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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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목) 01:41

'디지털 숲길 사진 공모전' 수상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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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8 (금) 18:28


<빛으로 그려진 숲 - 임정묵>
전남 보성 대한다원에서, 2004년 9월 25일 촬영.



<가을 숲- 김영운>
강원도 춘천시 남이섬에서. 2004년 10월 31일 촬영.



<새벽의 신비 - 이태훈>
전북 임실군 국사봉에서. 2004년 7월 24일 촬영.



<쉼 - 손하담>
강원도 안흥면에서. 2003년 2월 22일 촬영.



 
<꿈속의 산책 - 정승연>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에서. 2004년 7월 25일 촬영.



<산비둘기가 인도한 작은 숲길 - 배용래>
서울 서대문 금화산에서. 2004년 5월 7일 촬영.



<가을 속으로 - 이희삼>
제주도에서, 2004년 11월 14일 촬영.


 
<생명의 숲 - 신재영>
봉화산 숲에서, 2004년 10월 10일 촬영.
[사진제공=생명의 숲]

 
자료출처: http://feature.media.daum.net/culture/article00436.shtm



화분에서 자라는 토끼?



 





진정한 살인미소....



 





스트립쇼라는데... 그럼 얼굴은 어쩐다냐...



 





일본에 새로 생긴 우리 케리비안베이와 같은 시설이라는디괭장하네뇨.



 





주먹밥 삼형제...



 





우이... 정말 살떨리네~~~~



 





우비 소녀가 아니라 우비 강쥐네요....



 





이게 왠 엽기변태냐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행이네...

태을점을 중심 오십토(五十土)


2002년 6월 3일 미스테리 서클

장소 : Halewick Lane, Sompting, Nr Worthing, West Sussex.

보고된 날짜 : 2002년 6월 3일













노자는 중앙 오십토(五十土)어머니의 자궁(十)에 비유 하기도 했다.

그 곳 중앙 오십토(五十土)어머니의 자궁(十)은 무궁무진을 뜻하는 자리이며 인간이 처음 태어나는 곳이다.

2002년 6월 18일 월터셔주에서 발견된 열십(十)자 모양의 미스테리서클

2002년 6월 18일 미스테리 서클

장소 :월터셔주 에버베리 근처 에버베리 매널

보고된 날짜 : 2002년 6월 18일

















외순장 16토와 33점 매화점은 중앙의 태을점을 중심으로 361점 바둑판의 전체 대세를 가늠하

는 태극운동을 용사하는 기본점이 된다. 오십토(五十土)는 도서(圖書)란 말의 유래가 된 하도

(河圖)와 낙서(落書)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도는 우주의 생성이치를 밝혀 주는 창조의 설계도

요, 낙서는 역사의 전개방향을 밝혀 주는 비도(秘圖)인데 우주를 잡아 돌리는 근원적인 생명

의 원천으로서 중앙에 五土(양토)와 十土(음토)를 배치하고 있다.

""중앙 五土(양토)와 十土(음토)는 하늘 조상(우주인)을 알아보라는 뜻"

<예)"곤지 곤지 잼잼"(간난아기에게..) "땅에 씨앗 뿌린 조상"

< "연지 찍고 곤지찍고" (결혼전)

"천상의 우주인 엘로힘(조상)이 지상으로 온다 그들을 맞이하자!!"







라엘 방문때 UFO가 북두칠성으로 나타났다. 우성인(牛性人)이 북두칠성(斗牛)이 우성인(牛性人)인데 우성인(牛性人)이 북두칠성(斗牛)이며, 하나님(上帝)의 아들(子)이라 했다. 즉 궁(弓)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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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열리는데.... 붉은 악마가 치우를 표지로 하고 있습니다.



도깨비나 장승이 치우천왕....(우주인이다)

황제(黃帝)란??

