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ers  Ju-87 Stuka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0. 11. 30

2차대전의 독일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되면 항상 제일먼저 화면을 장식하는 것이 바로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가 날카로운 싸이렌을 울리면서 강하하여 폭탄을 떨어뜨리는 장면이다. 터프한 인상을 가진 하늘의 사냥꾼, 마치 먹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한 마리 독수리와 같은 존재, 독일 전격전을 상징하는 영원한 하늘의 포대.. 이것이 바로 독일공군을 상징하는 기체중 하나인 슈투카를 일컫는 말이다. 독일 전차부대의 든든한 하늘의 동반자 슈투카에 대해서 알아보자.

* 신화의 탄생 *

아마도 독일군의 전격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던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무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융커스 Ju 87 슈투카는 둘째가라면 서러울지도 모르는 존재이다. 이 기체의 정식 명칭은 Sturzkampfflugzeug로서 이는 독일어로 '급강하 폭격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약칭으로 불리던 Stuka가 이 공포의 신무기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이 슈투카는 1차대전에서 독일공군 2위의 에이스출신으로 독일공군의 조달책임자가 되어있던 에른스트 우데트에 의해서 생산이 추진되어 독일이 2차대전을 시작할 무렵 전차부대가 진격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날아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에른스트 우데트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커티스사의 헬다이버 급강하 폭격기의 시범을 보고나서 급강하 폭격기가 가진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1대를 구입하여 독일로 돌아와 융커스사의 설계진에게 이를 분석하여 더욱 우수한 급강하 폭격기를 제작할 것을 지시했다. 1935년 최초로 비행한 시제기가 테스트에서 기대이상의 우수한 성능을 선보여 곧장 주력 급강하 폭격기로 선정되었고 1937년 최초 양산형 Ju 87A-1형이 생산되었다. 이후 강착장치를 새로 디자인하고 몇군데의 개수를 한 본격적인 양산형인 Ju 87B-1형이 1938년말부터 독일 공군을 위해서 대량 생산되었다.

1939년 스페인에 주둔하고있던 콘돌군단 소속의 Ju 87B-1형이다. 기체의 위장도색은 독일 공군의 표준 도색이지만 국적 마크가 스페인 국민당군의 것을 하고 있다. 수직 꼬리날개와 주익아래의 X자 마크에 주목!

슈투카의 존재는 스페인 내전에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항공기로서 증명되었는데, 시범적으로 참가한 Ju 87B형이 실전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어 독일 공군내에 급강하 폭격기부대가 별도로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다. 폭탄 탑재량이 최대 900kg에 달했으며 이 폭탄을 급강하로 정확하게 투하한다는 것은 매우 큰 전술적인 가치가 있었다. 정확한 폭탄 1발이 대강 뿌려지는 100발의 폭탄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던 것이 여러차례의 실전경험에서 증명된 것이다.

[ 비행장에서 출격 준비중인 슈투카, 슈투카의 특기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폭격 능력이었다. 이 능력으로 인해서 많은 폭탄을 대량으로 뿌리는 기존의 수평 폭격기들보다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적에게 가할 수 있었다. ]

슈투카는 외형상으로 볼때 특이한 형태의 역갈매기형 주익과 독수리의 발톱을 연상시키는 강인한 모습의 고정식 강착장치가 특징적이었으며 급강하시에 적에게 공황을 유발하도록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싸이렌이 장착되어 있었다. (이 싸이렌 소리 때문에 공습을 당하는 쪽에서는 슈투카를 '째지는 소리의 독수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슈투카의 조종석 좌측에는 강하 각도를 조종사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표시선이 있었고 급강하시에 강한 압력으로 인해서 조종사가 의식을 잃기전에 비행기를 회복시켜주는 자동조종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장치들로 인해서 슈투카는 정교함이 요구되는 급강하 폭격을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Junkers  Ju 87B-2

분 류

2인승 급강하 폭격기

동 력

융커스 유모 211DA 엔진 (1200마력)

최고 속도

시속 400km

항속 거리

610km

무 장

주익 - MG 17 7.92 mm 기관총 2정

후방석 - MG 81 7.92 mm 기관총 2정

폭탄 - 동체 하면 : 1100파운드 폭탄 1발 & 주익 : 100파운드 폭탄 4발

슈투카는 급강하시에 거의 90도에 가까운 수직 강하를 할 수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80도 정도의 강하를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급강하시에 속도를 줄여주는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었고 더구나 기체의 외부에 장착된 폭탄들과 큼직한 강착장치의 공기저항으로 인해서 강하속도가 감소되어 평균 시속 240km정도의 느린 속도로 강하하게 된다. 대개 급강하는 고도 7000피트 정도의 상공에서 시작되는데 이 고도보다 낮게되면 급강하에서 회복하는 타이밍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급강하에 들어간후 폭탄은 3000피트정도에서 투하된다. 이것은 슈투카가 자세를 회복하는데는 1000-1500피트 정도가 더 필요하므로 더 낮은 고도에서 투하하면 자세회복도 어렵고, 자기가 투하한 폭탄의 폭풍에 말려들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 급강하하면서 정확하게 폭탄을 날리는 슈투카, 이순간은 지상의 적에게는 진저리 쳐지는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

폴란드 침공시에 독일공군은 5개의 급강하 폭격기 부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모두 슈투카를 장비하고 있었다. 이 급강하 폭격기는 폴란드 침공때부터 그 가공할 능력을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독일 전투기들이 하늘을 완벽하게 장악한 상태에서 적 전투기의 저항다운 저항을 거의 만나지 않았던 슈투카들은 폴란드 하늘을 자기 안방처럼 날아다녔다. 특히 주요 목표인 교량, 통신 시설, 적 전차 부대, 밀집된 보병진지, 토치카 등의 어려운 목표에 대해서 슈투카의 정확한 폭격능력은 그 가공할 위력을 입증했던 것이다. 특히 목표를 정한후 편대를 벗어나 급강하에 돌입한 스투카가 울리는 싸이렌 소리가 지상의 병사들에게 울려퍼지면 병사들은 지금 자신이 표적이 되고 있다고 믿어 버렸고 결국 순식간에 전의를 잃고 공황상태에 빠졌다.

1941년 노르웨이 전선에 투입되었던 장거리형인 Ju 87R형이다. 본 기체는 주익아래에 장착된 2개의 66갤런들이 보조연료 탱크가 특징이다. 이형의 최대 무장은 550파운드 폭탄 1발이며 노르웨이에서 영국 해군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40년의 노르웨이 작전에서는 장거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외부 연료탱크를 장비한 Ju 87R형도 사용되었다. 이 노르웨이 침공작전에서 슈투카는 또 하나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것은 함선에 대한 공격력이었다. 기존 수평 폭격기들이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 지그재그로 운항하는 함선을 명중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효과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슈투카는 급강하 폭격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해상 목표에까지 탁월한 타격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해상에서 독일 해군을 묵사발 냈던 영국 해군의 함정들이 슈투카에게 쫒기면서 노르웨이에서 퇴각하는 장면은 스투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후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를 석권할 때까지 독일 공군의 파상 공세에는 하늘에서 든든한 화력 지원을 해주는 슈투카가 따라다녔다.

* 슈투카의 시련 *

하지만 슈투카의 영광속에는 이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치명적인 약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고성능의 적 전투기를 만나게 될 경우 제대로된 공중 엄호가 없으면 속수 무책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현실로서 나타난 것은 영국 본토 항공전 (Battle of Britain)으로서 초기 단계였던 '독수리의 날 (8월 13일)'이후 6일간의 본격적인 영국 본토 공습작전에서 의기양양하게 출동했던 슈투카는 영국의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에게 무려 40기나 격추되었다. 독일 공군이 가장 신뢰했던 슈투카가 매우 심한 피해를 입은 것은 충격적인 결과였으며, 독일 공군의 자체분석 결과 영국 상공과 같이 적 전투기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전장에서의 생존능력이 매우 낮음이 인정되어 결국 8월 19일 이후에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모두 물러나는 치욕스런 조치를 당한 것이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 (Battle of Britain)에 참가중인 Ju 87B-2형이다. B-1에 비해서 더 강력한 유모 211DA엔진이 장착되었으며 프로펠러도 피치 조절이 가능한 신형으로 개선되었다. 하지만 성능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본 기체의 소속부대는 임멜만 항공단의 칭호를 부여받았던 Stukageschwader 2이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슈투카는 전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드러난 슈투카의 문제점은 단순했다. 단지 그동안은 제대로된 적 전투기들의 저항을 만나지 못해서 이런 단점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우선 슈투카는 속도가 느려서 영국 전투기들에게 따라잡히기 쉬웠다. 전격전때처럼 Bf 109E가 완전하게 제공권을 장악하고 적의 전투기를 몰아낼 때는 안심이었지만, 영국상공에서처럼 양측이 거의 대등한 상태로 싸울 때는 이야기가 달랐던 것이다.

[ 영국 상공으로 출격하기 전에 폭탄을 장착중인 Ju 87b, 그러나 이런 자신만만한 사진과는 달리 슈투카는 영국의 하늘에서 최대의 시련을 맞게되었다. ]

슈투카에게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시점은 급강하 공격을 시작하면서부터 급강하에서 회복할 때까지였다. 편대를 벗어나 목표를 향해 급강하 하는 슈투카에게는 Bf 109E가 제대로 엄호를 해줄 수 없었던 것이다. 공기저항이 큰 큼직한 폭탄을 달고 급강하용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슈투카의 고작 시속 240km 정도밖에 안되는 느린 급강하를 제대로 따라줄 수가 없었다. 결국 정확한 폭탄 조준을 위한 느린 급강하 속도가 영국 전투기들에게 절호의 공격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편대를 벗어나 급강하에 들어간 스투카는 영국 조종사들의 표현에 의하면 꽃이 꿀벌을 끌어들이듯이 영국 전투기들을 끌어들였다. 허리케인이나 스핏화이어의 조종사들에게는 이런 슈투카야말로 '독안에 든 쥐'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영국조종사들은 이 순간을 '슈투카 파티'라고 불렀다고한다.

특히 슈투카의 방어무장이 후방석에서 정후방쪽을 방어하는 7.92mm 기관총 2정밖에는 없었으므로 측면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공격해들어오는 영국 전투기들에게는 속수 무책이었다.  게다가 슈투카는 영국 전투기들을 따돌릴 만한 속도도 없었고 기동성도 부족했으며, 조종사 보호를 위한 장갑판도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로 인해서 금새 영국 전투기들의 조준 사격을 받았고 조금만 명중탄을 맞으면 조종사나 기체가 치명상을 입고 금새 연기를 뿜으면서 지상으로 떨어져갔던 것이다.

* 다시 시작된 신화 *

[ 지상의 소련군을 향해서 돌진중인 슈투카들, 하얀색의 동기 위장도색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

하지만 이런 쓰라린 경험을 한 슈투카가 다시 위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난후 벌어진 독소전의 현장, 동부 전선이었다. 소련군의 전투기들이 독일 공군기들에게 완전히 압도되어 제공권을 독일 공군이 장악하게되면서 또다시 슈투카가 자기 세상을 만난 것이었다. 슈투카는 가뭄끝에 폭우를 만난 물고기처럼 그동안의 울분을 쏟아내듯이 소련 지상군을 격파했다. 다시 한번 공포의 싸이렌 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롬멜이 지휘하는 북아프리카 군단에게도 슈투카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동토의 동부전선과 폭염의 북아프리카라는 서부 유럽과는 전혀 다른 험악한 환경의 전장에서도 슈투카는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

1942년 북아프리카에서 활동중인 Ju 87B-2형이다. 전형적인 사막도색을 하고 있으며 기체하면에는 하늘색으로 도색되어 있다. 슈투카의 도색을 자세히보면 본 기체처럼 동체의 철십자 표지 왼쪽위에 구급약 상자가 있음을 알리는 마킹이 있는 경우가 많다.

1941년 말에는 더욱 강력해진 1500마력의 신형 유모 211P 엔진을 장비한 Ju 87D가 새로 등장했다. 이 신형 슈투카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외형상의 변화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엔진 덕분에 더욱 많은 폭장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특징이며 동부 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슈투카 전성시대를 계속 이어가면서 활약했다.

[ 슈투카의 전성기를 계속 이어가면서 등장한 신예 Ju 87D, 늘씬해진 기수의 모습이 특징적이다. ]

하지만 동부전선의 전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성능이 우수한 소련전차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전차킬러 슈투카의 명성에도 금이가기 시작했다. 독일 지상부대의 주요한 위협으로 떠오른 소련의 신형전차들은 기존의 전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장갑과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어서 폭탄이 전차에 직격하지 않는한 파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급강하 폭격을 하더라도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전차에게 폭탄을 명중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바로 옆에서 폭탄이 폭발해도 장갑이 두꺼운 T-34나 KV-1과 같은 소련 전차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전차를 잡기위해서 슈투카는 또다시 변신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전차 사냥꾼으로 변신한 신형 슈투카가 1943년 동부전선에 모습을 나타냈다.

1942년  Stukageschwader 3 소속으로 동부전선에서 활동중이던 Ju 87D-1형이다. 유선형으로 날씬해진 엔진 카울링과 달라진 캐노피가 감별 포인트! 로서 이 형은 강력해진 엔진으로 더욱 무장 탑재능력이 강화되었다.

이것이 슈투카의 개량형중에서 가장 특이하면서 유명한 Ju 87G 형이다. 이 G형은 오로지 소련의 전차를 잡기위해서 탄생한 기체였다. 가장 주요한 변화는 주익에 대공포로 사용되던 Flak 18이라는 37mm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이 기관포는 포탄이 초속 654m로 발사되며 전차의 상면에 명중하면 단 한발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전차에게 폭탄을 명중시키는 것보다 기관포를 사용해서 정확하게 저격한다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각 기관포는 12발의 37mm 기관포탄이 장전되어 있었고 폭장을 하게되면 떼어낼 수도 있었다. 이 37mm 기관포는 한마디로 대단한 무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격전 당시 독일 전차부대의 주력이었던 독일 3호전차의 주포가 37mm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를 2문이나 장착한 이 기체가 얼마나 화력이 강력한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주익은 이 기관포의 반동에 견딜 수 있도록 강화되었으며 전체적인 기체 밸런스도 재조정되었다.

1943년 10월 동부전선에서 활동중인 Ju 87G-1형이다. 전차를 저격하기 위해서 주익아래 장비된 장포신의 37mm 기관포가 특징인 기체이다. 카노넨 포겔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유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새로운 슈투카가 전선에 도착하자 주익에 매달린 장포신의 커다란 기관포로 인한 모습 때문에 조종사들로부터 '대포를 가진 새'라는 뜻의 독일어인 '카노넨 포겔 (영어로는 Cannon bird)'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실전에 투입되면서 카노넨 포겔은 전차에 대해서 매우 효과적인 공격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당시 독일 지상군에게 공포의 존재였던 소련의 T-34를 비롯한 소련의 신형 전차같은 경우에도 전차 상면의 장갑은 취약했으며, 따라서 하늘에서 공격해오는 슈투카의 37mm 기관포탄이 한발만 명중해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특히 가장 장갑이 얇은 엔진실에 명중하면 전차는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 대포를 달고 이륙준비중인 전차킬러 Ju 87G 카노넨 포겔, 주익 아래에 장비된 2문의 37mm 포가 강한 인상을 준다. ]

하지만 무거운 기관포의 탑재로 중량이 늘어나면서 비행시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게 되었고 37mm 기관포의 강한 반동으로 인한 기체의 진동으로 경험이 적은 파일럿에게는 매우 조종하기 힘든 기체였다고 한다. 하지만 경험이 많았던 슈투카 조종사들에게는 카노넨 포겔은 천사의 날개나 마찬가지였다. 많은 조종사들이 이 신형 스투카를 몰고 동부전선에서 소련 전차 사냥에 나섰으며 역시 독일 전차를 상대로 많은 전과를 올리던 소련의 IL-2 슈트로모비크 대지공격기와 함께 양측 전차병들에게 서로 공포의 존재로 자리 매김했다.

이 슈투카를 조종했던 가장 유명한 조종사는 전독일군중에서 '군인중의 군인'이라고 불리는 슈투카의 명인 한스 울리히 루델이 유명한데 그는 슈투카를 조종하여 대전 전기간동안 전장을 누비면서 소련 전차 519대를 파괴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슈투카는 2차대전 독일군을 상징하는 기체로서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했던 영광스런 시절부터 독일의 패망까지 독일군 병사들과 모든 것을 함께했던 기체였다. 아마도 항공전의 역사속에 슈투카만큼의 유명세와 강한 인상을 남긴 기체는 없을 것이다.


 ◇ Focke-Wulf   Fw 190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0. 9. 29

2차대전의 독일 전투기 하면 누구나 먼저 메서슈미트 Bf 109를 떠올리겠지만 전쟁에서 수행한 많은 역할을 놓고볼 때 절대 이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한 전투기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연합군으로부터 'butcher bird (도살새)'라 불리우던 포케불프 Fw190인 것이다. 수많은 경쟁기들을 제치고 Bf 109와 Fw190의 두기종만이 2차대전 전기간에 걸쳐서 독일공군을 대표했던 것은 Fw 190 이 훌륭한 비행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것이다. Bf 109가 순수한 전투기에 가까운 기체였다면 Fw 190은 공중전, 폭격기 요격, 지상공격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던 전형적인 전폭기의 개념에 어울리는 기체로서 만능기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탄생 *

Bf 109가 한창 위세를 떨치며 독일 공군의 주역으로 배치되어가던 1938년, 독일공군은 Bf 109를 뒷받침할 전투기를 개발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하인켈, 도르니에, 융커스등 쟁쟁한 항공사들을 제치고 비교적 신예였던 포케불프사가 맡게되었다. 당시 이 계획을 책임지게된 쿠르트 탕크 박사는 이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계최고의 성능을 가진 기체로 만들어 보려는 야심에 차있었다. 기본적으로 처음의 설계부터 신형기의 설계는 우선 조종하기 쉬워야하며 지상정비에 용이해야 하고 시계가 탁월하면서 손상을 잘 견뎌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새로 개발되는 신형기의 캐노피는 조종사의 시야확보를 위해 당시로서는 공기저항 때문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던 동체위로 튀어나온 형태를 채택했다. 그리고 엔진의 선택에 있어서 공기역학적으로 우수한 수냉식 엔진을 채택한 Bf 109가 전투 손상에 약한 점에 주목하여 전투손상에 잘견디고 튼튼한 공냉식의 성형엔진을 채택하기로 했다. 때마침 BMW사에서 1400마력에 달하는 매우 강력한 공냉식 성형엔진 개발에 성공하여 엔진 조달에는 문제가 없었다. 물론 공중 기동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많은 고려를 해야했다.

Focke-Wulf Fw 190A-0

분 류

단좌 전투기

동 력

BMW 801 14기통 공냉식 성형엔진 (1700마력)

최고속도

시속 654km

상승속도

분당 720m

항속거리

805km

무 장

기수 - MG17 7.92mm 기관총 2정

주익 - 내측 : MG17 7.92 기관총 2정, 외측 : MGFF 20mm 기관포 2문

  (주익의 무장은 MGFF 기관포 4문으로도 변형 가능)

동체 하면 - 폭장 가능

1939년 5월 드디어 시제기가 날아올랐다. Fw190V1으로 명명된 시제기는 무사히 첫 시험비행을 마쳤으나 몇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그중 고속 비행시에 캐노피가 열리지 않는 것이었이 골치거리였는데 이는 비상탈출시에 폭약을 이용하여 캐노피를 떼어내는 방식을 도입하여 해결되었다.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해결되자 독일공군이 제시한 대부분의 조건을 뛰어넘는 기체가 되 버린 것이다. 1940년 말렵에 최종적으로 양산이 허가되자 즉시 양산 시스템으로 돌입한 포케불프사는 1941년 7월에 드디어 최초 양산형인 Fw190A-1을 생산하였다. 이 기체는 당시의 주력이었던 Bf 109F를 확실히 뛰어넘는 고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 실전 기록 및 다양한 개량형 *

1941년 7월 Bf 109F를 보유했던 JG 26이 먼저 Fw190A-1형으로 기종개편을 하도록 했고 9월이 되면서 30여대가 도입되어 JG 26 제 2전투비행대가 완전한 Fw190 전투비행대로 탄생하였다. 이때만해도 연합군에게는 이 기체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며 처음으로 Fw190을 목격한 영국 조종사는 이 기체를 프랑스군에게서 노획한 미국제 호크-75기로 착각했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Fw190이 활동을 하게되면서 최초의 교전이 벌어졌는데 스핏화이어 Mk.V 1개편대가 Fw190A-1 1개편대와 주우하여 공중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신형기의 성능은 독일의 Bf109F형을 크게 웃도는 것이었으며 단시간의 교전끝에 스핏화이어 3기가 격추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때부터 이 기체는 연합군으로부터 '하늘의 위협', '도살새'등의 별명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전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1942년 쉘브루에 주둔중이던 JG-2 소속 Fw 190A-3형이다. 기수의 독수리 도색은 매우 유명한 것으로 (EAW의 FW190에도 보이는 도색이죠 ^_^) 배기 연기로 검게 그을리는 것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JG-2의 Fw 190은 영국공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Fw190은 매우 안정적인 비행기로 평가되고 있으며 Bf109에 비해서 미숙한 조종사라도 쉽게 숙달될 수 있는 기체였다. 기체자체의 비행특성이 우수했던데에 더불어 모든 방향타가 매우 가볍게 움직여서 저속과 고속에서 모두 탁월한 조종성능을 가졌던 것이다. 특히 보조날개 (에일러런)의 작동이 매우 탁월하여 놀라운 롤레이트를 보였다고 하는데 이점이 공중전에서 매우 유리했다고 한다. 게다가 시계가 탁월하여 후방의 적기를 감시하기도 쉬웠다.

[ 동부전선에서 출격준비중인 Fw190A-4형이다. 흰색계열이 많이 사용된 겨울 도색의 특징을 볼 수 있다. ]

Fw190A-1형의 무장은 기수 카울링에 2정, 주익 내측에 2정이 장비되는 MG17 7.92mm 기관총과 주익 외측의 MGFF 20mm 기관포 2문으로서 강력한 편이었다. 주익의 강착장치도 Bf109와 달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접히는 방식을 채택하여 바퀴폭이 넓어짐에 따라서 이착륙시에도 훨씬 안정적이었다. 단, 6000m를 넘는고공에서는 공냉식 성형엔진이 급격한 성능저하를 보임으로 인해서 고고도를 침투하는 연합군의 폭격기의 요격작전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44년 4월 22일 200번째의 격추를 기록한 JG-1의 지휘관 하인쯔 베어의 Fw190A-6형이다. JG-1의 부대표식과 200기 격추를 상징하는 화려한 격추마크를 자세히 볼 수 있다.

 

1944년 동부전선에서 250기 격추의 대기록을 세울 당시, JG54의 지휘관 발터 노보트니의 FW 190A-6형이다. 화려한 격추마크가 보이지 않는다. 전쟁 말기에는 불시착하는 경우 소련병사들이 독일의 에이스들을 보는 즉시 무조건 사살해 버리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하여 동부전선 독일공군의 에이스들은 자신의 기체의 화려한 도색을 모두 지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전쟁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독일은 빠른 속도의 전투폭격기가 필요했다. 저속의 급강하 폭격기 스투카는 연합군 전투기의 먹이나 다름없었고, Bf109는 작은 기체로 인해서 실질적인 공대지 무장을 할 수 없었으며 장거리 항속력도 부족했다. 특히 Fw190은 고고도에서는 성능이 저하되었으나 중고도이하에서는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졌으며 엔진의 출력도 강력했고, 공냉식 엔진의 특성상 손상에 강한 것이 인정되어 대기공격기로도 매우 적합한 기체로 인정되었다. 이때부터는 기수 카울링의 7.92mm 기관총을 13mm 기관총으로 강화한 Fw190A-8형이 양산되었다. 이형이 Fw190의 대표선수로서 가장 많은수인 8300여대가 전선에 투입되었다. 특히 대지 공격용으로 개발된 Fw190F/G형은 무려 1톤의 폭탄 장착도 가능했으며 어뢰까지 장착하여 해상 작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폭장을 하고 출격한 Fw190F-8, Fw190의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

[ 장거리 연료탱크를 장착중인 Fw190G-3 ]

Fw190A형은 다양한 무장 변형능력으로 야전 개수도 많이 시행되었고 주익 아래의 무장은 기관포부터 폭탄, 로켓탄까지 다양하게 장착되었다. 특히 30mm 기관포를 무려 4문이나 장비하고 폭격기에 근접하여 사격을 퍼붓기위한 돌격 전투기형까지 있었다. 하지만 중량이 증가되게 되어 공중전에서의 기동성은 많은 저하를 가져왔다.

1944년 서부전선 독일공군의 마지막 대 공세작전이었던 '보덴 플라테' 작전에 참가했던 JG-2의 Fw190A-8이다. 기수의 MG17 기관총이 MG131 13mm 기관총으로 교체되어 조종석 바로앞의 카울링이 볼록해진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Fw190역시 많은 개량형이 존재하였는데 특히 1944년부터 전선에 투입된 이른 바 'long nose', 'Dora'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Fw190D형은 고고도에서의 공중전 능력이 강화된 것으로 프로펠러 전투기중에는 가장 우수한 독일 전투기로 평가된다. 이형은 물과 메탄올 부스터를 장착한 2000마력이 넘는 유모 213A 수냉식 엔진을 장비하여 이전형의 단점인 고고도에서의 성능 저하를 개선했으며 최대속도도 시속 685km에 달했다. D형의 외형상의 특징으로는 엔진 교체로 인해서 앞으로 쭉 늘어난 기수가 특징적이며, 이로 인해 기존형과 확연히 구분된다.

[ 주기해있는 Fw190D, 기수의 모습이 기존의 형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

이형은 고고도에서의 성능 개선으로 연합군 중폭격기의 요격에 사용되었으며 연합군의 전투기들인 스핏화이어 Mk. IX나 P-51D 등과도 호각의 공중전 성능을 과시했다. Fw190D형은 몇가지 파생형이 있으나 Fw190D-9이 실질적인 Fw190D형으로 꼽힌다. 하지만 연합군 전투기들과 호각의 성능을 보였음에도 이미 붕괴된 독일의 산업기반으로 인해서 700여기정도만 전투에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4년 서부전선에서 폭격기 요격에 나섰던 JG-2의 Fw 190D-9이다. 고고도에서의 성능 향상으로 폭격기 요격 작전에서 맹활약 했으나 이미 전세는 기울어 있었고 결국 700여기가 생산되는데 그쳤다. 전쟁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던 기체이다.

 

역시 1944년의 '보덴 플라테' 작전에 참가했던 Fw 190D-9형이다. 엔진 교체로 인한 길어진 기수로 인해서 Long nose Dora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JG-2 소속으로 거의 마킹이 없는 새로운 기체의 특성을 보여준다.

* 베일의 전투기 Ta152H *

독일 전투기중에서 Me 262와 함께 비밀무기로 통하는 몇가지 기종중 Fw190의 최종 파생형인 Ta152H가 있었다. 이 기체는 Fw190D를 개발하면서 주익과 기체가 대폭 개량하여 공중전 성능을 강화한 것이었다. 명칭도 쿠르트 탕크 박사의 이름에서 Ta를 따서 Ta152라는 이름이 부여되었고 이로인해서 Fw190과는 전혀 다른 전투기로 생각되기까지 한다.

최대 속도가 무려 시속 750km를 상회하여 프로펠러기로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1944년 말렵 소수가 생산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미 독일은 더 이상 이러한 기체를 생산할 능력도 없었고 단지 소수가 전선에 투입되었으나 이를 조종할 만한 우수한 조종사는 거의 없었으므로 이 기체 역시 다른 독일공군의 최후병기처럼 독일의 헛된 희망을 대표하는 결과물로 기억되게 되었다.


전쟁이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은 거의 모든 전장에서 점점 앞길이 막히고 전선은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소련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장군 '동장군'의 위력앞에 꽁꽁 얼어붙은 동부전선에서는 파죽지세의 독일군도 별 수 없었고, 독일군이 주춤하는 사이 소련군의 반격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열사의 북아프리카에서는 만성적인 보급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군단이 영국군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했고, 독일이 동부전선에 전념하는 사이 영국은 폭격기 병단을 이용해 독일의 뒤통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2차대전에 뛰어들게 되면서 서부전선의 항공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된후 항상 공격의 선봉에서 적의 공군을 격파하며 위세를 과시하던 독일공군도 이제부터 점점 강력해지는 연합군의 항공전력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날아올라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메서슈미트 Bf 109 스토리의 마지막회로 점점 몰락해가는 독일공군과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날아올랐던 시절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 날아오르는 구스타프

전장의 상황이 점차로 악화되고 연합군의 항공전력이 강화되면서 적의 전투기를 제압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고 있던 Bf 109 전투기에게도 점점 역할의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특히 미-영 연합군이 실전에 투입하기 시작한 랭카스터나 B-17과 같은 튼튼하고 강력한 4발 중폭격기들의 위협이 점점 증대되고 있었기 때문에 Bf 109도 이런 폭격기들을 잡기 위해서 더욱 강력한 화력과 빠른 속도, 높은 고도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는 상승력 그리고 방탄장비등의 강화가 절실했다. 특히 무장 강화의 일환으로 F형의 주익에 곤돌라형의 MG 151 기관포팩을 설치하는 등의 시도가 있었지만 이렇게되면 중량이 크게 증가하여 F형의 DB 601 계열의 엔진의 출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비행성능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나타냈다.

이에 메서슈미트사는 1942년 초부터 새로운 후계기인 Bf 109G형의 설계를 시작했으며 1942년 여름경부터는 Bf 109F형을 생산하던 생산라인은 점점 새로운 후계기인 Bf 109G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로 대체되고 있었다. F형의 생산중단과 함께 전선의 전투기 소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G형의 생산이 급격히 늘어났고, 결국 1942년 가을이 되자 전선의 거의 모든 전투기부대에 Bf 109G형이 배치되었다. 하지만 화력의 강화와 강력한 엔진의 탑재 및 기타 부가장비의 증가는 기체의 중량을 크게 늘리게 되어 Bf 109의 탄생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추구되었던 가볍고 날렵한 제공전투기라는 장점을 잃게 되었다. 늘어난 중량을 커버하기위해서 강력한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Bf 109G형은 F형과 같은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질 수는 없었으며 빠른 속도와 강력한 화력을 주무기로 하는 일격 이탈 전투기로 특성을 바꾸게 된 것이다.

 

[ 훗날의 평가가 어찌되었더 간에 실제로 Bf 109G형은 많은 조종사들의 사랑을 받았던 전투기였다. ]

Bf 109G형은 초기 시험비행 단계에서 몇가지 비행성능의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특히 착륙단계의 비행특성이 크게 저하되어 플랩과 랜딩기어를 내린 상태에서는 접지시에 엔진을 풀쓰로틀로 열지 않으면 곤란할 정도였다. 이로 인해 미숙한 조종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경험많은 조종사들도 착륙단계의 비행특성에 대해 '한마디로 최악이다!'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중에 항공전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게 되면서 독일의 전투기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포케불프사에서 더욱 우수한 Fw 190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이 전투기는 Bf 109를 완전히 대체할 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특히 고공비행 성능과 같은 면에서는 오히려 Bf 109가 더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더구나 Bf 109의 생산성이 더 높았기 때문에 전투기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던 독일로서는 별다른 선택도 없었다. 사실 Bf 109는 전쟁 후반기에는 연합군의 최신예 전투기들에 비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성능을 보이고 있었지만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생산이 이루어졌고 그 숫자는 오히려 더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G 형은 수적으로 볼 때 2차대전 전기간에 걸쳐 생산된 모든 Bf 109 시리즈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생산되었다.

 

[ Bf 109G-0 선행양산형 - Bf 109F와 비슷해 보이지만 고고도 작전을 위해 많은 개량이 가해졌다. ]

Bf 109G 초기형은 F형에 비해 외형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내부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핵심 포인트는 더욱 강력한 출력을 가진 DB 605A 엔진이 장비된 것이었다. 이 신형 엔진은 실린더 블록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몇가지 새로운 설계를 통해 해면고도에서 1475마력, 고도 18700피트에서 1355마력이라는 엄청난 출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반면에 엔진 자체의 크기와 중량이 늘어나 기체 전체의 중량증가를 초래했다.

[ Bf 109G의 심장, 다이믈러 벤쯔 DB 605A 엔진 ]

최초의 선행 양산형인 Bf 109G-0는 2만피트 이상의 고고도로 침투해오는 연합군의 중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고고도 요격기로서 개발된 것으로 높은 고도의 낮은 기압에서도 별문제가 없이 압력을 유지해주는 여압식 조종석을 도입했다. 특히 폭격기 요격시에 적 폭격기의 방어총좌에서 발사되는 총탄으로부터 조종사를 보호하기 위해 조종석에 2중으로된 방탄유리를 도입했는데 정면 창에는 무려 90mm 두께의 방탄유리가 사용되었다. 이외에 고고도의 낮은 온도와 기압에서 자주 발생하여 골치를 썩이는 성에를 제거하기 위해서 방습장비를 추가로 장비하게 되었다. 이외에 F형에서 비행성능의 향상을 위해 도입된 꼬리바퀴의 인입장치가 큰 효용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G형에서는 이를 다시 고정식으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초기분량의 Bf 109G-0형 12기는 기체가 완성된후에도 DB605A 엔진의 마무리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아 결국 F형과 같은 DB601E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으므로 본격적인 G시리즈라기 보다는 실험기적인 성격이 강했다.

 

[ 양산에 돌입한 Bf 109G-1, 고고도 요격기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

 

[ Bf 109G의 조종석 ]

이후 DB605 엔진의 양산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이를 장비한 Bf 109G-1이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이때까지 무장은 F형에서와 큰 차이가 없이 기축의 20mm MG 151 기관포 1문과 기수의 7.92mm  MG 17 기관총 2정이 장비되어 있었다. 후에 북아프리카 전선을 위한 열대형인 Bf 109G-1/Trop형에서는 기수의 기관총이 화력 강화를 위해서 실험적으로 구경 13mm의 신형 MG 131 기관총을 탑재하고 성능을 시험받게 된다.

[ 출격전에 점검을 받는 Bf 109G-1, 고고도 요격기로 설계되었으므로 주로 본토방어 부대에 배치되었다. ]

그러나 G-1형은 GM-1 파워부스터를 장비한 강력한 출력의 DB605A 엔진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공전투기라기 보다는 연합군의 중폭격기를 잡기위한 고고도 요격기로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여압유지 장치를 비롯한 부가장비들의 중량증가로 인해서 그동안 대부분의 전선에서 제공전투를 담당하면서 적기들을 압도했던 Bf 109F형에 비해 전투기간의 공중전에 필수적인 순간 상승력, 선회력등이 크게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조종사들은 이 기체가 전투기간의 공중전에는 부적합하다며 제공전투를 담당하기 위한 개선작업을 요구했다.

특히 독일군의 주요전장이었던 동부전선에서는 점점 성능이 좋아지는 소련공군의 신예전투기들과 중고도 이하에서 제공권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Bf 109F형에서와 같이 제공전투기로서의 우수한 성능도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통상적인 전투기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중고도 이하에서는 불필요한 무거운 여압장치를 제거한 G-2형이 생산되게 되었으며, 아직 MG 131 기관총의 신뢰성이 인정받지 못하면서 무장도 기존의 MG 17 기관총이 다시 사용되었다.

[ 통상적인 전투기로서의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 제작된 Bf 109G-2, 아래의 사진처럼 동체하면에 폭탄을 장착하고 주익하면에 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하는 등의 야전 변형도 있었다. ]

이 G-2형은 이후 생산되는 거의 모든 G시리즈의 기본 골격을 이루게 되었다. 물론 고고도 전투를 담당하는 G-1의 개선형도 계속 생산되어 G-3형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 형은 무선장비를 고고도 작전에 용이한 신형으로 교체하고 늘어난 중량을 감당하기 위해서 랜딩기어 바퀴를 대형으로 교체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G-4형은 G-3형의 여압장치를 제거하고 통상적인 작전에 투입이 가능하도록 제작한 것인데 적은 숫자만 생산된후 최대 양산형인 G-6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개발과정을 통해서 초기에 Bf 109G의 개발은 크게 2가지 경로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고고도 요격기형인 G-1, 3, 5형으로 발전하는 계열이었으며 두 번째는 통상임무에 사용하기 위한 G-2, 4, 6으로 발전하는 계열이었고, 이런 방식으로 계속적인 개발과 생산이 이루어지게 된다.

 

[ JG 1 소속의 Bf 109G-2, 조종사가 날개위에서 신문을 읽으며 쉬고 있는 장면이 이채롭다. ]

 

[ 진흙으로 변해 버린 동부전선의 비행장에서 이륙중인 Bf 109G-2 ]

 

[ 동부전선에서 주기중인 Bf 109G-4 ]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물러나 이탈리아에 주둔중일 무렵의 JG 27 소속의 Bf 109G-4, 1연대의 마크가 잘 보인다. 본기의 주익에는 R1 형의 MG 151 기관포 키트가 장착되어 있다. ]

 

[ 출격대기중인 Bf 109G-4, 피곤해 보이는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반기부터는 강력한 연합군의 항공전력에 대항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지고 있었다. ]

 

* 폭격기를 잡아라

1943년에 들어서면서 독일제국의 하늘을 밤낮으로 침투해들어와 실질적인 위협으로 떠오른 영국공군과 미공군의 중폭격기들을 잡기 위해서 Bf 109G 요격기형의 성능개선이 요구되자 고고도 요격 임무를 맡던 G-3형을 더욱 게량한 G-5형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형에는 신형 DB 605D 엔진이 장착되었는데 이 엔진은 대형 슈퍼차저와 메탄올과 물을 혼합해 주사하는 MW50 부스터를 부착하고 있었다. 이 부스터 장치에서 물과 메탄올이 100 옥탄가의 연료에 뿌려지면 순간적으로 1800마력까지 출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나타냈다. 대개 에탄올과 물은 동체하부의 낙하식 연료탱크에 탑재되었다가 조종사가 필요로 하는 경우 엔진으로 주입되어 순간적으로 강한 출력을 낼 수 있어 폭격기 요격에 필수적인 급상승, 고속순항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 더욱 강력해진 고고도 요격기 Bf 109G-5 ]

Bf 109G5/R2 형에서는 원형기에서부터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있었던 이착륙시의 불안정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수직미익과 러더를 약간 크게 디자인하고 뒷바퀴를 약간 길게 설계했다. 그러나 이런 개선작업후에도 이착륙시의 어려운 비행특성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상태여서 미숙한 조종사들을 괴롭혔다. 이무렵 독일의 자원상황이 악화되어 전투기 제작에 필수적인 알미늄, 듀랄루민등의 경금속 자원이 부족하게 되자 기체 강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꼬리날개 부분은 목재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G-5형에서부터 이전에 실험적으로 테스트 되었던 엔진 카울링의 구경 13mm MG 131 기관총을 표준무장으로 장비하게 되었는데  이 기관총은 MG 17에 비해서 사정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높았다.

