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했던 흑마법사 알리스터 크로울리
2005/12/22 오후 5:44 | 환상특급

알리스터 크로울리(본명 : Alexander Crowley)는 187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지독할 정도로 엄격한 어머니 아래서 성장했다.

청소년 시절 기독교 기숙 학교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학교는 학생의 죄를 발견한 교사에게는 가점을 주어 여러가지 이득을 주었는데 그로 인해 일부러 함정을 파고 학생들을 잡아내는 교사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간에 서로의 죄를 고발하는 것은 사탄에게서 '왕국'을 지켜내는 훌륭한 일이라고 하여 장려했다고 한다.
12세의 크로울리는 동급생에게 "맥주를 마셨다"라는 허위고발을 당하게 된다. 이로인해 골방에 갇혀서 물과 빵을 제외한 일체의 음식을 받지 못한체 자백을 강요받게 된다. 결국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생겨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이로인해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크로울리는 이 시절 읽게 된 밀턴의 '실락원'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기독교에 대한 반감에 더해서 마법과 사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진학 후 크로울리는 알렉산더라는 이름에서 알리스터로 바꾸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복수의 신을 뜻한다. 대학 생활 중 고서점에서 마법과 관련된 서적을 보게되면서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힘에 대해서 집착하게 된 듯 하다.
마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생각으로 그는 당시 브람 스토커(드라큘라의 저자)와 같은 유명 작가들이 회원이었던 비밀조직 '황금의 여명회(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에 가입하게 되었다. 황금의 여명회는 일루미너티 등과 같이 '프리메이슨'의 지회 같은 성격의 단체이다.

그는 그곳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도 꽤 높은 지위까지 올랐지만 그곳 상층부의 암투에 환멸을 느끼고 평범한 생활을 하기 위해 로즈라는 매우 평범한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는 그곳에서 운명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집트 전쟁의 신인 '호루스'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00년마다 인간을 다스리는 신들이 바뀐다. 예수 탄생 이전 2000년간은 자애의 여신 '이시스'가, 예수 이후 2000년간은 죽음의 신 '오시리스'가, 그리고 이제는 전쟁의 신 '호루스'의 시대가 온다.
이시스가 다스리던 시대는 '모계사회'가 중심이며 대자연의 섭리가 인간사회를 지배했다면, 오시리스의 시대에는 '시체(예수를 뜻함)'를 숭배하는 부계 중심의 시대이다. 이제 다가올 호루스의 시대는 '왕좌에 앉은 어린아이의 시대'이니 세계 곳곳에 등장하는 독재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와같이 얘기하며 모세의 십계처럼 그도 자신이 받은 계시를 하나의 책으로 펴게되는데 그것이 바로 리베르 레기스(Liber Legis)이다. 흔히 지옥의 서라고 불리는 이 책은 한번 출판될 때 마다 세계적인 환란이 일어났는데 다음과 같다.

-1912년, 리베르 레기스 초판 발행 9개월 후 제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인 발칸 전쟁이 발발

-1913년, 리베르 레기스가 두번째로 출판되고 9개월 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

-1930년, 세번째 출판 9개월 후, 만주사변이 발발. 이를 통해 일본은 중일전쟁 및 진주만 기습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1938년 12월 22일, 마지막으로 출판되고 9개월이 지나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출판 이후 9개월의 시간이 있는데 크로울리는 이를 두고 생명이 잉태되는 기간이라고 했다. 그는 텔레마의 사원이라는 곳을 짓고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는데 그곳에서 면도칼 자해 수련과 고양이를 제물로 바치는 등의 끔찍한 의식을 많이 치뤄서 악마숭배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그후 1934년 크로울리는 자신을 '흑마법사'로 묘사한 니나 햄릿이라는 미술가를 고소하였는데 재판에서 니나 햄릿 측 증인이 "크로울리 밑에서 마법을 배우던 남편이 살해당했다"라는 증언을 하여 패소, 결국 전재산을 잃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동방성당기사단의 연금으로 살아가다 결국 1947년 사망하게 된다.