《사기(史記)》에 의하면 황제는 이름을 헌원(軒轅)이라고 하며 당시의 천자 신농씨(神農氏)를 대신하여 염제(炎帝) ·치우(蚩尤) 등과 싸워 이겨 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책자가 황제에 관하여 전하는 바는 다양하여 원래는 ‘번쩍번쩍 빛나는 천제(天帝)’를 의미하는 황제(皇帝)와 같다고 한다. ‘黃帝’라고 씌어진 경우는 오행(五行)의 중앙인 ‘토(土)’에 해당하며, 중국 문명의 개조(開祖)로 간주되었다.

(자료보기)"아래그림은 황제와 뿔달린 치우
"비행접시로 보이는 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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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700년경 배달나라(檀國)의 제14대 자오지 한웅 (桓雄)인 치우천왕"



치우(治尤 혹은 蚩尤)는 상고시대(BC2700년경)의 인물 로서 이른 바 '천하융사지주(天下戎事之主)'라고 평가되던 전설적 영웅이다. 이에 관해서 중국측과 우리측 모두 관련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중국측 기록에는 매우 곱지 않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치우천왕 (황)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그러 하다. '치우는 노산의 쇠로써 오병을 만들었다. 그런데 치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중략) 황제가 섭정을 할 때 치우와 그 형제 81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짐승의 몸 에 사람의 말을 하였다. 구리 머리에 소의 이마를 가졌고 모래와 돌을 먹었다. 병장기로 칼·창·큰활 등을 만들어 천하에 위세를 떨쳤다. '



<사기(史記)>"

사기의 내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이 모래 와 돌을 먹었다니. 그러면 괴물이었단 말인가?

사마천은 왜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그 까닭은 치우가 다름아닌 동이(東夷)겨레의 수장 이 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치 우에 관한 몇가지 단서를 알 수 있다.

적어도 치우가 각종 병장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상고시대 금속제 병장기를 만들었음은 고도의 기술 수준 이 바탕이 되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당시 우리 겨레의 기술수준이 높았던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매우 높은 금속관련 기술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관한 우리측의 기록물을 보면 치우와 동이겨레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우리측 기록에 치우는 일명 '치우천왕'으로 통칭되던 존재였다. 그리고 치우천왕의 치 적을 몇가지로 추려보면 벽토지(闢土地), 흥산(興産), 작 병(作兵) 및 연병(鍊兵), 그리고 뛰어난 숭생중물 (崇生 衆物)의 치세이념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벽토지란 산과 계곡을 뚫어 길을 냈음을 말한다. 교통 의 발달을 꾀한 것이다. 흥산이란 산업을 진흥시켰다는 것 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기>의 일부 내용처럼 노산 등지의 광물을 뽑아 제련사업을 일으켰던 것이다. 특히나 이때 치우천왕은 구야(九冶)라고 하는 일종의 기술부대를 운용하였다고 한다.

제련산업 일으키고 기술부대 운용도 또한 작병이란 각종 병장기를 만들었음을 말하는 것이요, 연병이란 강력 한 군대를 길렀음을 뜻한다.

그리고 숭생중물이란 치우천왕의 치도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이다. 이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온갖 물상의 존귀함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치우천왕은 그야말로 문무겸전의 이념으로 겨레의 앞날을 열고자 땀흘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이겨레 의 뜻에 정면으로 맞서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동이겨레가 늘 외경하던 '밝은 하늘의 뜻'을 무시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적 이단성을 주도하던 인물 이 한족(漢族)인 공손헌원이었다.

그리하여 치우천왕은 공손헌원과 일전을 별렀다. 그러 던 중 마침내 공손 헌원족의 한갈래인 '소호'의 부대와 맞 붙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치우천왕은 각종 기술과 기상을 조화하여 커다란 안개를 펼쳤다고 한다. '소호'의 부대는 앞을 가리지 못한 채 괴멸하여 갔다.

이 전투가 끝난 뒤에도 '공손헌원' 부대는 치우천왕 측에게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물과 불을 마음껏 다스릴 줄 알았던 치우천왕측을 도저히 담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치우천왕의 놀라운 웅략(雄略)이 그들을 압박하였 다.