 

[ MG 131 기관총의 채택에 따라 Bf 109G-5의 기수에 생긴 돌출부를 잘 볼 수 있는 사진 ]

이 MG 131 기관총과 여기에 탑재되는 탄약 (각 300발)을 탑재하기 위해서 기수의 엔진 카울링 부위에 볼록하게 돌출된 부위 (Bump)가 2개 생기게 되었으며 이후 최대 양산형인 G-6형에서도 이무장을 표준으로 사용되면서 이 기수의 형태가 G형 전체를 상징하는 외형처럼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신형 기관총을 표준무장으로 사용하고나서야 비로서 기존의 Bf 109F형에 비해서 화력의 향상이 현격하게 높아진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당시 서부유럽 상공에서 독일공군의 골치거리였던 영국 폭격기들의 주 방어무장이 7.7mm 브라우닝 기관총이었기 때문이었다.

 

[ Bf 109G형의 화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한 MG 131 13mm 기관총 ]

MG 131 기관총의 사거리가 영국폭격기들의 방어 기관총보다 길었기 때문에 독일 전투기들이 영국 폭격기들을 요격할 때 훨씬 먼거리에서부터 기관총의 조준 사격을 시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군의 B-17, 24 중폭격기들이 가세하기 시작하면서는 이런 이점이 상실되게 된다. 왜냐하면 미군 폭격기들의 방어무장으로 사용되던 캘리버 50 기관총은 구경이 12.7mm로서 MG 131과 거의 같은 사거리와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동부전선에 투입된 Bf 109G-6, 이 형이 G형중 가장 많이 생산된 베스트 셀러 모델이다. ]

G-5형의 고고도 작전용 부품을 제거하여 통상의 작전에 사용하도록 제작한 기체가 G 시리즈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Bf 109G-6형이다. 이 G-6형은 약 12000기 이상이 생산되어 모든 G 시리즈를 통털어 가장 많은 기체가 생산되었다. G-6형은 생산량이 많아 다양한 버전의 DB 605엔진을 사용했으며 무장도 다양한 변종을 사용했다. 특히 G-6형은 장비하는 무장에 따라서 R 타입 (Rustsatz) 과 U 타입 (Umrust-Bausatz)의 대표적인 세부 변형이 존재하는데, 특히 이중에서 중장갑을 자랑하는 미군의 중폭격기를 잡기위해 기축의 무장을 대구경의 30mm MK 108 기관포로 강화한 U형이 유명하다.

[ Bf 109G-6형에서 표준 기축 무장으로 사용되었던 MG 151/20 기관포와 U타입에서 사용된 MK 108 기관포, 포구속도와 발사속도는 MG 151이 더 빨랐지만 파괴력에서는 Mk 108이 더 강력했다고 한다. ]

이 MK 108 기관포는 구경이 30mm였으므로 폭발력이 강했지만 포구속도가 초속 580m 정도로 매우 느린편이었다. 따라서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는 느린 포구속도로 인해 불리했지만 속도가 느린 폭격기 요격임무에서는 느린 포구속도가 별로 장애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가공할 파괴력으로 폭격기 킬러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면서 미군의 폭격기들이 연일 독일 본토를 맹폭하자 화력의 강화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었고 심지어는 주익에 Mk 108 기관포 2문을 추가로 장비하여 총 3문의 30mm 기관포를 장비하는 무시무시한 화력의 Bf 109G-6/U5 형까지도 설계되었지만 지나친 중량증가로 인해 비행성능이 턱없이 떨어져 결국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밤마다 독일의 도시들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골치덩어리 영국 폭격기들을 야간에 요격하기 위해서 '낙소스 Z (Naxos Z)'라 불린 야간 경보-수신 장비를 탑재한  Bf 109G-6/U4N형도 생산되었는데 이 형은 야간에 약 30km 정도의 거리안에서 적의 폭격기가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일종의 레이더였다. 하지만 방향만을 탐지할 수 있었으며 적 푝격기와의 거리는 분간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야간전투기형은 일명 '빌데자우'라 불린 유명한 야간 전투기부대에 의해 사용되어 영국 폭격기들과의 야간 전투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Bf 109의 세부형중에서 가장 많은 생산양을 자랑하던 Bf 109G-6/R6형의 일러스트, 기수에 새롭게 사용된 MG 131 기관총의 채용으로 인해 생긴 돌출부 (Bump)의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다.

 

[ Bf 109G-6/R6 형의 하면 사진, 주익하면의 R 타입 야전 키트를 잘 보여준다. ]

R 타입의 경우에는 기축의 기관포는 MG 151 20mm 기관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익에 옵션으로 장비하는 무장에 따라서 분류하게 된다. 물론 R 타입의 (Rustsatz) 야전키트는 Bf 109F 시절부터 무장강화의 일환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Bf 109G-6 형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G-6형에서 이전 형들에 비해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R 타입의 무장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U 타입의 무장과 구분해서 기술하게 된다.

Bf 109G-6/R1형은 동체하면에 500kg 폭탄을 장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전투폭격기형이고  G-6/R2형은 폭격기 요격용으로 주익하면의 곤돌라에 WGr21 로켓탄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가장 많이 사용된 G-6/R6형은 주익에 MG 151 기관포 2문을 곤돌라를 이용해 추가로 장비한 형이었다.

[ 정비사들이 Bf 109G-6/R6를 격납고로 이동시키는 장면 ]

G-6형에서 사용된 이런 다양한 무장은 독일공군이 미군의 중폭격기를 잡기위해 얼마나 골치를 썩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중에서 WG21 로켓탄의 경우는 폭격기 요격을 위한 것으로서 제대로 명중되는 경우 단 한발로도 중폭격기를 대파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파괴력에서는 기관포에 비해서 월등했지만 정확히 명중시키는 것이 어려웠던데다가 기체의 공기저항을 크게 증가시켜 이를 장비하는 경우 속도가 시속 40km 정도 감소되었고 수평미익에 불안정한 기류를 유발하는 경우가 발생해 비행성능이 크게 저하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정된 숫자만이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 로켓탄을 폭격기에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숙련된 조종사들은 이 로켓탄을 적폭격기 편대의 중앙으로 발사해서 편대 한가운데에서 폭발하도록 타이밍을 맞추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미군의 폭격기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폭발에 놀란 폭격기 조종사들이 편대 벗어나 흩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독일 전투기들이 요격하기에 더 쉬운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이런 방식으로 재미를 본 조종사들은 이 로켓탄을 '풀크 젤스퇴러 (Pulk Zerstörer)'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편대 파괴자 (formation destroyer)'라는 뜻이었다.

 

Messerschmitt Bf 109G-6  Gustav

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5A (1475 마력)

전폭: 9.92m

전장: 9.02m

전고: 3.40m

기체중량: 2700kg

최대중량: 3150kg

최대속도: 623km/h (고도 7,000m)

최대고도: 38550피트 (11750m)

항속거리: 725km

무장: 13mm MG 131기관총 2정 (기수), MG 151 20mm 기관포 (기축)

          - 옵션으로 R6 주익 기관포 야전 키트 장착 가능

 

[ Bf 109G-6의 기수를 정면 모습, 기축의 MG 151 기관포구와 엔진 카울링의 MG 131 기관총구 및 카울링의 돌출부위 (Bump)를 매우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이후 G-6형을 조금더 개선하여 새로운 표준 양산형으로 생산을 계획했던 G-7형이 있었지만 몇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양산에 이르지 못했고 신뢰성이 높았던 G-6형의 양산이 계속되었다. 이외에 주력 변종은 아니지만 고속 정찰기로 사용하기위해 기축의 기관포를 제거하고 신형 RB 12.5/7이나 RB 32.7 정찰용 카메라를 장착한 G-8형도 있었다.

Bf 109G-6형 이후의 주요 개량형 중에서는 G 시리즈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던 Bf 109G-10형이 있는데 이 형은 2000마력을 자랑하는 DB 605DCM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고 주익의 무장은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기축의 무장으로는 MK 108 30mm 기관포가 표준무장으로 채택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개량을 통해 G-10형은 화력의 강화와 빠른 속도를 모두 얻을 수 있었는데, 고도 24250피트에서 시속 693km에 이를정도의 고속을 자랑했으며 단 6분만에 2만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 이륙 활주중인 Bf 109G-10, G 시리즈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

그러나 미군의 중폭격기 요격임무에서는 더욱 강력한 화력이 절실하여 동체 하면에 2문의 MK 108 기관포팩 (탑재 탄수 각 80발)을 추가로 장비할 수 있었던 G-10/U4형도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너무 중량이 늘어나 비행성능이 크게 저하되는 문제가 생겨 야전에서는 대개 이 기관포대신에 동체하면에 고정식으로 탑재하도록 하는 장거리 비행용 연료탱크를 장비하고 작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Bf 109G-6형의 조종석을 잘보여주는 사진, 그렇지 않아도 좁은 조종석에 창틀이 많다보니 시야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원형기가 날아오른 이후에 조종사들로부터 계속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이 문제는 G 후기형에 이르러서야 해결되게 된다. ]

G-10/R2형에서부터는 G-6 후기형에서 일부 시험적으로 사용되었던 '얼라하우베 (Erla Haube)' 혹은 '갈란트 후드 (Galland Hood)'라고 알려진 새로운 조종석이 본격적으로 채택되었으며 G-10/R6형에서는 새로운 피아식별장치 (IFF equipment)가 탑재되어 사용되었다.

 

갈란트 후드?   얼라하우베?

Bf 109G 후기형에서부터 새롭게 선보인 신형캐노피로서 조종사 보호를 위한 방탄장비를 강화하고 캐노피 프레임의 설계를 훨씬 실용적으로 변경하여 조종사의 시야 확보를 용이하게 한 것이다. 원래 독일에서는 이 신형 조종석을 처음으로 생산한 공장의 이름을 따서 '얼라 하우베 (Erla Haube)'라 명명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 조종석의 채택을 추진한 아돌프 갈란트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된 '갈란트 하우베 (Galland Haube)'라고도 알려졌으며 이후 서방의 항공서적에서 이것을 미국식으로 표현한 '갈란트 후드 (Galland Hood)'라는 명칭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이 조종석을 가리키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얼라 하우베 (Erla Haube)'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아돌프 갈란트는 영국본토 항공전이 한창이던 1940년 여름에 자신의 Bf 109E에 망원렌즈를 부탁하고 후방의 방탄판을 제거하여 후방시야를 높이려고 개인적인 개선작업을 한적이 있는데 이때 그의 기체를 '갈란트 판쩌 (Galland Panzer)'라 불렀다고 한다. 이것을 갈란트 후드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Bf 109G 시리즈의 생산형중 전쟁의 최종단계에 작전에 투입되고 있었던 양산형은 G-14형으로서 G-6형을 개선한 것이었다. 이형은 DB605 엔진에 순간출력을 강화시켜주는 MW50 부스터를 모든 엔진에 표준으로 부착하고 있었으며 조종석은 '얼라 하우베'형으로 통일 되었다.

[ 동맹을 기념하기 위해 불가리아에 넘겨진 Bf 109G-6, 얼라 하우베 캐노피를 볼수있다. ]

무장에서는 2정의 MG 131 기관총과 1문의 20mm MG 151 기관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런 경무장 (?)에 더해서 폭격기 요격임무와 같이 강력한 화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예비무장으로 R 키트를 이용하여 주익에 2문의 MG 151 기관포를 추가로 장착할 수 있었으며 2발의 WGr21 로켓탄을 장착하고 출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로켓탄은 210mm 구경에 길이가 1미터가 넘는 것으로 폭격기 요격에만 가끔 사용되는 것이었다.

사실 숙련된 조종사들도 이 로켓탄을 비행중인 표적에 명중시키기가 어려웠다고 하는데 일단 명중하면 단 한발로 폭격기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Bf 110에 장비되어 재미를 보았던 '쉬라게 무지크' 방식의 무장이 Bf 109G-14형에서 시도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무장은 20mm 기관포를 상방으로 경사지게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적 폭격기의 후하방에서 따라가면서 사격하는 것인데 Bf 109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하여 실험적으로만 사용되었다고 한다. (슈라케 무지크에 대해서는 기존에 업데이트된 Bf 110 편에서 참고하시기를....)

 

* 종말은 다가오고

하지만 호위전투기없이 연합군의 폭격기만 날아오던 시기가 끝나고 1944년 말부터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P-51D 머스탱을 비롯한 연합군의 전투기들이 독일본토까지 폭격기들과 함께 날아들게 되면서 폭격기 요격을 위한 중무장을 하고 날아오른 Bf 109G들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기체의 중량증가로 인하여 비행성능이 매우 떨어지게 되면서 머스탱이나 스핏화이어와 같은 주요 적기들과 마주치는 경우의 근접 공중전에서 매우 불리해진 것이다. 심지어는 육중한 P-47 썬더볼트와의 근접공중전에서도 수세에 몰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서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은 연합군 전투기들과의 공중전을 전담하기 위해 기수의 표준무장만을 장비한 경무장의 Bf 109G와 폭격기 요격을 전담하기위해 주익에까지 중무장을 탑재한 두가지 그룹의 Bf 109G를 같이 출격시켜야 했다.

[ 미군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109에 탑승하는 조종사, 점점 독일공군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

그러나 이미 수적으로도 점점 열세에 처한 상황에서 이런 운용방식은 미군의 폭격기 요격작전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다. 경무장의 Bf 109G들이 연합군 전투기들과 맞서 싸우는 동안 중무장의 Bf 109G들이 폭격기를 잡는다는 전술을 사용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합군 전투기들의 숫자가 훨씬 우세했으므로 이런 전술은 제대로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젊은 조종사들이 폭격기를 잡기위해 중무장의 Bf 109G를 몰고 날아올랐다가 숙련된 조종사들이 탑승한 연합군 전투기들에게 꼬리를 잡혀 너무나 쉽게 희생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던 것이다.

[ 영국군에 노획되어 성능 시험에 사용된 Bf 109G-6 ]

더구나 중폭격기 요격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던 독일 전투기들과 달리 연합군의 전투기들은 오로지 독일의 Bf 109와 Fw 190을 잡기 위해서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의 우수한 성능만을 추구하면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연합군 전투기들과의 성능차이가 점점 명백해지면서 경무장의 Bf 109G들도 연합군 전투기들과의 전투에서는 점점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944년초에 영국공군은 우연히 온전한 상태로 노획한 Bf 109G (세부형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G-6/U2형으로 추정되고 있음)를 사용하여 영국공군의 신예 전투기였던 스핏화이어 Mk XIV와의 모의 공중전을 여러차례 실시한후 결과를 보고했다. 이 성능비교 시험은 덕스포드의 비밀 비행장에서 실시되었는데, 영국공군은 1940년 영국본토 항공전이 한창일 무렵 Bf 109E와 스핏화이어 Mk I과의 성능비교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이때 그들은 Bf 109E의 성능이 스핏화이어와 대등하거나 앞서는 면이 많아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던데다가 이후에도 영국에 불시착한 Bf 109F와 스핏화이어 Mk V와의 비교 시험에서도 Bf 109F 쪽이 더 앞서는 성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성능비교 시험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비교 시험이 끝난후 많은 양의 보고서가 제출되었는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핏화이어 Mk XIV   VS   Bf 109G

* 최고 속도면에서 우리의 스핏화이어가 Bf 109G에 비해서 거의 모든 고도에서 시속 60km 정도 앞섰으며 16000피트 정도의 고도에서만 두 기체가 비슷하거나 스핏화이어쪽이 시속 10km 정도 빨랐다. 전반적으로 스핏화이어의 속도가 대부분의 고도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 상승능력의 비교결과, 순항속도에서 상승코스로 접어든 양 기체는 16000피트까지는 거의 비슷하게 도달했다. 하지만 풀쓰로틀 상태로 급상승 하는 경우 우리의 스핏화이어가 Bf 109G에 비해서 약간 빨리 상승할 수 있었다.

* 강하능력의 비교결과, 강하로 진입하는 순간에서는 Bf 109G의 가속이 약간 더 빨랐다. 하지만 속도가 시속 611km 정도로 이르게 되면 스핏화이어의 가속능력이 더빠르게되어 109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 선회능력의 비교에서는 늘 그래왔듯이 우리의 스핏화이어가 Bf 109G에 비해서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 결론적으로 스핏화이어 Mk XIV는 Bf 109G에 비해 모든면에서 우월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대등한 조종사가 탑승하고 있다면 공중전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

이런 어려운 상황은 그동안 독일공군이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하고 있었던 동부전선의 하늘에서도 점점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수한 조종사들과 많은 전투기부대가 미-영 공군의 폭격기들을 요격하기 위해서 서부전선으로 이동하자, 그동안 독일공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던 소련공군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해졌다. 더구나 소련이 야심차게 제작한 신예전투기들이었던 야크-3, 야크-9, La-7등의 전투기들은 근접공중전에서 Bf 109G와 대등하거나 약간 상회하는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독일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몇배나 많은 적기들과 맞서싸우며 악전고투를 벌이게 되었고 결국 동부전선의 붕괴상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영웅의 귀환, Bf 109G의 슈퍼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이 300기 격추를 돌파한후 귀환하고 있다. 이 드라마와 같은 사진은 종군기자에 의해서 연출 된 것이라고 한다. ]

한편, 동부전선의 지상전에서 소련의 맹공이 연일 이어지면서 독일 지상군이 연일 패퇴를 거듭하게 되자 지상군을 근접지원할 수 있도록 Bf 109G-14형을 기본으로 하여 장갑판을 강화화하고 동체하면에 폭탄을 장비하도록 하는 대지공격형 전폭기인 Bf 109G-16형이 설계되기도 했지만 이 기체가 본격적으로 전선에 투입되기도 전에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나게되었다.

[ 연합군에 노획된 Bf 109G-10]

Bf 109G형은 F형과의 교체가 한창 이루어지던 1942년 중반이후 42년 말까지 2664기가 생산되었지만 점점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전투기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던 1943년에는 6418기가 생산되었고, 이후에는 생산공장들이 독일의 전 지역으로 더욱 분산되고 이외에도 헝가리, 루마니아등의 동맹국으로까지 분산되면서 총 생산양은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이무렵 이들 항공기 공장에 대한 연합군의 폭격작전이 더욱 증가하고 더 우수한 성능의 FW 190이 본격적으로 생산되었지만 Bf 109의 생산양은 오히려 더 증가하여 1944년 한해동안의 생산양이 총 14212기에 이르를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동맹국들에 대한 전투기 수출도 이루어져 G형의 경우 불가리아에 145기, 핀란드에 70기, 루마니아에 70기, 일본에도 2기가 수출되었으며 헝가리에도 59기, 스페인에도 25기, 체코에도 15기가 수출되었다.

[ 조종사의 부족이 심각해지자 초보 조종사들을 교육하기 위해 급히 2인승으로 개조한 Bf 109G-12 ]

흥미로운 사실은 1945년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독일국내의 통신망이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에 독일 각지에 흩어져있는 생산공장에서는 전쟁이 끝난 것을 몰랐기 때문에 한동안 전투기 생산작업이 계속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전후에 생산된 Bf 109G형은 총 2969기나 된다고 하며 이중 1074기가 레겐스부르그의 공장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 이 기체들은 대부분 생산되자마자 폐기처리되거나 독일을 점령한 연합국들에게 훌륭한 전리품으로 인정되어 압류되었다.

* 너무 늦었고 너무 적었다.

최종 양산형인 Bf 109G 시리즈 이외에도 Bf 109 가문에는 몇가지 특이한 개량형들이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양산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적은양만이 생산되었거나 시험비행 단계에서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을 것이지만, 이런 기체들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도록 한다.

[ Bf 109G-6 형의 바로 앞에서 촬영한 사진]

1943년, 고고도 작전을 위해 생산된 Bf 109G-1형의 성능이 기대에 못미치자 메서슈미트사는 본격적인 고고도 요격기를따로 설계하려고 했다. 이 계획으로 생산된 적은 수의 실험기들이 있었는데 이형이 Bf 109H형이었다.  이 형은 Bf 109G의 발전형이라기 보다는 G형과는 별도의 개발과정을 통해 제작된 것으로 Bf 109F형의 기본틀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이 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고고도 작전을 위해서 주익이 1미터 정도씩 더 연장되었던 것이다. 수평미익도 약간 길계설계되었는데 늘어난 부하를 감당하기 위해서 Bf 109E형까지 사용되었다가 폐지된 수평미익 지지대가 다시 부활되었다. 최초의 Bf 109H-0형은 F형까지 사용되던 DB601E 엔진을 사용했다가 H-1형에서는 G형에 사용되는 부스터가 장비된 DB605A 엔진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H형은 1944년 까지 계속 성능시험을 받게되었는데 고고도 작전을 위해 설계된 기체답게 고도 470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으며 최고속도가 시속 755km에 이르를 정도로 고속성능도 가지게 되었다. 무장에서는 기수의 7.9mm  MG 17 기관총 2정과 기축에 30mm MK 108 기관포를 표준으로 장비하도록 했으며 나중에는 주익에 2정의 13mm  MG 131 기관총을 추가로 장착하도록 강화되었다. 그러나 메서슈미트사로서는 아쉽게도 이 기체의 길어진 주익이 강하중에 불안정한 진동을 유발하는 등의 몇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고 있었던 데다가 라이벌인 포케불프사에서 같은 용도로 개발하고 있었던 Ta 152H를 선보이면서 이 기체에 비해 Bf 109H형의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독일공군측에서 메서슈미트사에 더 이상의 개발을 중단하도록 명령하여 결국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메서슈미트사는 비밀리에 1750마력의 강력한 유모 213E을 장착할 수 있도록 하고 무장을 1문의 MK 108 30mm 기관포와 2문의 MG 151 기관포로 강화한 H-2형과 1700마력의 DB605L 엔진을 탑재한 H-5형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모두 점점 열악해지는 사정과 독일공군의 채택거부로 인해서 생산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 비록 제대로 활약할 기회는 없었지만 Bf 109 가문에서 최고의 성능을 가졌던 Bf 109K-6 ]

1944년 가을경에는 Bf 109K 시리즈의 개발이 추진되어 몇몇 시제기들이 시험비행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 형은 Bf 109G를 근간으로 하여 몇가지 구조적인 변경을 시도하고 MW50 부스터가 장비된 DB605D 엔진과 이후에 계속 생산되는 이 엔진의 변형들을 표준으로 장비한 것이 특징이었다. K형은 K-4, K-6, K-14의 3가지 형이 생산되었는데 K-4형은 2문의 20mm MG 151 기관포를 기수에 장비하고 기축에는 30mm MK108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여 Bf 109 전시리즈 중에서 가장 강력한 표준무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 '얼라 하우베'를 완전히 제식으로 채용하면서 고고도 요격작전용의 여압식 조종석도 표준으로 장비되었다. 이 형은 해면고도에서 시속 610km, 고도 2만피트에서 시속 732km의 최고 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410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고 상승력도 뛰어나 16400피트까지는 3분, 32000피트까지 6분 30초면 올라갈 수 있었다. K-6형 같은 경우는 K-4형에서 기수의 무장을 MG 131 기관총으로 변경하여 기체의 중량을 줄이고 주익에 옵션으로 MK 108 기관포를 장착하거나, 또는 같은 30mm 기관포이면서도 훨씬 빠른 고속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개선된 MK 103 신형 기관포를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K-14형은 주익의 무장을 젼혀 장비할 수 없도록 하여 고도 3만7천피트에서 시속 737km의 최고속도를 기록했다.

이 K형의 경우 K-4, K-6형은 전쟁말기 실전에 모습을 나타냈지만 K-14형은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사실 이 기체들은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들인 P-51D나 스핏화이어 후기형등과도 대등한 수준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전에 투입된 700여기의 K형들은 그 수가 전쟁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적었으며 더구나 기나긴 전쟁으로 조종사 자원이 바닥났던 전쟁 말기에는 이 기체들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조종사들이 거의 없어 대부분 제대로 이착륙도 할줄 몰랐던 햇병아리 조종사들이 탑승한채로 날아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출격한 조종사들은 대부분 연합군 전투기들의 쉬운 표적이 되어 살아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Bf 109G/K 일러스트 Collection ◆

 

1943년 튀니지 지역에 배치된 JG 2 전투비행단 11중대장 율리우스 마임버그 대위의 Bf 109G-1, 고고도 요격기로 설계된 기체였으므로 주로 연합군 중폭격기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던 서부전선이나 이탈리아 전선에서 사용되었다.

 

1942년 5월 프랑스에 배치된 기체로서 역시 JG 2 전투비행단의 Bf 109G-1이다. 기수의 강아지는 제 1중대의 엠블렘이다. 이무렵 JG 2는 한창 Fw 190으로 기종을 변경하고 있었지만, 제 1중대는 고고도 요격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Bf 109G-1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943년 이탈리아전선에 배치되었던 JG 51 전투비행단 소속의 Bf 109G-2/Trop, 기수의 독수리 문양이 '묄더즈 비행단'이라고 불리던 JG 51의 부대마크이다. 트롭형의 특징적인 방진필터를 볼수있다.

 

초록색의 하트를 부대마크로 사용하던 JG 54 전투비행단 제 4중대의 Bf 109G-2, 1942년 여름경의 도색으로 동부전선의 각부대마다 다르게 응용한 특징적인 하계용 도색을 사용하고 있다.

 

1943년 5월, 동부전선에서 활동중이던 JG 52 전투비행단 5중대 소속의 Bf 109G-4, 이 형까지는 기수의 무장이 MG 17 기관총이었으므로 기수의 돌출부 (Bump)는 보이지 않는다. JG 52는 동부전선에서 가장 용명을 떨친 전투비행단으로 Fw190을 채택하지 않고 오로지 Bf 109만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Bf 109G5/U2 형으로 전쟁이 끝난후 3년이 지난 1948년 핀란드 공군에서 사용하던 기체이다. 기수의 국적마크는 전후에 새롭게 도안된 핀란드 공군의 국적마크이다. 이 기체는 이후에서 상당기간 현역으로 활동했다고 하며 Bf 109에서는 드물게 사용되던 샤크 마우스를 도색하고 있다.

  

1942년 6월, 이탈리아 칸셀로에 주둔중이던 JG 53 전투비행단 6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연합군의 폭격기를 잡기위해 주익 하면에 R6 야전 키트를 장착하고 있다.

 

1944년 1월 이탈리아 오베리토에 주둔중이던 JG 53 소속의 기체이다. 기수의 스페이드 마크가 JG 53의 부대마크로서 이무렵 본격적으로 시작된 연합군의 이탈리아 침공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1944년 11월, JG 52 전투비행단 4중대장으로 활동할 당시의 슈퍼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의 Bf 109G-6, 기수의 특징적인 문양은 매우 유명한 것으로 이른 바 '덩클 튤립 (검은 튤립)'으로 불리던 하르트만의 개인 도색이다. 훗날 소련공군 조종사들이 이 문양을 본후 교전을 희피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하르트만은 이 도색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신참 조종사들에게 도색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형 알러하우베 캐노피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1944년 11월 이탈리아의 공식적인 항복이후에도 항복을 거부하고 북부 이탈리아를 근거지로 연합군과 끝까지 싸웠던 ANR 소속의 Bf 109G-6, 독일공군은 이 ANR에게 많은 지원을 했다. 본 기체의 조종사는 이탈리아 공군의 유명 에이스 유고 드라고이다.

 

1944년 11월, 동부전선에서 활동하던 크로아티아 전투비행단 소속의 Bf 109G-10/U4, Bf 109G-10부터는 러더의 형태가 기존 형들에 비해 달라진 것이 특징이다. 이 부대는 형식적으로는 크로아티아 의용 조종사들로 구성되었다고 선전되었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에 독일공군 조종사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1944년 11월 북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ANR 소속의 Bf 109G-10, G-10형은 G-6형과 달리 기수의 돌출부 (bump)가 없는 경우가 많다.

 

1944년 6월 독일 본토의 야간 방공임무에 투입되었던 Bf 109G-10/U4N형이다. 이 기체는 야간작전을 위한 소형레이더를 탑재하고 있었다. 기수의 멧돼지 마크가 부대마크로서 이른 바 '빌데 자우 (야생 멧돼지)'라 불리던 유명한 부대이다.

 

1945년 1월 JG 2 소속으로 본토방어전을 위해 투입된 Bf 109K-4, 후부 동체의 노란색과 흰색의 띠는 이 기체가 이른 바 '제국 수비대 (Defence of Reich)' 소속임을 표시하고 있다.

 

1944년 10월 라인강 방어작전에 사용되었던 JG 27 전투비행단 1연대의 Bf 109K-4, 한때 북아프리카에서 용명을 떨치던 부대였지만 이무렵에는 역전의 에이스들이 대부분 전사하고 햇병아리 조종사들만이 남아 막강한 엽한군의 항공전력에 맞서고 있었다.

 

* 전쟁은 끝났지만...

Bf 109시리즈는 원형기가 날아올랐던 1936년부터 거의 10여년간 독일공군의 최일선 전투기로 활약한 기체였다. 전쟁기간내내 독일과 동맹국에 분산된 생산공장에서 너무나 많은 기체가 생산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생산기수의 집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략 3만3천기 이상이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독일공군이 전쟁기간동안 생산한 모든 단좌 전투기의 6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 기체는 전후에 독일의 기술력을 넘겨받은 체코나 스페인에서 변형기들을 생산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계속 생산된 변형기들까지 계산하면 15년정도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에어쇼에 등장한 스페인 히스파노사의 Ha 1112, Bf 109G형의 핏줄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영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Bf 109 계열기중에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수가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2차대전을 다루는 항공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기체이다. ]

특히 전후에 상당한 무기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체코에서는 Bf 109G-14형을 기본으로 하는 변형을 자체 생산했다. 이 기체는 Avia S-99, S-199등으로 명명되었는데 DB 엔진을 조달할 수 없어 융커스 유모 211F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엔진과 기체의 밸런스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 그다지 좋은 비행성능을 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스페인에서도 전후에 Bf 109G-2 형을 기본으로하는 변형을 자체 생산했고 이 시리즈는 히스파노 Ha 1112로 명명되었다. Ha 1112에는 여러 가지 엔진이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스핏화이어에 사용되던 머린 엔진을 장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스페인제 Ha 1112 시리즈는 1970년대까지도 스페인 공군에서 사용되었으며 이후에 잔여기체들은 각국의 영화사와 박물관으로 판매되어'공군대전략 (Battle of Britain)', '멤피스벨 (Memphis Belle)', '다크블루 월드 (Dark Blue World)'등의 많은 유명 항공전 영화에서 Bf 109의 대역으로 등장했다. (2차대전이 끝난후 제작된 많은 전쟁 영화에서 진품 Bf 109는 거의 볼 수 없으며 대부분 스페인에서 생산한 HA 1112가 Bf 109의 역할을 맡게 된다. 물론 이 기체도 Bf 109시리즈의 설계를 기본으로 제작된 일종의 후계기이니 전혀 엉뚱한 기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헝가리에 남겨진 Bf 109G-10, 헝가리 공군은 본 기체들을 전후에도 상당기간 주력 전투기로 사용했다. ]

물론 2차대전중 사용되었던 진품 Bf 109G의 잔존기들도 전후에 각국에서 상당기간 일선전투기로 사용되었다. 이중에서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루마니아, 헝가리등에서는 상당수의 기체가 남아1955년까지도 공군 전투기로 사용되었으며, 핀란드 공군도 1950년대 중반까지 최일선 전투기로 사용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나찌라고 하면 철천지 원수로 여겼던 이스라엘에서조차 독립전쟁이던 1차 중동전에서 체코에서 생산한 Avia 전투기들을 수입하여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다.

* 연재를 마치면서

메서슈미트 Bf 109 시리즈는 2차대전 기간내내 독일공군이 참가한 모든 전선에서 연합군을 괴롭혔지만, 히틀러의 헛된꿈과 함께 점점 독일의 운명은 파멸로 치닫게 되었으며, 결국 제 3제국이 완전히 파멸할 때까지 이 전투기와 조종사들은 조국을 지키기위해 계속 날아올라 강력한 적기들에 맞서 죽을 때까지 싸웠다.

Bf 109는 2차대전 기간중 항상 독일공군의 핵심전력이었으며 한때는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서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존재였다. 주로 동부전선에서 소련공군을 상대로 총 352기 격추라는 세계최고의 격추기록을 달성한 슈퍼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의 경우 자신이 처음부터 탑승하기 시작한 Bf 109에게 큰 매력을 느껴 Fw 190이나 Me 262로의 기종전환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끝까지 Bf 109를 타고 날아올랐다고 한다. 훗날 그는 서부전선에서도 Bf 109G에 탑승하고 P-51D등의 연합군 전투기들을 10여대 격추시켰다고 하니 조종사의 기량만 따라준다면 Bf 109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연합군에게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비록 나찌독일을 상징하는 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메서슈미트 Bf 109는 너무나 인상적인 행적으로 인해 영국의 스핏화이어와 함께 쌍벽을 이루며 아직까지도 항공기 매니아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항공전의 역사가 이어지는한 영원히 전설적인 불멸의 전투기로서 기억될 것이다.

foxmouse: 그동안 업데이트가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유로 몸도 마음도 지친상태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두달이 넘어서야 Bf 109편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계속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 여하간 연재가 끝날 때는 늘 그렇지만... 시원섭섭합니다. GWP의 다음회에는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마이너 아이템인 하인켈 He 112에 대한 이야기를 계획중입니다. 그나저나 요즘같이 지내서야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 없겠네요.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foxmouse: Bf 109 리뷰가 업데이트 된후 리뷰에 몇가지 잘못된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메일과 게시판을 통해서 제보되었습니다. foxmouse가 리뷰를 할때 참고로 했던 서적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이 글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여 원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오류에 대해서 보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불타는 하늘을 방문해주시는 모든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류에대한 지적을 받았지만 불타는 하늘의 원문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겠습니다.)

* 조규철님 (zetaplus2)의 지적

우선MG-131 장착 실험기체는 G-1/trop 이 최초가 아닙니다. 이미 41~42년에 갈란트의 F-2를 개조해서 장착한바 있으며 소수의 F-4형 시제기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F-2에는 갈란트 스페셜이라는 기체가 두개 존재하는데 하나는 카울링의 MG17을 MG131로 교체한 기체와 다른 하나는 주익에 MGFF/M기관포를 기존 E형 처럼 장착한 형입니다. 중량 증가로 인한 엔진세팅변경으로 100옥탄가의 휘발류를 사용했습니다.)

Bf-109 G-5/6/14에 DB605 DCM엔진이 탑재되었다고 하셨는데 잘못됐습니다. G-10형을 제외한 G-5,G-6,G-14는 DCM엔진에 준하는 AS엔진이 탑재된 통칭 AS버젼이 있습니다. (G-5/AS, G-6/AS, G-14/AS) 카울링부분(기수무장부분)은 G-10,K-4처럼 재설계되어, 외양식별은 기수하면 오일쿨러 앞부분 좌우에 돌출된 오일범퍼가 없으면 AS버젼 있으면 G-10으로 볼수 있습니다. DCM을 탑재한 G-10,K-4는 기수 하면에 죄우에 돌출된 오일범퍼가 있습니다. 그리고 AS버젼은 대전말기에 극소수가 생산된 버젼으로 일선부대에 "몇기씩" 기존 기체들과 혼성편재되어 사용됩니다. 5/6/14의 통상버젼 즉 일반생산된 기체는 95%이상이 DB605A 1475마력을 탑재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의 바르크호른의 G-5는 DB605A엔진을 탑재한 기체입니다. 일반기체 모향 MG131으로 인해 둥근벌지가 생긴 기체엔 AS나 Dcm엔진이 탑재된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K-4의 무장은 통상 MG131 2문에 Mk108 1문으로 기수에 MG151 2문이 탑재됬다고 하신건 소수의 실험기입니다. 그 실험기 조차 20mm MG151/20이 아닌, 15mm MG151/15가 탑재되었습니다.

* kweassa님의 지적

안녕하세요.

아주 오래동안 수많은 2차대전 항공기 관련 서적에서 볼 수 있었던 오류가 여기에서도 보이네요. 아마 사용하신 자료의 오류일 듯 합니다. 처음에 이 글 시작할 때는 오류만 간단하게 지적하고자 했는데, 각각 근거를 달다보니 109 "Kurfurst"형에 대한 보론 정도로까지 분량이 늘어나버렸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

리뷰 3편, "제국의 수호자"편에서;

" K-4형은 2문의 20mm MG 151 기관포를 기수에 장비하고 기축에는 30mm MK108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여 Bf 109 전시리즈 중에서 가장 강력한 표준무장을 가지고 있었다. "

이 문장이 보이는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MG151 기관포를 기수에 장착한 Bf109는 역사상 단 한대도 없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오해로, 신형 MK103 30mm 기관포를 축에 장착했다는 얘기도 다른 자료들에서 가끔 보이는데, 이것도 사실무근입니다. 또, K-14 형이나 K-6형 등에서 날개에 15mm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는 것도 오류입니다.

이 오류가 추적되는 것은, 서구에서 2차대전 비행기들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한 1세대에 속하는 그린(Greene)과 노와라(Nowarra)씨의 저작들에서부터 출발하는데, 그 두 사람의 저작에서 Bf109K형의 기수에 MG151 15mm 기관포가 사용되어 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에델(Ethel), 그린셀(Grinsell), 프리먼(Freeman) 등의 공저로 되어 있는 "Great Book of World War Two Airplanes"에서도 그린과 노와라의 기초조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각각의 저자들이 각각 집필한 109에 대한 여러 저서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후에 거의 모든 서적에서 서로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이 오류가 퍼져나갔습니다.