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로는 크로울리가 1925년 동방성당기사단의 총수로 임명되었는데 이곳에 히틀러가 회원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크로울리의 말에 의하면 히틀러는 리베르 레기스의 '영적' 힘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결국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여 국제적 권력 투쟁에 쓸데없이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그 후 크로울리는 동방성단기사단의 독일 지회를 통해 끊이없이 히틀러에게 경고를 했으나 듣지 않았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비틀즈가 크로울리를 숭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히피 문화의 계기가 되었다고도 함



http://hot.empas.com/vogue/read.html?_bid=oneself&asn=6463&pt=1&sr=1&gr=2&p=1&o=0&d=0
출처 : UFO 우주인의 메시지
글쓴이 : 하트 원글보기
메모 :

징글벨거꾸로 돌리면 너무 섬뜻한 가사의 노래가 나오는군요...

 

 

잠은 다 잤다.

 

 

임산부와 노약자 심장이 안좋으신분은 절대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임 안진다는

 

 

그럼 하단에 스타트 버튼 클릭

 

처음은 정상적인 징글벨  2번째는 꺼꾸로 징글벨 ^^* 존시간


고이즈미의 초청으로 제국호텔에 모인 여자 비행사들. 깃털 모자를 쓴 박경원이 고이즈미 앞에 앉아 있다.
▲ 하코네 산중에 추락한 박경원의 비행기 '청연"
박경원의 고려신사 참배. 최린, 이등비행사 박경원, 그 옆에 체신대신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郞)라고 쓰여 있다.

 

강원래가 오는 24일 방영될 KBS 1TV ‘파워인터뷰’에 출연해 오토바이 사고 후 5년 여의

힘겨웠던 생활에 대해 털어놓는다.

강원래는 하반신 마비 선고 이후 굶어도 보고 말도 안하고 자살도 시도해봤다고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강원래는 5집 앨범 발표와 함께 지난 17일 5년만의 클론 단독

콘서트도 가졌다. 그의 재기 뒤에는 친구를 위해 기꺼이 휠체어에 앉은 구준엽,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힘이 되고 있는 아내 김송이 있다.

이날 방송에는 ‘바퀴달린 사나이’로 불리는 장애인 코미디언 박대운이 출연한다.

더불어 클론의 구준엽, 가수 채연과 박미경, 홍록기, 뮤직 프로듀서 김창환 등 강원래와

절친한 지인들이 나와 인간 강원래의 숨겨진 성격과 김송과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를

증언할 예정이다.

출처 :

아야와와(ayawawa)는 당당했다. 기자의 질문에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답변하는 그녀는 거리낌이 없었다. 18일 <쓰촨르바오>(四川日報) 웹사이트는 <신콰이바오>(新快報)에 난 네티즌 아야와와와의 인터뷰 기사를 전재하면서 인터넷으로 '뜨고자 하는' 최근 중국 젊은이들의 심리를 보도했다.

일련의 나체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야와와는 20대 초반의 모델이다. 그녀는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한 이유가 일의 한 연속이라고 밝혔다. "제가 사진 모델로 일하면서 한 잡지사의 제의로 나체 사진을 찍게 되었고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여 의견을 듣고 싶었어요. 물론 이왕 모델로 일하게 된 이상 다른 사진작가나 언론에 주목을 받게 되면 좋은 일이라고도 생각했죠."

 

아야와와의 이런 시도는 결국 대성공을 거두어 인터넷이 낳은 스타(網絡紅人)가 되었다. 아야와와의 나체 사진은 수많은 네티즌에 의해 퍼 날라지고 더욱 낯 뜨거운 사진으로 편집되고 3D효과까지 입혀져 동영상으로까지 제작되었다. 아야와와는 자신의 사진이 안 좋은 방향으로 편집되어 사용되는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체사진이 습관이 되어 자연스러워 졌어요. (사진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더 유명해지더라고요. 이제는 개의치 않아요."