이른바 '분출사도(分出四道)'라고 하는 전법이 공손 헌원 부대를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치우 측은 '돌날림치게'라는 신전투장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치우천왕부대는 대승하였다. 뛰어난 전법과 신장비의 효과가 컸던 것이다. 그리하여 치우천왕은 겨레 의 오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치우천 왕은 각종의 기와에 '도깨비'무늬라고 하여 남아있다. 어느덧 치우천왕의 영웅적 자취는 엉뚱한 도깨비 환상으로 옮겨진 것이다.

어쨋거나 치우천왕의 웅략은 소중한 우리의 정신자산 이 분명하다. 몹시 어려운 오늘에 있어 더욱 곱씹어 볼만 한 가치가 있으리라.

기왓장 도깨비문양으로 남아있는 치우천왕의 놀라운 지혜

박선식 <민족병학문화연구가>

1998.5.14.자 뉴스메이커지(경향신문사)

치우(蚩尤) (?∼?)

배달의 제14대 환웅(桓雄)인 자오지 천황. 치우(蚩尤)는 세속에서 부르는 별칭이다.

이 분은 머리에 최초로 철두갑을 만들어 써서 동두철액(銅頭鐵額 : 구리머리에 무쇠이마)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당시에 채광주철(採鑛鑄鐵)을 하였으며 치우천황이 갈노산겳槪;遠 쇠를 캐내 투구ㄱ㈎?칼겷 등을 만들었다. 자오지 천황

은 신농의 마지막 후예인 8대 임금 염제 유망(楡罔)이 쇠퇴하는 것을 보고 서방으로 출정하였다. 처음에 유망이 대패하여

수도인 공상(空桑)으로 도망가자 이를 일거에 멸한다. 이 때 자오지 천황의 공상 입성 소식을 듣고 서방의 한족문화권을

통합하려는 웅지를 품고 있던 황제 헌원이 천자의 뜻을 나타내며 대군을 일으켰다. 이에 자오지 천황과 헌원과의 사이에

탁록에서 일대 대결전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당시 10여년 간 73회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치열한 격전이었다. 치우

천황은 법력이 고강하여 큰 안개를 잘 지었다. 탁록의 싸움에서는 헌원이 치우천황의 안개술법에 대항하기 위해 방향을 가

리키는 지남차(指南車)를 만들어 싸웠다. 이 때 치우천황의 장수 치우비(蚩尤飛)가 급공을 하려다 오히려 진중이 몰살당

하였고 이에 노기 충천한 치우천황은 ‘비석 박격기’를 최초로 제작하여 헌원의 군사들이 항전을 못하게 하여 황제의 항복을 받고 그를 신하로 삼았다.

치우천황은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은 물론 한고조 유방과 진. 한시대의 중국 백성들에게까지 위력적인 숭배와 추앙의 대상

이 되어 왔다. 중국 진·한 대의 백성들이 치우천황에게 해마다 시월에 제사를 지내면 ‘붉은 기운이 반드시 뻗쳤다’고 한다.

이를 사람들은 치우기(蚩尤旗)라고 불렀다. 중국인들이 동방 배달민족을 동이(東夷)라고 부른 것은 치우천황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 때부터이다.

황제(黃帝)란?? 여러 책자가 황제에 관하여 전하는 바는 다양하여 원래는 ‘번쩍번쩍 빛나는 천제(天帝)’를 의미하는 황제(皇帝)와 같다고 한다. ‘黃帝’라고 씌어진 경우는 오행(五行)의 중앙인 ‘토(土)’에 해당하며, 중국 문명의 개조(開祖)로 간주되었다>




고대이집트 비행기




아래 이미지들은 카이로와 기자고원에서 남쪽으로 수백마일 떨어진
에비도스에 있는 3000년 된 신왕조사원(New kingdom Temple)의 천장
금속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이미지에서 우리는 현대의 비행기와 닮은 많은 비행기를 볼 수 있습니다.