MG151 기관포는 기본적으로 관통성 AP탄을 사용하는 15mm 기관포로써 제작되었습니다. 후일, 탄의 크기를 20mm로 늘리고, 폭발성 HE탄을 사용하였으며, 그것을 발사할 수 있도록 포신을 개량한 것 외에는 MG151/15와 MG151/20 기관포는 크기 면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다음, 1944년 10월 표준, 11월 개정판으로 명시되어 있는 Bf109K-4 파일럿용 핸드북의 사진들에서 MG131의 장착형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의 장착형태에서 보듯, MG131 기관포도 빠듯하게 자리에 꼭 맞는 형태입니다. MG151은 MG131 보다 길이가 2배 가량 되는, 훨씬 거대한 무기인 만큼, 카울링에 어떻게해서든 어거지로 장착되었다면 아마 포신이 프로펠러 근처까지 왔을 겁니다. 기실, 다른 109 기종들에서 기축에 장착한 한 정의 MG151도 기관포 후위를 가리는 덮개가 조종석에서 파일럿 가랑이 사이에 위치할 정도이니까요.

이 오류는 Bf109K 기종에서, E형 "에밀"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날개무장 기관포의 부활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Bf109K-6 및 K-8형은 실존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 전투기들의 도면은 남아있습니다. 기획단계였는지, 실제 제작되었는지는 불투명합니다. 어쨌든, 그 도면에 의하면 날개 부위의 무장으로 MG151 기관포가 지정되어 있었는데, 1944년 시점에서는 MG151/15, 15mm 기관포는 단종되어 있었습니다.

즉, 1944년 이후에 독일군 문서에서 등장하는 모든 "MG151"은 전적으로 MG151/20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당시의 독일군 관계자들에게는 따로 주석이나 주해가 필요 없는 상식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후세의 연구자들에게는 오해와 오류의 원인이 되었겠지만요.

예컨데, 1944년 6월 23일의 작업으로 기록된 전투기 도면에, "BF109K-8, 1 Motor MK103 2 Flügel MK151"라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윌리엄 그린씨와 같은 초기의 연구자들은 어떤 경위에서인지, 이 내용을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저서 "War Planes of the Third Reich"에 의하면;

"…후일에 생산된 Bf109K-4형은 기축에 표준장비인 MK108 대신, 30mm MK103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MK103 포신의 외부를 감싸고 있는 지름 2.5인치 덮개로 인해 전투기 장착을 위해서는 포신을 교환해야 하는 귀찮은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MK103은 다른 K형들에도 사용되었는데, 전적으로 폭격기요격 임무를 가정하여 제작된 Bf109K-6형의 경우에는 축 기관포 외에도 날개에 곤돌라 장착을 통해 각각 MK103을 기관포를 추가로 장비하고 있었으나, 기수의 15mm 기관포는 기존의 MG131 13mm 기관총으로 교환되었다..."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무려 세 정의 MK103에 두 정의 13mm 기관총을 장착한 프랑켄슈타인 괴물과도 같은 Bf109K-6형이 실제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후일의 연구에 의하면 물론, 이와 같은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MK103의 장착은 실험적인 형태로, 실용화 단계에 조금도 근접하지 못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Flügel MK151(날개의 MG151)"이 "기수의 MG151 15mm"로 둔갑한 것입니다. 설사 기수에 MG151을 장착했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히 15mm가 아니라 20mm MG151/20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구요.

따라서, 결과적으로 정리하자면;

1) G형의 후속기종인 K형이 기획되면서, 늘어가는 미군 폭격기의 위협을 상대하기 위해 E형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날개무장 기관포를 부활시키고자 한 시도는 사실입니다.

2) 이와같은 무장형태는 "표준형" K-4외에, K-2, K-6, K-8, K-14 등의 기종에서 계획단계에 있었으며, 이 계획은 날개에 MK108을 장착하거나, 기존의 109G에서 비행성능에 악영향을 끼친 곤돌라와 같은 외부장착형 20mm 기관포를 날개 안에 장착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그 시점에서는, 어느 위치에 장착하던간에 장착되는 "MG151"은 MG151/20 20mm 기관포이지, 15mm 기관포가 장착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4) 어떠한 경위로 인해, 날개 내부에 장착하도록 계획되어 있던 MG151/20 20mm 기관포가 15mm 로 오해를 받은 후, 기수의 MG131 대신 장착되었다는 '신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MG131이 장착되는 카울링 구간에 MG151을 장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5) 독일군에 존재한 유일한 K형은 K-4 뿐입니다. 종종 언급되는 여타의 K형들은 실존하지 않았거나, "프로토타입"단계라고 부르기도 힘든, 지극히 실험적인 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꽤 확실한 증거들이 많다고 합니다. 또, 1945년도의 공중전 피해를 기록한 독일군 자료에는 K-4형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K-2: 한 대의 실험기 제작

K-6: 한 대의 실험기 제작

K-8: 실존하지 않음. 도면만 존재

K-14:

K-14형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설이 있습니다. 카이든과 같은 연구자들에 의하면 두 대가 제작되어 JG52에 제공되었다고 하고, 이와같은 주장은 80년대 까지는 정설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K-14"라고 알려진 이 전투기들은, 신형 DB엔진인 DB605L을 장착한 K-4형이었으며, 실제 K-14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즉, 실제로 K-14형이 제작된다면 장착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DB605L 엔진을 K-4에 장착시켜 K-14에서 예상할 수 있는 성능수치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 제작된 특별한 실험기들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정식으로 제작되어 DB605L 엔진을 탑재한 K-14형 또한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DB605L을 장착한 K-4형의 속도, 메서슈미트AG, 아우크스부르크 문건

6) 아이러니컬하게도, E형 이후로 다시 한번 날개무장을 지니게 된  Bf109는, 대전 후 스페인에서 생산되어 멀린 엔진을 장착하고 히스파노 20mm로 무장한 기종이 유일한 것입니다.

독일의 침략으로 유럽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1939년부터 독일공군은 엄청난 위세를 과시하며 전 유럽에 공포와 충격을 몰고왔다. 하늘에서는 Bf 109를 앞세운 독일공군이 연합군의 전투기들을 일소하며 창공의 전설을 만들고 있었으며 지상에서는 독일공군의 원호를 받고있는 전차군단이 질풍같은 속도로 서유럽을 가로지르며 독일군에 저항하던 영불 연합군을 신속하게 두동강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약 2년의 기간동안 독일공군은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받으며 서유럽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부전선을 휩쓸어 버리면서 그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 절정에 달한 영광의 시절동안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로 활약했던 전투기가 바로 Bf 109E형과 Bf 109F형이었던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회에서는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의 두 번째 이야기로 이 전투기가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시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진정한 전투기로

[ Bf 109V13 시제기의 사진, Bf 109E의 탄생으로 이어지게되는 기체이다. ]

Bf 109V1 시제기부터 Bf 109D형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숨가쁘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던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로소 Bf 109E라는 멋진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Bf 109E형은 Bf 109 가문에서 최초의 대량 생산형이었으며 1939년 말까지 최일선의 전투기부대에서 Bf 109 선행형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전투기들을 밀어내고 대체하면서 최일선 주력전투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까지 독일공군의 최정예 13개 전투기 연대가 각 40기씩의 Bf 109E를 배치받았는데 이 전투기들이 전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게 된 것이다. 대개 Bf 109 시리즈를 분류할 때 A형부터 E형까지를 1세대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Bf 109E형은 1세대 Bf 109의 결정판으로서 진정한 Bf 109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조종사들 사이에서 '에밀 (Emil)'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1937년의 국제 항공대회에서 시험적으로 제작된 DB 601엔진을 장착하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Bf 109V13의 놀라운 성능에 고무된 BFW사는 이 엔진을 장비한 신형기를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새로운 벤쯔 엔진은 기존에 사용했던 유모 엔진에 비해서 크기가 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체에 많은 개량이 가해졌다.

[ Bf 109E의 심장 - 다이믈러 벤쯔 DB 601 엔진의 모습, 이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존형에 비해 기수의 형태가 많이 변하게 되었다. 이 벤쯔 엔진의 탁월한 성능이 Bf 109E에게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선사해 주었다. ]

우선 동체가 유모엔진을 장착했던 C/D형에 비해서 10cm 길어졌으며 냉각계통도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어야 했다. 기수 하면의 커다란 공기흡입구가 축소되어 윤활유 냉각용 공기흡입구로 사용되었으며 냉각수를 위한 공기흡입구는 양쪽의 주익 하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엔진출력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 새롭게 디자인된 3날의 VDM 프로펠러가 사용되었고, 이 프로펠러는 피치조절이 가능했다. 이런 다양한 변화의 결과로 전체 중량은 450kg이나 증가하게 되었지만 엔진 출력이 이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더 강력해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행성능에는 많은 향상이 있었다.

1938년 여름에 1100마력급의 DB 601A 엔진을 장비한 시제기 Bf 109V14의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이 형은 기수의 MG 17 기관총 2정에 더해서 주익 장착 문제가 해결된 MG FF 20mm 기관포 2문을 시험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로서 숙원이었던 20mm 기관포를 가지게되자 화력강화의 문제는 해결된 듯 했지만 Bf 109의 기체설계가 근본적으로 무장을 기수에 장착해야 최고의 비행성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메서슈미트 박사는 기축에 20mm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는 설계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기축선 기관포를 탑재하고 주익의 무장을 제거한 Bf 109V15 시제기를 제작하여 시험비행에 참가시켰다.

[ JG 20 소속으로 실전배치된 Bf 109E-1, JG 20 전투비행단 제 1중대장이었던 발터 외자우 대위의 기체이다. 훗날 이 중대는 JG 51의 7중대로 개편되어 동부전선에 투입되게 된다. 기수의 활 엠블램은 중대의 상징이다.  ]

야전부대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선행양산형인 Bf 109E-0형이 급히 생산되었는데 아직 기관포의 탑재가 적용되지 않아 이 형은 Bf 109C형과 같이 기수와 주익에 4정의 MG 17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E-0형의 양산작업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곧 본격 양산형 Bf 109E-1가 생산되었다. 이 Bf 109E-1형은 기관총 4정의 무장은 같았지만 주익의 기관총을 야전에서 MG FF 기관포로 쉽게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야전 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는 즉시 주익의 무장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주익에 장착되도록 개량된 MG FF 기관포는 스위스 오리콘사의 오리지널 모델에 비해서 포구속도가 떨어져 사거리와 파괴력이 덜어졌지만 화력 강화를 위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사용되었는데, 이 기관포를 장착하는 경우 탄약 드럼의 부피로 인해서 주익 하면에 약간 불룩해 보이는 돌출부가 생기게 되었으며 20mm 기관포탄의 최대 탑재가능 탄수는 각 60발이었다.

[ 야전부대에서 정비병들이 Bf 109E-1의 주익에 MG FF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는 장면 ]

이때까지는 Bf 109도 제공전투 이외에 지상공격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받고 있었으므로 50kg 폭탄 4발 혹은 250kg 폭탄 1발을 장착할 수 있었던 전투폭격기형 Bf 109E-1/B 형도 같이 생산되었다. 이후 독일공군이 Bf 109E의 본격적인 대량 생산을 요구하면서 아욱스부르크의 생산공장이 레겐스부르크로 이전하게 되었고 다른 항공사의 몇몇 공장들에서도 생산에 참여하게 되면서 1939년 말까지 총 1540기의 기체가 생산되게 되었다.

이후에 Bf 109E-2형에서는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포 2문을 표준으로 하게 되었으나 기축선에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겠다는 메서슈미트 박사의 집념으로 프로펠러축에 MG FF 기관포를 장비하는 Bf 109E-3가 제작되었으며 이 E-3형이 Bf 109E중에서 가장 많은 수가 생산되어 E형을 대표하는 주요한 생산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1940년 초부터 생산이 시작된 Bf 109E-3는 기축의 20mm 기관포 1문외에 엔진 카울링과 주익에 각 2정씩 총 4정의 기관총을 장착하도록 했다.

그러나 기축선 기관포는 여전히 잦은 고장을 일으켰으며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불만이 속출하여 대부분의 야전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면   이 기관포를 아예 떼어 버리고 주익의 기관총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해서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생산라인에서도 기축선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고 주익에 2문의 기관포만을 장비하도록 변경하게 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Bf 109E-3는 애초의 설계와는 달리 주익의 기관포 2문, 기수의 기관총 2정의 무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Bf 109E 시리즈의 표준 무장이라고 하면 결국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총 2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JG 2 비행단장 헬무트 뷔크의 Bf 109E-3,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작전중이던 무렵의 사진이다. 스피너 가운데에 기축 기관포를 위한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

 

[ 트럭으로 Bf 109E를 견인하고 있는 특이한 장면, 트럭 바퀴의 폭과 비슷한 정도로 폭이 좁은 주 강착장치를 잘 볼 수 있는 사진이다. ]

Bf 109E-3는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가 가동되면서 월평균 150여기가 생산되었으며 1940년 한해동안 1868기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많은 수가 만들어졌는데 이 수치는 이 무렵이 2차대전의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결국 1940년에는 대부분의 실전 전투기부대들이 Bf 109E-3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 E-3형이 1940년에 전유럽의 하늘을 휩쓸어 버리는 영광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며 이후 194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인류 역사상를 통털어 최대 규모의 항공전으로 기록되는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맹활약했던 것이다.

[ 비상출격 명령에 따라 Bf 109E의 엔진 시동을 걸고 있는 정비병,  기축 기관포를 위한 스피너의 구멍이 잘 보이는 사진이다. ]

Bf 109E-3는 대외판매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스위스에 80기가 넘겨진 것을 포함해서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의 외국으로 총 304기가 판매된 것인데, 이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동맹국인 일본에 2기가 넘겨진 것과 훗날 철천지 원수가 되는 소련에도 5기가 판매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본에 넘겨진 2기는 훗날 일본의 가와사끼 항공사가 Ki-61 히엔을 제작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수출형 Bf 109E-3는 독일공군내에서 Bf 109E-3a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독일공군용으로 제작된 Bf 109E-3형에 비해서 많은 첨단 장비가 제거된채로 한단계 낮은 성능을 가진 채로 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수출형에는 독일제 고성능 무선 통신 장비가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심지어는 주익의 무장을 없애 버린 것들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소련이나 유고로 수출된 기체들에 이런 조작이 많이 가해져 거의 간신히 비행만 가능한 채로 모든 주요 장비가 제거된 채로 넘겨졌다고 한다. 소련은 이 기체를 넘겨받은후 이 기만 전술에 속아 이 전투기가 가진 무서운 능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응에 소흘했기 때문에 훗날의 독소전에서 커다란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 3국동맹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일본에 넘겨진 Bf 109E-3 ]

1940년말부터는 아예 기축의 기관포를 완전히 포기하여 엔진룸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없애 버리고 주익의 기관포 2문과 기수의 기관총 2정만을 표준으로 하는 Bf 109E-4가 생산되었으며 전투폭격기형인 Bf 109E-4/B형도 같이 생산되어 영국본토 항공전의 후반기에 E-3형과 함께 주력 전투기로서 사용되었다. 특히 E-4형에 표준무장으로 채택된 기관포는 보다 개선된 MG FF 'M' 20mm 기관포로서 기존의 HE탄에 비해서 보다 폭발력이 강한 신형 탄의 사용이 가능해 파괴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외에 캐노피를 평면형으로 바꾸고 조종사 보호를 위한 방탄판도 표준 장비로 채택되었다.

[ JG 26 비행단장 아돌프 갈란트 소령의 Bf 109E-4, 기축 기관포가 완전히 폐지되어 E-3형 까지 유지되던 스피너의 기관포구용 구멍을 없앤 신형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물론 구형 스피너를 가진 E-4형도 일부 있었다. ]

1941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향상된 연료 분사장치와 자동으로 작동되는 유압식 슈퍼차져를 가진 신형 DB 601N 엔진을 장비한 Bf 109E-4/N형이 개발되었다. 이 1200마력의 신형엔진을 부착하면서 기체의 성능은 더욱 좋아졌으며 주로 북아프리카 전선용 기체로 생산되었다. 특히 북아프리카 전선용의 기체는 슈퍼차져의 공기흡입구에 커다란 방진필터를 장비하고 동체에 조종사 구난용 생존키트를 내장하도록 개량되었는데, 이 형은 사막과 열대 (tropical) 지역의 작전용인 Bf 109E-4/Trop 형으로 알려지게 된다.

[ JG 27소속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2위의 에이스로 명성을 날렸던 베르너 슈뢰어의 Bf 109E-4/Trop, 기수 좌측의 특징적인 방진필터가 Trop형의 특징이다. ]

이외에는 전선정찰용으로 2정의 기관총만을 가진 경무장의 Bf 109E-5, E-6형이 소량생산되었으며 기내의 연료탑재 용량이 적어 영국 본토항공전에서 고전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투하식의 300리터들이 외부연료 탱크를 장착해 항속거리를 대폭 늘린 Bf 109E-7형도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이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이 E-7형은 장거리 항속력이 필요했던 몰타섬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작전에 다량 투입되어 맹활약했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의 근접 지상지원을 위해서 연료탱크대신 폭탄을 장비하도록 하고 조종석 주위에 장갑판을 강화한 Bf 109E-7/U2형이 생산되기도 했다.

[ 몰타섬 공략을 위해 시칠리에서 작전중이던 JBf 109E-7, 약간 디자인이 바뀐 뾰족한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스핏화이어 킬러로 유명한 요아힘 뮌히버그가 지휘하던 JG 26 제 7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

Bf 109E 시리즈의 마지막 기체로는 DB 601E 엔진을 장착한 E-8형과 장거리 정찰용으로 제작된 E-9형이 있으나 모두 소량생산에 그쳤다.  특이한 변종으로는 항모 그라프 쩨펠린에 탑재될 예정으로 Bf 109E-3를 개조한 Bf 109T 형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kwessa님이 자세히 올려주신 자료를 참고하시길...

* Bf 109E의 함재기형 - Bf 109T

이 부분은 109E의 변형인 함재기형의 Bf 109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편집해서 추가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_^

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

독일군 함재기에 대한 질문이 나왔었는데.. -_-; 순전히 글쓰기 귀찮다는 이유로 "다른 분들께서 답변을 잘 하시겠지.."하고 놀려두고 있다가 결국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라기 보다는, 제버릇 개 못주니..) 몇자 끄적여봅니다.

기본적으로 Bf109 기종이 대전 초중반까지는 독일군의 거의 유일한 전투기였으므로, 이 기종을 함재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죠.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진전됨에 따라 독일군은 Bf109E형을 함재기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도하게 되는데요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함선보다 함재기들이 먼저 준비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1939년에는 양산전 시험생산으로 10기의 Bf109T-0이 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DB601Aa엔진에 두 정의 MG-FF 20밀리 기관포, 두 정의 MG17 7.92 밀리 기관총을 장착한 Bf109E-3형에서 출발했는데, 완성단계에서는 기존의 E형보다 면적이 더 넓은 날개에 꼬리 부분의 착륙용 후크, 동체에 두개의 캐터펄트(네! 캐터펄트입니다!) 후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시험생산을 마친 후, 1940년에는 본격적인 양산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총 60대의 양산형 Bf109T-1이 생산되었습니다. 양산형 T-1기종에는 기존의 E형에 사용되던 DB601Aa 보다 더욱 강력한 DB601N 엔진이 사용되었고 함재기로써의 기능을 완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1940년에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백지화되면서 아쉽게도 T형의 개발계획도 멈추게 됩니다. 현재까지 생산된 T형은 메서슈미트사의 전투기들을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던 피이슬러사에 넘겨져서 함재기용 장치를 모두 제거한 후 지상이착륙 전투기로 사용됩니다. 이륙용 사출후크와 착륙용 꼬리후크를 제거하고, 보조연료탱크나 250kg짜리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범용 동체 랙을 설치하게 되는 이 기종은 Bf109T-2로 지정되었습니다.

원래 함재기로 사용하기 위한 전투기였던 만큼, 완비된 활주로의 비행장이 드물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작전에 쓸만한 활용가치가 있다는 판단아래에 Bf 109T-2형은 모조리 노르웨이로 보내졌습니다.

[ Bf109T형 - 동체 아래의 사출후크, 꼬리의 착륙후크, 넓어진 날개 ]

 

[ Bf109T-2 ]

 

[ Bf109T-2 ]

 

[ 함선상 이륙 중인 Bf109T-1, 사출후크와 꼬리후크가 잘 드러나있음 ]

 

* 에밀의 비행성능

비행특성의 측면에서 볼 때 Bf 109E는 매우 우수한 기체였다. 특히 시속 480km 이내의 속도에서 이 전투기는 매우 우수한 조종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른 바 '감'이 좋아서 일선 조종사들로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기존에 지적받았던 실속시의 비행특성도 많이 개선되어 갑자기 실속이나 스핀에 빠지는 일이 없어졌으며 실속경고 장치가 있어서 조종사들이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20도가 숙여지는 삽입식 플랩덕분에 활주거리도 괄목할만큼 짧아졌다. 물론 기존형부터 지적되어오던 주강착장치의 폭이 좁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무게중심보다 조금 앞쪽으로 위치하도록 설계되어 착륙시에 접근 각도가 너무 급격하더라도 안착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며 착륙 활주거리도 짧은 편이었고 지상활주도 용이한 편이었다.

[ 착륙후 주기중인 Bf 109E, 기체의 볼륨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기체의 최고 속도는 12300 피트의 고도에서 수평비행시에 시속 573km를 기록했으며 65% 출력의 경제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항속거리는 최대 668km 정도였다. 초기 상승률은 분당 3100피트에 이르렀으며 작전가능 고도는 36000피트로서 고공성능이 매우 좋았고 최대 375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급강하 폭격을 위해 테스트 받았던 Bf 109E-1/B의 경우 평균 급강하 속도가 시속 604km였으며 속도가 붙는 경우 시속 722km까지도 기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 날렵한 외형을 자랑하는 Bf 109E-3 ]

하지만 시속 600km를 넘어가게 되면 보조익 (aileron)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단점이 있어서 급강하에 접어든후의 고속비행에서 롤 (roll)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었으며 고속 급강하시에는 러더 (rudder)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트림조작이 어려워 조종사들이 애먹기도 했다. 게다가 원형기에서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오던 이착륙시에 좌측으로 쏠리는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어 이런 현상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미숙한 조종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이착륙시에 잦은 사고를 유발했다. 후에 통계를 내보니 Bf 109B가 최초로 실전배치된 1937년부터 1941년 가을까지의 4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무려 1500여기의 Bf 109 전투기들이 이착륙시에 발생한 사고로 전열에서 이탈했다고 한다.

[ 스페인에서 작전중 착륙 과정에서의 사고로 파손된 Bf 109E-1 ]

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메서슈미트 박사와 설계팀은 이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에 나섰는데 고정되지 않은 뒷바퀴가 이착륙시에 좌우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어 이 뒷바퀴를 엔진이 풀쓰로틀에 달했을 때만 좌우로 가동되도록 개선작업에 들어갔는데 이후 이착륙시의 사고는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교정되지는 않고 더 이상 해결책이 없어 Bf 109의 최종생산형에서까지도 조종사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Messerschmitt Bf 109E-3 Emil

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1A (1100마력)

전폭: 10.34m

전장: 9.05m

전고: 3.58m

최대중량: 3017kg

최대속도: 573km/h (고도 4,120m)

최대고도: 36091피트 (12150m)

항속거리: 794km

무장: MG17 7.92mm 기관총 2정 (기수) + MG FF 20mm 기관포 2문 (주익)

 

* 전장의 에밀

대전이 발발하자 엄청난 기세로 진격을 하는 독일군에게 하늘에서 든든한 지원을 해주는 독일공군의 슈투카와 Bf 109E야말로 실로 멋진 존재였으며, 전격전 기간동안 유럽 상공에서 독일공군에 대적했던 모든 연합군 전투기들은 Bf 109E의 사냥감 신세가 되었다. 개전 초기에는 연합군의 어떠한 전투기도 따르지 못하는 엄청난 속도와 상승력, 그리고 고속 급강하의 엄청난 압력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벤쯔엔진의 뛰어난 성능이 이 작은 전투기에게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명성을 얻게 했다.

[ 콘돌 군단에 파견되어 실전 테스트를 받고 있는 Bf 109E, 이 때의 소중한 전투 경험이야말로 독일공군 조종사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

어느정도 독일공군에 맞설 수 있으리라는 예측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기들은 이 Bf 109E의 위력에 압도되어 대패를 당했다. 프랑스로 파견된 영국공군 소속으로 허리케인을 조종하여 Bf 109E와 전투를 경험했던 영국공군의 한 장교는 허리케인이 Bf 109E에 대해서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점을 인정하고 '비록 적의 전투기지만 Bf 109야 말로 세계최고의 전투기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전격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프랑스 공군과 대결했던 Bf 109E 전투기들은 프랑스 공군의 주력이었던 호크 75, MB 151, 모랑솔니에 MS.406등의 전투기들과 대결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프랑스의 신예기 드와땡 D.520 같은 경우는 Bf 109E와 거의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나 전투에 투입된 숫자가 너무 적어 실전에서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뭐니뭐니해도 Bf 109E에게 있어서 적수다운 적수는 숙적 영국공군의 신예전투기 스핏화이어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 Bf 109E의 조종석,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시야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특히 함몰된 형태로 제작되어 후방시야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

프랑스 전투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끝나 버린후 독일공군은 잠시의 휴식후에 항복을 거부한 영국 본토를 공략하는 임무에 나서게 되는데 이때까지 유럽전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본토 방위에만 전념하고 있었던 영국의 최신예 스핏화이어 전투기들이 허리케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출격함에 따라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두 전투기끼리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것이다.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한 BF 109E는 E-3형이 약 70% 정도의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중반을 넘기면서는 E-4형이 같이 전투에 참가했다.

1940년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군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에게는 마치 하늘이 정해준 것처럼 느껴지는 숙명의 라이벌인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가 제일 껄끄러운 상대였다. 성능면에서 비교해볼 때 수평비행시에 최고 속도에서는 스핏화이어 Mk I, II쪽이 약간 더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수평선회 능력에서도 Bf 109E가 영국의 스핏화이어보다 약간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으며 스핏화이어의 보조전투기겪인 허리케인에 비해서도 선회반경이 약간 더 컸기 때문에 이 두 영국제 전투기와 저속과 중간 속도에서 급격한 수평선회전을 벌일 때는 불리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상승속도와 최대상승고도에서는 Bf 109E가 이 두 영국전투기보다 명백히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200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는 훨씬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서 연료 직접분사기를 부착한 벤쯔엔진 덕분에 전투비행시 기수를 급격하게 숙이는 경우나 고속 급강하시에 발생하는 마이너스 G의 거친 환경에서도 엔진에 연료공급이 지속될 수 있어서 공중전에서 큰 이점이 되었다. 스핏화이어는 순각적으로 기수를 숙이는 등의 마이너스 G를 유발하는 기동을 구사하거나 급강하를 오래지속하는 경우 연료공급이 순간적으로 끊겨 엔진이 정지하는 현상이 생기므로 고속으로 급강하하는 Bf 109E를 오래 따라붙을 수 없었다.

 [ Bf 109E와 스핏화이어 Mk I의 수평선회 능력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두기체가 똑같은 속도에서 선회를 시작하는 경우 스핏화이어쪽이 더 날카로운 선회를 할 수 있어 수평 선회전에서는 유리했다. 이 데이터만을 놓고 스핏화이어의 성능을 극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전투에서 두 기체가 같은 속도로 근접 선회전을 벌이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두 기체중에서 속도와 고도가 우월한 쪽이 전투의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 ]

이런 장단점으로 인해서 Bf 109E는 특유의 전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고속으로 급상승하여 유리한 고도를 확보한후 벼락처럼 급강하하면서 적기를 순식간에 공격하고 다시 고도를 높이는 일격이탈 전법이었다. 이 전법은 Bf 109E의 장점만을 활용한 매우 효과적인 것이었으며 미숙한 조종사들에게도 쉽게 교육할 수 있었다.

사실 영국공군과 독일공군의 조종사들은 서로 적기들의 성능에 대해서 경외감을 표시했는데 이로인해 스핏화이어와 Bf 109E는 오히려 적군에 의해 더 과대평가를 받게 되었다. 독일공군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의 급격한 선회능력에 놀라 감히 선회전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스핏화이어 조종사들은 Bf 109E의 상승성능과 급강하 공격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 기간중에 본토에 추락한 Bf 109E를 수리하여 비행성능을 시험해본 영국공군측은 Bf 109E의 비행성능이 예상외로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전투기는 예상과 달리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공중전 테스트에서도 그다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Bf 109E가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수평 선회능력이 약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공중전이라는 것은 3차원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이었으므로 수직기동을 절묘하게 섞어서 비행할 수 있었던 수준높은 엘리트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격투전에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두 기체의 공중전 성능은 서로간에 분명한 장점들이 있었으므로 어느 한쪽이 우세했다기 보다는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호각의 상태였다.

[ 영국 전투기들에 비해 열세했던 화력을 만회하게 해준 회심의 카드 MG FF 20mm 기관포, 주익에 고정 장착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화력면의 비교에서도 Bf 109E형이 가진 20mm 기관포 2문과 2정의 7.92mm 기관총이 스핏화이어와 허리케인 같은 영국 전투기들이 장착한 8정의 7.79mm 기관총에 대해서 우세한 편이었다. 물론 양측의 장탄수와 발사속도등의 차이가 있었고 영국 전투기들이 장비한 기관총이 8정이나 되었기 때문에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는 양측의 전투기들의 화력이 거의 대등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Bf 109E의 MG FF 20mm 기관포탄은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거나 스핏화이어와 같은 전금속제 전투기에게 명중되는 경우에는 명중되자마자 폭발하면서 매우 높은 파괴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목재골조에 캔버스 (천)를 대는 방식으로 제작된 허리케인의 경우에는 기관포탄이 캔버스를 그냥 관통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실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드러난 Bf 109E의 최대약점은 스핏화이어에 뒤지는 성능이 아니라 짧은 항속거리였다. 체공시간 80분에 항속거리 700km정도라는 것은 전투반경이 짧았던 서유럽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영국본토까지 날아가는데 30분,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되는 장거리 비행은 Bf 109E에게 겨우 10-15분 정도의 너무나 짧은 교전시간밖에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영국 전투기들과 교전중에도 연료가 바닥날 우려로 인해 교전을 중단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우군 폭격기들이 영국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도와주지 못하는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했다. 분을 못이긴 일부 조종사들은 이런 순간에 자제력을 잃고 영국 전투기들을 공격하다가 결국 귀환도중에 연료가 바닥나 프랑스의 해안이나 도버해협의 바닷물속으로 쳐밖히는 경우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영국공군은 Bf 109E들이 연료문제로 귀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독일 폭격기들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하여 독일공군을 괴롭히기도 했다.

여기서 한가지 의구심이 생기게 되는데 도대체 왜 독일공군은 영국본토 항공전기간에 Bf 109E에게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것일까? Bf 109E가 외부 연료탱크만 장착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스핏화이어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고 전쟁은 단기간에 독일공군의 승리로 끝났을텐데...

[ 1930년대 중반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였던 He 51, 이 사진에서 처럼 이미 낙하식 연료탱크는 이미 실용화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

사실 독일의 기술력으로 볼 때 Bf 109E에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만일 프랑스전의 대승리이후 즉각적으로 철저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면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는 더욱 맹위를 떨쳤을 것이다. 독일공군이 Bf 109E에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프랑스라는 대어를 낚으면서 전격적인 승리에 도취된 독일공군측에서 자만심에 사로잡혀 영국본토 공략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소흘했다는데 있다. 서유럽을 정복하는 동안 Bf 109E의 항속거리가 문제된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전쟁이 시작될 당시 폭격기 호위용으로 개발된 Bf 110 쌍발 전투기가 있었으므로 Bf 109E는 폭격기 호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이 적의 전투기만 찾아 공격하고 돌아오는 식의 '자유전투'의 방식으로 전술운영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혀 외부연료 탱크 부착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 독일공군이 조금만 더 철저한 준비를 했었다면 아마도 영국본토 항공전의 양상은 전혀 다른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진의 기체는 외부 연료탱크를 장비한 Bf 109E-7으로 영국본토 항공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등장했다. ]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후 영국본토 항공전이 최절정을 향해 치닫게 되는동안 Bf 110 전투기들이 영국 전투기에 맞서 폭격기의 호위를 맡기에는 역부족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자 Bf 109E가 폭격기 호위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서 짧은 항속거리가 커다란 약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폭격기 호위를 위해서 Bf 109E가 중고도에서 호위를 하는 경우 Bf 109E의 장기인 고속 급강하 공격이 발휘되기 어려웠으며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에게 오히려 고도의 이점을 빼았기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낙하식 외부 연료탱크의 필요성을 절감한 독일공군측이 뒤늦게 땅을 치면서 이 작업을 추진하도록 메서슈미트 박사에게  의뢰했지만 이것은 시기적으로 너무나 뒤늦은 결정이었다.  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의 최대고비인 1940년 9월 15일까지의 치열한 전투에서 독일공군이 너무나 큰 손실을 입어 결국 독일은 영국에 대한 침공계획을 결국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게 개발되었던 Bf 109E-7형은 비록 영국본토 항공전에서는 거의 활약을 못했지만 이후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장거리 항속능력을 이용하여 맹위를 떨치면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했으며, 영국 사막공군의 무서운 적수로 떠올랐다.

 

◆ Bf 109E 일러스트 Collection ◆

 

1939년초 JG 132에 배치된 Bf 109E-1, 본기의 기수에 그려진 '끈이 풀린 구두'는 JG 132 전투비행단 제 4연대의 것으로 훗날 JG 77 제 1연대로 개편되게 된다.

 

1940년 5월 10일 서유럽전에 참가중이던 디터 로비쯔쉬 대위의 Bf 109E-1, 디터 중위는 네덜란드 상공에서 포커 XXI 전투기와 교전중 격추되어 포로가 되었다.

 

1940년 5월, 서유럽전에서 활약하던 JG 27 소속의 Bf 109E-1이다. 조종사는 프리치 켈러 중위로 본기의 기수에는 훗날 북아프리카에서 더 유명해지는 JG 27 1연대의 부대마크가 그려져 있다.

 

1940년 5월, 프랑스 침공작전 당시 JG 26 소속으로 작전중이던 Bf 109E-3의 상면도, 쭉쭉 뻗은 통통한 주익과 전체적으로 직선형으로 디자인된 기체의 특징을 잘 볼수있다.

 

1940년 8월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하고 있던 JG 26 제 9중대소속의 Bf 109E-3, 조종석 아래 그려진 중대마킹은 유명한 것으로 '헬 훈트 (지옥의 개)'라 불린다.

 

1941년,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장이자 유명 에이스인 아돌프 갈란트의 기체이다.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중일 당시의 도색으로 그의 개인마크인 미키 마우스가 조종석 아래에 그려져 있다.

 

1940년 10월, JG 2 리히토펜 비행단의 지휘관 헬무트 뷔크의 Bf 109E-4형의 일러스트, 전통적인 노란색으로 칠해진 기수에서 카울링에 장비된 2문의 MG17기관총이 뚜렷하게 보인다. 카울링에 그려진 칼은 뷔크의 개인 도색이며 수직 안정판의 받침대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접히게 되어있는 강착 장치등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초기의 E-4형은 E-3형에 사용되던 구형 캐노피를 같이 사용했다.

  

1942년 겨울,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 1중대 소속의 Bf 109E-7B으로 동부전선의 스탈린 그라드 지역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던 당시의 도색이다. 이무렵에는 이미 E형이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을 시기이나 전황이 워낙 다급하여 훈련용으로 전용된 기체가 동부전선으로 보내졌다.

 

1942년 8월, 북아프리카 상공을 누비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Bf 109F형의 도입이 늦어 이무렵까지도 E형이 수적인 주력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새로운 탄생

Bf 109E가 유럽하늘의 왕자로 군림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동안 메서슈미트 박사는 1세대 Bf 109의 결정판겪인 Bf 109E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후계기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기체가 바로 후세에 Bf 109의 모든 시리즈를 통털어 가장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졌던 최고의 기체로 평가받는 Bf 109F형이다. Bf 109E가 독일공군의 대도약을 선도했다면 Bf 109F는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리던 시기에 창공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f 109F형은 Bf 109V1에서 Bf 109E까지 이어진 1세대 Bf 109와는 어떻게 보면 외형과 성능에서 전혀 다른 기체로 평가되어 제 2세대 Bf 109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전투기는 전선의 독일공군 조종사들로부터 프레드릭 (Frederick) 혹은 프란쯔 (Franz), 프리쯔 (Fritz)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 Bf 109F형의 탄생은 다이믈러 벤쯔사가 제작하고 있던 신형 DB 601E-1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체의 설계가 대폭 수정되는 과정이 그 출발점이었다. 메서슈미트 박사는 1940년초부터 이 새로운 고성능 엔진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하기위해서 기존의 Bf 109E형의 개조작업을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 새롭게 등장한 Bf 109F, 기존의 E형에 비해서 많은 개량이 있는 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

엔진의 효과적인 공간확보를 위해 기수의 형태가 새롭게 디자인되었으며 기수하면의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도 뒤로 이동되었고 프로펠러 스피너가 둥근 반구형태로 약간 커졌으며 프로펠러의 직경은 6인치 작게 설계되었다. 주익하면의 공기흡입구도 얇아졌으며 수평꼬리날개를지지하고 있었던 지지대를 폐지하여 훨씬 세련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제기의 첫 비행은 1940년 7월 10일에 실시되었었는데 여러차례의 시험비행에서 Bf 109E형에 비해 괄목할 만한 비행성능의 향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 독일공군 수뇌부에서 영국의 스핏화이어를 완전히 능가하는 신형기를 개발하라는 주문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제기를 바탕으로 Bf 109E의 후계형인 F형을 개발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되었다.