 

2003년 6월에는 무즈메이(木子美)라는 한 여성이 자신의 성체험을 일기로 써서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하여 중국을 뒤흔들었다. 그 뒤 중국에서는 대담한 성담론과 자신의 개인생활을 글과 사진으로 공개하는 게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무즈메이(木子美) 현상'이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까지 발전한 이면에는 중국 한가정 한자녀 세대 출신 젊은이들의 새로운 성가치관과 인터넷이라는 매체로 스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얽혀있다.

 

잡지에 자신의 성체험을 소재로 활동을 썼던 프리랜서 작가인 무즈메이가 잡지라는 전통적인 매체에서 벗어나 인터넷을 이용한 점은 무엇보다 신선했다. 잡지에서는 허용하지 않았던 섹스 파트너의 실명과 기술까지 낱낱이 공개한 무즈메이의 일기는 인터넷을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무즈메이는 단박에 인터넷 스타로 등장했다. 무즈메이가 준 충격은 중국의 전통 언론매체까지 영향을 끼쳐 신문, 잡지 등 언론매체는 무즈메이에 대한 취재에 열을 올렸고 학자들까지 나서서 무즈메이 현상을 분석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는 새로운 인터넷 스타가 등장했다. 이른바 푸롱제제(芙蓉姐姐)라고 불리는 20대 후반이 이 여성은 무즈메이처럼 섹스 스토리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명문대학의 게시판과 자신의 블로그에 일상생활을 일기로 공개하고 기이한 포즈를 취한 몸매 사진을 올려 주목을 끌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푸롱제제의 '뜨고자하는' 욕망은 스타에 대한 열망에 공감하는 네티즌의 응원 속에 결국 올해 최고의 스타로 떴다.

출처 : 얼짱직찍♡키스-하두리캠전문▶http://my.netian.com/~whqqkq2/14598000198844/0001611116844/kiss/kiss.html
 
'현대생활백수' 탄생기
[YTN STAR 2005-12-19 19:21]
[앵커멘트]

다짜고짜 반말로 시작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음식값을 흥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박하사탕 한 움큼 집어오라는 가당치 않은 부탁까지 하는 사람.

KBS 개그콘서트 '현대생활백수'의 '형'인데요, 방송 3주 만에 벌써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두 주인공 고혜성, 강일구씨에게 현대생활백수 탄생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여러분께서는 올 한해 어떤 유행어를 사랑하셨습니까?

유행어는 보통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데요, 올해도 어김없이 수많은 유행어가 우리 곁을 다녀갔습니다.

'그까이꺼 뭐 대~충' - 봉숭아 학당

'이 세상의 날씬한 것들은 가라~~' - 봉숭아 학당

'너나 잘하세요~!' - 친절한 금자씨

'너 쟈들하구 친구나?' - 웰컴 투 동막골

'아, 왜~ 배아파' - 상상플러스

자, 여기 2005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유행어가 탄생했는데요.

"너 몇 살이니? 그럼 반말해도 되겠네?"

현대생활백수의 고혜성•강일구를 만났습니다.

"뭐 좀 물어봐도 되겠니?"

[인터뷰:고혜성]

Q) 현대생활백수는 어떻게 생겨났나?

나이 서른에 느지막이 데뷔해 방송 몇 주 만에 일약 스타가 돼버린 고혜성. 동료의 반응은 어떨까요?

[인터뷰:정종철]"노력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온다."

[인터뷰:박준형]"많은 칭찬과 격려"

[인터뷰:박휘순]"앞만 바라보고 달려오셨고요..."

험난한 연예계 생활의 밑천이라 할 만한 개인기! 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라는데요, 어떤 개인기가 있을까요?

어둡고 칙칙한 무명시절을 벗어났지만 밝은 태양 아래 녹아내리지 않도록 힘든 시절의 마음가짐! 오래 간직하길 바랍니다.

