하느님, 신들 또는 우주인들?
성서에서의 키워드에 대한 오해
다음 페이지들에 있는, 1973년 12월 13일에 우주인들에 의해 밝혀진 메시지들을 알기 전에,
잠시동안 멈추어서 우리 모두가 "성서"라고 들어온 책에 대해서 고찰해보자.
히브리어로 씌어진 성서 원전에는 어느 누구라도 창세기편에 나오는 최초의 세 단어 :
" Bereshit bara Elohim ...". 을 읽을 수 있다.
4세기 무렵, 기독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Jerome은 이를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
" In principio creavit Deus caelum et terram ... "
ELOHIM, 성서에서의 키워드
Elohim, 히브리어 남성복수명사로, 단수형의 "하느님"인 라틴어 DEUS로 번역되었다.
히브리말에서, ELOHIM에 대한 단수명사는 ELOHA이다.
히브리어에서 접미사 -im은 항상 복수형을 표시한다.
히브리어 전체에서 이 규칙에 대한 예외는 없다.
신성한 실체의 존재에 관한 관념을 전해온 성서는
그 단어를 복수형의 GODS로 번역했어야만 했던 반면에
이미 본질적으로 잘못된 단수형의 GOD로 번역되었고,
성서원전에 대한 배신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히브리어에는 왕에 대한 복수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관계서적 :
Chouraqui가 번역한 성서
Edouard Dhorme가 번역한 성서
Jouon 신부의 "Hebraic grammar"
Andre Cherpillod가 쓴 "The Gods of Israel"
Roger Vigneron가 쓴 "Elohim"

Elohim이란 낱말의 문자상 번역은 하느님이 아니라 : "하늘에서 온 사람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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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또 당신들의 과학자들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엘로힘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계공은 자신이 만든 시계의 모든 움직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주인의 메시지 1권 - 인간의 두뇌중에서.... 
 
 
 
우주인의 메시지 다운받는곳 http://www.rael.org
 

하느님께서  식사하시는 모습이 적혀있슴니다.

다시한번 읽어봐도 역시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식사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다른 별에서 오신 분을

 

우리 스스로..

신(神)으로  오해하고

 

신격화해서 오늘날까지..   여러 종교에서

숭배해 온것이 아닐까요?

 

성서 뿐아니라..

불교 경전의  卍 자도

 

우주인의 메시지의  '모든 것은 순환한다 '라는

'卍자' 마크와  똑같은데

 

그저 놀랄뿐 임니다.

성경을 과학적으로도 읽을줄 아는

 

시대가 왔슴니다.

중세기 '루터'가 라틴어로 된

 

성경을 각국 언어로 번역한 이후

(이 자체도 진실을 발견하는데는

  큰 도움이 됨니다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무조건 

성경구절  그대로를   맹신하지말고

 

성경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이해 해야겠슴니다.

 

감사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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