새로운 기체로의 개발이 결정되자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행성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 주익의 전면적인 재설계 작업에 들어갔는데 주익의 폭이 약간 넓어졌으며 끝단이 둥글 게 처리되었다. 플랩과 보조익 (aileron)의 설계도 크게 변경되었는데 특히 1세대 Bf 109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삽입형 플랩 (slotted flap)이 단순형 플랩 (plain flap)으로 변경되었고 보조익도 삽입형 (slotted type)에서 프라이제 (Frise type)으로 변경되었다. 이외에도 기존형까지 동체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던 뒷바퀴도 이륙직후에 동체안으로 인입되는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Bf 109F형은 기존형에 비해 일신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 E형과 F형의 상면도, 기체의 외형에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기체의 무장면에서도 설계팀이 그토록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졌다. 원형기에서부터 무던히 시도되었으나 빈번한 오작동과 진동유발로 인해 번번이 탑재가 좌절되었던 프로펠러축 방식의 기관포 탑재가 드디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어 F형에서는 기축에 MG FF 20mm 기관포를 탑재하고 엔진 상부에 2정의 MG 17 기관총을 탑재하는 것으로 기본무장 방식이 결정 되었다. E형의 특징어었던 주익의 기관포는 비행성능의 향상을 위해 주익의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결정되면서 폐지되었고 주익이 얇게 설계되어 야전에서 주익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Bf 109E형의 화력에 만족하고 있었던 많은 조종사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하는데 이중에는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유명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도 있었다. 심지어는 부대 지휘관들이 F형의 수령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 탄착점을 조절하기 위해 기체를 수평으로 세우는 장면 ]

하지만 메서슈미트 박사는 Bf 109 전투기는 그 탄생시기부터 기수집중식의 무장을 추구했던 기체였으며 Bf 109E는 어쩔 수 없이 주익에 무장을 장착했던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 기관포를 탑재하기 위해서 주익을 두껍게 제작해야 했고 기관포와 탄약의 무게로 인해 주익의 부하가 증가해서 최고의 비행성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면서 조종사들의 설득작업에 나섰다. 이무렵 아돌프 갈란트 못지 않은 명성을 날리던 유명 에이스 베르너 묄더즈가 화력보다는 우수한 비행성능과 정교한 사격술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기수에 집중된 무장은 주익 장착방식에 비해서 화력과 산탄총 효과는 줄어들지만 조종사의 조준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정확한 사격에 도움이 되고 파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초원의 야전 비행장에 주기된 Bf 109F, 동부전선의 JG 51소속 기체이다. ]

여하간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끝에 Bf 109F형은 화력보다는 비행성능에 더 무게를 두고 개발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어 주익에는 무장을 장비하지 않고 오로지 기수에 집중된 1문의 기관포와 2정의 기관총을 고정무장으로 가지게 되었다.

초기 생산형인 Bf 109F-0형은 DB 601N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1941년 1월 실전부대에 최초로 인도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어서 실전배치가 추진된후 3기의 Bf 109F-0가 원인모를 사고로 추락했으며 본격적으로 양산형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Bf 109F-1 형중 1기가 훈련비행도중 동체가 파열되면서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로 또다시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기체의 안정성에 대해서 전면적인 검토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 까지는 Bf 109E형의 생산도 계속 추진되도록 해놓은 상태였다.

[ Bf 109E형에서 F형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

수많은 연구끝에 F형에서 수평꼬리날개의지지대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수평미익의 안정성 보완이 100% 이루어지지 않아 꼬리부분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계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체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이부분의 볼트와 리벳이 느슨해지다가 결국 비행중에 파열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수평미익 부위의 강도와 안정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다시 추진되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자 더 이상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빈약함이 지적된 Bf 109F형의 화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MG FF 20mm기관포를 새로운 MG 151 15mm로 교체하는 방안이 추진되었으며 이 MG 151 기관포를 고정장비하고 양산되는 형은  Bf 109F-2형으로 명명되었다. MG 151 기관포는 벨트식으로 급탄되는 15mm 기관포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록 MG FF 기관포에 비해 구경이 작지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탄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포구속도가 빠르고 기관포탄의 탄도가 직선으로 쭉쭉뻗는 것으로 느껴질만큼 안정적이어서 호평을 받았고 200발의 기관포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Bf 109F-2형은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하기 위해서 북아프리카 전선용으로 제작된 Bf 109F-2/trop 형과 GM-1 부스터를 장비한 Bf 109F/Z형의 변형으로도 생산되었다. 하지만 Bf 109F-1과 F-2는 1300마력급의 신형 DB 601E 엔진을 장착하려했던 애초의 의도와 달리 모두 Bf 109E에 사용되던 DB 601N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엔진의 양산이 사소한 문제점들로 인해 지연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DB 601E 엔진이 양산되기 시작하자 Bf 109F형도 새로운 엔진의 탑재와 더욱 뛰어난 비행성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Bf 109F-3형이다. 이 엔진의 장착으로 Bf 109F-3는 고도 22000피트에서 최고속도가 시속 630km에 이르게 되었으며 작전 가능 고도는 37000피트까지 높아졌고 순항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712km의 항속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Bf 109F-3의 비행성능은 당대 최고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으며 E형까지 약간 열세에 있었던 기동성의 측면에서도 발군의 향상을 보여 동시대의 라이벌 스핏화이어 Mk.V에 비교해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Bf 109F형을 몰고 스핏화이어와 근접 선회전을 펼쳐 승리하는 조종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E-3형은 과도기적인 기체로서 소량생산에 그치게되며 곧 최고의 전투기인 Bf 109F-4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 비행중인 Bf 109F 2기 편대 (로터), 매끈한 유선형의 외형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아마도 모든 Bf 109F시리즈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것은 F-4형일 것이다. 이 형은 폭이 넓은 신형 프로펠러로 교체하여 DB 601E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의 모양이 바뀌게되어 외형으로 기존형과 구분이 가능하다. 무장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기축의 15mm MG 151 기관포를 새롭게 개발된 20mm MG 151 기관포로 바꾸어 장착하게 되었다. 이 신형기관포는 구경 증가에 따라 파괴력이 훨씬 증가한 반면 탄도학적으로도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우수한 무기였으며 총 200발의 20mm 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Bf 109F-4형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열대형인 Bf 109F-4/Trop형과 전폭기형인 F-4/B형의 아형이 있으며 야전에서 필요에 따라 2문의 MG151 20mm기관포를 주익에 부착할 수 있었던 R1 야전키트 (탑재탄수 120발)의 장착이 가능하도록 개선되기도 했다. 이 야전키트를 장비하는 경우 Bf 109F-4/R1으로 불렸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 야전키트를 장착하는 경우 파괴력은 엄청나게 증가하지만 주익의 부하가 증가되어 F형 특유의 우수한 기동성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주로 적의 폭격기 요격과 같은 임무에 사용되었다.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은 500kg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이중에서도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별명과 함께 놀라운 활약상을 펼치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의 애기로서 전설적인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F형의 개량형으로는 기관포를 제거하고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한 장거리 정찰기형으로 개조된 Bf 109F-5형과 F-6형의 개량형이 있으며, 특이한 것으로 Bf 109F-1형의 동체 두 개를 나란히 연결하여 쌍발기로 개조한 Bf 109Z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 Z는 독일어로 쌍동이 (Zwilli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거리 전폭기인 Me 609의 개발을 위한 시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1기만 제작된 원형기는 지상에서 날아올라 보지도 못하고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Messerschmitt Bf 109F-4/R6 Frederick

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1E (1300마력)

전폭: 10.94m

전장: 9.25m

전고: 3.58m

기체중량: 1964kg

최대속도: 628km/h (고도 7,260m)

최대고도: 39370피트 (13120m)

항속거리: 794km

무장: MG 12.7mm 기관총 2정 (기수), MG 151 20mm 기관포 (기축)

          - 옵션으로 R6 주익 기관포 야전 키트 장착 가능

 

* Bf109 기종의 축기관포 문제 해결 과정

이 부분은 Bf 109의 기관포 무장의 변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다른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게시판에 올려주신 내용이 매우 좋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_^

Question (램프의 바바님)

: 궁금한게 있는데요..총을쏘다보면 총신이 과열되지않습니까? 그런데 엔진축에 총신이 있었다면..과열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Answer (Kweassa님)

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초기 109 기종의 생산이 시작되었을 때 끝까지 골치를 썩인 부분이 바로 기대되었던 축기관포의 설치문제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공군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1940년의 영국항공전 시점까지도 해결되지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본격적인 해결은 잠시 뒤로 미루고 대안적인 무장을 한 Bf109E-3/E-4 기종이 영국항공전에서는 사용되었죠.

주로 발생한 문제는 과열, 재밍현상, 그리고 지나친 진동.. 이 세가지 문제였는데요, 결국은 기본적으로는 기관포 자체의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V-4, V-5, 그리고 V-6 기종을 시험하는 동안 축에 설치된 기관총에서 과열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양산형 Bf109B 기종에서는 축 무장을 제거하고 단지 두정의 기관총만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양산형 B형에서부터 E 기종에 이르기까지는 기나긴 시험단계였는데요, 프로펠러 축의 사이사이에 흡기와 배기 구멍을 두고 소소한 방열판을 설치하는 등의 쿨링 기법을 사용하여 발열문제는 어느정도 해결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Bf109C-2형에서는 두정의 카울 기관총과 한정의 축 기관총, 도합 세정의 기관총이 장착된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Bf109D 기종에서는 축에 기관총 대신, 원래 구상한 대로  외를리콘 MG-FF 20mm 기관포를 설치하려고 했었는데요, 여전히 기계식 블로백 타입인  MG-FF 기관포의 진동 및 장전장치의 고장이 큰 골치덩어리였다고 하네요. 

결국, 영국항공전에 들어가기 직전, 양산형 Bf109E-1형에서는 축 무장을 다시 제거하고, 두정의 카울링 기관총에 두정의 날개 기관총, 도합 네정의 기관총을 무장한 형태로 생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기에 생산된 E-1 기종은 주익의 기관총을 MG-FF 20mm 기관포로 업그레이드 하여 E-4와 비슷한 무장을 갖추게 되었구요. 

따라서, 후기 Bf109E-1형의 주익 20mm 기관포 설치형태에 조금 손을 본 것이 Bf109E-3형이 되었는데요, 포기를 모르는 독일공군은(-_-;), 다시 E-3형에서 축에 MG-FF를 장착하려고 했습니다. 성공했더라면 세 정의 20mm에 두 정의 기관총을 장착한 영국항공전 버젼의 "도륙새"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물론, 결과는 역시 실패.. 여전히 진동 및 고장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네요. 

결국, 이 문제는 E형 생산 내내동안 독일공군을 애태우다가, Bf109F형에 가서야 해결이 됩니다. F형에 들어가서 비로서 Bf109 무장형태의 표준이 완전히 정해져서, 날개 무장을 완전히 포기하고(특수목적을 위해 추가로 날개에 장착하는 곤돌라식 무기가 아닌 이상..) 카울링에 두 정의 기관총, 축에 한 정의 기관포를 설치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결국, 안정적인 전동식 장전 시스템을 갖춘 신형 기관포인 마우저 MG151/15가 개발된 이후에야 Bf109F-2 기종에 15mm 기관포가, 그 후에 MG151의 20mm 버젼인 MG151/20이 나온 후에야 Bf109F-4 기종에 20mm 기관포가 설치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Bf109.com 사이트의 http://www.bf109.com/frameset.html  링크를 참조하시길..(영어이긴 하지만요 -_-;).

 

Question (SV-001/R님)

:  BF-109의 엔진은 크랭크축과 프로펠러축이 따로따로였나요?  그래야만 기관포를 프로펠러축에 장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TA-152는 어떻게 성형 엔진을 사용했는데도 프로펠러 회전축 기관포를 장착할 수 있었나요?

Answer (Kweassa님)

* DB601/605 엔진에 대해.. 

음.. 질문하신 내용을 보니 -_-; 아무래도 엔진구조를 잘 아시는 분인 것 같아서.. 대충 답변하면 안될 것 같아, 내연기관이나 기계공학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자료 뒤지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일단, 조사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비행기에 사용되는 프로펠러 엔진에는 두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더군요. 비행기의 프로펠러는 프로펠러 섕크(blade shank)라는 장치를 통해 엔진과 연동이 되는데요, 크랭크 축에 프롭섕크가 직접 부착된 직접프롭회전 방식과, 질문하신 내용 그대로 크랭크축과 별도인 프로펠러축을 통해 부착된 간접회전 방식이 있습니다.

 

(그림1) 프로펠러와 프로펠러 섕크

 

 (그림2) 직접프롭회전방식

 2차대전 전투기들의 대부분은 엔진은 크랭크축에 곧장 프로펠러가 연결된 식이 아니라, 크랭크축의 회전력을 다시 프로펠러 축으로 연결하는 간접회전 방식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Bf109에 사용된 DB계열 엔진의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제가 아는 한 DB60X계열 엔진의 생산 자체가 각종 신개발 전투기들의 설계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 중반에 들어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들을 설계하면서 특히 새로운 시대의 전투기에 걸맞는 무장형태에 대한 많은 논쟁과 연구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주력 무장을 어느 위치에 장착할 것인가가 큰 관심사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크게 두계열로 나뉘는데요, 전투기의 중심선을 따라 무장 을 집중시키는 기수집중방식과, 다량의 무기를 날개 위치에 장착하는 날개무장방식이었죠. 결론적으로 말해서, Bf109는 처음에 설계될 때 부터 기수집중무장 방식을 염두해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BoB기간에 등장한 Bf109E형의 경우에는, 아직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날개에 기관포를 장착했다고 하는군요).  

따라서, DB엔진의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Inverted-Vee 방식의 설계라고 하는데, 바로 프로펠러 기관포 장착을 염두해둔 설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3) DB605

그림3을 보면 아시겠지만, 엔진 구조 자체가 거꾸로 선 "V"자 형태이죠. 두개의 실린더 블럭이 "V"자 형태로 접합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구경이 꽤 큰 프로펠러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V"형 엔진이었지만, DB엔진의 영원한 라이벌로 인식되는 롤스-로이스사의 멀린계열 엔진들은 바로 선 "V"형입니다.

이것이 왜 축기관포 설치에 관건이 되는가하면, 전쟁 중반에 들어서 총신이 짧은 신형 기관포들이 등장했지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각국에서 전투기를 설계할 때 까지만 해도 20mm기관포는 굉장히 거대한 신무기였습니다. 총신이 엄청나게 긴 신무기였기 때문이죠. 따라서, 전투기에 엔진을 설치한 후, 프롭축 가운데에 20mm기관포를 두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봐서 DB엔진과 같은 거꾸로선 V형이 필수조건이었던 셈입니다. 

(그림4) MG151/20 20mm 기관포

왜냐하면, 머리 속으로 전투기의 구조를 그려보면 아시겠지만, 제일 앞에 프로펠러 헙과 카울링이 위치하고, 그 뒤에 엔진이 위치하고, 엔진 내부에는 20mm기관포의 총신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엔진 뒤에는 20mm 기관포 본구조 및 탄창이 위치하는데요,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같은 식의 바로선 \"V\"형 엔진의 경우 프로펠러-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일자로 연결하면, 기관포 본체가 놓이는 위치와 콕핏의 계기판 기계구조를 설치하는 위치가 겹치게 됩니다. 

굳이 해결하자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수집중방식 보다는 날개무장을 선택하고 있던 판에,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축기관포를 위한 설계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었던거죠. 

반면, Bf109의 구조를 보면, 프로펠러 헙-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잇는 일직선을 그어보면, 기관포 본체는 콕핏 기계부속 아래에 위치하게 됩니다. (실제로 Bf109 콕핏을 보면, 조종레버 뿌리의 앞쪽에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이 있는데, 그것이 MG151/20 기관포 본체의 일부분을 감싸고 있습니다) 딱 들어맞는 구조입니다. 원래부터 전투기 설계자가 엔진 형태를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염두해두고 있지 않은 한 그런 식으로 딱 들어맞는 형태는 나오기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Bf109 기종도 시제기를 만들면서 여러 형태의 엔진을 시험해봤지만, 설계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가 최종적인 엔진 종류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죠)

그 밖에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하여,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Bf109.com에서 설명하고 있는 DB605엔진 구조에 대한 내용을 조금 번역해보겠습니다. 엔진 구조물에 대한 전문용어가 많아서 -_-; 그냥 일부 단어는 원어로 냅뒀으니 양해해주시길..   (http://www.bf109.com/engine.html).

"...크랭크축은 six-throw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의 stell forging 주조 기법으로 만들어져있고 여섯개의 평형추를 지니고 있다. 납-청동 합금으로 만들어져 강철로 보강된 여섯개의 베어링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데, 하나의 throw 내에서 동작하는 커넥팅 로드는 한 쪽은 롤러 베어링을 통해 plain rod 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쪽은 plain bearing을 통해 forked rod가 plain rod에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피스톤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 있으며 floating-type 핀들로 고정되어 있다..."

"...프로펠러 축은 내부에 기관포를 위치시킬 수 있도록 비어있으며, 1.55 대 1, 혹은 1.88 대 1의 reduction ratio를 지닌 스퍼 기어를 통해 회전한다. 축 기관포는 엔진 뒷면의 테두리에 네 개의 지주와 나사로 고정된다. 프로펠러 축의 테두리는 8개의 구멍과 96개의 톱니가 달려 있는데, 이것이 당시 독일의 표준 생산형태였다..."

Ta152H의 Jumo213E 엔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DB엔진 보다 자료가 적기 때문에 별로 쓸만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문외한인지라, 정확히 무얼 질문하신지도 잘 이해를... 

어쨌건, 혹시 참고가 될까 하여, Jumo213E 엔진의 그림이 있는 사이트 주소는 아래에 적어 놓습니다.

(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

 

 

* 영광의 정점에서

Bf 109F형은 독일공군이 누린 영광의 시절을 상징하는 기체일 것이다. 형님겪인 E형과 함께 1941년초에 영국본토 항공전의 말미에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Bf 109F형은 당시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 Mk I, II를 훨씬 상회하는 비행성능으로 영국공군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에 놀란 영국공군이 성능개량형인 스핏화이어 Mk V형을 서둘러 제작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무렵 영국본토 항공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영국본토 항공전에서의 전과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 동부전선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는 Bf 109F, 독소전 초기 소련공군에는 이 기체에 맞설 만한 기체가 없었다. ]

Bf 109F형이 명성을 떨친 곳은 바로 독일공군의 주 전장으로 새롭게 떠오른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의 사막이었다. 물론 이 양대 전선에는 Bf 109E도 참가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Bf 109F의 생산량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며 이미 독일공군 전투기 부대의 실질적인 주역은 Bf 109F형이었다. Bf 109E는 Bf 109F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서 점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히틀러의 원대한 꿈이었던 소련 정복을 위해 동부전선으로 대거 집결한 독일공군은 세계 최강의 전투기인 Bf 109F를 앞세워 한수아래의 소련공군을 일방적으로 격파했다. 1941년 6월, 독일의 완벽한 기습으로 시작된 독소전에서 전쟁을 치룰 준비가 제대로 되있지 않았던 소련공군기들은 하늘과 땅에서 일방적으로 무참하게 격추되거나 파괴되었다. 전투의 양상은 너무나 일방적인 것으로 독일공군은 거의 매일 2차대전이 시작된이래 최고의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독일공군에는 최고 조종사로 추앙받던 베르너 묄더즈를 선두로하여 격추 스코어 100기를 넘는 슈퍼에이스들을 즐비하게 배출되었다. 당시 소련공군이 보유한 I-15, I-153, I-16과 같은 구식 전투기들은 Bf 109F에게는 그야말로 공중 표적에 불과한 것이엇으며 비교적 신형이던 야크-1이나 LaGG-3 같은 경우도 Bf 109F에 맞서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전쟁이 시작되기전 스탈린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인해 고급 공군 장교들이 많이 처형되어 소련공군 조종사들이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이렇다보니 실전에 대비한 훈련수준이 매우 낮았었으므로 영국과 미국에서 급히 공여된 허리케인, P-39, P-40등의 전투기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

[ 눈으로 뒤덮인 동부전선의 차가운 겨울에서 작전중인 Bf 109F ]

한편, 또하나의 전장이던 북아프리카에서는 1941년 말부터 1942년 중반까지 독일공군이 영국공군을 몰아붙이면서 롬멜의 지상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이 무렵의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는 Bf 109E, F형이었으며 이중에서도 비행성능이 뛰어난 F형은 P-40 계열기와 허리케인을 주로 사용하던 영국 사막공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무럽까지는 영국공군이 북아프리카에 스핏화이어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의 질적인 격차가 너무나 컸다.

특히 영국공군 전투기부대를 상대로 158기의 엄청난 격추기록을 달성하며 북아프리카 하늘의 전설이 된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가 주로 사용하던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 하늘의 왕자로서 독일공군 조종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 열사의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Bf 109F-2/Trop, 허리케인과 P-40 계열기들을 제물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

Bf 109F형은 그 등장시기가 독일공군이 모든 전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으며 독일에 대항하는 모든 적기들을 공격하여 단숨에 섬멸하는 최강의 전투기로서 명성을 떨쳤다. F형은 전투기끼리의 제공권 다툼에서 가장 큰 위력을 선보였으며, 1941년과 1942년의 1년여의 기간동안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평가받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당대의 라이벌인 스핏화이어 Mk V와의 비교 평가에서도 전반적으로 대등하거나 우세한 성능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모든 전선에서 오로지 공격에 공격을 거듭하던 독일공군의 창끝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 Bf 109F 일러스트 Colloection ◆

 

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로 진출한 Bf 109F-2/Trop형이다. JG 27 전투비행단 3연대의 기체로서 기수에는 '제자우 크로이츠'라고 불리는 튜튼 기사단의 방패가 연대마킹으로 사용되었다.

 

1942년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헝가리 사단 소속의 Bf 109F-4, 당시 헝가리와의 동맹을 상징하기 위해서 꼬리날개에 헝가리 국기를 그려넣은 기체이며 실제는 독일 조종사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떤 JG 27 전투비행단 2연대 소속의 Bf 109F-4/Trop형이다. 이기체는 걸출한 비행성능으로 영국 사막공군을 하늘에서 초토화 시켰다. 동체에는 기체 번호가 급히 다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으며 기수에는 2연대의 상징인 '베를린의 곰'이 그려져 있다.

 

1942년 8월, 기종을 Bf 109F-4/Trop형으로 교체한 직후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1942년, 지중해 지역에서 영국 함선들의 공격에 사용된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이다. 러더에 그려진 마킹은 격추마크가 아니라 격침시키거나 대파시킨 함선들을 의미한다.

 

영광은 끝나가고...

1941년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렸던 한해동안 총 2628기의 Bf 109E와 Bf 109F형이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1942년 여름이 지나면서부터는 독일군의 전성기가 끝나면서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 지면서 독일군이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 서로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후에는 점점 독일이 수세로 몰리게 되면서 절정의 영광을 누렸던 Bf 109F형도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점점 후계기인 Bf 109G형에게 주력의 위치를 내주고 전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Bf 109F형의 종말은 공격의 선봉에서 적의 전투기를 제압하던 순수한 제공전투기로서의 Bf 109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이는 후계기인 Bf 109G형이 비록 수적으로는 모든 Bf 109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생산되기는 했지만 적기를 제압하는 순수한 제공전투기라기 보다는 점점 요격기에 가까운 수비형 전투기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이제 Bf 109는 창에서 방패로 역할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foxmouse: 그동안 업데이트가 너무 지연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이야기거리와 볼거리를 넣고 싶다보니 마치 미궁속을 헤메는 것처럼 감을 잡지 못했었습니다. 그동안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Bf 109편의 마지막회로 예정된 '제국의 수호자'편을 기약하면서 Bf 109E, F형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art2-title-109e.jpg"
width=550 border=1>


align=justify>독일의 침략으로 유럽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1939년부터 독일공군은
엄청난 위세를 과시하며 전 유럽에 공포와 충격을 몰고왔다. 하늘에서는 Bf 109를 앞세운 독일공군이 연합군의 전투기들을 일소하며 창공의 전설을
만들고 있었으며 지상에서는 독일공군의 원호를 받고있는 전차군단이 질풍같은 속도로 서유럽을 가로지르며 독일군에 저항하던 영불 연합군을
신속하게 두동강내고 있었던 것이다.


align=justify>이때부터 약 2년의 기간동안 독일공군은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받으며 서유럽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부전선을 휩쓸어 버리면서 그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 절정에 달한 영광의 시절동안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로 활약했던 전투기가 바로 Bf 109E형과 Bf 109F형이었던 것이다.  


align=justify>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회에서는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의 두 번째 이야기로 이 전투기가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시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color=red size=2>* 진정한 전투기로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v13-14.jpg" width=400
align=left border=1>[ Bf 109V13 시제기의 사진, Bf 109E의 탄생으로 이어지게되는 기체이다. ]


align=justify>Bf 109V1 시제기부터 Bf 109D형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숨가쁘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던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로소 Bf 109E라는 멋진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Bf 109E형은 Bf 109 가문에서 최초의
대량 생산형이었으며 1939년 말까지 최일선의 전투기부대에서 Bf 109 선행형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전투기들을 밀어내고 대체하면서 최일선
주력전투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까지 독일공군의 최정예 13개 전투기 연대가 각 40기씩의 Bf 109E를 배치받았는데 이 전투기들이 전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게 된 것이다. 대개 Bf 109 시리즈를 분류할 때 A형부터 E형까지를 1세대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Bf 109E형은 1세대 Bf 109의 결정판으로서 진정한 Bf 109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조종사들 사이에서 '에밀 (Emil)'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align=justify>1937년의 국제 항공대회에서 시험적으로 제작된 DB 601엔진을 장착하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Bf 109V13의 놀라운 성능에 고무된 BFW사는 이 엔진을 장비한 신형기를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새로운 벤쯔 엔진은 기존에 사용했던
유모 엔진에 비해서 크기가 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체에 많은 개량이 가해졌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db601.jpg" width=400
align=right border=1>[ Bf 109E의 심장 - 다이믈러 벤쯔 DB 601 엔진의
모습, 이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존형에 비해 기수의 형태가 많이 변하게 되었다. 이 벤쯔 엔진의 탁월한 성능이 Bf 109E에게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선사해 주었다. ]


align=justify>우선 동체가 유모엔진을 장착했던 C/D형에 비해서 10cm 길어졌으며 냉각계통도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어야 했다. 기수 하면의 커다란 공기흡입구가 축소되어 윤활유 냉각용 공기흡입구로 사용되었으며 냉각수를 위한 공기흡입구는 양쪽의 주익
하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엔진출력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 새롭게 디자인된 3날의 VDM 프로펠러가 사용되었고, 이 프로펠러는 피치조절이
가능했다. 이런 다양한 변화의 결과로 전체 중량은 450kg이나 증가하게 되었지만 엔진 출력이 이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더 강력해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행성능에는 많은 향상이 있었다.


align=justify>1938년 여름에 1100마력급의 DB 601A 엔진을 장비한 시제기 Bf
109V14의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이 형은 기수의 MG 17 기관총 2정에 더해서 주익 장착 문제가 해결된 MG FF 20mm 기관포 2문을
시험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로서 숙원이었던 20mm 기관포를 가지게되자 화력강화의 문제는 해결된 듯 했지만 Bf 109의 기체설계가
근본적으로 무장을 기수에 장착해야 최고의 비행성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메서슈미트 박사는 기축에 20mm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는
설계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기축선 기관포를 탑재하고 주익의 무장을 제거한 Bf 109V15 시제기를 제작하여 시험비행에
참가시켰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1-jg20-1.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JG 20 소속으로 실전배치된 Bf 109E-1, JG 20 전투비행단 제
1중대장이었던 발터 외자우 대위의 기체이다. 훗날 이 중대는 JG 51의 7중대로 개편되어 동부전선에 투입되게 된다. 기수의 활 엠블램은 중대의
상징이다.  ]


align=justify>야전부대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선행양산형인 Bf 109E-0형이 급히 생산되었는데 아직 기관포의
탑재가 적용되지 않아 이 형은 Bf 109C형과 같이 기수와 주익에 4정의 MG 17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E-0형의
양산작업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곧 본격 양산형 Bf 109E-1가 생산되었다. 이 Bf 109E-1형은 기관총 4정의 무장은
같았지만 주익의 기관총을 야전에서 MG FF 기관포로 쉽게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야전 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는 즉시
주익의 무장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주익에 장착되도록 개량된 MG FF 기관포는 스위스 오리콘사의 오리지널 모델에
비해서 포구속도가 떨어져 사거리와 파괴력이 덜어졌지만 화력 강화를 위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사용되었는데, 이 기관포를 장착하는 경우
탄약 드럼의 부피로 인해서 주익 하면에 약간 불룩해 보이는 돌출부가 생기게 되었으며 20mm 기관포탄의 최대 탑재가능 탄수는 각
60발이었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mgff-wing.jpg" width=400
align=right border=1>
[ 야전부대에서 정비병들이 Bf 109E-1의
주익에 MG FF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는 장면 ]


align=justify>이때까지는 Bf 109도 제공전투 이외에 지상공격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받고 있었으므로
50kg 폭탄 4발 혹은 250kg 폭탄 1발을 장착할 수 있었던 전투폭격기형 Bf 109E-1/B 형도 같이 생산되었다. 이후 독일공군이 Bf
109E의 본격적인 대량 생산을 요구하면서 아욱스부르크의 생산공장이 레겐스부르크로 이전하게 되었고 다른 항공사의 몇몇 공장들에서도 생산에
참여하게 되면서 1939년 말까지 총 1540기의 기체가 생산되게 되었다.


align=justify>이후에 Bf 109E-2형에서는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포 2문을 표준으로 하게
되었으나 기축선에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겠다는 메서슈미트 박사의 집념으로 프로펠러축에 MG FF 기관포를 장비하는 Bf 109E-3가
제작되었으며 이 E-3형이 Bf 109E중에서 가장 많은 수가 생산되어 E형을 대표하는 주요한 생산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1940년
초부터 생산이 시작된 Bf 109E-3는 기축의 20mm 기관포 1문외에 엔진 카울링과 주익에 각 2정씩 총 4정의 기관총을 장착하도록 했다.


align=justify>그러나 기축선 기관포는 여전히 잦은 고장을 일으켰으며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불만이
속출하여 대부분의 야전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면   이 기관포를 아예 떼어 버리고 주익의 기관총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해서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생산라인에서도 기축선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고 주익에 2문의 기관포만을 장비하도록 변경하게 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Bf 109E-3는 애초의 설계와는 달리 주익의 기관포 2문, 기수의 기관총 2정의 무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Bf 109E
시리즈의 표준 무장이라고 하면 결국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총 2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wick.jpg" width=550
border=1>


align=left>[ JG 2 비행단장 헬무트 뷔크의 Bf 109E-3,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작전중이던 무렵의 사진이다. 스피너 가운데에 기축 기관포를 위한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


align=left>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carrying.jpg" width=550
border=1>


align=left>[ 트럭으로 Bf 109E를 견인하고 있는 특이한 장면, 트럭 바퀴의 폭과 비슷한
정도로 폭이 좁은 주 강착장치를 잘 볼 수 있는 사진이다. ]


align=justify>Bf 109E-3는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가 가동되면서 월평균 150여기가 생산되었으며
1940년 한해동안 1868기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많은 수가 만들어졌는데 이 수치는 이 무렵이 2차대전의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결국 1940년에는 대부분의 실전 전투기부대들이 Bf 109E-3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 E-3형이 1940년에 전유럽의 하늘을
휩쓸어 버리는 영광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며 이후 194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인류 역사상를 통털어 최대 규모의 항공전으로 기록되는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맹활약했던 것이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engine-start.jpg"
width=400 align=left border=1>
[ 비상출격 명령에 따라 Bf
109E의 엔진 시동을 걸고 있는 정비병,  기축 기관포를 위한 스피너의 구멍이 잘 보이는 사진이다. ]


align=justify>Bf 109E-3는 대외판매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스위스에 80기가 넘겨진 것을 포함해서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의 외국으로 총 304기가 판매된 것인데, 이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동맹국인 일본에 2기가 넘겨진
것과 훗날 철천지 원수가 되는 소련에도 5기가 판매되었다는 사실이다.


align=justify>특히 일본에 넘겨진 2기는 훗날 일본의 가와사끼 항공사가 Ki-61 히엔을 제작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수출형 Bf 109E-3는 독일공군내에서 Bf 109E-3a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독일공군용으로 제작된 Bf
109E-3형에 비해서 많은 첨단 장비가 제거된채로 한단계 낮은 성능을 가진 채로 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수출형에는 독일제 고성능
무선 통신 장비가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심지어는 주익의 무장을 없애 버린 것들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소련이나 유고로 수출된 기체들에 이런 조작이
많이 가해져 거의 간신히 비행만 가능한 채로 모든 주요 장비가 제거된 채로 넘겨졌다고 한다. 소련은 이 기체를 넘겨받은후 이 기만 전술에 속아
이 전투기가 가진 무서운 능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응에 소흘했기 때문에 훗날의 독소전에서 커다란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japan.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3국동맹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일본에 넘겨진 Bf 109E-3
]


align=justify>1940년말부터는 아예 기축의 기관포를 완전히 포기하여 엔진룸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없애
버리고 주익의 기관포 2문과 기수의 기관총 2정만을 표준으로 하는 Bf 109E-4가 생산되었으며 전투폭격기형인 Bf 109E-4/B형도 같이
생산되어 영국본토 항공전의 후반기에 E-3형과 함께 주력 전투기로서 사용되었다. 특히 E-4형에 표준무장으로 채택된 기관포는 보다
개선된 MG FF 'M' 20mm 기관포로서 기존의 HE탄에 비해서 보다 폭발력이 강한 신형 탄의 사용이 가능해 파괴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외에 캐노피를 평면형으로 바꾸고 조종사 보호를 위한 방탄판도 표준 장비로 채택되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galland2.jpg"
width=558 border=1>


align=justify>[ JG 26 비행단장 아돌프 갈란트 소령의 Bf 109E-4, 기축
기관포가 완전히 폐지되어 E-3형 까지 유지되던 스피너의 기관포구용 구멍을 없앤 신형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물론 구형 스피너를 가진 E-4형도
일부 있었다. ]


align=justify>1941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향상된 연료 분사장치와 자동으로 작동되는 유압식 슈퍼차져를 가진
신형 DB 601N 엔진을 장비한 Bf 109E-4/N형이 개발되었다. 이 1200마력의 신형엔진을 부착하면서 기체의 성능은 더욱 좋아졌으며
주로 북아프리카 전선용 기체로 생산되었다. 특히 북아프리카 전선용의 기체는 슈퍼차져의 공기흡입구에 커다란 방진필터를 장비하고 동체에 조종사
구난용 생존키트를 내장하도록 개량되었는데, 이 형은 사막과 열대 (tropical) 지역의 작전용인 Bf 109E-4/Trop 형으로 알려지게
된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trop.jpg" width=550
border=1>


align=justify>[ JG 27소속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2위의 에이스로 명성을 날렸던
베르너 슈뢰어의 Bf 109E-4/Trop, 기수 좌측의 특징적인 방진필터가 Trop형의 특징이다. ]


align=justify>이외에는 전선정찰용으로 2정의 기관총만을 가진 경무장의 Bf 109E-5, E-6형이
소량생산되었으며 기내의 연료탑재 용량이 적어 영국 본토항공전에서 고전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투하식의 300리터들이 외부연료 탱크를 장착해
항속거리를 대폭 늘린 Bf 109E-7형도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이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이 E-7형은 장거리 항속력이 필요했던
몰타섬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작전에 다량 투입되어 맹활약했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의 근접 지상지원을 위해서 연료탱크대신 폭탄을 장비하도록 하고 조종석
주위에 장갑판을 강화한 Bf 109E-7/U2형이 생산되기도 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schlageter-7th-rearm.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몰타섬 공략을 위해 시칠리에서 작전중이던 JBf 109E-7, 약간
디자인이 바뀐 뾰족한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스핏화이어 킬러로 유명한 요아힘 뮌히버그가 지휘하던 JG 26 제 7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


align=justify>Bf 109E 시리즈의 마지막 기체로는 DB 601E 엔진을 장착한 E-8형과 장거리 정찰용으로
제작된 E-9형이 있으나 모두 소량생산에 그쳤다.  특이한 변종으로는 항모 그라프 쩨펠린에 탑재될 예정으로 Bf 109E-3를 개조한
Bf 109T 형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kwessa님이 자세히 올려주신 자료를 참고하시길...





style="BORDER-RIGHT: black 1px solid;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solid;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643 bgColor=#cccccc height=2261>

align=justify>* Bf 109E의 함재기형 - Bf 109T


align=justify>이 부분은 109E의 변형인 함재기형의 Bf 109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편집해서 추가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_^


align=justify>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


align=justify>독일군 함재기에 대한 질문이 나왔었는데.. -_-; 순전히 글쓰기 귀찮다는 이유로 "다른
분들께서 답변을 잘 하시겠지.."하고 놀려두고 있다가 결국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라기 보다는, 제버릇 개 못주니..) 몇자 끄적여봅니다.


align=justify>기본적으로 Bf109 기종이 대전 초중반까지는 독일군의 거의 유일한 전투기였으므로, 이 기종을
함재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죠.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진전됨에 따라 독일군은 Bf109E형을
함재기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도하게 되는데요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함선보다 함재기들이 먼저 준비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align=justify>1939년에는 양산전 시험생산으로 10기의 Bf109T-0이 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DB601Aa엔진에 두 정의 MG-FF 20밀리 기관포, 두 정의 MG17 7.92 밀리 기관총을 장착한 Bf109E-3형에서 출발했는데,
완성단계에서는 기존의 E형보다 면적이 더 넓은 날개에 꼬리 부분의 착륙용 후크, 동체에 두개의 캐터펄트(네! 캐터펄트입니다!) 후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align=justify>성공적인 시험생산을 마친 후, 1940년에는 본격적인 양산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총 60대의
양산형 Bf109T-1이 생산되었습니다. 양산형 T-1기종에는 기존의 E형에 사용되던 DB601Aa 보다 더욱 강력한 DB601N 엔진이
사용되었고 함재기로써의 기능을 완비하게 됩니다.