[저작권자(c) YTNSTAR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저는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3학년 축구대회가 있었습니다.
전 월래 못하지만 실내화 아니면 축구를 못합니다ㅋㅋㅋ
근데 체육선생님이 실내화를 신고 축구를하고 교실에 그냥
들어온다고 실내화를 잡는다더군요..
안걸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을 해보려고
미친짓을 해봤습니다 ㅋㅋㅋ
 
 
문방구에가서 실내화와 유성매직 두개와  과자 몇봉지를 사들고
방에서 티비보면서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ㅋ
 
 
 
 
 
 
 


 

 

나름대로 멋있죠..^^??

 

도로주행은 저희 망한 축구팀 이고요.

폰카메라 화질이 구린상태라 이해 바랍니다..^^

 

 

 

 

아참....... 막상 축구대회할때

실내화 검사는 개뿔...

선생님 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ㅠㅠ

 

연습도 많이했었구

이런준비까지 했는데

우린 예선 조 꼴지로 탈락했구요 ㅋㅋㅋㅋ

 

 

하지만 점심시간이나 쉬는시간이나

실외에서 이거 신고 돌아다녀도

진짜 안걸려요 ㅋㅋ

 

실내에서 신고 다니다가

이거 신발이냐?

라고하면 실내화 칠한거라구 하면되구요 ㅋㅋ

 

 

 

근데 만드는데

유성매직 냄새도 장난아니더군요..ㅠ

 

 

 

 

그냥 지나가지마시구

 

붐업 한번만 눌러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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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베 감사하구요
 
아무생각 없이 만들었는데 사진찍냐는분들
애들한테 과정 자랑할려구 찍은것두 있구
제가 만든거 안믿을까바 찍은거에요 ㅋㅋ
축구 많이하면 지워져서
 
싸이에만 올렸다가
친구가 한번 웃대가튼데 올려보라고해서 올려본거구요.
 
 
 
 
 
 
 
 
 
신서중 급식 개같음
bubho

안녕하세요. 홍법호의 블로그입니다
요즘 헤어샵에서 가장 인기있는 헤어 스타일은 샤기컷입니다. 아직도 ‘샤기컷이 뭐에요?’라고 궁금해 하시는 분은 저희가 몇주 전에 샤기컷에 대해 알려 드린 적이 있답니다. 꼭 읽어보세요. 이번주에는 지금 한창 인기 상승중인 샤기컷 헤어 스타일 3가지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루엣에 강, 약을 만들어 머리의 형태를 좋아 보이게~


1 머리의 윗부분이 뻗치지 않도록 브러시로 누르며 뿌리를 세워 올려 볼륨을 넣는다.
2 귀 밑 부분의 머리를 가라앉힌다. 머리를 누르며 손바닥에 열을 두며 반사시켜 모발 뿌리가 눕도록 볼륨감을 없앤다.
3 잠시 그 상태로 식히면서 머리를 놓는다.
4 손바닥을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모선의 거친 느낌이 드는 곳부터 왁스를 바른다.
5 손가락을 세워 정수리 부분의 모발을 잡듯이 모발 안쪽까지 왁스를 바른다.
6 손에 남을 왁스를 이용하여 모발에 질감이 살도록 머리 끝부분을 꼬아 정리한다.







머리에 컬을 만들어 미듐 레이어 스타일에 움직임을 낸다.


1 처음에 소프트한 왁스를 바른 후 머리카락 하나를 크게 뽑아낸다.
2 뽑아낸 머리카락에 손가락 두마디 정도를 넣어 꼬아 컬을 만든다.
3 열을 쐬어 고정시킨다. 전체적으로 약간의 컬이 생긴 느낌이 들도록 위의 방법처럼 컬을 만든다.
4 소량의 고정력 있는 왁스를 손바닥 전체에 비빈 후 모발 아랫부분을 구겨 전체적으로 컬리한 느낌을 만들며 모양을 정리해 나간다.
5 정수리부분도 모발에 볼륨감을 만든 후 손가락으로 끝부분을 정리한다.