헬리콥터









잠수함(1940) 아니면 UFO?









글라이더









(체펠린형)비행선 아니면 UFO?





콜롬비아의 황금셔틀(기원전500-800년경)

남미 콜롬비아에 기원전500-800년경의 시누문명의 유적으로부터, 길이 약 6㎝, 폭 약 5㎝, 높이 약 1.5㎝의 새와 같은 모양을 한 황금 셔틀이 여러개 발견되었다.

잘 조사해보니, 삼각 주날개와 수평 꼬리날개, 수직 꼬리날개가 있고, 풍향계, 조종석, 엔진의 공기흡입구가 있었다.

뉴욕 항공연구소 어서.포이슬리 박사를 비롯한 연구원 일동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이 모형은 항공역학의 이론대로 만들어진, 델타 날개의 젯트전투기이거나, 로켓식 스페이스.셔틀(우주선)의 모형이다

인류가 동력식 비행기를 발명해 하늘을 난 것은 1903년(지금부터 96년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옛날에도 인류는 비행기로 창공을 날았다는 이야긴가?

이 황금 셔틀은 지금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황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1994년 가을에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깊이 7m 정도의 바다 속에서 등대의 잔해 수백점을 건지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파로스 등대의 신비가 조금이나나 벗겨졌다. 발굴팀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4.55m, 무게 12톤의 여신상을 기중기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발굴팀은 아직도 바다 속에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 등이 잠겨져 있어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발굴된 잔해 또는 조형물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은 파로스 등대의 비밀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대부분이 대리석 돌로된 등대의 높이가 135m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 등대는 3개의 층계로 만들어졌다. 맨 아래층이 4각형, 가운데층이 8각형, 꼭대기 층은 원통형이었다. 각 층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지어졌다(기울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음). 등대 안쪽에는 나선형의 길이 있어서 등대 꼭대기의 옥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탑 위에는 거대한 동상(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마도 알렉산드 대왕이나 태양신 헬리오스의 모양을 본떴을 것으로 여기지고 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c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B.C28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떻게 등대에 불을 지폈을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파로스 등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등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단단한 돌로된 등대가 무너진 것은 12c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1100년과 1307년의 두차례의 큰 지진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20세기 초반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등대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그 모습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자료출처 : http://user.chollian.net/~park0067/index.htm


드디어 오늘 웹사이트에 2002년 첫번째 미스테리서클을 공중촬영한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나요? 안 기다렸다구요? --;;

2002년 미스테리 서클 시즌을 맞이해 첫번째로 나타난 미스테리 서클은 영국 햄프셔주 소벨톤 근처 롱로드(Long Road)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고된 날짜는 2002년 4월 12일입니다.

피터 소랜슨씨가 나쁜 날씨에도 불구하고 2002년 시즌의 첫번째 미스테리서클을 공중에서 비디오로 촬영하였다고 합니다. 햇빛이 없는 가운데 적어도 비는 맞지 않았다고 ..

그 미스테리서클은 작지만 잘 짜여진 링모양이었구요..두개의 점모양의 원이 있었는데 어떤 '사인'같았으며 그것은 과거 몇년간 여러번 햄프셔주에서 보여졌던 것이라고 언급하네요.

위치는 월롭스 우드 농장인데, 소벨톤 근처라고 합니다.(미스테리서클 번호를 매기는 것 같은데 SU 626-175 라고 적혀있습니다.)

비디오를 촬영한 피터 소랜슨씨는 포토샵을 이용해 색깔을 밝게 처리했지만 서클 모양은 전혀 변화시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제가 아래 사진을 보니 마치 보석을 위에 두개 단 반지 같이 보이는군요..여러분 눈에는 어떻게 보이세요?









위에는 도깨비 서클이라고 제가 이름졌어요 =>UFO대사관처럼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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