align=justify>그런데, 1940년에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백지화되면서 아쉽게도 T형의 개발계획도 멈추게
됩니다. 현재까지 생산된 T형은 메서슈미트사의 전투기들을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던 피이슬러사에 넘겨져서 함재기용 장치를 모두 제거한 후 지상이착륙
전투기로 사용됩니다. 이륙용 사출후크와 착륙용 꼬리후크를 제거하고, 보조연료탱크나 250kg짜리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범용 동체 랙을 설치하게
되는 이 기종은 Bf109T-2로 지정되었습니다.


align=justify>원래 함재기로 사용하기 위한 전투기였던 만큼, 완비된 활주로의 비행장이 드물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작전에 쓸만한 활용가치가 있다는 판단아래에 Bf 109T-2형은 모조리 노르웨이로 보내졌습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3d.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Bf109T형 - 동체 아래의 사출후크, 꼬리의 착륙후크, 넓어진 날개
]


align=justify>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1.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Bf109T-2 ]


align=center>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2.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Bf109T-2 ]


align=center>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3.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함선상 이륙 중인 Bf109T-1, 사출후크와 꼬리후크가 잘 드러나있음
]


align=justify> 


align=justify>* 에밀의 비행성능


align=justify>비행특성의 측면에서 볼 때 Bf 109E는 매우 우수한 기체였다. 특히 시속 480km 이내의
속도에서 이 전투기는 매우 우수한 조종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른 바 '감'이 좋아서 일선 조종사들로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기존에 지적받았던
실속시의 비행특성도 많이 개선되어 갑자기 실속이나 스핀에 빠지는 일이 없어졌으며 실속경고 장치가 있어서 조종사들이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20도가 숙여지는 삽입식 플랩덕분에 활주거리도 괄목할만큼 짧아졌다. 물론 기존형부터 지적되어오던 주강착장치의 폭이 좁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무게중심보다 조금 앞쪽으로 위치하도록 설계되어 착륙시에 접근 각도가 너무 급격하더라도 안착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며 착륙 활주거리도 짧은
편이었고 지상활주도 용이한 편이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afterlanding.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착륙후 주기중인 Bf 109E, 기체의 볼륨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align=justify>기체의 최고 속도는 12300 피트의 고도에서 수평비행시에 시속 573km를 기록했으며 65%
출력의 경제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항속거리는 최대 668km 정도였다. 초기 상승률은 분당 3100피트에 이르렀으며 작전가능 고도는
36000피트로서 고공성능이 매우 좋았고 최대 375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급강하 폭격을 위해 테스트 받았던 Bf 109E-1/B의
경우 평균 급강하 속도가 시속 604km였으며 속도가 붙는 경우 시속 722km까지도 기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32.jpg" width=509
border=1>


align=center>[ 날렵한 외형을 자랑하는 Bf 109E-3 ]


align=justify>하지만 시속 600km를 넘어가게 되면 보조익 (aileron)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단점이
있어서 급강하에 접어든후의 고속비행에서 롤 (roll)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었으며 고속 급강하시에는 러더 (rudder)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트림조작이 어려워 조종사들이 애먹기도 했다. 게다가 원형기에서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오던 이착륙시에 좌측으로 쏠리는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어 이런 현상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미숙한 조종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이착륙시에 잦은 사고를
유발했다. 후에 통계를 내보니 Bf 109B가 최초로 실전배치된 1937년부터 1941년 가을까지의 4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무려
1500여기의 Bf 109 전투기들이 이착륙시에 발생한 사고로 전열에서 이탈했다고 한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spain.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스페인에서 작전중 착륙 과정에서의 사고로 파손된 Bf 109E-1
]


align=justify>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메서슈미트 박사와 설계팀은 이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에 나섰는데 고정되지 않은 뒷바퀴가 이착륙시에 좌우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어 이 뒷바퀴를 엔진이 풀쓰로틀에
달했을 때만 좌우로 가동되도록 개선작업에 들어갔는데 이후 이착륙시의 사고는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교정되지는 않고 더 이상
해결책이 없어 Bf 109의 최종생산형에서까지도 조종사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align=center>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ccffcc>

align=center>Messerschmitt Bf 109E-3
Emil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white>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3-3d.jpg" width=550
border=0>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ffffcc>

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1A (1100마력)


전폭:
10.34m


전장:
9.05m


전고:
3.58m


최대중량:
3017kg


최대속도:
573km/h (고도 4,120m)


최대고도:
36091피트 (12150m)


항속거리:
794km


무장:
MG17 7.92mm 기관총 2정 (기수) + MG FF 20mm 기관포 2문
(주익)


align=justify> 


align=justify>* 전장의 에밀


align=justify>대전이 발발하자 엄청난 기세로 진격을 하는 독일군에게 하늘에서 든든한 지원을 해주는 독일공군의
슈투카와 Bf 109E야말로 실로 멋진 존재였으며, 전격전 기간동안 유럽 상공에서 독일공군에 대적했던 모든 연합군 전투기들은 Bf 109E의
사냥감 신세가 되었다. 개전 초기에는 연합군의 어떠한 전투기도 따르지 못하는 엄청난 속도와 상승력, 그리고 고속 급강하의 엄청난 압력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벤쯔엔진의 뛰어난 성능이 이 작은 전투기에게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명성을 얻게 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s-condor.jpg" width=550
border=1>


align=left>[ 콘돌 군단에 파견되어 실전 테스트를 받고 있는 Bf 109E, 이
때의 소중한 전투 경험이야말로 독일공군 조종사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


align=justify>어느정도 독일공군에 맞설 수 있으리라는 예측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기들은 이 Bf
109E의 위력에 압도되어 대패를 당했다. 프랑스로 파견된 영국공군 소속으로 허리케인을 조종하여 Bf 109E와 전투를 경험했던 영국공군의 한
장교는 허리케인이 Bf 109E에 대해서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점을 인정하고 '비록 적의 전투기지만 Bf 109야 말로 세계최고의
전투기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전격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프랑스 공군과 대결했던 Bf 109E 전투기들은 프랑스 공군의 주력이었던 호크 75,
MB 151, 모랑솔니에 MS.406등의 전투기들과 대결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프랑스의 신예기 드와땡 D.520 같은 경우는 Bf
109E와 거의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나 전투에 투입된 숫자가 너무 적어 실전에서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뭐니뭐니해도 Bf 109E에게 있어서 적수다운 적수는 숙적 영국공군의 신예전투기 스핏화이어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cockpit.jpg" width=408
align=right border=1>
[ Bf 109E의 조종석,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시야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특히 함몰된 형태로 제작되어 후방시야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


align=justify>프랑스 전투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끝나 버린후 독일공군은 잠시의 휴식후에 항복을 거부한 영국
본토를 공략하는 임무에 나서게 되는데 이때까지 유럽전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본토 방위에만 전념하고 있었던 영국의 최신예
스핏화이어 전투기들이 허리케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출격함에 따라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두 전투기끼리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것이다.


align=justify>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한 BF 109E는 E-3형이 약 70% 정도의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중반을 넘기면서는 E-4형이 같이 전투에 참가했다.


align=justify>1940년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군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에게는
마치 하늘이 정해준 것처럼 느껴지는 숙명의 라이벌인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가 제일 껄끄러운 상대였다. 성능면에서 비교해볼 때 수평비행시에
최고 속도에서는 스핏화이어 Mk I, II쪽이 약간 더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수평선회 능력에서도 Bf 109E가 영국의 스핏화이어보다
약간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으며 스핏화이어의 보조전투기겪인 허리케인에 비해서도 선회반경이 약간 더 컸기 때문에 이 두 영국제 전투기와
저속과 중간 속도에서 급격한 수평선회전을 벌일 때는 불리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상승속도와 최대상승고도에서는 Bf 109E가 이 두
영국전투기보다 명백히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200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는 훨씬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서
연료 직접분사기를 부착한 벤쯔엔진 덕분에 전투비행시 기수를 급격하게 숙이는 경우나 고속 급강하시에 발생하는 마이너스 G의 거친
환경에서도 엔진에 연료공급이 지속될 수 있어서 공중전에서 큰 이점이 되었다. 스핏화이어는 순각적으로 기수를 숙이는 등의 마이너스 G를 유발하는
기동을 구사하거나 급강하를 오래지속하는 경우 연료공급이 순간적으로 끊겨 엔진이 정지하는 현상이 생기므로 고속으로 급강하하는 Bf 109E를 오래
따라붙을 수 없었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spit-gwp-109e-circle.jpg"
width=400 align=left border=1>
 [ Bf 109E와
스핏화이어 Mk I의 수평선회 능력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두기체가 똑같은 속도에서 선회를 시작하는 경우 스핏화이어쪽이 더 날카로운 선회를 할 수
있어 수평 선회전에서는 유리했다. 이 데이터만을 놓고 스핏화이어의 성능을 극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전투에서 두 기체가 같은 속도로 근접
선회전을 벌이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두 기체중에서 속도와 고도가 우월한 쪽이 전투의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
]


align=justify>이런 장단점으로 인해서 Bf 109E는 특유의 전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고속으로 급상승하여
유리한 고도를 확보한후 벼락처럼 급강하하면서 적기를 순식간에 공격하고 다시 고도를 높이는 일격이탈 전법이었다. 이 전법은 Bf 109E의
장점만을 활용한 매우 효과적인 것이었으며 미숙한 조종사들에게도 쉽게 교육할 수 있었다.


align=justify>사실 영국공군과 독일공군의 조종사들은 서로 적기들의 성능에 대해서 경외감을 표시했는데 이로인해
스핏화이어와 Bf 109E는 오히려 적군에 의해 더 과대평가를 받게 되었다. 독일공군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의 급격한 선회능력에 놀라 감히
선회전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스핏화이어 조종사들은 Bf 109E의 상승성능과 급강하 공격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
기간중에 본토에 추락한 Bf 109E를 수리하여 비행성능을 시험해본 영국공군측은 Bf 109E의 비행성능이 예상외로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전투기는 예상과 달리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공중전 테스트에서도 그다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Bf 109E가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수평 선회능력이 약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공중전이라는 것은 3차원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이었으므로
수직기동을 절묘하게 섞어서 비행할 수 있었던 수준높은 엘리트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격투전에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두
기체의 공중전 성능은 서로간에 분명한 장점들이 있었으므로 어느 한쪽이 우세했다기 보다는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호각의 상태였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mgff-20mm-cannon.jpg"
width=330 align=right border=1>
[ 영국 전투기들에 비해 열세했던
화력을 만회하게 해준 회심의 카드 MG FF 20mm 기관포, 주익에 고정 장착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align=justify>화력면의 비교에서도 Bf 109E형이 가진 20mm 기관포 2문과 2정의 7.92mm 기관총이
스핏화이어와 허리케인 같은 영국 전투기들이 장착한 8정의 7.79mm 기관총에 대해서 우세한 편이었다. 물론 양측의 장탄수와 발사속도등의 차이가
있었고 영국 전투기들이 장비한 기관총이 8정이나 되었기 때문에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는 양측의 전투기들의 화력이 거의 대등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align=justify>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Bf 109E의 MG FF 20mm 기관포탄은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거나
스핏화이어와 같은 전금속제 전투기에게 명중되는 경우에는 명중되자마자 폭발하면서 매우 높은 파괴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목재골조에
캔버스 (천)를 대는 방식으로 제작된 허리케인의 경우에는 기관포탄이 캔버스를 그냥 관통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align=justify>사실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드러난 Bf 109E의 최대약점은 스핏화이어에 뒤지는 성능이 아니라
짧은 항속거리였다. 체공시간 80분에 항속거리 700km정도라는 것은 전투반경이 짧았던 서유럽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영국본토까지
날아가는데 30분,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되는 장거리 비행은 Bf 109E에게 겨우 10-15분 정도의 너무나 짧은 교전시간밖에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영국 전투기들과 교전중에도 연료가 바닥날 우려로 인해 교전을 중단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우군 폭격기들이
영국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도와주지 못하는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했다. 분을 못이긴 일부 조종사들은 이런 순간에
자제력을 잃고 영국 전투기들을 공격하다가 결국 귀환도중에 연료가 바닥나 프랑스의 해안이나 도버해협의 바닷물속으로 쳐밖히는 경우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영국공군은 Bf 109E들이 연료문제로 귀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독일 폭격기들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하여 독일공군을
괴롭히기도 했다.


align=justify>여기서 한가지 의구심이 생기게 되는데 도대체 왜 독일공군은 영국본토 항공전기간에 Bf
109E에게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것일까? Bf 109E가 외부 연료탱크만 장착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스핏화이어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고 전쟁은 단기간에 독일공군의 승리로 끝났을텐데...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he51-fueltank.jpg" width=400
align=left border=1>
[ 1930년대 중반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였던 He 51, 이 사진에서 처럼 이미 낙하식 연료탱크는 이미 실용화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


align=justify>사실 독일의 기술력으로 볼 때 Bf 109E에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만일 프랑스전의 대승리이후 즉각적으로 철저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면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는 더욱 맹위를
떨쳤을 것이다. 독일공군이 Bf 109E에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align=justify>우선은 프랑스라는 대어를 낚으면서 전격적인 승리에 도취된 독일공군측에서 자만심에 사로잡혀
영국본토 공략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소흘했다는데 있다. 서유럽을 정복하는 동안 Bf 109E의 항속거리가 문제된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전쟁이 시작될 당시 폭격기 호위용으로 개발된 Bf 110 쌍발 전투기가 있었으므로 Bf 109E는
폭격기 호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이 적의 전투기만 찾아 공격하고 돌아오는 식의 '자유전투'의 방식으로 전술운영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혀 외부연료 탱크 부착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swarm.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독일공군이 조금만 더 철저한 준비를 했었다면 아마도 영국본토 항공전의
양상은 전혀 다른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진의 기체는 외부 연료탱크를 장비한 Bf 109E-7으로 영국본토 항공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등장했다. ]


align=justify>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후 영국본토 항공전이 최절정을 향해 치닫게 되는동안 Bf 110
전투기들이 영국 전투기에 맞서 폭격기의 호위를 맡기에는 역부족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자 Bf 109E가 폭격기 호위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서 짧은 항속거리가 커다란 약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폭격기 호위를 위해서 Bf 109E가 중고도에서 호위를 하는 경우 Bf
109E의 장기인 고속 급강하 공격이 발휘되기 어려웠으며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에게 오히려 고도의 이점을 빼았기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낙하식
외부 연료탱크의 필요성을 절감한 독일공군측이 뒤늦게 땅을 치면서 이 작업을 추진하도록 메서슈미트 박사에게  의뢰했지만 이것은
시기적으로 너무나 뒤늦은 결정이었다.  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의 최대고비인 1940년 9월 15일까지의 치열한 전투에서 독일공군이 너무나
큰 손실을 입어 결국 독일은 영국에 대한 침공계획을 결국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align=justify>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게 개발되었던 Bf 109E-7형은 비록 영국본토 항공전에서는 거의
활약을 못했지만 이후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장거리 항속능력을 이용하여 맹위를 떨치면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했으며, 영국
사막공군의 무서운 적수로 떠올랐다.


align=justify> 


align=center>◆ Bf 109E 일러스트 Collection


align=justify>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g132.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39년초 JG 132에 배치된 Bf 109E-1, 본기의 기수에 그려진 '끈이
풀린 구두'는 JG 132 전투비행단 제 4연대의 것으로 훗날 JG 77 제 1연대로 개편되게
된다.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pg" width=581
border=0>


align=left>1940년 5월 10일 서유럽전에 참가중이던 디터 로비쯔쉬 대위의 Bf
109E-1, 디터 중위는 네덜란드 상공에서 포커 XXI 전투기와 교전중 격추되어 포로가
되었다.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g27.jpg" width=581
border=0>


align=left>1940년 5월, 서유럽전에서 활약하던 JG 27 소속의 Bf 109E-1이다.
조종사는 프리치 켈러 중위로 본기의 기수에는 훗날 북아프리카에서 더 유명해지는 JG 27 1연대의 부대마크가 그려져
있다.


align=justify>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pic-bf109e-4up.jpg" width=520
border=0>


align=left>1940년 5월, 프랑스 침공작전 당시 JG 26 소속으로 작전중이던 Bf
109E-3의 상면도, 쭉쭉 뻗은 통통한 주익과 전체적으로 직선형으로 디자인된 기체의 특징을 잘
볼수있다.


align=justify>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3.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0년 8월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하고 있던 JG 26 제 9중대소속의 Bf
109E-3, 조종석 아래 그려진 중대마킹은 유명한 것으로 '헬 훈트 (지옥의 개)'라
불린다.


align=justify>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3-galland.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1년,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장이자 유명 에이스인 아돌프 갈란트의
기체이다.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중일 당시의 도색으로 그의 개인마크인 미키 마우스가 조종석 아래에 그려져
있다.


align=justify>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wick.jpg" width=550
border=0>


size=2>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bf109e-4front.jpg"
width=600 border=0>


align=left>1940년 10월, JG 2 리히토펜 비행단의 지휘관 헬무트 뷔크의 Bf
109E-4형의 일러스트, 전통적인 노란색으로 칠해진 기수에서 카울링에 장비된 2문의 MG17기관총이 뚜렷하게 보인다. 카울링에 그려진 칼은
뷔크의 개인 도색이며 수직 안정판의 받침대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접히게 되어있는 강착 장치등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초기의 E-4형은
E-3형에 사용되던 구형 캐노피를 같이 사용했다.


align=justify>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7b.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2년 겨울,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 1중대 소속의 Bf
109E-7B으로 동부전선의 스탈린 그라드 지역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던 당시의 도색이다. 이무렵에는 이미 E형이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을 시기이나 전황이 워낙 다급하여 훈련용으로 전용된 기체가 동부전선으로
보내졌다.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7trop.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2년 8월, 북아프리카 상공을 누비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Bf 109F형의 도입이 늦어 이무렵까지도 E형이 수적인 주력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align=justify>

align=justify> 


align=justify>새로운 탄생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art2-title-bf109f-hans.jpg"
width=497 align=left border=1>Bf 109E가 유럽하늘의 왕자로 군림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동안 메서슈미트 박사는
1세대 Bf 109의 결정판겪인 Bf 109E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후계기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align=justify>이 기체가 바로 후세에 Bf 109의 모든 시리즈를 통털어 가장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졌던 최고의 기체로 평가받는 Bf 109F형이다. Bf 109E가 독일공군의 대도약을 선도했다면 Bf 109F는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리던 시기에 창공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lign=justify>Bf 109F형은 Bf 109V1에서 Bf 109E까지 이어진 1세대 Bf 109와는 어떻게
보면 외형과 성능에서 전혀 다른 기체로 평가되어 제 2세대 Bf 109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전투기는 전선의 독일공군
조종사들로부터 프레드릭 (Frederick) 혹은 프란쯔 (Franz), 프리쯔 (Fritz)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align=justify>사실 Bf 109F형의 탄생은 다이믈러 벤쯔사가 제작하고 있던 신형 DB 601E-1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체의 설계가 대폭 수정되는 과정이 그 출발점이었다. 메서슈미트 박사는 1940년초부터 이 새로운 고성능 엔진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하기위해서 기존의 Bf 109E형의 개조작업을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pg" width=423
align=right border=1>
[ 새롭게 등장한 Bf 109F, 기존의 E형에
비해서 많은 개량이 있는 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


align=justify>엔진의 효과적인 공간확보를 위해 기수의 형태가 새롭게 디자인되었으며 기수하면의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도 뒤로 이동되었고 프로펠러 스피너가 둥근 반구형태로 약간 커졌으며 프로펠러의 직경은 6인치 작게 설계되었다. 주익하면의 공기흡입구도
얇아졌으며 수평꼬리날개를지지하고 있었던 지지대를 폐지하여 훨씬 세련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제기의 첫 비행은 1940년 7월 10일에
실시되었었는데 여러차례의 시험비행에서 Bf 109E형에 비해 괄목할 만한 비행성능의 향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 독일공군 수뇌부에서
영국의 스핏화이어를 완전히 능가하는 신형기를 개발하라는 주문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제기를 바탕으로 Bf 109E의 후계형인 F형을
개발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되었다.


align=justify>새로운 기체로의 개발이 결정되자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행성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 주익의
전면적인 재설계 작업에 들어갔는데 주익의 폭이 약간 넓어졌으며 끝단이 둥글 게 처리되었다. 플랩과 보조익 (aileron)의 설계도 크게
변경되었는데 특히 1세대 Bf 109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삽입형 플랩 (slotted flap)이 단순형 플랩 (plain flap)으로
변경되었고 보조익도 삽입형 (slotted type)에서 프라이제 (Frise type)으로 변경되었다. 이외에도 기존형까지 동체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던 뒷바퀴도 이륙직후에 동체안으로 인입되는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Bf 109F형은 기존형에 비해 일신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f-upview.jpg" width=600
border=1>


align=center>[ E형과 F형의 상면도, 기체의 외형에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align=justify>기체의 무장면에서도 설계팀이 그토록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졌다. 원형기에서부터 무던히 시도되었으나
빈번한 오작동과 진동유발로 인해 번번이 탑재가 좌절되었던 프로펠러축 방식의 기관포 탑재가 드디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어 F형에서는 기축에 MG
FF 20mm 기관포를 탑재하고 엔진 상부에 2정의 MG 17 기관총을 탑재하는 것으로 기본무장 방식이 결정 되었다. E형의 특징어었던 주익의
기관포는 비행성능의 향상을 위해 주익의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결정되면서 폐지되었고 주익이 얇게 설계되어 야전에서 주익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Bf 109E형의 화력에 만족하고 있었던 많은 조종사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하는데 이중에는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유명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도 있었다. 심지어는 부대 지휘관들이 F형의 수령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aiming.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탄착점을 조절하기 위해 기체를 수평으로 세우는 장면 ]


align=justify>하지만 메서슈미트 박사는 Bf 109 전투기는 그 탄생시기부터 기수집중식의 무장을 추구했던
기체였으며 Bf 109E는 어쩔 수 없이 주익에 무장을 장착했던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 기관포를 탑재하기 위해서 주익을 두껍게
제작해야 했고 기관포와 탄약의 무게로 인해 주익의 부하가 증가해서 최고의 비행성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면서 조종사들의 설득작업에
나섰다. 이무렵 아돌프 갈란트 못지 않은 명성을 날리던 유명 에이스 베르너 묄더즈가 화력보다는 우수한 비행성능과 정교한 사격술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기수에 집중된 무장은 주익 장착방식에 비해서 화력과 산탄총 효과는 줄어들지만 조종사의 조준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정확한 사격에 도움이 되고 파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초원의 야전 비행장에 주기된 Bf 109F, 동부전선의 JG 51소속
기체이다. ]


align=justify>여하간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끝에 Bf 109F형은 화력보다는 비행성능에 더 무게를 두고 개발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어 주익에는 무장을 장비하지 않고 오로지 기수에 집중된 1문의 기관포와 2정의 기관총을 고정무장으로 가지게
되었다.


align=justify>초기 생산형인 Bf 109F-0형은 DB 601N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1941년 1월
실전부대에 최초로 인도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어서 실전배치가 추진된후 3기의 Bf 109F-0가 원인모를 사고로 추락했으며
본격적으로 양산형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Bf 109F-1 형중 1기가 훈련비행도중 동체가 파열되면서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로 또다시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기체의 안정성에 대해서 전면적인 검토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 까지는 Bf 109E형의
생산도 계속 추진되도록 해놓은 상태였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109e-f-illust.jpg" width=490
align=left border=1>
[ Bf 109E형에서 F형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


align=justify>수많은 연구끝에 F형에서 수평꼬리날개의지지대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수평미익의 안정성 보완이
100% 이루어지지 않아 꼬리부분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계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체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이부분의 볼트와 리벳이
느슨해지다가 결국 비행중에 파열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수평미익 부위의 강도와 안정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다시 추진되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자 더 이상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align=justify>이후에는 빈약함이 지적된 Bf 109F형의 화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MG FF
20mm기관포를 새로운 MG 151 15mm로 교체하는 방안이 추진되었으며 이 MG 151 기관포를 고정장비하고 양산되는 형은  Bf
109F-2형으로 명명되었다. MG 151 기관포는 벨트식으로 급탄되는 15mm 기관포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록 MG FF 기관포에 비해 구경이
작지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탄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포구속도가 빠르고 기관포탄의 탄도가 직선으로 쭉쭉뻗는 것으로 느껴질만큼 안정적이어서 호평을
받았고 200발의 기관포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Bf 109F-2형은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하기 위해서 북아프리카 전선용으로 제작된 Bf
109F-2/trop 형과 GM-1 부스터를 장비한 Bf 109F/Z형의 변형으로도 생산되었다. 하지만 Bf 109F-1과 F-2는
1300마력급의 신형 DB 601E 엔진을 장착하려했던 애초의 의도와 달리 모두 Bf 109E에 사용되던 DB 601N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엔진의 양산이 사소한 문제점들로 인해 지연되었기 때문이었다.


align=justify>결국 DB 601E 엔진이 양산되기 시작하자 Bf 109F형도 새로운 엔진의 탑재와 더욱 뛰어난
비행성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Bf 109F-3형이다. 이 엔진의 장착으로 Bf 109F-3는 고도 22000피트에서 최고속도가 시속
630km에 이르게 되었으며 작전 가능 고도는 37000피트까지 높아졌고 순항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712km의 항속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Bf 109F-3의 비행성능은 당대 최고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으며 E형까지 약간 열세에 있었던 기동성의 측면에서도 발군의 향상을
보여 동시대의 라이벌 스핏화이어 Mk.V에 비교해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Bf 109F형을 몰고
스핏화이어와 근접 선회전을 펼쳐 승리하는 조종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E-3형은 과도기적인 기체로서 소량생산에 그치게되며 곧 최고의 전투기인 Bf
109F-4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rotte.jpg" width=400
align=right border=1>
[ 비행중인 Bf 109F 2기 편대 (로터),
매끈한 유선형의 외형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align=justify>아마도 모든 Bf 109F시리즈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것은 F-4형일 것이다. 이
형은 폭이 넓은 신형 프로펠러로 교체하여 DB 601E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의 모양이 바뀌게되어
외형으로 기존형과 구분이 가능하다. 무장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기축의 15mm MG 151 기관포를 새롭게 개발된 20mm MG 151
기관포로 바꾸어 장착하게 되었다. 이 신형기관포는 구경 증가에 따라 파괴력이 훨씬 증가한 반면 탄도학적으로도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우수한 무기였으며 총 200발의 20mm 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Bf 109F-4형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열대형인 Bf
109F-4/Trop형과 전폭기형인 F-4/B형의 아형이 있으며 야전에서 필요에 따라 2문의 MG151 20mm기관포를 주익에 부착할 수 있었던
R1 야전키트 (탑재탄수 120발)의 장착이 가능하도록 개선되기도 했다. 이 야전키트를 장비하는 경우 Bf 109F-4/R1으로 불렸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 야전키트를 장착하는 경우 파괴력은 엄청나게 증가하지만 주익의 부하가 증가되어 F형 특유의 우수한 기동성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주로 적의 폭격기 요격과 같은 임무에 사용되었다.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은 500kg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이중에서도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별명과 함께 놀라운 활약상을 펼치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의
애기로서 전설적인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align=justify>이외에도 F형의 개량형으로는 기관포를 제거하고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한 장거리 정찰기형으로 개조된
Bf 109F-5형과 F-6형의 개량형이 있으며, 특이한 것으로 Bf 109F-1형의 동체 두 개를 나란히 연결하여 쌍발기로 개조한 Bf
109Z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 Z는 독일어로 쌍동이 (Zwilli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거리 전폭기인 Me 609의 개발을 위한
시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1기만 제작된 원형기는 지상에서 날아올라 보지도 못하고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align=justify>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ccffcc>

align=center>Messerschmitt Bf 109F-4/R6
Frederick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white>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r6-3d.jpg" width=550
border=0>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ffffcc>

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1E (1300마력)


전폭:
10.94m


전장:
9.25m


전고:
3.58m


기체중량:
1964kg


최대속도:
628km/h (고도 7,260m)


최대고도:
39370피트 (13120m)


항속거리:
794km


무장: MG
12.7mm 기관총 2정 (기수), MG 151 20mm 기관포 (기축)


size=2>          - 옵션으로 R6 주익
기관포 야전 키트 장착 가능


align=justify> 





style="BORDER-RIGHT: black 1px solid;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solid;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643 bgColor=#ffff99 height=2015>

align=justify>* Bf109 기종의 축기관포 문제 해결 과정


align=justify>이 부분은 Bf 109의 기관포 무장의 변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다른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게시판에 올려주신 내용이 매우 좋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_^


align=justify>Question (램프의 바바님)


align=justify>: 궁금한게 있는데요..총을쏘다보면 총신이 과열되지않습니까? 그런데 엔진축에 총신이
있었다면..과열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align=justify>Answer (Kweassa님)


align=justify>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초기 109 기종의 생산이 시작되었을 때
끝까지 골치를 썩인 부분이 바로 기대되었던 축기관포의 설치문제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공군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1940년의 영국항공전 시점까지도
해결되지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본격적인 해결은 잠시 뒤로 미루고 대안적인 무장을 한 Bf109E-3/E-4 기종이 영국항공전에서는
사용되었죠.


align=justify>주로 발생한 문제는 과열, 재밍현상, 그리고 지나친 진동.. 이 세가지 문제였는데요, 결국은
기본적으로는 기관포 자체의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V-4, V-5, 그리고 V-6 기종을 시험하는 동안 축에 설치된 기관총에서 과열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양산형 Bf109B 기종에서는 축 무장을 제거하고 단지 두정의 기관총만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align=justify>양산형 B형에서부터 E 기종에 이르기까지는 기나긴 시험단계였는데요, 프로펠러 축의 사이사이에
흡기와 배기 구멍을 두고 소소한 방열판을 설치하는 등의 쿨링 기법을 사용하여 발열문제는 어느정도 해결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Bf109C-2형에서는 두정의 카울 기관총과 한정의 축 기관총, 도합 세정의 기관총이 장착된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Bf109D
기종에서는 축에 기관총 대신, 원래 구상한 대로  외를리콘 MG-FF 20mm 기관포를 설치하려고 했었는데요, 여전히 기계식 블로백
타입인  MG-FF 기관포의 진동 및 장전장치의 고장이 큰 골치덩어리였다고 하네요. 


align=justify>결국, 영국항공전에 들어가기 직전, 양산형 Bf109E-1형에서는 축 무장을 다시 제거하고,
두정의 카울링 기관총에 두정의 날개 기관총, 도합 네정의 기관총을 무장한 형태로 생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기에 생산된 E-1 기종은 주익의
기관총을 MG-FF 20mm 기관포로 업그레이드 하여 E-4와 비슷한 무장을 갖추게 되었구요. 


align=justify>따라서, 후기 Bf109E-1형의 주익 20mm 기관포 설치형태에 조금 손을 본 것이
Bf109E-3형이 되었는데요, 포기를 모르는 독일공군은(-_-;), 다시 E-3형에서 축에 MG-FF를 장착하려고 했습니다. 성공했더라면 세
정의 20mm에 두 정의 기관총을 장착한 영국항공전 버젼의 "도륙새"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물론, 결과는 역시 실패.. 여전히 진동 및 고장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네요. 


align=justify>결국, 이 문제는 E형 생산 내내동안 독일공군을 애태우다가, Bf109F형에 가서야 해결이
됩니다. F형에 들어가서 비로서 Bf109 무장형태의 표준이 완전히 정해져서, 날개 무장을 완전히 포기하고(특수목적을 위해 추가로 날개에
장착하는 곤돌라식 무기가 아닌 이상..) 카울링에 두 정의 기관총, 축에 한 정의 기관포를 설치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결국, 안정적인 전동식 장전 시스템을 갖춘 신형 기관포인 마우저 MG151/15가 개발된 이후에야 Bf109F-2
기종에 15mm 기관포가, 그 후에 MG151의 20mm 버젼인 MG151/20이 나온 후에야 Bf109F-4 기종에 20mm 기관포가
설치되었습니다.  


align=justify>보다 자세한 정보는 Bf109.com 사이트의 href="http://www.bf109.com/frameset.html"
target=_blank>http://www.bf109.com/frameset.html  링크를
참조하시길..(영어이긴 하지만요 -_-;).


align=justify> 


align=justify>Question (SV-001/R님)


align=justify>:  BF-109의 엔진은 크랭크축과 프로펠러축이 따로따로였나요?  그래야만
기관포를 프로펠러축에 장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TA-152는 어떻게 성형 엔진을 사용했는데도 프로펠러 회전축 기관포를 장착할 수
있었나요?


align=justify>Answer (Kweassa님)


align=justify>* DB601/605 엔진에 대해.. 


align=justify>음.. 질문하신 내용을 보니 -_-; 아무래도 엔진구조를 잘 아시는 분인 것 같아서.. 대충
답변하면 안될 것 같아, 내연기관이나 기계공학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자료 뒤지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align=justify>일단, 조사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비행기에 사용되는 프로펠러 엔진에는 두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더군요. 비행기의 프로펠러는 프로펠러 섕크(blade shank)라는 장치를 통해 엔진과 연동이 되는데요, 크랭크 축에 프롭섕크가 직접 부착된
직접프롭회전 방식과, 질문하신 내용 그대로 크랭크축과 별도인 프로펠러축을 통해 부착된 간접회전 방식이 있습니다.


align=center>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pic6-4.gif" width=254
border=1>


align=center>(그림1) 프로펠러와 프로펠러 섕크


align=center>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pic6-2.gif" width=246
border=1>


align=center> (그림2) 직접프롭회전방식


align=justify> 2차대전 전투기들의 대부분은 엔진은 크랭크축에 곧장 프로펠러가 연결된 식이 아니라,
크랭크축의 회전력을 다시 프로펠러 축으로 연결하는 간접회전 방식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Bf109에 사용된 DB계열 엔진의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제가 아는 한 DB60X계열 엔진의 생산 자체가 각종 신개발 전투기들의 설계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합니다. 


align=justify>1930년대 중반에 들어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들을 설계하면서 특히 새로운 시대의 전투기에 걸맞는
무장형태에 대한 많은 논쟁과 연구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주력 무장을 어느 위치에 장착할 것인가가 큰 관심사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크게 두계열로 나뉘는데요, 전투기의 중심선을 따라 무장 을 집중시키는 기수집중방식과, 다량의 무기를 날개 위치에 장착하는
날개무장방식이었죠. 결론적으로 말해서, Bf109는 처음에 설계될 때 부터 기수집중무장 방식을 염두해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BoB기간에 등장한
Bf109E형의 경우에는, 아직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날개에 기관포를 장착했다고 하는군요).  


align=justify>따라서, DB엔진의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Inverted-Vee 방식의 설계라고
하는데, 바로 프로펠러 기관포 장착을 염두해둔 설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109engine1.jpg" width=371
border=1>


align=center>(그림3) DB605


align=justify>그림3을 보면 아시겠지만, 엔진 구조 자체가 거꾸로 선 "V"자 형태이죠. 두개의 실린더 블럭이
"V"자 형태로 접합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구경이 꽤 큰 프로펠러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V"형 엔진이었지만, DB엔진의
영원한 라이벌로 인식되는 롤스-로이스사의 멀린계열 엔진들은 바로 선 "V"형입니다.


align=justify>이것이 왜 축기관포 설치에 관건이 되는가하면, 전쟁 중반에 들어서 총신이 짧은 신형 기관포들이
등장했지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각국에서 전투기를 설계할 때 까지만 해도 20mm기관포는 굉장히 거대한 신무기였습니다. 총신이 엄청나게 긴
신무기였기 때문이죠. 따라서, 전투기에 엔진을 설치한 후, 프롭축 가운데에 20mm기관포를 두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봐서 DB엔진과 같은
거꾸로선 V형이 필수조건이었던 셈입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mg151.gif" width=446
border=1>


align=center>(그림4) MG151/20 20mm 기관포


align=justify>왜냐하면, 머리 속으로 전투기의 구조를 그려보면 아시겠지만, 제일 앞에 프로펠러 헙과 카울링이
위치하고, 그 뒤에 엔진이 위치하고, 엔진 내부에는 20mm기관포의 총신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엔진 뒤에는 20mm 기관포 본구조 및
탄창이 위치하는데요,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같은 식의 바로선 \"V\"형 엔진의 경우 프로펠러-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일자로 연결하면,
기관포 본체가 놓이는 위치와 콕핏의 계기판 기계구조를 설치하는 위치가 겹치게 됩니다. 


align=justify>굳이 해결하자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수집중방식 보다는 날개무장을
선택하고 있던 판에,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축기관포를 위한 설계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었던거죠. 


align=justify>반면, Bf109의 구조를 보면, 프로펠러 헙-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잇는 일직선을
그어보면, 기관포 본체는 콕핏 기계부속 아래에 위치하게 됩니다. (실제로 Bf109 콕핏을 보면, 조종레버 뿌리의 앞쪽에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이
있는데, 그것이 MG151/20 기관포 본체의 일부분을 감싸고 있습니다) 딱 들어맞는 구조입니다. 원래부터 전투기 설계자가 엔진 형태를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염두해두고 있지 않은 한 그런 식으로 딱 들어맞는 형태는 나오기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Bf109 기종도 시제기를
만들면서 여러 형태의 엔진을 시험해봤지만, 설계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가 최종적인 엔진 종류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죠)


align=justify>그 밖에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하여,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Bf109.com에서 설명하고 있는
DB605엔진 구조에 대한 내용을 조금 번역해보겠습니다. 엔진 구조물에 대한 전문용어가 많아서 -_-; 그냥 일부 단어는 원어로 냅뒀으니
양해해주시길..   (href="http://www.bf109.com/engine.html).">http://www.bf109.com/engine.html).
>

align=justify>"...크랭크축은 six-throw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의
stell forging 주조 기법으로 만들어져있고 여섯개의 평형추를 지니고 있다. 납-청동 합금으로 만들어져 강철로 보강된 여섯개의 베어링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데, 하나의 throw 내에서 동작하는 커넥팅 로드는 한 쪽은 롤러 베어링을 통해 plain rod 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쪽은 plain bearing을 통해 forked rod가 plain rod에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피스톤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
있으며 floating-type 핀들로 고정되어 있다..."


align=justify>"...프로펠러 축은 내부에 기관포를 위치시킬 수 있도록 비어있으며,
1.55 대 1, 혹은 1.88 대 1의 reduction ratio를 지닌 스퍼 기어를 통해 회전한다. 축 기관포는 엔진 뒷면의 테두리에 네
개의 지주와 나사로 고정된다. 프로펠러 축의 테두리는 8개의 구멍과 96개의 톱니가 달려 있는데, 이것이 당시 독일의 표준
생산형태였다..."


align=justify>Ta152H의 Jumo213E 엔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DB엔진 보다 자료가 적기 때문에 별로
쓸만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문외한인지라, 정확히 무얼 질문하신지도 잘 이해를... 


align=justify>어쨌건, 혹시 참고가 될까 하여, Jumo213E 엔진의 그림이 있는 사이트 주소는 아래에 적어
놓습니다.


align=center>(href="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

align=justify> 


align=justify> 


align=justify>* 영광의 정점에서


align=justify>Bf 109F형은 독일공군이 누린 영광의 시절을 상징하는 기체일 것이다. 형님겪인 E형과 함께
1941년초에 영국본토 항공전의 말미에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Bf 109F형은 당시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 Mk I, II를 훨씬 상회하는
비행성능으로 영국공군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에 놀란 영국공군이 성능개량형인 스핏화이어 Mk V형을 서둘러 제작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무렵
영국본토 항공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영국본토 항공전에서의 전과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align=justify>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4.jpg" width=438
align=right border=1>
[ 동부전선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는 Bf 109F, 독소전 초기 소련공군에는 이 기체에 맞설 만한 기체가 없었다. ]


align=justify>Bf 109F형이 명성을 떨친 곳은 바로 독일공군의 주 전장으로 새롭게 떠오른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의 사막이었다. 물론 이 양대 전선에는 Bf 109E도 참가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Bf 109F의 생산량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며 이미
독일공군 전투기 부대의 실질적인 주역은 Bf 109F형이었다. Bf 109E는 Bf 109F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서 점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align=justify>히틀러의 원대한 꿈이었던 소련 정복을 위해 동부전선으로 대거 집결한 독일공군은 세계 최강의
전투기인 Bf 109F를 앞세워 한수아래의 소련공군을 일방적으로 격파했다. 1941년 6월, 독일의 완벽한 기습으로 시작된 독소전에서 전쟁을
치룰 준비가 제대로 되있지 않았던 소련공군기들은 하늘과 땅에서 일방적으로 무참하게 격추되거나 파괴되었다. 전투의 양상은 너무나 일방적인 것으로
독일공군은 거의 매일 2차대전이 시작된이래 최고의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독일공군에는 최고 조종사로 추앙받던 베르너 묄더즈를
선두로하여 격추 스코어 100기를 넘는 슈퍼에이스들을 즐비하게 배출되었다. 당시 소련공군이 보유한 I-15, I-153, I-16과 같은 구식
전투기들은 Bf 109F에게는 그야말로 공중 표적에 불과한 것이엇으며 비교적 신형이던 야크-1이나 LaGG-3 같은 경우도 Bf 109F에
맞서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전쟁이 시작되기전 스탈린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인해 고급 공군 장교들이 많이 처형되어 소련공군 조종사들이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이렇다보니 실전에 대비한 훈련수준이 매우 낮았었으므로 영국과 미국에서 급히 공여된 허리케인, P-39, P-40등의 전투기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winter.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눈으로 뒤덮인 동부전선의 차가운 겨울에서 작전중인 Bf 109F
]


align=justify>한편, 또하나의 전장이던 북아프리카에서는 1941년 말부터 1942년 중반까지 독일공군이
영국공군을 몰아붙이면서 롬멜의 지상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이 무렵의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는 Bf 109E, F형이었으며 이중에서도
비행성능이 뛰어난 F형은 P-40 계열기와 허리케인을 주로 사용하던 영국 사막공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무럽까지는 영국공군이
북아프리카에 스핏화이어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의 질적인 격차가 너무나 컸다.


align=justify>특히 영국공군 전투기부대를 상대로 158기의 엄청난 격추기록을 달성하며 북아프리카 하늘의 전설이
된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가 주로 사용하던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 하늘의 왕자로서 독일공군 조종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engine.jpg" width=550
border=1>


align=center>[ 열사의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Bf 109F-2/Trop, 허리케인과 P-40
계열기들을 제물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


align=justify>Bf 109F형은 그 등장시기가 독일공군이 모든 전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으며
독일에 대항하는 모든 적기들을 공격하여 단숨에 섬멸하는 최강의 전투기로서 명성을 떨쳤다. F형은 전투기끼리의 제공권 다툼에서 가장 큰
위력을 선보였으며, 1941년과 1942년의 1년여의 기간동안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평가받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당대의
라이벌인 스핏화이어 Mk V와의 비교 평가에서도 전반적으로 대등하거나 우세한 성능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모든 전선에서 오로지
공격에 공격을 거듭하던 독일공군의 창끝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align=center> 


align=center>◆ Bf 109F 일러스트 Colloection


align=justify>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2-trop.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로 진출한 Bf 109F-2/Trop형이다. JG 27
전투비행단 3연대의 기체로서 기수에는 '제자우 크로이츠'라고 불리는 튜튼 기사단의 방패가 연대마킹으로
사용되었다.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2년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헝가리 사단 소속의 Bf 109F-4,
당시 헝가리와의 동맹을 상징하기 위해서 꼬리날개에 헝가리 국기를 그려넣은 기체이며 실제는 독일 조종사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trop.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떤 JG 27 전투비행단 2연대 소속의
Bf 109F-4/Trop형이다. 이기체는 걸출한 비행성능으로 영국 사막공군을 하늘에서 초토화 시켰다. 동체에는 기체 번호가 급히 다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으며 기수에는 2연대의 상징인 '베를린의 곰'이 그려져
있다.