매쉬 풍의 앞이 뒤보다 처진 라인. 내추럴한 모선으로 얼굴을 둘러 쌓도록 마무리.


1 네이프(목뒤) 쪽에 부한 느낌보다는 타이트한 느낌이 들도록 뿌리에 볼륨을 없앤다.
2 볼륨이 없는 정수리부분은 볼륨감을 형성한다.
3 앞머리는 내추럴한 인상을 주도록 위쪽부분만 살짝 볼륨감을 넣는다.
4 그 상태로 잠시 열을 식히므로 고정력을 한층 더한다.
5 연결되는 옆머리부분도 역시 똑같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만든다.

숭례문 규모 현재보다 훨씬 컸다


[한겨레] 재지정 논란을 빚었던 국보 1호 서울 숭례문(남대문)의 500여년전 원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크고 장대한 건축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숭례문의 석축기단과 홍예문(통로)의 상당부분이 땅 속에 파묻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재청과 관할 서울 중구청은 지난달 중순 공원화 재정비 사업을 위해 홍예문의 남북쪽 입구와 상부 누각의 계단 입구 등 다섯군데를 시굴조사했다. 그 결과 1m 넘는 깊이의 땅 속에서 조선초 세종 때 것으로 추정되는 하부 석축 기단과 지대석, 박석(바닥에 까는 돌) 등을 무더기로 발굴했다. 원래 석축, 홍예문의 높이·폭 등이 지금보다 훨씬 크고 장대한 규모였으나 후대 도두 쌓은 흙에 묻혀 규모가 쪼그라든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홍예문 부근 지하층에서는 깊이 1.7m 지점까지 1.5m 크기의 대형 무사석(석축 기단을 구성하는 돌)과 맨 아래 기초석인 지대석, 문 지방석, 확석(문짝을 들어매는 홈 파인 돌쩌귀), 검은 얼룩 묻은 박석 등의 부재들이 원래 연결된 상태 그대로 발견됐다. 홍예문의 경우 원래 문짝 부분의 3분의 1정도가 묻혀 있었으며, 다른 곳에서도 기단 석축과 박석이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확인되어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옛 사서를 보면 조선 태조 7년(1398)에 숭례문을 완성한 뒤 세종 30년(1448)에 대대적으로 재건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이런 기록과 지층의 깊이 등으로 미뤄 발굴된 대형 시설물들은 세종 당시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묻힌 부분을 합칠 경우 숭례문은 좌우 길이만 최소 30m(현 22.9m)를 넘으며, 현재 3m안팎에 불과한 홍예문의 높이도 4m이상 올라가 장대한 위용이 될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손영식 전통건축연구소장(문화재전문위원)은 “조선말기 대규모 성토작업이 있었고, 1907~08년 일제가 남대문을 관통하는 전차선로를 내면서 문 주위로 흙을 1m가량 쌓아올려 아래쪽 기단과 박석들이 완전히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왕도의 정문에 걸맞는 숭례문의 장대한 본래 면모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발견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문화재위원)는 “지하 1m이상 깊이에서 500여년전의 대형 기단부와 부재가 그대로 남아있어 현장을 본 전문가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 홍예문의 높이가 광화문, 수원 팔달문보다도 낮고 석축 기단과의 비례도 어긋나 도읍의 정문에 걸맞지 않다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제야 의문을 풀게 됐다”고 말했다. 손영식 소장도 “홍예문과 석축의 아랫 부분을 모두 드러내면 숭례문이 훨씬 장대한 외관을 띠게 될 것”이라며 “문 주위의 잔디 성토층을 걷어내고 묻힌 구조물들을 드러내는 원상 복원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문화재위원회는 이와관련해 지난 15일 건조물 분과(위원장 박언곤 홍대 교수)회의를 열고 숭례문 권역의 추가 발굴과 중구청의 현행 재정비 계획을 잠정 보류할 것 등을 의결했다. 추가 발굴 조사의 성과와 더불어 문화재청과 중구청쪽이 어떤 식의 새 복원안을 내놓을 지가 주목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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