 


border=1>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trop2.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2년 8월, 기종을 Bf 109F-4/Trop형으로 교체한 직후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border=1>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navy size=2><IMG height=388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art2-title-109e.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navy size=2>독일의 침략으로 유럽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1939년부터 독일공군은
엄청난 위세를 과시하며 전 유럽에 공포와 충격을 몰고왔다. 하늘에서는 Bf 109를 앞세운 독일공군이 연합군의 전투기들을 일소하며 창공의 전설을
만들고 있었으며 지상에서는 독일공군의 원호를 받고있는&nbsp;전차군단이 질풍같은 속도로 서유럽을 가로지르며 독일군에 저항하던 영불 연합군을
신속하게 두동강내고 있었던 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navy size=2>이때부터 약 2년의 기간동안 독일공군은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받으며&nbsp;서유럽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부전선을 휩쓸어 버리면서 그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 절정에 달한 영광의 시절동안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로 활약했던 전투기가 바로 Bf 109E형과 Bf 109F형이었던 것이다. &nbsp;</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navy size=2>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nbsp;이번회에서는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의 두 번째 이야기로 이 전투기가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시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FONT>&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B><FONT
color=red size=2>* 진정한 전투기로</FONT></B></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IMG height=372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v13-14.jpg" width=400
align=left border=1>[ Bf 109V13 시제기의 사진, Bf 109E의 탄생으로 이어지게되는 기체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f 109V1 시제기부터 Bf 109D형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숨가쁘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던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로소 Bf 109E라는 멋진&nbsp;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Bf 109E형은 Bf 109 가문에서 최초의
대량 생산형이었으며 1939년 말까지 최일선의 전투기부대에서 Bf 109 선행형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전투기들을 밀어내고 대체하면서 최일선
주력전투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까지 독일공군의 최정예 13개 전투기 연대가 각 40기씩의 Bf 109E를 배치받았는데 이 전투기들이 전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게 된 것이다. 대개 Bf 109 시리즈를 분류할 때 A형부터 E형까지를 1세대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Bf 109E형은 1세대 Bf 109의 결정판으로서 진정한 Bf 109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조종사들 사이에서 '에밀 (Emil)'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1937년의 국제 항공대회에서 시험적으로 제작된 DB 601엔진을 장착하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Bf 109V13의 놀라운 성능에 고무된 BFW사는 이 엔진을 장비한 신형기를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새로운 벤쯔 엔진은 기존에 사용했던
유모 엔진에 비해서 크기가 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체에 많은 개량이 가해졌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IMG height=265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db601.jpg" width=400
align=right border=1><FONT color=blue size=2>[ Bf 109E의 심장 - 다이믈러 벤쯔 DB 601 엔진의
모습, 이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존형에 비해 기수의 형태가 많이 변하게 되었다. 이 벤쯔 엔진의 탁월한 성능이 Bf 109E에게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선사해 주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우선 동체가 유모엔진을 장착했던 C/D형에 비해서 10cm 길어졌으며 냉각계통도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어야 했다. 기수 하면의 커다란 공기흡입구가 축소되어 윤활유 냉각용 공기흡입구로 사용되었으며 냉각수를 위한 공기흡입구는 양쪽의 주익
하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엔진출력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 새롭게 디자인된 3날의 VDM 프로펠러가 사용되었고, 이 프로펠러는 피치조절이
가능했다. 이런 다양한 변화의 결과로 전체 중량은 450kg이나 증가하게 되었지만 엔진 출력이 이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더 강력해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행성능에는 많은 향상이 있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1938년 여름에&nbsp;1100마력급의 DB 601A 엔진을 장비한 시제기 Bf
109V14의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이 형은 기수의 MG 17 기관총 2정에 더해서 주익 장착 문제가 해결된 MG FF 20mm 기관포 2문을
시험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로서 숙원이었던 20mm 기관포를 가지게되자 화력강화의 문제는 해결된 듯 했지만 Bf 109의 기체설계가
근본적으로 무장을 기수에 장착해야 최고의 비행성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메서슈미트 박사는 기축에 20mm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는
설계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기축선 기관포를 탑재하고 주익의 무장을 제거한 Bf 109V15 시제기를 제작하여 시험비행에
참가시켰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323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1-jg20-1.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JG 20 소속으로 실전배치된 Bf 109E-1, JG 20 전투비행단 제
1중대장이었던 발터 외자우 대위의 기체이다. 훗날 이 중대는 JG 51의 7중대로 개편되어 동부전선에 투입되게 된다. 기수의 활 엠블램은 중대의
상징이다. &nbsp;]</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야전부대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선행양산형인 Bf 109E-0형이 급히 생산되었는데 아직 기관포의
탑재가 적용되지 않아 이&nbsp;형은 Bf 109C형과 같이 기수와 주익에 4정의 MG 17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E-0형의
양산작업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곧 본격 양산형 Bf 109E-1가 생산되었다. 이 Bf 109E-1형은 기관총 4정의 무장은
같았지만 주익의 기관총을 야전에서 MG FF 기관포로 쉽게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야전 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는 즉시
주익의 무장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주익에 장착되도록 개량된 MG FF 기관포는 스위스 오리콘사의 오리지널 모델에
비해서 포구속도가 떨어져 사거리와 파괴력이 덜어졌지만 화력 강화를 위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사용되었는데, 이 기관포를 장착하는 경우
탄약 드럼의 부피로 인해서 주익 하면에 약간 불룩해 보이는 돌출부가 생기게 되었으며 20mm 기관포탄의 최대 탑재가능 탄수는 각
60발이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49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mgff-wing.jpg" width=400
align=righ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야전부대에서 정비병들이 Bf 109E-1의
주익에 MG FF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는 장면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이때까지는 Bf 109도 제공전투 이외에 지상공격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받고 있었으므로
50kg 폭탄 4발 혹은 250kg 폭탄 1발을 장착할 수 있었던 전투폭격기형 Bf 109E-1/B 형도 같이 생산되었다. 이후 독일공군이 Bf
109E의 본격적인 대량 생산을 요구하면서 아욱스부르크의 생산공장이 레겐스부르크로 이전하게 되었고 다른 항공사의 몇몇 공장들에서도 생산에
참여하게 되면서&nbsp;1939년 말까지 총 1540기의 기체가 생산되게 되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이후에 Bf 109E-2형에서는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포 2문을 표준으로 하게
되었으나 기축선에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겠다는 메서슈미트 박사의 집념으로 프로펠러축에 MG FF&nbsp;기관포를 장비하는 Bf 109E-3가
제작되었으며 이 E-3형이 Bf 109E중에서 가장 많은 수가&nbsp;생산되어 E형을 대표하는 주요한 생산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1940년
초부터 생산이 시작된 Bf 109E-3는 기축의 20mm 기관포 1문외에 엔진 카울링과 주익에 각 2정씩 총 4정의 기관총을 장착하도록 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그러나 기축선 기관포는 여전히 잦은 고장을 일으켰으며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불만이
속출하여 대부분의 야전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면 &nbsp;&nbsp;이 기관포를 아예 떼어 버리고 주익의 기관총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해서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생산라인에서도 기축선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고 주익에 2문의 기관포만을 장비하도록 변경하게 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Bf 109E-3는 애초의 설계와는 달리 주익의 기관포 2문, 기수의 기관총 2정의 무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Bf 109E
시리즈의 표준 무장이라고 하면 결국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총 2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IMG height=385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wick.jpg" width=550
border=1></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left><FONT color=blue size=2>[ JG 2 비행단장&nbsp;헬무트 뷔크의 Bf 109E-3,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작전중이던 무렵의 사진이다. 스피너 가운데에 기축 기관포를 위한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nbsp;]</FONT></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left>&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IMG height=262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carrying.jpg" width=550
border=1></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left><FONT color=blue size=2>[ 트럭으로 Bf 109E를 견인하고 있는 특이한 장면, 트럭 바퀴의 폭과 비슷한
정도로 폭이 좁은 주 강착장치를 잘 볼 수 있는 사진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f 109E-3는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가 가동되면서 월평균 150여기가 생산되었으며
1940년 한해동안 1868기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많은 수가 만들어졌는데 이 수치는 이 무렵이 2차대전의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결국 1940년에는 대부분의 실전 전투기부대들이 Bf 109E-3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 E-3형이 1940년에 전유럽의 하늘을
휩쓸어 버리는 영광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며 이후 194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인류 역사상를 통털어&nbsp;최대 규모의 항공전으로 기록되는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맹활약했던 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274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engine-start.jpg"
width=400 align=lef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비상출격 명령에 따라 Bf
109E의 엔진 시동을 걸고 있는 정비병, &nbsp;기축 기관포를 위한 스피너의 구멍이 잘 보이는 사진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f 109E-3는 대외판매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스위스에 80기가 넘겨진 것을 포함해서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의 외국으로 총 304기가 판매된 것인데, 이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동맹국인 일본에 2기가 넘겨진
것과 훗날 철천지 원수가 되는 소련에도 5기가 판매되었다는 사실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특히 일본에 넘겨진 2기는 훗날 일본의 가와사끼 항공사가 Ki-61 히엔을 제작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수출형 Bf 109E-3는 독일공군내에서 Bf 109E-3a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독일공군용으로 제작된 Bf
109E-3형에 비해서 많은 첨단 장비가 제거된채로 한단계 낮은 성능을 가진 채로 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수출형에는 독일제 고성능
무선 통신 장비가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심지어는 주익의 무장을 없애 버린 것들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소련이나 유고로 수출된 기체들에 이런 조작이
많이 가해져 거의 간신히 비행만 가능한 채로 모든 주요 장비가 제거된 채로 넘겨졌다고 한다. 소련은 이 기체를 넘겨받은후 이 기만 전술에 속아
이 전투기가 가진 무서운 능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응에 소흘했기 때문에 훗날의 독소전에서 커다란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98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japan.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3국동맹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일본에 넘겨진 Bf 109E-3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1940년말부터는 아예 기축의 기관포를 완전히 포기하여 엔진룸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없애
버리고 주익의 기관포 2문과 기수의 기관총 2정만을 표준으로 하는 Bf 109E-4가 생산되었으며 전투폭격기형인 Bf 109E-4/B형도 같이
생산되어 영국본토 항공전의 후반기에 E-3형과 함께 주력 전투기로서 사용되었다. 특히 E-4형에 표준무장으로 채택된 기관포는 보다
개선된&nbsp;MG FF 'M' 20mm 기관포로서 기존의 HE탄에 비해서 보다 폭발력이 강한 신형 탄의 사용이 가능해 파괴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외에&nbsp;캐노피를 평면형으로 바꾸고 조종사 보호를 위한 방탄판도 표준 장비로 채택되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32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galland2.jpg"
width=558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 JG 26 비행단장 아돌프 갈란트 소령의 Bf 109E-4, 기축
기관포가 완전히 폐지되어 E-3형 까지 유지되던 스피너의 기관포구용 구멍을 없앤 신형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물론 구형 스피너를 가진 E-4형도
일부 있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1941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향상된 연료 분사장치와 자동으로 작동되는 유압식 슈퍼차져를 가진
신형 DB 601N 엔진을 장비한 Bf 109E-4/N형이 개발되었다. 이 1200마력의 신형엔진을 부착하면서 기체의 성능은 더욱 좋아졌으며
주로 북아프리카 전선용 기체로 생산되었다. 특히 북아프리카 전선용의 기체는 슈퍼차져의 공기흡입구에 커다란 방진필터를 장비하고 동체에 조종사
구난용 생존키트를 내장하도록 개량되었는데, 이 형은 사막과 열대 (tropical) 지역의 작전용인 Bf 109E-4/Trop 형으로 알려지게
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9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trop.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 JG 27소속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2위의 에이스로 명성을 날렸던
베르너 슈뢰어의 Bf 109E-4/Trop, 기수 좌측의 특징적인 방진필터가 Trop형의 특징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이외에는 전선정찰용으로 2정의 기관총만을 가진 경무장의 Bf 109E-5, E-6형이
소량생산되었으며 기내의 연료탑재 용량이 적어 영국 본토항공전에서 고전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투하식의 300리터들이 외부연료 탱크를 장착해
항속거리를 대폭 늘린 Bf 109E-7형도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이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이 E-7형은 장거리 항속력이 필요했던
몰타섬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작전에 다량 투입되어 맹활약했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의 근접 지상지원을 위해서 연료탱크대신 폭탄을 장비하도록 하고 조종석
주위에 장갑판을 강화한 Bf 109E-7/U2형이 생산되기도 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IMG height=353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schlageter-7th-rearm.jpg"
width=550 border=1></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몰타섬 공략을 위해 시칠리에서 작전중이던 JBf 109E-7, 약간
디자인이 바뀐 뾰족한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스핏화이어 킬러로 유명한 요아힘 뮌히버그가 지휘하던 JG 26 제 7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f 109E 시리즈의 마지막 기체로는 DB 601E 엔진을 장착한 E-8형과 장거리 정찰용으로
제작된 E-9형이 있으나 모두 소량생산에 그쳤다. &nbsp;특이한 변종으로는 항모 그라프 쩨펠린에 탑재될 예정으로 Bf 109E-3를 개조한
Bf 109T 형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kwessa님이 자세히 올려주신 자료를 참고하시길...</FONT></P>
<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0 width=653 align=center>
<TBODY>
<TR>
<TD
style="BORDER-RIGHT: black 1px solid;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solid;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643 bgColor=#cccccc height=2261>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003366 size=2><B>* Bf 109E의 함재기형 - Bf 109T
</B></FONT></P>
<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이 부분은 109E의 변형인 함재기형의 Bf 109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편집해서 추가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nbsp;&nbsp;&nbsp; ^_^</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독일군 함재기에 대한 질문이 나왔었는데.. -_-; 순전히 글쓰기 귀찮다는 이유로 "다른
분들께서 답변을 잘 하시겠지.."하고 놀려두고 있다가 결국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라기 보다는, 제버릇 개 못주니..) 몇자 끄적여봅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기본적으로 Bf109 기종이 대전 초중반까지는 독일군의 거의 유일한 전투기였으므로, 이 기종을
함재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죠.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진전됨에 따라 독일군은 Bf109E형을
함재기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도하게 되는데요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함선보다 함재기들이 먼저 준비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1939년에는 양산전 시험생산으로 10기의 Bf109T-0이 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DB601Aa엔진에 두 정의 MG-FF 20밀리 기관포, 두 정의 MG17 7.92 밀리 기관총을 장착한 Bf109E-3형에서 출발했는데,
완성단계에서는 기존의 E형보다 면적이 더 넓은 날개에 꼬리 부분의 착륙용 후크, 동체에 두개의 캐터펄트(네! 캐터펄트입니다!) 후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성공적인 시험생산을 마친 후, 1940년에는 본격적인 양산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총 60대의
양산형 Bf109T-1이 생산되었습니다. 양산형 T-1기종에는 기존의 E형에 사용되던 DB601Aa 보다 더욱 강력한 DB601N 엔진이
사용되었고 함재기로써의 기능을 완비하게 됩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그런데, 1940년에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백지화되면서 아쉽게도 T형의 개발계획도 멈추게
됩니다. 현재까지 생산된 T형은 메서슈미트사의 전투기들을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던 피이슬러사에 넘겨져서 함재기용 장치를 모두 제거한 후 지상이착륙
전투기로 사용됩니다. 이륙용 사출후크와 착륙용 꼬리후크를 제거하고, 보조연료탱크나 250kg짜리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범용 동체 랙을 설치하게
되는 이 기종은 Bf109T-2로 지정되었습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원래 함재기로 사용하기 위한 전투기였던 만큼, 완비된 활주로의 비행장이 드물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작전에 쓸만한 활용가치가 있다는 판단아래에 Bf 109T-2형은 모조리 노르웨이로 보내졌습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IMG height=33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3d.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Bf109T형 - 동체 아래의 사출후크, 꼬리의 착륙후크, 넓어진 날개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FONT>&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3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1.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Bf109T-2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FONT>&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IMG height=226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2.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Bf109T-2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FONT>&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IMG height=269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3.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함선상 이륙 중인 Bf109T-1, 사출후크와 꼬리후크가 잘 드러나있음
]</FONT></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red size=2><B>* 에밀의 비행성능</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비행특성의 측면에서 볼 때 Bf 109E는 매우 우수한 기체였다. 특히 시속 480km 이내의
속도에서 이 전투기는 매우 우수한 조종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른 바 '감'이 좋아서 일선 조종사들로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기존에 지적받았던
실속시의 비행특성도 많이 개선되어 갑자기 실속이나 스핀에 빠지는 일이 없어졌으며 실속경고 장치가 있어서 조종사들이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20도가 숙여지는 삽입식 플랩덕분에 활주거리도 괄목할만큼 짧아졌다. 물론 기존형부터 지적되어오던 주강착장치의 폭이 좁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무게중심보다 조금 앞쪽으로 위치하도록 설계되어 착륙시에 접근 각도가 너무 급격하더라도 안착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며 착륙 활주거리도 짧은
편이었고 지상활주도 용이한 편이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42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afterlanding.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착륙후 주기중인 Bf 109E, 기체의 볼륨을&nbsp;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기체의 최고 속도는 12300 피트의 고도에서 수평비행시에 시속 573km를 기록했으며 65%
출력의 경제속도로 비행하는 경우&nbsp;항속거리는 최대 668km 정도였다. 초기 상승률은 분당 3100피트에 이르렀으며 작전가능 고도는
36000피트로서 고공성능이 매우 좋았고 최대 375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급강하 폭격을 위해 테스트 받았던 Bf 109E-1/B의
경우 평균 급강하 속도가 시속 604km였으며 속도가 붙는 경우&nbsp;시속 722km까지도 기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0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32.jpg" width=509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날렵한 외형을 자랑하는 Bf 109E-3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하지만 시속 600km를 넘어가게 되면 보조익 (aileron)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단점이
있어서 급강하에 접어든후의 고속비행에서 롤 (roll)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었으며 고속 급강하시에는 러더 (rudder)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트림조작이 어려워 조종사들이 애먹기도 했다. 게다가 원형기에서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오던 이착륙시에 좌측으로 쏠리는 현상은
여전히&nbsp;계속되어 이런 현상에&nbsp;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미숙한 조종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이착륙시에 잦은 사고를
유발했다. 후에 통계를 내보니 Bf 109B가 최초로 실전배치된 1937년부터 1941년 가을까지의 4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nbsp;무려
1500여기의 Bf 109 전투기들이 이착륙시에 발생한 사고로 전열에서 이탈했다고 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67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spain.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스페인에서 작전중 착륙 과정에서의 사고로 파손된 Bf 109E-1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메서슈미트 박사와 설계팀은 이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에 나섰는데 고정되지 않은 뒷바퀴가 이착륙시에 좌우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어 이 뒷바퀴를 엔진이 풀쓰로틀에
달했을 때만 좌우로 가동되도록 개선작업에 들어갔는데 이후 이착륙시의 사고는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교정되지는 않고 더 이상
해결책이 없어 Bf 109의 최종생산형에서까지도 조종사들을 괴롭혔다고 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nbsp;</P>
<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0 width=578 align=center>
<TBODY>
<TR>
<TD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ccffcc>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B>Messerschmitt Bf 109E-3
Emil</B></FONT></P></TD></TR>
<TR>
<TD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white>
<P align=center><IMG height=387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3-3d.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ffffcc>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1A (1100마력)</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전폭:
10.34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전장:
9.05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전고:
3.58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최대중량:
3017kg</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최대속도:
573km/h (고도 4,120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최대고도:
36091피트 (12150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항속거리:
794k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무장:
MG17 7.92mm 기관총 2정 (기수) + MG FF 20mm 기관포 2문
(주익)</FONT></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red size=2><B>* 전장의 에밀</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대전이 발발하자 엄청난 기세로 진격을 하는 독일군에게 하늘에서 든든한 지원을 해주는 독일공군의
슈투카와 Bf 109E야말로 실로 멋진 존재였으며, 전격전 기간동안 유럽 상공에서 독일공군에 대적했던 모든 연합군 전투기들은 Bf 109E의
사냥감 신세가 되었다. 개전 초기에는 연합군의 어떠한 전투기도 따르지 못하는 엄청난 속도와 상승력, 그리고 고속 급강하의 엄청난 압력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벤쯔엔진의 뛰어난 성능이 이 작은 전투기에게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명성을 얻게 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IMG height=342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s-condor.jpg" width=550
border=1></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left><FONT color=blue size=2>[ 콘돌 군단에 파견되어 실전 테스트를 받고 있는 Bf 109E,&nbsp;이
때의 소중한 전투 경험이야말로 독일공군 조종사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어느정도 독일공군에 맞설 수 있으리라는 예측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기들은 이 Bf
109E의 위력에 압도되어 대패를 당했다. 프랑스로 파견된 영국공군 소속으로 허리케인을 조종하여 Bf 109E와 전투를 경험했던 영국공군의 한
장교는 허리케인이 Bf 109E에 대해서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점을 인정하고 '비록 적의 전투기지만 Bf 109야 말로 세계최고의
전투기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전격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프랑스 공군과 대결했던 Bf 109E 전투기들은 프랑스 공군의 주력이었던 호크 75,
MB 151, 모랑솔니에 MS.406등의 전투기들과 대결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프랑스의 신예기 드와땡 D.520 같은 경우는 Bf
109E와 거의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나 전투에 투입된 숫자가 너무 적어 실전에서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뭐니뭐니해도 Bf 109E에게 있어서 적수다운 적수는 숙적 영국공군의 신예전투기 스핏화이어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328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cockpit.jpg" width=408
align=righ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Bf 109E의 조종석,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시야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특히 함몰된 형태로 제작되어 후방시야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프랑스 전투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끝나 버린후 독일공군은 잠시의 휴식후에 항복을 거부한 영국
본토를 공략하는 임무에 나서게 되는데 이때까지 유럽전에 거의&nbsp;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본토 방위에만 전념하고&nbsp;있었던 영국의 최신예
스핏화이어 전투기들이 허리케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출격함에 따라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nbsp;두 전투기끼리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한 BF 109E는 E-3형이 약 70% 정도의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중반을 넘기면서는 E-4형이 같이 전투에 참가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1940년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군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에게는
마치&nbsp;하늘이 정해준 것처럼 느껴지는 숙명의 라이벌인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가 제일 껄끄러운 상대였다. 성능면에서 비교해볼 때 수평비행시에
최고 속도에서는 스핏화이어 Mk I, II쪽이 약간 더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수평선회 능력에서도 Bf 109E가 영국의 스핏화이어보다
약간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으며&nbsp;스핏화이어의 보조전투기겪인 허리케인에 비해서도 선회반경이 약간 더 컸기 때문에 이 두 영국제 전투기와
저속과 중간 속도에서 급격한 수평선회전을 벌일 때는 불리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상승속도와 최대상승고도에서는 Bf 109E가 이 두
영국전투기보다 명백히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200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는 훨씬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서
연료 직접분사기를 부착한 벤쯔엔진 덕분에 전투비행시 기수를 급격하게&nbsp;숙이는 경우나 고속 급강하시에 발생하는 마이너스 G의 거친
환경에서도 엔진에 연료공급이 지속될 수 있어서 공중전에서 큰 이점이 되었다. 스핏화이어는 순각적으로 기수를 숙이는 등의 마이너스 G를 유발하는
기동을 구사하거나 급강하를 오래지속하는 경우 연료공급이 순간적으로 끊겨 엔진이 정지하는 현상이 생기므로 고속으로 급강하하는 Bf 109E를 오래
따라붙을 수 없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4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spit-gwp-109e-circle.jpg"
width=400 align=lef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nbsp;[ Bf 109E와
스핏화이어 Mk I의 수평선회 능력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두기체가 똑같은 속도에서 선회를 시작하는 경우 스핏화이어쪽이 더 날카로운 선회를 할 수
있어 수평 선회전에서는 유리했다. 이 데이터만을 놓고 스핏화이어의 성능을 극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전투에서 두 기체가 같은 속도로 근접
선회전을 벌이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두 기체중에서 속도와 고도가 우월한 쪽이 전투의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이런 장단점으로 인해서 Bf 109E는 특유의 전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고속으로 급상승하여
유리한 고도를 확보한후 벼락처럼 급강하하면서 적기를 순식간에 공격하고 다시 고도를 높이는 일격이탈 전법이었다. 이 전법은 Bf 109E의
장점만을 활용한 매우 효과적인 것이었으며 미숙한 조종사들에게도 쉽게 교육할 수 있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사실 영국공군과 독일공군의 조종사들은 서로 적기들의 성능에 대해서 경외감을 표시했는데 이로인해
스핏화이어와 Bf 109E는 오히려 적군에 의해 더 과대평가를 받게 되었다. 독일공군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의 급격한 선회능력에 놀라 감히
선회전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스핏화이어 조종사들은 Bf 109E의 상승성능과 급강하 공격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
기간중에 본토에 추락한 Bf 109E를 수리하여 비행성능을 시험해본 영국공군측은 Bf 109E의 비행성능이 예상외로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전투기는 예상과 달리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공중전 테스트에서도 그다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Bf 109E가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수평&nbsp;선회능력이 약간&nbsp;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공중전이라는 것은 3차원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이었으므로
수직기동을 절묘하게 섞어서 비행할 수 있었던 수준높은 엘리트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격투전에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두
기체의 공중전 성능은 서로간에 분명한 장점들이 있었으므로 어느 한쪽이 우세했다기 보다는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호각의 상태였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384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mgff-20mm-cannon.jpg"
width=330 align=righ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영국 전투기들에 비해 열세했던
화력을 만회하게 해준 회심의 카드 MG FF 20mm 기관포, 주익에 고정 장착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화력면의 비교에서도 Bf 109E형이 가진 20mm 기관포 2문과 2정의 7.92mm 기관총이
스핏화이어와 허리케인 같은 영국 전투기들이 장착한 8정의 7.79mm 기관총에 대해서 우세한 편이었다. 물론 양측의 장탄수와 발사속도등의 차이가
있었고 영국 전투기들이 장비한 기관총이 8정이나 되었기 때문에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는 양측의 전투기들의 화력이 거의 대등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Bf 109E의 MG FF 20mm 기관포탄은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거나
스핏화이어와 같은 전금속제 전투기에게 명중되는 경우에는 명중되자마자 폭발하면서&nbsp;매우 높은 파괴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목재골조에
캔버스 (천)를 대는 방식으로 제작된 허리케인의 경우에는 기관포탄이 캔버스를 그냥 관통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는
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사실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드러난 Bf 109E의 최대약점은 스핏화이어에 뒤지는 성능이 아니라
짧은 항속거리였다. 체공시간 80분에 항속거리 700km정도라는 것은 전투반경이 짧았던 서유럽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영국본토까지
날아가는데 30분,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되는 장거리 비행은 Bf 109E에게 겨우 10-15분 정도의 너무나 짧은 교전시간밖에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영국 전투기들과 교전중에도 연료가 바닥날 우려로 인해 교전을 중단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우군 폭격기들이
영국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도와주지 못하는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했다. 분을 못이긴 일부 조종사들은 이런 순간에
자제력을 잃고 영국 전투기들을 공격하다가 결국 귀환도중에 연료가 바닥나 프랑스의 해안이나 도버해협의 바닷물속으로 쳐밖히는 경우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영국공군은 Bf 109E들이 연료문제로 귀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독일 폭격기들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하여 독일공군을
괴롭히기도 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여기서 한가지 의구심이 생기게 되는데 도대체 왜 독일공군은 영국본토 항공전기간에 Bf
109E에게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것일까? Bf 109E가&nbsp;외부 연료탱크만 장착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스핏화이어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고 전쟁은 단기간에 독일공군의 승리로 끝났을텐데...</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216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he51-fueltank.jpg" width=400
align=lef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1930년대 중반&nbsp;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였던 He 51, 이 사진에서 처럼 이미 낙하식 연료탱크는 이미 실용화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사실 독일의 기술력으로 볼 때 Bf 109E에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만일 프랑스전의 대승리이후 즉각적으로 철저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면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는 더욱 맹위를
떨쳤을 것이다. 독일공군이 Bf 109E에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우선은 프랑스라는 대어를 낚으면서 전격적인 승리에 도취된 독일공군측에서 자만심에 사로잡혀
영국본토 공략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소흘했다는데 있다. 서유럽을 정복하는 동안 Bf 109E의 항속거리가 문제된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전쟁이 시작될 당시 폭격기 호위용으로 개발된 Bf 110 쌍발 전투기가 있었으므로 Bf 109E는
폭격기 호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이 적의 전투기만 찾아 공격하고 돌아오는 식의 '자유전투'의 방식으로 전술운영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혀 외부연료 탱크 부착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405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swarm.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독일공군이 조금만 더 철저한 준비를 했었다면 아마도 영국본토 항공전의
양상은 전혀 다른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진의 기체는 외부 연료탱크를 장비한 Bf 109E-7으로 영국본토 항공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등장했다.&nbsp;]</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후 영국본토 항공전이 최절정을 향해 치닫게 되는동안 Bf 110
전투기들이 영국 전투기에 맞서 폭격기의 호위를 맡기에는 역부족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자 Bf 109E가 폭격기 호위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서 짧은 항속거리가 커다란 약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폭격기 호위를 위해서 Bf 109E가 중고도에서 호위를 하는 경우 Bf
109E의 장기인 고속 급강하 공격이 발휘되기 어려웠으며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에게 오히려 고도의 이점을 빼았기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낙하식
외부 연료탱크의 필요성을 절감한 독일공군측이 뒤늦게 땅을 치면서&nbsp;이 작업을 추진하도록 메서슈미트 박사에게 &nbsp;의뢰했지만 이것은
시기적으로 너무나 뒤늦은 결정이었다. &nbsp;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의 최대고비인 1940년 9월 15일까지의 치열한 전투에서 독일공군이 너무나
큰 손실을 입어 결국 독일은 영국에 대한 침공계획을 결국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게 개발되었던 Bf 109E-7형은 비록 영국본토 항공전에서는 거의
활약을 못했지만&nbsp;이후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장거리 항속능력을 이용하여 맹위를 떨치면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했으며, 영국
사막공군의 무서운 적수로 떠올랐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red size=3><B>◆ Bf 109E 일러스트 Collection
◆</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g132.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39년초 JG 132에 배치된 Bf 109E-1, 본기의 기수에 그려진 '끈이
풀린 구두'는 JG 132 전투비행단 제 4연대의 것으로 훗날 JG 77 제 1연대로 개편되게
된다.</FONT></P></TD></TR></TBODY></TABLE>
<P>&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32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pg" width=581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0년 5월 10일 서유럽전에 참가중이던 디터 로비쯔쉬 대위의 Bf
109E-1, 디터 중위는 네덜란드 상공에서 포커 XXI 전투기와 교전중 격추되어 포로가
되었다.</FONT></P></TD></TR></TBODY></TABLE>
<P>&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32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g27.jpg" width=581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0년 5월, 서유럽전에서 활약하던 JG 27 소속의 Bf 109E-1이다.
조종사는 프리치 켈러 중위로 본기의 기수에는 훗날 북아프리카에서 더 유명해지는 JG 27 1연대의 부대마크가 그려져
있다.</FONT></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1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1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448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pic-bf109e-4up.jpg" width=520
border=0></FONT></P></TD></TR>
<TR>
<TD width=641 bgColor=#ccccff height=110>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0년 5월, 프랑스 침공작전 당시 JG 26 소속으로 작전중이던 Bf
109E-3의 상면도, 쭉쭉 뻗은 통통한&nbsp;주익과 전체적으로 직선형으로 디자인된 기체의 특징을 잘
볼수있다.</FONT></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3.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0년 8월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하고 있던 JG 26 제 9중대소속의 Bf
109E-3, 조종석 아래 그려진 중대마킹은 유명한 것으로 '헬 훈트 (지옥의 개)'라
불린다.</FONT></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2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3-galland.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1년,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장이자 유명 에이스인 아돌프 갈란트의
기체이다.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중일 당시의 도색으로 그의 개인마크인 미키 마우스가 조종석 아래에 그려져
있다.</FONT></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1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1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188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wick.jpg" width=550
border=0></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FONT
size=2><IMG height=204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bf109e-4front.jpg"
width=600 border=0></FONT></P></TD></TR>
<TR>
<TD width=641 bgColor=#ccccff height=110>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0년 10월, JG 2 리히토펜 비행단의 지휘관 헬무트 뷔크의 Bf
109E-4형의 일러스트, 전통적인 노란색으로 칠해진 기수에서 카울링에 장비된 2문의 MG17기관총이 뚜렷하게 보인다. 카울링에 그려진 칼은
뷔크의 개인 도색이며 수직 안정판의 받침대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접히게 되어있는 강착 장치등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초기의 E-4형은
E-3형에 사용되던 구형 캐노피를 같이 사용했다.</FONT></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7b.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2년 겨울,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 1중대 소속의 Bf
109E-7B으로 동부전선의 스탈린 그라드 지역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던 당시의 도색이다. 이무렵에는 이미 E형이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을 시기이나 전황이 워낙 다급하여 훈련용으로 전용된 기체가 동부전선으로
보내졌다.</FONT></P></TD></TR></TBODY></TABLE>
<P>&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7trop.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2년 8월, 북아프리카 상공을 누비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Bf 109F형의 도입이 늦어 이무렵까지도 E형이 수적인 주력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FONT></P></TD></TR></TBODY></TABLE>
<HR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red size=2><B>새로운 탄생</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0000cc size=2><IMG height=443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art2-title-bf109f-hans.jpg"
width=497 align=left border=1>Bf 109E가 유럽하늘의 왕자로 군림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동안 메서슈미트 박사는
1세대 Bf 109의 결정판겪인 Bf 109E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후계기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0000cc size=2>이 기체가 바로 후세에 Bf 109의 모든 시리즈를 통털어 가장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졌던 최고의 기체로 평가받는 Bf 109F형이다. Bf 109E가 독일공군의 대도약을 선도했다면 Bf 109F는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리던 시기에 창공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f 109F형은 Bf 109V1에서 Bf 109E까지 이어진 1세대 Bf 109와는 어떻게
보면 외형과 성능에서 전혀 다른 기체로 평가되어 제 2세대 Bf 109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전투기는 전선의&nbsp;독일공군
조종사들로부터 프레드릭 (Frederick) 혹은 프란쯔 (Franz), 프리쯔 (Fritz)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사실 Bf 109F형의 탄생은 다이믈러 벤쯔사가 제작하고 있던 신형 DB 601E-1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체의 설계가 대폭 수정되는 과정이 그 출발점이었다. 메서슈미트 박사는 1940년초부터 이 새로운 고성능 엔진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하기위해서 기존의 Bf 109E형의 개조작업을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537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pg" width=423
align=righ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새롭게 등장한 Bf 109F, 기존의 E형에
비해서 많은 개량이 있는 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엔진의 효과적인 공간확보를 위해 기수의 형태가 새롭게 디자인되었으며 기수하면의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도 뒤로 이동되었고 프로펠러 스피너가 둥근 반구형태로 약간 커졌으며 프로펠러의 직경은 6인치 작게 설계되었다. 주익하면의 공기흡입구도
얇아졌으며 수평꼬리날개를지지하고 있었던 지지대를 폐지하여 훨씬 세련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제기의 첫 비행은 1940년 7월 10일에
실시되었었는데 여러차례의 시험비행에서 Bf 109E형에 비해 괄목할 만한 비행성능의 향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nbsp;독일공군 수뇌부에서
영국의 스핏화이어를 완전히 능가하는 신형기를 개발하라는 주문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제기를 바탕으로 Bf 109E의 후계형인 F형을
개발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되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새로운 기체로의 개발이 결정되자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행성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 주익의
전면적인 재설계 작업에 들어갔는데 주익의 폭이 약간 넓어졌으며 끝단이 둥글 게 처리되었다. 플랩과 보조익 (aileron)의 설계도 크게
변경되었는데 특히 1세대 Bf 109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삽입형 플랩 (slotted flap)이 단순형 플랩 (plain flap)으로
변경되었고 보조익도 삽입형 (slotted type)에서 프라이제 (Frise type)으로 변경되었다. 이외에도 기존형까지 동체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던 뒷바퀴도 이륙직후에 동체안으로 인입되는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Bf 109F형은 기존형에 비해 일신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89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f-upview.jpg" width=60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E형과 F형의 상면도, 기체의 외형에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기체의 무장면에서도 설계팀이 그토록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졌다. 원형기에서부터 무던히 시도되었으나
빈번한 오작동과 진동유발로 인해 번번이 탑재가 좌절되었던 프로펠러축 방식의 기관포 탑재가 드디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어 F형에서는 기축에 MG
FF 20mm 기관포를 탑재하고 엔진 상부에 2정의 MG 17 기관총을 탑재하는 것으로 기본무장 방식이 결정 되었다. E형의 특징어었던 주익의
기관포는 비행성능의 향상을 위해 주익의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결정되면서 폐지되었고 주익이 얇게 설계되어 야전에서 주익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Bf 109E형의 화력에 만족하고 있었던 많은 조종사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하는데 이중에는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유명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도 있었다.&nbsp;심지어는 부대 지휘관들이 F형의 수령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8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aiming.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탄착점을 조절하기 위해 기체를 수평으로 세우는 장면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하지만 메서슈미트 박사는 Bf 109 전투기는 그 탄생시기부터 기수집중식의 무장을 추구했던
기체였으며 Bf 109E는 어쩔 수 없이 주익에 무장을 장착했던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 기관포를 탑재하기 위해서 주익을 두껍게
제작해야 했고 기관포와 탄약의 무게로 인해&nbsp;주익의 부하가 증가해서 최고의 비행성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면서 조종사들의 설득작업에
나섰다. 이무렵 아돌프 갈란트 못지 않은 명성을 날리던 유명 에이스 베르너 묄더즈가 화력보다는 우수한 비행성능과 정교한 사격술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기수에 집중된 무장은 주익 장착방식에 비해서 화력과 산탄총 효과는 줄어들지만 조종사의 조준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정확한 사격에 도움이 되고 파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88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초원의 야전 비행장에 주기된 Bf 109F, 동부전선의 JG 51소속
기체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여하간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끝에 Bf 109F형은 화력보다는 비행성능에 더 무게를 두고 개발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어&nbsp;주익에는 무장을 장비하지 않고 오로지 기수에 집중된 1문의 기관포와 2정의 기관총을 고정무장으로 가지게
되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초기 생산형인 Bf 109F-0형은 DB 601N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1941년 1월
실전부대에 최초로 인도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어서 실전배치가 추진된후 3기의 Bf 109F-0가 원인모를 사고로 추락했으며
본격적으로 양산형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Bf 109F-1 형중 1기가 훈련비행도중 동체가 파열되면서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로 또다시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기체의 안정성에 대해서 전면적인 검토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 까지는 Bf 109E형의
생산도 계속 추진되도록 해놓은 상태였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498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109e-f-illust.jpg" width=490
align=lef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Bf 109E형에서 F형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nbsp;일러스트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수많은 연구끝에 F형에서 수평꼬리날개의지지대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수평미익의 안정성 보완이
100% 이루어지지 않아 꼬리부분 전체에&nbsp;미세한 진동이 계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체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이부분의 볼트와 리벳이
느슨해지다가 결국 비행중에 파열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수평미익 부위의 강도와 안정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다시 추진되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자 더 이상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이후에는 빈약함이 지적된&nbsp;Bf 109F형의 화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MG FF
20mm기관포를 새로운 MG 151 15mm로 교체하는 방안이 추진되었으며 이 MG 151 기관포를 고정장비하고 양산되는 형은 &nbsp;Bf
109F-2형으로 명명되었다. MG 151 기관포는 벨트식으로 급탄되는 15mm 기관포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록 MG FF 기관포에 비해 구경이
작지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탄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포구속도가 빠르고 기관포탄의 탄도가 직선으로 쭉쭉뻗는 것으로 느껴질만큼 안정적이어서 호평을
받았고 200발의 기관포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Bf 109F-2형은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하기 위해서 북아프리카 전선용으로 제작된 Bf
109F-2/trop 형과 GM-1 부스터를 장비한 Bf 109F/Z형의 변형으로도 생산되었다. 하지만 Bf 109F-1과 F-2는
1300마력급의 신형 DB 601E 엔진을 장착하려했던 애초의 의도와 달리 모두 Bf 109E에 사용되던 DB 601N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엔진의 양산이 사소한 문제점들로 인해 지연되었기 때문이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결국 DB 601E 엔진이 양산되기 시작하자 Bf 109F형도 새로운 엔진의 탑재와 더욱 뛰어난
비행성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Bf 109F-3형이다. 이 엔진의 장착으로 Bf 109F-3는 고도 22000피트에서 최고속도가 시속
630km에 이르게 되었으며 작전 가능 고도는 37000피트까지 높아졌고&nbsp;순항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712km의 항속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Bf 109F-3의 비행성능은 당대 최고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으며 E형까지 약간 열세에 있었던 기동성의 측면에서도 발군의 향상을
보여&nbsp;동시대의 라이벌 스핏화이어 Mk.V에 비교해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Bf 109F형을 몰고
스핏화이어와 근접 선회전을 펼쳐 승리하는 조종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E-3형은 과도기적인 기체로서 소량생산에 그치게되며 곧 최고의 전투기인 Bf
109F-4형으로 이어지게 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243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rotte.jpg" width=400
align=righ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비행중인 Bf 109F 2기 편대 (로터),
매끈한 유선형의 외형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아마도 모든 Bf 109F시리즈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것은 F-4형일 것이다. 이
형은 폭이 넓은 신형 프로펠러로 교체하여 DB 601E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의 모양이 바뀌게되어
외형으로 기존형과 구분이 가능하다. 무장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기축의 15mm MG 151 기관포를 새롭게 개발된 20mm MG 151
기관포로 바꾸어 장착하게 되었다. 이 신형기관포는&nbsp;구경 증가에 따라 파괴력이 훨씬 증가한 반면 탄도학적으로도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우수한 무기였으며 총 200발의 20mm 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Bf 109F-4형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열대형인 Bf
109F-4/Trop형과 전폭기형인 F-4/B형의 아형이 있으며 야전에서 필요에 따라 2문의 MG151 20mm기관포를 주익에 부착할 수 있었던
R1 야전키트 (탑재탄수 120발)의 장착이 가능하도록 개선되기도 했다. 이 야전키트를 장비하는 경우 Bf 109F-4/R1으로 불렸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 야전키트를 장착하는 경우 파괴력은 엄청나게 증가하지만 주익의 부하가 증가되어 F형 특유의 우수한 기동성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주로 적의 폭격기 요격과 같은 임무에 사용되었다.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은 500kg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이중에서도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별명과 함께 놀라운 활약상을 펼치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의
애기로서 전설적인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이외에도 F형의 개량형으로는 기관포를 제거하고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한 장거리 정찰기형으로 개조된
Bf 109F-5형과 F-6형의 개량형이 있으며, 특이한 것으로 Bf 109F-1형의 동체 두 개를 나란히 연결하여 쌍발기로 개조한 Bf
109Z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 Z는 독일어로 쌍동이 (Zwilli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거리 전폭기인 Me 609의 개발을 위한
시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1기만 제작된 원형기는 지상에서 날아올라 보지도 못하고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0 width=578 align=center>
<TBODY>
<TR>
<TD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ccffcc>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B>Messerschmitt Bf 109F-4/R6
Frederick</B></FONT></P></TD></TR>
<TR>
<TD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white>
<P align=center><IMG height=39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r6-3d.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574 bgColor=#ffffcc>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1E (1300마력)</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전폭:
10.94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전장:
9.25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전고:
3.58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기체중량:
1964kg</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최대속도:
628km/h (고도 7,260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최대고도:
39370피트 (13120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항속거리:
794km</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무장: MG
12.7mm 기관총 2정 (기수), MG 151 20mm 기관포 (기축)</FONT></P>
<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FONT
size=2>&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옵션으로 R6 주익
기관포 야전 키트 장착 가능</FONT></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0 width=653 align=center>
<TBODY>
<TR>
<TD
style="BORDER-RIGHT: black 1px solid;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solid;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width=643 bgColor=#ffff99 height=2015>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red size=2><B>* Bf109 기종의 축기관포 문제 해결 과정</B></FONT>
</P>
<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이 부분은 Bf 109의 기관포 무장의 변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다른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게시판에 올려주신 내용이 매우 좋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nbsp;&nbsp;&nbsp; ^_^</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B>Question (램프의 바바님)</B></FONT> </P>
<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align=justify><FONT size=2>: 궁금한게 있는데요..총을쏘다보면 총신이 과열되지않습니까? 그런데 엔진축에 총신이
있었다면..과열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B>Answer (Kweassa님)</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초기 109 기종의 생산이 시작되었을 때
끝까지 골치를 썩인 부분이 바로 기대되었던 축기관포의 설치문제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공군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1940년의 영국항공전 시점까지도
해결되지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본격적인 해결은 잠시 뒤로 미루고 대안적인 무장을 한 Bf109E-3/E-4 기종이 영국항공전에서는
사용되었죠.</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주로 발생한 문제는 과열, 재밍현상, 그리고 지나친 진동.. 이 세가지 문제였는데요, 결국은
기본적으로는 기관포 자체의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V-4, V-5, 그리고 V-6 기종을 시험하는 동안 축에 설치된 기관총에서 과열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양산형 Bf109B 기종에서는 축 무장을 제거하고 단지 두정의 기관총만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양산형 B형에서부터 E 기종에 이르기까지는 기나긴 시험단계였는데요, 프로펠러 축의 사이사이에
흡기와 배기 구멍을 두고 소소한 방열판을 설치하는 등의 쿨링 기법을 사용하여 발열문제는 어느정도 해결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Bf109C-2형에서는 두정의 카울 기관총과 한정의 축 기관총, 도합 세정의 기관총이 장착된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Bf109D
기종에서는 축에 기관총 대신, 원래 구상한 대로 &nbsp;외를리콘 MG-FF 20mm 기관포를 설치하려고 했었는데요, 여전히 기계식 블로백
타입인 &nbsp;MG-FF 기관포의 진동 및 장전장치의 고장이 큰 골치덩어리였다고 하네요.&nbsp;</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결국, 영국항공전에 들어가기 직전, 양산형 Bf109E-1형에서는 축 무장을 다시 제거하고,
두정의 카울링 기관총에 두정의 날개 기관총, 도합 네정의 기관총을 무장한 형태로 생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기에 생산된 E-1 기종은 주익의
기관총을 MG-FF 20mm 기관포로 업그레이드 하여 E-4와 비슷한 무장을 갖추게 되었구요.&nbsp;</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따라서, 후기 Bf109E-1형의 주익 20mm 기관포 설치형태에 조금 손을 본 것이
Bf109E-3형이 되었는데요, 포기를 모르는 독일공군은(-_-;), 다시 E-3형에서 축에 MG-FF를 장착하려고 했습니다. 성공했더라면 세
정의 20mm에 두 정의 기관총을 장착한 영국항공전 버젼의 "도륙새"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물론, 결과는 역시 실패.. 여전히 진동 및 고장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네요.&nbsp;</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결국, 이 문제는 E형 생산 내내동안 독일공군을 애태우다가, Bf109F형에 가서야 해결이
됩니다. F형에 들어가서 비로서 Bf109 무장형태의 표준이 완전히 정해져서, 날개 무장을 완전히 포기하고(특수목적을 위해 추가로 날개에
장착하는 곤돌라식 무기가 아닌 이상..) 카울링에 두 정의 기관총, 축에 한 정의 기관포를 설치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nbsp;결국, 안정적인 전동식 장전 시스템을 갖춘 신형 기관포인 마우저 MG151/15가 개발된 이후에야 Bf109F-2
기종에 15mm 기관포가, 그 후에 MG151의 20mm 버젼인 MG151/20이 나온 후에야 Bf109F-4 기종에 20mm 기관포가
설치되었습니다. &nbsp;</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보다 자세한 정보는 Bf109.com 사이트의 <A
href="http://www.bf109.com/frameset.html"
target=_blank><U>http://www.bf109.com/frameset.html</U></A> &nbsp;링크를
참조하시길..(영어이긴 하지만요 -_-;).</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B>Question (SV-001/R님)</B></FONT> </P>
<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align=justify><FONT size=2>: &nbsp;BF-109의 엔진은 크랭크축과 프로펠러축이 따로따로였나요? &nbsp;그래야만
기관포를 프로펠러축에 장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TA-152는 어떻게 성형 엔진을 사용했는데도 프로펠러 회전축 기관포를 장착할 수
있었나요?</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blue size=2><B>Answer (Kweassa님)</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 DB601/605 엔진에 대해..&nbsp;</B></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음.. 질문하신 내용을 보니 -_-; 아무래도 엔진구조를 잘 아시는 분인 것 같아서.. 대충
답변하면 안될 것 같아, 내연기관이나 기계공학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자료 뒤지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nbsp;</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일단, 조사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비행기에 사용되는 프로펠러 엔진에는 두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더군요. 비행기의 프로펠러는 프로펠러 섕크(blade shank)라는 장치를 통해 엔진과 연동이 되는데요, 크랭크 축에 프롭섕크가 직접 부착된
직접프롭회전 방식과, 질문하신 내용 그대로 크랭크축과 별도인 프로펠러축을 통해 부착된 간접회전 방식이 있습니다.</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nbsp;<IMG height=112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pic6-4.gif" width=254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그림1) 프로펠러와 프로펠러 섕크</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FONT>&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4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pic6-2.gif" width=246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nbsp;(그림2) 직접프롭회전방식</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nbsp;2차대전 전투기들의 대부분은 엔진은 크랭크축에 곧장 프로펠러가 연결된 식이 아니라,
크랭크축의 회전력을 다시 프로펠러 축으로 연결하는 간접회전 방식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nbsp;Bf109에 사용된 DB계열 엔진의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제가 아는 한 DB60X계열 엔진의 생산 자체가 각종 신개발 전투기들의 설계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합니다.&nbsp;</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1930년대 중반에 들어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들을 설계하면서 특히 새로운 시대의 전투기에 걸맞는
무장형태에 대한 많은 논쟁과 연구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주력 무장을 어느 위치에 장착할 것인가가 큰 관심사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크게 두계열로 나뉘는데요, 전투기의 중심선을 따라 무장 을 집중시키는 기수집중방식과, 다량의 무기를 날개 위치에 장착하는
날개무장방식이었죠. 결론적으로 말해서, Bf109는 처음에 설계될 때 부터 기수집중무장 방식을 염두해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BoB기간에 등장한
Bf109E형의 경우에는, 아직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날개에 기관포를 장착했다고 하는군요). &nbsp;</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따라서, DB엔진의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Inverted-Vee 방식의 설계라고
하는데, 바로 프로펠러 기관포 장착을 염두해둔 설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212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109engine1.jpg" width=371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그림3) DB605</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그림3을 보면 아시겠지만, 엔진 구조 자체가 거꾸로 선 "V"자 형태이죠. 두개의 실린더 블럭이
"V"자 형태로 접합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구경이 꽤 큰 프로펠러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V"형 엔진이었지만, DB엔진의
영원한 라이벌로 인식되는 롤스-로이스사의 멀린계열 엔진들은 바로 선 "V"형입니다.</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이것이 왜 축기관포 설치에 관건이 되는가하면, 전쟁 중반에 들어서 총신이 짧은 신형 기관포들이
등장했지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각국에서 전투기를 설계할 때 까지만 해도 20mm기관포는 굉장히 거대한 신무기였습니다. 총신이 엄청나게 긴
신무기였기 때문이죠. 따라서, 전투기에 엔진을 설치한 후, 프롭축 가운데에 20mm기관포를 두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봐서 DB엔진과 같은
거꾸로선 V형이 필수조건이었던 셈입니다.&nbsp;</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92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mg151.gif" width=446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그림4) MG151/20 20mm 기관포</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왜냐하면, 머리 속으로 전투기의 구조를 그려보면 아시겠지만, 제일 앞에 프로펠러 헙과 카울링이
위치하고, 그 뒤에 엔진이 위치하고, 엔진 내부에는 20mm기관포의 총신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엔진 뒤에는 20mm 기관포 본구조 및
탄창이 위치하는데요,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같은 식의 바로선 \"V\"형 엔진의 경우 프로펠러-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일자로 연결하면,
기관포 본체가 놓이는 위치와 콕핏의 계기판 기계구조를 설치하는 위치가 겹치게 됩니다.&nbsp;</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굳이 해결하자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수집중방식 보다는 날개무장을
선택하고 있던 판에,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축기관포를 위한 설계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었던거죠.&nbsp;</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반면, Bf109의 구조를 보면, 프로펠러 헙-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잇는 일직선을
그어보면, 기관포 본체는 콕핏 기계부속 아래에 위치하게 됩니다. (실제로 Bf109 콕핏을 보면, 조종레버 뿌리의 앞쪽에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이
있는데, 그것이 MG151/20 기관포 본체의 일부분을 감싸고 있습니다) 딱 들어맞는 구조입니다. 원래부터 전투기 설계자가 엔진 형태를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염두해두고 있지 않은 한 그런 식으로 딱 들어맞는 형태는 나오기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Bf109 기종도 시제기를
만들면서 여러 형태의 엔진을 시험해봤지만, 설계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가 최종적인 엔진 종류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죠)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그 밖에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하여,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Bf109.com에서 설명하고 있는
DB605엔진 구조에 대한 내용을 조금 번역해보겠습니다. 엔진 구조물에 대한 전문용어가 많아서 -_-; 그냥 일부 단어는 원어로 냅뒀으니
양해해주시길.. &nbsp;&nbsp;(<A
href="http://www.bf109.com/engine.html)."><U>http://www.bf109.com/engine.html</U></A>).</FONT></P>
<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align=justify><FONT color=navy size=2>"...크랭크축은 six-throw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의
stell forging 주조 기법으로 만들어져있고 여섯개의 평형추를 지니고 있다. 납-청동 합금으로 만들어져 강철로 보강된 여섯개의 베어링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데, 하나의 throw 내에서 동작하는 커넥팅 로드는 한 쪽은 롤러 베어링을 통해 plain rod 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쪽은 plain bearing을 통해 forked rod가 plain rod에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피스톤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
있으며 floating-type 핀들로 고정되어 있다..."</FONT></P>
<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align=justify><FONT color=navy size=2>"...프로펠러 축은 내부에 기관포를 위치시킬 수 있도록 비어있으며,
1.55 대 1, 혹은 1.88 대 1의 reduction ratio를 지닌 스퍼 기어를 통해 회전한다. 축 기관포는 엔진 뒷면의 테두리에 네
개의 지주와 나사로 고정된다. 프로펠러 축의 테두리는 8개의 구멍과 96개의 톱니가 달려 있는데, 이것이 당시 독일의 표준
생산형태였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Ta152H의 Jumo213E 엔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DB엔진 보다 자료가 적기 때문에 별로
쓸만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문외한인지라, 정확히 무얼 질문하신지도 잘 이해를...&nbsp;</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어쨌건, 혹시 참고가 될까 하여, Jumo213E 엔진의 그림이 있는 사이트 주소는 아래에 적어
놓습니다.</FONT> </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A
href="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U>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U></A>)</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TD></TR></TBODY></TABLE>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red size=2><B>* 영광의 정점에서</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f 109F형은 독일공군이 누린 영광의 시절을 상징하는 기체일 것이다. 형님겪인 E형과 함께
1941년초에 영국본토 항공전의 말미에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Bf 109F형은 당시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 Mk I, II를 훨씬 상회하는
비행성능으로 영국공군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에 놀란 영국공군이 성능개량형인 스핏화이어 Mk V형을 서둘러 제작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무렵
영국본토 항공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영국본토 항공전에서의 전과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IMG height=28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4.jpg" width=438
align=right border=1></FONT><FONT color=blue size=2>[ 동부전선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는 Bf 109F, 독소전 초기 소련공군에는 이 기체에 맞설 만한 기체가 없었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f 109F형이 명성을 떨친 곳은 바로 독일공군의 주 전장으로 새롭게 떠오른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의 사막이었다. 물론 이 양대 전선에는 Bf 109E도 참가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Bf 109F의 생산량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며 이미
독일공군 전투기 부대의 실질적인 주역은 Bf 109F형이었다. Bf 109E는 Bf 109F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서 점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히틀러의 원대한 꿈이었던 소련 정복을 위해 동부전선으로 대거 집결한 독일공군은 세계 최강의
전투기인 Bf 109F를 앞세워 한수아래의 소련공군을 일방적으로 격파했다. 1941년 6월, 독일의 완벽한 기습으로 시작된 독소전에서 전쟁을
치룰 준비가 제대로 되있지 않았던 소련공군기들은 하늘과 땅에서 일방적으로 무참하게 격추되거나 파괴되었다. 전투의 양상은 너무나 일방적인 것으로
독일공군은 거의 매일 2차대전이 시작된이래 최고의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독일공군에는 최고 조종사로 추앙받던 베르너 묄더즈를
선두로하여 격추 스코어 100기를 넘는 슈퍼에이스들을 즐비하게 배출되었다. 당시 소련공군이 보유한 I-15, I-153, I-16과 같은 구식
전투기들은 Bf 109F에게는 그야말로 공중 표적에 불과한 것이엇으며 비교적 신형이던 야크-1이나 LaGG-3 같은 경우도 Bf 109F에
맞서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전쟁이 시작되기전 스탈린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인해 고급 공군 장교들이 많이 처형되어 소련공군 조종사들이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이렇다보니 실전에 대비한 훈련수준이 매우 낮았었으므로 영국과 미국에서 급히 공여된 허리케인, P-39, P-40등의 전투기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IMG height=32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winter.jpg"
width=550 border=1></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눈으로 뒤덮인 동부전선의 차가운 겨울에서 작전중인 Bf 109F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한편, 또하나의 전장이던 북아프리카에서는 1941년 말부터 1942년 중반까지 독일공군이
영국공군을 몰아붙이면서 롬멜의 지상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이 무렵의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는 Bf 109E, F형이었으며 이중에서도
비행성능이 뛰어난 F형은 P-40 계열기와 허리케인을 주로 사용하던 영국 사막공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무럽까지는 영국공군이
북아프리카에 스핏화이어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의 질적인 격차가 너무나 컸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특히 영국공군 전투기부대를 상대로 158기의 엄청난 격추기록을 달성하며 북아프리카 하늘의 전설이
된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가 주로 사용하던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 하늘의 왕자로서 독일공군 조종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size=2><IMG height=349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engine.jpg" width=550
border=1></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blue size=2>[ 열사의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Bf 109F-2/Trop, 허리케인과 P-40
계열기들을 제물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Bf 109F형은 그 등장시기가 독일공군이 모든 전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으며
독일에 대항하는 모든&nbsp;적기들을 공격하여 단숨에 섬멸하는 최강의 전투기로서 명성을 떨쳤다. F형은 전투기끼리의 제공권 다툼에서 가장 큰
위력을 선보였으며, 1941년과 1942년의 1년여의 기간동안&nbsp;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평가받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당대의
라이벌인 스핏화이어 Mk V와의 비교 평가에서도 전반적으로 대등하거나 우세한 성능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모든 전선에서&nbsp;오로지
공격에 공격을 거듭하던 독일공군의 창끝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center><FONT color=red size=3><B>◆ Bf 109F 일러스트 Colloection
◆</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2-trop.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로 진출한 Bf 109F-2/Trop형이다. JG 27
전투비행단 3연대의 기체로서 기수에는 '제자우 크로이츠'라고 불리는 튜튼 기사단의 방패가 연대마킹으로
사용되었다.</FONT></P></TD></TR></TBODY></TABLE>
<P>&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2년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헝가리 사단 소속의 Bf 109F-4,
당시 헝가리와의 동맹을 상징하기 위해서 꼬리날개에 헝가리 국기를 그려넣은 기체이며 실제는 독일 조종사들이 탑승하고
있었다.</FONT></P></TD></TR></TBODY></TABLE>
<P>&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trop.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떤 JG 27 전투비행단 2연대 소속의
Bf 109F-4/Trop형이다. 이기체는 걸출한 비행성능으로 영국 사막공군을 하늘에서&nbsp;초토화 시켰다. 동체에는 기체 번호가 급히 다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으며 기수에는 2연대의 상징인 '베를린의 곰'이 그려져
있다.</FONT></P></TD></TR></TBODY></TABLE>
<P>&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01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trop2.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2년 8월, 기종을 Bf 109F-4/Trop형으로 교체한 직후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FONT></P></TD></TR></TBODY></TABLE>
<P>&nbsp;</P>
<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order=1>
<TBODY>
<TR>
<TD width=642 bgColor=white>
<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center><IMG height=220
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bf109f-4-jabo.jpg"
width=550 border=0></P></TD></TR>
<TR>
<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left><FONT color=navy size=2>1942년, 지중해 지역에서 영국 함선들의 공격에 사용된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이다. 러더에 그려진 마킹은 격추마크가 아니라 격침시키거나 대파시킨 함선들을
의미한다.</FONT></P></TD></TR></TBODY></TABLE>
<P>&nbsp;</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color=red size=2><B>영광은 끝나가고...</B></FONT></P>
<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align=justify><FONT size=2>1941년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렸던&nbsp;한해동안 총 2628기의 Bf 109E와
Bf 109F형이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1942년 여름이 지나면서부터는 독일군의 전성기가 끝나면서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 지면서 독일군이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 서로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후에는
점점 독일이 수세로 몰리게 되면서&nbsp;절정의 영광을 누렸던 Bf 109F형도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점점 후계기인 Bf
109G형에게 주력의 위치를 내주고 전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Bf 109F형의 종말은 공격의 선봉에서 적의 전투기를 제압하던 순수한
제공전투기로서의 Bf 109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이는 후계기인 Bf 109G형이 비록 수적으로는 모든 Bf 109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생산되기는 했지만 적기를 제압하는 순수한 제공전투기라기 보다는 점점 요격기에 가까운 수비형 전투기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이제 Bf 109는 창에서 방패로 역할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FONT></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justify><FONT color=red size=2><B>foxmouse: </B></FONT><FONT color=blue
size=2>그동안 업데이트가 너무 지연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이야기거리와 볼거리를 넣고 싶다보니 마치 미궁속을 헤메는 것처럼 감을 잡지
못했었습니다. 그동안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Bf 109편의 마지막회로 예정된 '제국의 수호자'편을 기약하면서 Bf 109E,
F형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FONT></P><FONT size=2><STRONG><FONT color=#0000ff>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justify><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navy size=2&gt;&lt;IMG
height=388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art2-title-109e.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art2-title-109e.jpg</A>"
<BR>width=550 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navy size=2&gt;독일의 침략으로 유럽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1939년부터 독일공군은 <BR>엄청난 위세를 과시하며 전
유럽에 공포와 충격을 몰고왔다. 하늘에서는 Bf 109를 앞세운 독일공군이 연합군의 전투기들을 일소하며 창공의 전설을 <BR>만들고 있었으며
지상에서는 독일공군의 원호를 받고있는&amp;nbsp;전차군단이 질풍같은 속도로 서유럽을 가로지르며 독일군에 저항하던 영불 연합군을
<BR>신속하게 두동강내고 있었던 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navy size=2&gt;이때부터 약 2년의 기간동안 독일공군은 신화적인 존재로 <BR>추앙받으며&amp;nbsp;서유럽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부전선을 휩쓸어 버리면서 그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 절정에 달한 영광의 시절동안 <BR>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로
활약했던 전투기가 바로 Bf 109E형과 Bf 109F형이었던 것이다.
&amp;nbsp;&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navy
size=2&gt;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amp;nbsp;이번회에서는 <BR>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의 두
번째 이야기로 이 전투기가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시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BR>하자.&lt;/FONT&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gt;&lt;B&gt;&lt;FONT <BR>color=red
size=2&gt;* 진정한 전투기로&lt;/FONT&gt;&lt;/B&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lt;IMG height=372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v13-14.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v13-14.jpg</A>"
width=400 <BR>align=left border=1&gt;[ Bf 109V13 시제기의 사진, Bf 109E의 탄생으로 이어지게되는
기체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Bf 109V1 시제기부터
Bf 109D형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숨가쁘게 개량에 개량을 <BR>거듭하던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로소 Bf 109E라는
멋진&amp;nbsp;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Bf 109E형은 Bf 109 가문에서 최초의 <BR>대량 생산형이었으며 1939년 말까지
최일선의 전투기부대에서 Bf 109 선행형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전투기들을 밀어내고 대체하면서 최일선 <BR>주력전투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까지 독일공군의 최정예 13개 전투기 연대가 각 40기씩의 Bf 109E를 배치받았는데 이 전투기들이 전유럽을 <BR>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게 된 것이다. 대개 Bf 109 시리즈를 분류할 때 A형부터 E형까지를 1세대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BR>Bf
109E형은 1세대 Bf 109의 결정판으로서 진정한 Bf 109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조종사들 사이에서 '에밀 (Emil)'이라는 애칭으로
<BR>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1937년의 국제 항공대회에서 시험적으로 제작된 DB 601엔진을 장착하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BR>Bf 109V13의
놀라운 성능에 고무된 BFW사는 이 엔진을 장비한 신형기를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새로운 벤쯔 엔진은 기존에 사용했던 <BR>유모 엔진에
비해서 크기가 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체에 많은 개량이 가해졌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IMG height=265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db601.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db601.jpg</A>"
width=400 <BR>align=right border=1&gt;&lt;FONT color=blue size=2&gt;[ Bf 109E의
심장 - 다이믈러 벤쯔 DB 601 엔진의 <BR>모습, 이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존형에 비해 기수의 형태가 많이 변하게 되었다. 이 벤쯔
엔진의 탁월한 성능이 Bf 109E에게 뛰어난 <BR>공중전 능력을 선사해 주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우선 동체가 유모엔진을 장착했던 C/D형에 비해서 10cm 길어졌으며
냉각계통도 완전히 새롭게 <BR>설계되어야 했다. 기수 하면의 커다란 공기흡입구가 축소되어 윤활유 냉각용 공기흡입구로 사용되었으며 냉각수를 위한
공기흡입구는 양쪽의 주익 <BR>하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엔진출력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 새롭게 디자인된 3날의 VDM 프로펠러가
사용되었고, 이 프로펠러는 피치조절이 <BR>가능했다. 이런 다양한 변화의 결과로 전체 중량은 450kg이나 증가하게 되었지만 엔진 출력이 이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더 강력해졌기 <BR>때문에 전체적인 비행성능에는 많은 향상이
있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1938년
여름에&amp;nbsp;1100마력급의 DB 601A 엔진을 장비한 시제기 Bf <BR>109V14의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이 형은 기수의 MG
17 기관총 2정에 더해서 주익 장착 문제가 해결된 MG FF 20mm 기관포 2문을 <BR>시험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로서 숙원이었던
20mm 기관포를 가지게되자 화력강화의 문제는 해결된 듯 했지만 Bf 109의 기체설계가 <BR>근본적으로 무장을 기수에 장착해야 최고의
비행성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메서슈미트 박사는 기축에 20mm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는 <BR>설계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기축선
기관포를 탑재하고 주익의 무장을 제거한 Bf 109V15 시제기를 제작하여 시험비행에
<BR>참가시켰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323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1-jg20-1.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1-jg20-1.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JG 20 소속으로 실전배치된 Bf 109E-1, JG 20 전투비행단 제 <BR>1중대장이었던 발터
외자우 대위의 기체이다. 훗날 이 중대는 JG 51의 7중대로 개편되어 동부전선에 투입되게 된다. 기수의 활 엠블램은 중대의 <BR>상징이다.
&amp;nbsp;]&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야전부대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선행양산형인 Bf 109E-0형이 급히 생산되었는데 아직 기관포의 <BR>탑재가 적용되지 않아
이&amp;nbsp;형은 Bf 109C형과 같이 기수와 주익에 4정의 MG 17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E-0형의 <BR>양산작업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곧 본격 양산형 Bf 109E-1가 생산되었다. 이 Bf 109E-1형은 기관총 4정의 무장은 <BR>같았지만
주익의 기관총을 야전에서 MG FF 기관포로 쉽게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야전 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는 즉시
<BR>주익의 무장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주익에 장착되도록 개량된 MG FF 기관포는 스위스 오리콘사의 오리지널
모델에 <BR>비해서 포구속도가 떨어져 사거리와 파괴력이 덜어졌지만 화력 강화를 위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사용되었는데, 이 기관포를
장착하는 경우 <BR>탄약 드럼의 부피로 인해서 주익 하면에 약간 불룩해 보이는 돌출부가 생기게 되었으며 20mm 기관포탄의 최대 탑재가능
탄수는 각 <BR>60발이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49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mgff-wing.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mgff-wing.jpg</A>"
width=400 <BR>align=righ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야전부대에서 정비병들이 Bf 109E-1의 <BR>주익에 MG FF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는 장면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이때까지는 Bf 109도 제공전투
이외에 지상공격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받고 있었으므로 <BR>50kg 폭탄 4발 혹은 250kg 폭탄 1발을 장착할 수 있었던
전투폭격기형 Bf 109E-1/B 형도 같이 생산되었다. 이후 독일공군이 Bf <BR>109E의 본격적인 대량 생산을 요구하면서 아욱스부르크의
생산공장이 레겐스부르크로 이전하게 되었고 다른 항공사의 몇몇 공장들에서도 생산에 <BR>참여하게 되면서&amp;nbsp;1939년 말까지 총
1540기의 기체가 생산되게 되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이후에 Bf 109E-2형에서는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포 2문을 표준으로 하게 <BR>되었으나 기축선에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겠다는 메서슈미트 박사의 집념으로 프로펠러축에 MG FF&amp;nbsp;기관포를 장비하는 Bf 109E-3가 <BR>제작되었으며
이 E-3형이 Bf 109E중에서 가장 많은 수가&amp;nbsp;생산되어 E형을 대표하는 주요한 생산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1940년
<BR>초부터 생산이 시작된 Bf 109E-3는 기축의 20mm 기관포 1문외에 엔진 카울링과 주익에 각 2정씩 총 4정의 기관총을 장착하도록
했다.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그러나 기축선 기관포는
여전히 잦은 고장을 일으켰으며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불만이 <BR>속출하여 대부분의 야전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면
&amp;nbsp;&amp;nbsp;이 기관포를 아예 떼어 버리고 주익의 기관총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해서 <BR>장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생산라인에서도 기축선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고 주익에 2문의 기관포만을 장비하도록 변경하게 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BR>Bf 109E-3는
애초의 설계와는 달리 주익의 기관포 2문, 기수의 기관총 2정의 무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Bf 109E <BR>시리즈의 표준
무장이라고 하면 결국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총 2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385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wick.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wick.jpg</A>"
width=550 <BR>border=1&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left&gt;&lt;FONT color=blue
size=2&gt;[ JG 2 비행단장&amp;nbsp;헬무트 뷔크의 Bf 109E-3, 영국본토 <BR>항공전에서 작전중이던 무렵의 사진이다.
스피너 가운데에 기축 기관포를 위한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amp;nbsp;]&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left&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62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carrying.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carrying.jpg</A>"
width=550 <BR>border=1&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left&gt;&lt;FONT color=blue
size=2&gt;[ 트럭으로 Bf 109E를 견인하고 있는 특이한 장면, 트럭 바퀴의 폭과 비슷한 <BR>정도로 폭이 좁은 주 강착장치를 잘
볼 수 있는 사진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Bf 109E-3는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가 가동되면서 월평균 150여기가 생산되었으며 <BR>1940년 한해동안 1868기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많은 수가 만들어졌는데 이 수치는 이 무렵이 2차대전의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BR>것이었다. 결국
1940년에는 대부분의 실전 전투기부대들이 Bf 109E-3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 E-3형이 1940년에 전유럽의 하늘을 <BR>휩쓸어 버리는
영광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며 이후 194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인류 역사상를 통털어&amp;nbsp;최대 규모의 항공전으로 기록되는
<BR>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맹활약했던 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274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engine-start.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engine-start.jpg</A>"
<BR>width=400 align=lef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비상출격 명령에 따라 Bf <BR>109E의 엔진 시동을 걸고 있는 정비병, &amp;nbsp;기축 기관포를 위한 스피너의
구멍이 잘 보이는 사진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Bf 109E-3는 대외판매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스위스에 80기가 넘겨진 것을 포함해서 <BR>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의 외국으로 총 304기가 판매된 것인데, 이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동맹국인 일본에 2기가 넘겨진 <BR>것과 훗날
철천지 원수가 되는 소련에도 5기가 판매되었다는 사실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특히 일본에 넘겨진 2기는 훗날 일본의 가와사끼 항공사가 Ki-61
히엔을 제작하는데 많은 <BR>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수출형 Bf 109E-3는 독일공군내에서 Bf 109E-3a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독일공군용으로 제작된 Bf <BR>109E-3형에 비해서 많은 첨단 장비가 제거된채로 한단계 낮은 성능을 가진 채로 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수출형에는 독일제 고성능 <BR>무선 통신 장비가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심지어는 주익의 무장을 없애 버린 것들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소련이나 유고로 수출된 기체들에 이런 조작이 <BR>많이 가해져 거의 간신히 비행만 가능한 채로 모든 주요 장비가 제거된 채로 넘겨졌다고 한다.
소련은 이 기체를 넘겨받은후 이 기만 전술에 속아 <BR>이 전투기가 가진 무서운 능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응에 소흘했기 때문에 훗날의
독소전에서 커다란 재앙에 직면하게 <BR>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98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japan.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japan.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3국동맹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일본에 넘겨진 Bf 109E-3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1940년말부터는 아예
기축의 기관포를 완전히 포기하여 엔진룸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없애 <BR>버리고 주익의 기관포 2문과 기수의 기관총 2정만을 표준으로 하는
Bf 109E-4가 생산되었으며 전투폭격기형인 Bf 109E-4/B형도 같이 <BR>생산되어 영국본토 항공전의 후반기에 E-3형과 함께 주력
전투기로서 사용되었다. 특히 E-4형에 표준무장으로 채택된 기관포는 보다 <BR>개선된&amp;nbsp;MG FF 'M' 20mm 기관포로서
기존의 HE탄에 비해서 보다 폭발력이 강한 신형 탄의 사용이 가능해 파괴력이 증가하게 <BR>되었다. 이외에&amp;nbsp;캐노피를 평면형으로
바꾸고 조종사 보호를 위한 방탄판도 표준 장비로 채택되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32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galland2.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galland2.jpg</A>"
<BR>width=558 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 JG 26 비행단장 아돌프 갈란트 소령의 Bf 109E-4, 기축 <BR>기관포가 완전히 폐지되어
E-3형 까지 유지되던 스피너의 기관포구용 구멍을 없앤 신형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물론 구형 스피너를 가진 E-4형도 <BR>일부 있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1941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향상된
연료 분사장치와 자동으로 작동되는 유압식 슈퍼차져를 가진 <BR>신형 DB 601N 엔진을 장비한 Bf 109E-4/N형이 개발되었다. 이
1200마력의 신형엔진을 부착하면서 기체의 성능은 더욱 좋아졌으며 <BR>주로 북아프리카 전선용 기체로 생산되었다. 특히 북아프리카 전선용의
기체는 슈퍼차져의 공기흡입구에 커다란 방진필터를 장비하고 동체에 조종사 <BR>구난용 생존키트를 내장하도록 개량되었는데, 이 형은 사막과 열대
(tropical) 지역의 작전용인 Bf 109E-4/Trop 형으로 알려지게
<BR>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9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trop.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trop.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 JG 27소속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2위의 에이스로 명성을 날렸던 <BR>베르너 슈뢰어의 Bf
109E-4/Trop, 기수 좌측의 특징적인 방진필터가 Trop형의 특징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이외에는 전선정찰용으로 2정의 기관총만을 가진 경무장의 Bf
109E-5, E-6형이 <BR>소량생산되었으며 기내의 연료탑재 용량이 적어 영국 본토항공전에서 고전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투하식의
300리터들이 외부연료 탱크를 장착해 <BR>항속거리를 대폭 늘린 Bf 109E-7형도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이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이 E-7형은 장거리 항속력이 필요했던 <BR>몰타섬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작전에 다량 투입되어 맹활약했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의 근접
지상지원을 위해서 연료탱크대신 폭탄을 장비하도록 하고 조종석 <BR>주위에 장갑판을 강화한 Bf 109E-7/U2형이 생산되기도 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353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schlageter-7th-rearm.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schlageter-7th-rearm.jpg</A>"
<BR>width=550 border=1&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몰타섬 공략을 위해 시칠리에서 작전중이던 JBf 109E-7, 약간 <BR>디자인이 바뀐 뾰족한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스핏화이어 킬러로 유명한 요아힘 뮌히버그가 지휘하던 JG 26 제 7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Bf 109E 시리즈의
마지막 기체로는 DB 601E 엔진을 장착한 E-8형과 장거리 정찰용으로 <BR>제작된 E-9형이 있으나 모두 소량생산에 그쳤다.
&amp;nbsp;특이한 변종으로는 항모 그라프 쩨펠린에 탑재될 예정으로 Bf 109E-3를 개조한 <BR>Bf 109T 형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kwessa님이 자세히 올려주신 자료를 참고하시길...&lt;/FONT&gt;&lt;/P&gt;<BR>&lt;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0 width=653
align=center&gt;<BR>&lt;TBODY&gt;<BR>&lt;TR&gt;<BR>&lt;TD
<BR>style="BORDER-RIGHT: black 1px solid;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solid;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R>width=643
bgColor=#cccccc height=2261&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003366
size=2&gt;&lt;B&gt;* Bf 109E의 함재기형 - Bf 109T
<BR>&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이 부분은 109E의 변형인 함재기형의 Bf 109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BR>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편집해서 추가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BR>감사 드립니다.
&amp;nbsp;&amp;nbsp;&amp;nbsp; ^_^&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독일군 함재기에 대한 질문이 나왔었는데.. -_-; 순전히 글쓰기 귀찮다는 이유로 "다른 <BR>분들께서 답변을 잘
하시겠지.."하고 놀려두고 있다가 결국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라기 보다는, 제버릇 개 못주니..) 몇자 끄적여봅니다.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기본적으로 Bf109
기종이 대전 초중반까지는 독일군의 거의 유일한 전투기였으므로, 이 기종을 <BR>함재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죠.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진전됨에 따라 독일군은 Bf109E형을 <BR>함재기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도하게 되는데요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함선보다 함재기들이 먼저 준비되었다고 볼 수도 <BR>있겠지요.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1939년에는 양산전 시험생산으로
10기의 Bf109T-0이 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BR>DB601Aa엔진에 두 정의 MG-FF 20밀리 기관포, 두 정의 MG17 7.92
밀리 기관총을 장착한 Bf109E-3형에서 출발했는데, <BR>완성단계에서는 기존의 E형보다 면적이 더 넓은 날개에 꼬리 부분의 착륙용 후크,
동체에 두개의 캐터펄트(네! 캐터펄트입니다!) 후크를 지니고 <BR>있었습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성공적인 시험생산을 마친 후, 1940년에는 본격적인 양산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총 60대의 <BR>양산형 Bf109T-1이 생산되었습니다. 양산형 T-1기종에는 기존의 E형에 사용되던 DB601Aa 보다 더욱
강력한 DB601N 엔진이 <BR>사용되었고 함재기로써의 기능을 완비하게 됩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그런데, 1940년에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백지화되면서 아쉽게도
T형의 개발계획도 멈추게 <BR>됩니다. 현재까지 생산된 T형은 메서슈미트사의 전투기들을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던 피이슬러사에 넘겨져서 함재기용
장치를 모두 제거한 후 지상이착륙 <BR>전투기로 사용됩니다. 이륙용 사출후크와 착륙용 꼬리후크를 제거하고, 보조연료탱크나 250kg짜리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범용 동체 랙을 설치하게 <BR>되는 이 기종은 Bf109T-2로 지정되었습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원래 함재기로 사용하기 위한
전투기였던 만큼, 완비된 활주로의 비행장이 드물었던 스칸디나비아 <BR>반도의 작전에 쓸만한 활용가치가 있다는 판단아래에 Bf 109T-2형은
모조리 노르웨이로 보내졌습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lt;IMG height=33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3d.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3d.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Bf109T형 - 동체 아래의 사출후크, 꼬리의 착륙후크, 넓어진 날개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lt;/FONT&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3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1.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1.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Bf109T-2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lt;/FONT&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lt;IMG height=226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2.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2.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Bf109T-2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lt;/FONT&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lt;IMG height=269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3.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109t-3.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함선상 이륙 중인 Bf109T-1, 사출후크와 꼬리후크가 잘 드러나있음
<BR>]&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red
size=2&gt;&lt;B&gt;* 에밀의 비행성능&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비행특성의 측면에서 볼 때 Bf 109E는 매우 우수한 기체였다. 특히
시속 480km 이내의 <BR>속도에서 이 전투기는 매우 우수한 조종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른 바 '감'이 좋아서 일선 조종사들로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기존에 지적받았던 <BR>실속시의 비행특성도 많이 개선되어 갑자기 실속이나 스핀에 빠지는 일이 없어졌으며 실속경고 장치가 있어서
조종사들이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BR>20도가 숙여지는 삽입식 플랩덕분에 활주거리도 괄목할만큼 짧아졌다. 물론 기존형부터 지적되어오던
주강착장치의 폭이 좁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BR>무게중심보다 조금 앞쪽으로 위치하도록 설계되어 착륙시에 접근 각도가 너무 급격하더라도 안착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며 착륙 활주거리도 짧은 <BR>편이었고 지상활주도 용이한 편이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42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afterlanding.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afterlanding.jpg</A>"
<BR>width=550 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착륙후 주기중인 Bf 109E, 기체의 볼륨을&amp;nbsp;잘 보여주는 <BR>사진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기체의 최고 속도는 12300 피트의
고도에서 수평비행시에 시속 573km를 기록했으며 65% <BR>출력의 경제속도로 비행하는 경우&amp;nbsp;항속거리는 최대 668km
정도였다. 초기 상승률은 분당 3100피트에 이르렀으며 작전가능 고도는 <BR>36000피트로서 고공성능이 매우 좋았고 최대 375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급강하 폭격을 위해 테스트 받았던 Bf 109E-1/B의 <BR>경우 평균 급강하 속도가 시속 604km였으며 속도가 붙는
경우&amp;nbsp;시속 722km까지도 기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BR>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0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32.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32.jpg</A>"
width=509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날렵한 외형을 자랑하는 Bf 109E-3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하지만 시속 600km를 넘어가게 되면 보조익 (aileron)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단점이 <BR>있어서 급강하에 접어든후의 고속비행에서 롤 (roll)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었으며 고속 급강하시에는 러더
(rudder)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BR>트림조작이 어려워 조종사들이 애먹기도 했다. 게다가 원형기에서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오던
이착륙시에 좌측으로 쏠리는 현상은 <BR>여전히&amp;nbsp;계속되어 이런 현상에&amp;nbsp;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미숙한 조종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이착륙시에 잦은 사고를 <BR>유발했다. 후에 통계를 내보니 Bf 109B가 최초로 실전배치된 1937년부터 1941년
가을까지의 4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amp;nbsp;무려 <BR>1500여기의 Bf 109 전투기들이 이착륙시에 발생한 사고로 전열에서
이탈했다고 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67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spain.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spain.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스페인에서 작전중 착륙 과정에서의 사고로 파손된 Bf 109E-1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메서슈미트 박사와 설계팀은 이 현상에 대한 <BR>원인 규명에 나섰는데 고정되지 않은 뒷바퀴가 이착륙시에 좌우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어 이 뒷바퀴를 엔진이 풀쓰로틀에 <BR>달했을 때만 좌우로 가동되도록 개선작업에 들어갔는데 이후
이착륙시의 사고는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교정되지는 않고 더 이상 <BR>해결책이 없어 Bf 109의 최종생산형에서까지도
조종사들을 괴롭혔다고 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amp;nbsp;&lt;/P&gt;<BR>&lt;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0 width=578
align=center&gt;<BR>&lt;TBODY&gt;<BR>&lt;TR&gt;<BR>&lt;TD
<BR>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R>width=574
bgColor=#ccffcc&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B&gt;Messerschmitt Bf 109E-3
<BR>Emil&lt;/B&gt;&lt;/FONT&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BR>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R>width=574
bgColor=white&gt;<BR>&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87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3-3d.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3-3d.jpg</A>"
width=550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BR>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R>width=574
bgColor=#ffffcc&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엔진: <BR>다이믈러 벤쯔 DB 601A
(1100마력)&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전폭:
<BR>10.34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전장:
<BR>9.05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전고:
<BR>3.58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최대중량:
<BR>3017kg&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최대속도: <BR>573km/h (고도
4,120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최대고도: <BR>36091피트
(12150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항속거리:
<BR>794k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무장: <BR>MG17 7.92mm 기관총 2정 (기수) + MG
FF 20mm 기관포 2문
<BR>(주익)&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red
size=2&gt;&lt;B&gt;* 전장의 에밀&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대전이 발발하자 엄청난 기세로 진격을 하는 독일군에게 하늘에서 든든한
지원을 해주는 독일공군의 <BR>슈투카와 Bf 109E야말로 실로 멋진 존재였으며, 전격전 기간동안 유럽 상공에서 독일공군에 대적했던 모든
연합군 전투기들은 Bf 109E의 <BR>사냥감 신세가 되었다. 개전 초기에는 연합군의 어떠한 전투기도 따르지 못하는 엄청난 속도와 상승력,
그리고 고속 급강하의 엄청난 압력에서도 <BR>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벤쯔엔진의 뛰어난 성능이 이 작은 전투기에게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명성을
얻게 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342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s-condor.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s-condor.jpg</A>"
width=550 <BR>border=1&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left&gt;&lt;FONT color=blue
size=2&gt;[ 콘돌 군단에 파견되어 실전 테스트를 받고 있는 Bf 109E,&amp;nbsp;이 <BR>때의 소중한 전투 경험이야말로
독일공군 조종사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어느정도 독일공군에 맞설 수 있으리라는 예측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기들은 이 Bf <BR>109E의 위력에 압도되어 대패를 당했다. 프랑스로 파견된 영국공군 소속으로 허리케인을 조종하여 Bf 109E와
전투를 경험했던 영국공군의 한 <BR>장교는 허리케인이 Bf 109E에 대해서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점을 인정하고 '비록 적의 전투기지만 Bf
109야 말로 세계최고의 <BR>전투기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전격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프랑스 공군과 대결했던 Bf 109E 전투기들은 프랑스
공군의 주력이었던 호크 75, <BR>MB 151, 모랑솔니에 MS.406등의 전투기들과 대결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프랑스의
신예기 드와땡 D.520 같은 경우는 Bf <BR>109E와 거의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나 전투에 투입된 숫자가 너무 적어
실전에서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BR>뭐니뭐니해도 Bf 109E에게 있어서 적수다운 적수는 숙적 영국공군의 신예전투기
스핏화이어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328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cockpit.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cockpit.jpg</A>"
width=408 <BR>align=righ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Bf 109E의 조종석,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BR>시야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특히 함몰된 형태로 제작되어 후방시야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프랑스 전투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끝나 버린후 독일공군은 잠시의 휴식후에 항복을 거부한 영국 <BR>본토를 공략하는 임무에
나서게 되는데 이때까지 유럽전에 거의&amp;nbsp;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본토 방위에만 전념하고&amp;nbsp;있었던 영국의 최신예
<BR>스핏화이어 전투기들이 허리케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출격함에 따라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amp;nbsp;두
전투기끼리의 한판 승부가 <BR>벌어지게 된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한 BF 109E는 E-3형이 약 70% 정도의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BR>중반을 넘기면서는
E-4형이 같이 전투에 참가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1940년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군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에게는 <BR>마치&amp;nbsp;하늘이 정해준 것처럼
느껴지는 숙명의 라이벌인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가 제일 껄끄러운 상대였다. 성능면에서 비교해볼 때 수평비행시에 <BR>최고 속도에서는 스핏화이어
Mk I, II쪽이 약간 더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수평선회 능력에서도 Bf 109E가 영국의 스핏화이어보다 <BR>약간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으며&amp;nbsp;스핏화이어의 보조전투기겪인 허리케인에 비해서도 선회반경이 약간 더 컸기 때문에 이 두 영국제 전투기와 <BR>저속과
중간 속도에서 급격한 수평선회전을 벌일 때는 불리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상승속도와 최대상승고도에서는 Bf 109E가 이 두
<BR>영국전투기보다 명백히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200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는 훨씬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서 <BR>연료 직접분사기를 부착한 벤쯔엔진 덕분에 전투비행시 기수를 급격하게&amp;nbsp;숙이는 경우나 고속 급강하시에 발생하는
마이너스 G의 거친 <BR>환경에서도 엔진에 연료공급이 지속될 수 있어서 공중전에서 큰 이점이 되었다. 스핏화이어는 순각적으로 기수를 숙이는
등의 마이너스 G를 유발하는 <BR>기동을 구사하거나 급강하를 오래지속하는 경우 연료공급이 순간적으로 끊겨 엔진이 정지하는 현상이 생기므로
고속으로 급강하하는 Bf 109E를 오래 <BR>따라붙을 수 없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4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spit-gwp-109e-circle.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spit-gwp-109e-circle.jpg</A>"
<BR>width=400 align=lef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amp;nbsp;[ Bf 109E와 <BR>스핏화이어 Mk I의 수평선회 능력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두기체가 똑같은 속도에서
선회를 시작하는 경우 스핏화이어쪽이 더 날카로운 선회를 할 수 <BR>있어 수평 선회전에서는 유리했다. 이 데이터만을 놓고 스핏화이어의 성능을
극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전투에서 두 기체가 같은 속도로 근접 <BR>선회전을 벌이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두
기체중에서 속도와 고도가 우월한 쪽이 전투의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이런 장단점으로 인해서 Bf 109E는 특유의 전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고속으로 급상승하여 <BR>유리한 고도를 확보한후 벼락처럼 급강하하면서 적기를 순식간에 공격하고 다시 고도를 높이는 일격이탈 전법이었다.
이 전법은 Bf 109E의 <BR>장점만을 활용한 매우 효과적인 것이었으며 미숙한 조종사들에게도 쉽게 교육할 수
있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사실 영국공군과 독일공군의
조종사들은 서로 적기들의 성능에 대해서 경외감을 표시했는데 이로인해 <BR>스핏화이어와 Bf 109E는 오히려 적군에 의해 더 과대평가를 받게
되었다. 독일공군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의 급격한 선회능력에 놀라 감히 <BR>선회전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스핏화이어 조종사들은 Bf
109E의 상승성능과 급강하 공격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 <BR>기간중에 본토에 추락한 Bf 109E를 수리하여
비행성능을 시험해본 영국공군측은 Bf 109E의 비행성능이 예상외로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매우 <BR>놀랐다고 한다. 이전투기는 예상과 달리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공중전 테스트에서도 그다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Bf 109E가 스핏화이어에 <BR>비해서
수평&amp;nbsp;선회능력이 약간&amp;nbsp;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공중전이라는 것은 3차원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이었으므로
<BR>수직기동을 절묘하게 섞어서 비행할 수 있었던 수준높은 엘리트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격투전에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두 <BR>기체의 공중전 성능은 서로간에 분명한 장점들이 있었으므로 어느 한쪽이 우세했다기 보다는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호각의 상태였다.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384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mgff-20mm-cannon.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mgff-20mm-cannon.jpg</A>"
<BR>width=330 align=righ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영국 전투기들에 비해 열세했던 <BR>화력을 만회하게 해준 회심의 카드 MG FF 20mm 기관포, 주익에 고정 장착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화력면의 비교에서도 Bf 109E형이 가진 20mm 기관포 2문과 2정의 7.92mm 기관총이 <BR>스핏화이어와 허리케인
같은 영국 전투기들이 장착한 8정의 7.79mm 기관총에 대해서 우세한 편이었다. 물론 양측의 장탄수와 발사속도등의 차이가 <BR>있었고 영국
전투기들이 장비한 기관총이 8정이나 되었기 때문에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는 양측의 전투기들의 화력이 거의 대등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BR>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Bf
109E의 MG FF 20mm 기관포탄은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거나 <BR>스핏화이어와 같은 전금속제 전투기에게 명중되는 경우에는 명중되자마자
폭발하면서&amp;nbsp;매우 높은 파괴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목재골조에 <BR>캔버스 (천)를 대는 방식으로 제작된 허리케인의
경우에는 기관포탄이 캔버스를 그냥 관통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는
<BR>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사실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드러난 Bf 109E의 최대약점은 스핏화이어에 뒤지는 성능이 아니라 <BR>짧은 항속거리였다. 체공시간 80분에 항속거리 700km정도라는 것은
전투반경이 짧았던 서유럽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영국본토까지 <BR>날아가는데 30분,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되는 장거리 비행은 Bf
109E에게 겨우 10-15분 정도의 너무나 짧은 교전시간밖에는 허락하지 <BR>않았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영국 전투기들과 교전중에도 연료가
바닥날 우려로 인해 교전을 중단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우군 폭격기들이 <BR>영국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도와주지
못하는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했다. 분을 못이긴 일부 조종사들은 이런 순간에 <BR>자제력을 잃고 영국 전투기들을 공격하다가 결국
귀환도중에 연료가 바닥나 프랑스의 해안이나 도버해협의 바닷물속으로 쳐밖히는 경우까지 있었던 <BR>것이다. 이를 눈치챈 영국공군은 Bf
109E들이 연료문제로 귀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독일 폭격기들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하여 독일공군을 <BR>괴롭히기도
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여기서 한가지 의구심이 생기게 되는데
도대체 왜 독일공군은 영국본토 항공전기간에 Bf <BR>109E에게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것일까? Bf
109E가&amp;nbsp;외부 연료탱크만 장착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스핏화이어의 <BR>영광은 없었을 것이고 전쟁은 단기간에 독일공군의 승리로
끝났을텐데...&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216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he51-fueltank.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he51-fueltank.jpg</A>"
width=400 <BR>align=lef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1930년대 중반&amp;nbsp;독일공군의 <BR>주력전투기였던 He 51, 이 사진에서 처럼 이미 낙하식 연료탱크는
이미 실용화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사실 독일의 기술력으로 볼 때 Bf 109E에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은 그리 <BR>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만일 프랑스전의 대승리이후 즉각적으로 철저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면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는 더욱 맹위를 <BR>떨쳤을 것이다.
독일공군이 Bf 109E에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우선은 프랑스라는 대어를
낚으면서 전격적인 승리에 도취된 독일공군측에서 자만심에 사로잡혀 <BR>영국본토 공략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소흘했다는데 있다. 서유럽을 정복하는
동안 Bf 109E의 항속거리가 문제된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그다지 <BR>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전쟁이 시작될 당시
폭격기 호위용으로 개발된 Bf 110 쌍발 전투기가 있었으므로 Bf 109E는 <BR>폭격기 호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이 적의 전투기만 찾아
공격하고 돌아오는 식의 '자유전투'의 방식으로 전술운영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BR>전혀 외부연료 탱크 부착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405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swarm.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7-swarm.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독일공군이 조금만 더 철저한 준비를 했었다면 아마도 영국본토 항공전의 <BR>양상은 전혀 다른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진의 기체는 외부 연료탱크를 장비한 Bf 109E-7으로 영국본토 항공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BR>등장했다.&amp;nbsp;]&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후 영국본토 항공전이 최절정을 향해 치닫게 되는동안 Bf 110 <BR>전투기들이 영국 전투기에 맞서
폭격기의 호위를 맡기에는 역부족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자 Bf 109E가 폭격기 호위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BR>했는데 이렇게 되면서 짧은
항속거리가 커다란 약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폭격기 호위를 위해서 Bf 109E가 중고도에서 호위를 하는 경우 Bf <BR>109E의 장기인 고속
급강하 공격이 발휘되기 어려웠으며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에게 오히려 고도의 이점을 빼았기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낙하식 <BR>외부 연료탱크의
필요성을 절감한 독일공군측이 뒤늦게 땅을 치면서&amp;nbsp;이 작업을 추진하도록 메서슈미트 박사에게 &amp;nbsp;의뢰했지만 이것은
<BR>시기적으로 너무나 뒤늦은 결정이었다. &amp;nbsp;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의 최대고비인 1940년 9월 15일까지의 치열한 전투에서
독일공군이 너무나 <BR>큰 손실을 입어 결국 독일은 영국에 대한 침공계획을 결국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게 개발되었던 Bf 109E-7형은 비록 영국본토 항공전에서는 거의 <BR>활약을 못했지만&amp;nbsp;이후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장거리 항속능력을 이용하여 맹위를 떨치면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했으며, 영국 <BR>사막공군의 무서운 적수로
떠올랐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red size=3&gt;&lt;B&gt;◆ Bf 109E 일러스트
Collection <BR>◆&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g132.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g132.jpg</A>"
<BR>width=550
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39년초
JG 132에 배치된 Bf 109E-1, 본기의 기수에 그려진 '끈이 <BR>풀린 구두'는 JG 132 전투비행단 제 4연대의 것으로 훗날 JG
77 제 1연대로 개편되게
<BR>된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32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pg</A>"
width=581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0년 5월 10일 서유럽전에 참가중이던 디터 로비쯔쉬 대위의 Bf <BR>109E-1, 디터 중위는 네덜란드 상공에서
포커 XXI 전투기와 교전중 격추되어 포로가
<BR>되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32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g27.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1-jg27.jpg</A>"
width=581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0년 5월, 서유럽전에서 활약하던 JG 27 소속의 Bf 109E-1이다. <BR>조종사는 프리치 켈러 중위로 본기의
기수에는 훗날 북아프리카에서 더 유명해지는 JG 27 1연대의 부대마크가 그려져
<BR>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1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1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448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pic-bf109e-4up.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pic-bf109e-4up.jpg</A>"
width=520
<BR>border=0&gt;&lt;/FONT&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1 bgColor=#ccccff height=110&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0년 5월, 프랑스 침공작전 당시 JG 26 소속으로 작전중이던 Bf <BR>109E-3의 상면도, 쭉쭉 뻗은
통통한&amp;nbsp;주익과 전체적으로 직선형으로 디자인된 기체의 특징을 잘
<BR>볼수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3.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3.jpg</A>"
width=550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0년 8월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하고 있던 JG 26 제 9중대소속의 Bf <BR>109E-3, 조종석 아래 그려진
중대마킹은 유명한 것으로 '헬 훈트 (지옥의 개)'라
<BR>불린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2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3-galland.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3-galland.jpg</A>"
<BR>width=550
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1년,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장이자 유명 에이스인 아돌프 갈란트의 <BR>기체이다.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중일 당시의 도색으로 그의 개인마크인
미키 마우스가 조종석 아래에 그려져
<BR>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1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1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188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wick.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4-wick.jpg</A>"
width=550 <BR>border=0&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gt;&lt;FONT <BR>size=2&gt;&lt;IMG
height=204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bf109e-4front.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bf109e-4front.jpg</A>"
<BR>width=600
border=0&gt;&lt;/FONT&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1 bgColor=#ccccff height=110&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0년 10월, JG 2 리히토펜 비행단의 지휘관 헬무트 뷔크의 Bf <BR>109E-4형의 일러스트, 전통적인 노란색으로
칠해진 기수에서 카울링에 장비된 2문의 MG17기관총이 뚜렷하게 보인다. 카울링에 그려진 칼은 <BR>뷔크의 개인 도색이며 수직 안정판의
받침대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접히게 되어있는 강착 장치등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초기의 E-4형은 <BR>E-3형에 사용되던 구형
캐노피를 같이
사용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7b.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7b.jpg</A>"
width=550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2년 겨울,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 1중대 소속의 Bf <BR>109E-7B으로 동부전선의 스탈린 그라드 지역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던 당시의 도색이다. 이무렵에는 이미 E형이 일선에서 완전히 <BR>물러났을 시기이나 전황이 워낙 다급하여
훈련용으로 전용된 기체가 동부전선으로
<BR>보내졌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7trop.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e-7trop.jpg</A>"
width=550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2년 8월, 북아프리카 상공을 누비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BR>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Bf 109F형의 도입이 늦어 이무렵까지도 E형이 수적인 주력의 지위를 차지하고
<BR>있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HR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P>
<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align=justify>&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red size=2&gt;&lt;B&gt;새로운 탄생&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cc size=2&gt;&lt;IMG height=443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art2-title-bf109f-hans.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art2-title-bf109f-hans.jpg</A>"
<BR>width=497 align=left border=1&gt;Bf 109E가 유럽하늘의 왕자로 군림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동안 메서슈미트
박사는 <BR>1세대 Bf 109의 결정판겪인 Bf 109E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후계기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cc size=2&gt;이 기체가
바로 후세에 Bf 109의 모든 시리즈를 통털어 가장 우수한 <BR>비행성능을 가졌던 최고의 기체로 평가받는 Bf 109F형이다. Bf
109E가 독일공군의 대도약을 선도했다면 Bf 109F는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BR>영광을 누리던 시기에 창공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Bf 109F형은 Bf
109V1에서 Bf 109E까지 이어진 1세대 Bf 109와는 어떻게 <BR>보면 외형과 성능에서 전혀 다른 기체로 평가되어 제 2세대 Bf
109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전투기는 전선의&amp;nbsp;독일공군 <BR>조종사들로부터 프레드릭 (Frederick) 혹은
프란쯔 (Franz), 프리쯔 (Fritz)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많은 사랑을
<BR>받았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사실 Bf 109F형의
탄생은 다이믈러 벤쯔사가 제작하고 있던 신형 DB 601E-1 엔진을 <BR>장착하기 위해서 기체의 설계가 대폭 수정되는 과정이 그
출발점이었다. 메서슈미트 박사는 1940년초부터 이 새로운 고성능 엔진의 성능을 <BR>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하기위해서 기존의 Bf 109E형의
개조작업을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537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pg</A>"
width=423 <BR>align=righ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새롭게 등장한 Bf 109F, 기존의 E형에 <BR>비해서 많은 개량이 있는 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엔진의 효과적인 공간확보를 위해
기수의 형태가 새롭게 디자인되었으며 기수하면의 슈퍼차져용 <BR>공기흡입구도 뒤로 이동되었고 프로펠러 스피너가 둥근 반구형태로 약간 커졌으며
프로펠러의 직경은 6인치 작게 설계되었다. 주익하면의 공기흡입구도 <BR>얇아졌으며 수평꼬리날개를지지하고 있었던 지지대를 폐지하여 훨씬 세련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제기의 첫 비행은 1940년 7월 10일에 <BR>실시되었었는데 여러차례의 시험비행에서 Bf 109E형에 비해
괄목할 만한 비행성능의 향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amp;nbsp;독일공군 수뇌부에서 <BR>영국의 스핏화이어를 완전히 능가하는 신형기를
개발하라는 주문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제기를 바탕으로 Bf 109E의 후계형인 F형을 <BR>개발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되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새로운 기체로의 개발이
결정되자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행성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 주익의 <BR>전면적인 재설계 작업에 들어갔는데 주익의 폭이 약간 넓어졌으며 끝단이
둥글 게 처리되었다. 플랩과 보조익 (aileron)의 설계도 크게 <BR>변경되었는데 특히 1세대 Bf 109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삽입형
플랩 (slotted flap)이 단순형 플랩 (plain flap)으로 <BR>변경되었고 보조익도 삽입형 (slotted type)에서
프라이제 (Frise type)으로 변경되었다. 이외에도 기존형까지 동체외부에 노출되어 <BR>있었던 뒷바퀴도 이륙직후에 동체안으로 인입되는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Bf 109F형은 기존형에 비해 일신한 면모를 갖추게
<BR>되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89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f-upview.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ef-upview.jpg</A>"
width=60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E형과 F형의 상면도, 기체의 외형에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기체의 무장면에서도
설계팀이 그토록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졌다. 원형기에서부터 무던히 시도되었으나 <BR>빈번한 오작동과 진동유발로 인해 번번이 탑재가 좌절되었던
프로펠러축 방식의 기관포 탑재가 드디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어 F형에서는 기축에 MG <BR>FF 20mm 기관포를 탑재하고 엔진 상부에 2정의
MG 17 기관총을 탑재하는 것으로 기본무장 방식이 결정 되었다. E형의 특징어었던 주익의 <BR>기관포는 비행성능의 향상을 위해 주익의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결정되면서 폐지되었고 주익이 얇게 설계되어 야전에서 주익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BR>전혀 남겨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Bf 109E형의 화력에 만족하고 있었던 많은 조종사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하는데 이중에는 많은 이들의 <BR>존경을 받고 있었던 유명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도 있었다.&amp;nbsp;심지어는 부대 지휘관들이 F형의 수령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고 <BR>한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8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aiming.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aiming.jpg</A>"
<BR>width=550 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탄착점을 조절하기 위해 기체를 수평으로 세우는 장면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하지만 메서슈미트 박사는 Bf 109
전투기는 그 탄생시기부터 기수집중식의 무장을 추구했던 <BR>기체였으며 Bf 109E는 어쩔 수 없이 주익에 무장을 장착했던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 기관포를 탑재하기 위해서 주익을 두껍게 <BR>제작해야 했고 기관포와 탄약의 무게로 인해&amp;nbsp;주익의 부하가
증가해서 최고의 비행성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면서 조종사들의 설득작업에 <BR>나섰다. 이무렵 아돌프 갈란트 못지 않은 명성을 날리던 유명
에이스 베르너 묄더즈가 화력보다는 우수한 비행성능과 정교한 사격술을 추구하는 것이 <BR>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기수에 집중된
무장은 주익 장착방식에 비해서 화력과 산탄총 효과는 줄어들지만 조종사의 조준이 그대로 반영되기 <BR>때문에 정확한 사격에 도움이 되고 파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88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초원의 야전 비행장에 주기된 Bf 109F, 동부전선의 JG 51소속 <BR>기체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여하간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끝에 Bf
109F형은 화력보다는 비행성능에 더 무게를 두고 개발되는 <BR>것으로 최종 결정되어&amp;nbsp;주익에는 무장을 장비하지 않고 오로지
기수에 집중된 1문의 기관포와 2정의 기관총을 고정무장으로 가지게 <BR>되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초기 생산형인 Bf 109F-0형은 DB 601N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1941년 1월 <BR>실전부대에 최초로 인도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어서 실전배치가 추진된후 3기의 Bf
109F-0가 원인모를 사고로 추락했으며 <BR>본격적으로 양산형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Bf 109F-1 형중 1기가 훈련비행도중 동체가
파열되면서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로 또다시 <BR>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기체의 안정성에 대해서 전면적인 검토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 까지는 Bf 109E형의 <BR>생산도 계속 추진되도록 해놓은
상태였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498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109e-f-illust.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109e-f-illust.jpg</A>"
width=490 <BR>align=lef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Bf 109E형에서 F형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BR>보여주는&amp;nbsp;일러스트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수많은 연구끝에 F형에서
수평꼬리날개의지지대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수평미익의 안정성 보완이 <BR>100% 이루어지지 않아 꼬리부분 전체에&amp;nbsp;미세한 진동이
계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체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이부분의 볼트와 리벳이 <BR>느슨해지다가 결국 비행중에 파열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수평미익 부위의 강도와 안정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다시 추진되었으며 이 <BR>문제가 해결되자 더 이상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이후에는 빈약함이
지적된&amp;nbsp;Bf 109F형의 화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MG FF <BR>20mm기관포를 새로운 MG 151 15mm로 교체하는
방안이 추진되었으며 이 MG 151 기관포를 고정장비하고 양산되는 형은 &amp;nbsp;Bf <BR>109F-2형으로 명명되었다. MG 151
기관포는 벨트식으로 급탄되는 15mm 기관포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록 MG FF 기관포에 비해 구경이 <BR>작지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탄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포구속도가 빠르고 기관포탄의 탄도가 직선으로 쭉쭉뻗는 것으로 느껴질만큼 안정적이어서 호평을 <BR>받았고 200발의
기관포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Bf 109F-2형은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하기 위해서 북아프리카 전선용으로 제작된 Bf
<BR>109F-2/trop 형과 GM-1 부스터를 장비한 Bf 109F/Z형의 변형으로도 생산되었다. 하지만 Bf 109F-1과 F-2는
<BR>1300마력급의 신형 DB 601E 엔진을 장착하려했던 애초의 의도와 달리 모두 Bf 109E에 사용되던 DB 601N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BR>이것은 엔진의 양산이 사소한 문제점들로 인해 지연되었기 때문이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결국 DB 601E 엔진이 양산되기 시작하자 Bf 109F형도 새로운
엔진의 탑재와 더욱 뛰어난 <BR>비행성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Bf 109F-3형이다. 이 엔진의 장착으로 Bf 109F-3는 고도
22000피트에서 최고속도가 시속 <BR>630km에 이르게 되었으며 작전 가능 고도는 37000피트까지 높아졌고&amp;nbsp;순항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712km의 항속거리를 가지게 <BR>되었다. 이런 Bf 109F-3의 비행성능은 당대 최고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으며 E형까지
약간 열세에 있었던 기동성의 측면에서도 발군의 향상을 <BR>보여&amp;nbsp;동시대의 라이벌 스핏화이어 Mk.V에 비교해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Bf 109F형을 몰고 <BR>스핏화이어와 근접 선회전을 펼쳐 승리하는 조종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E-3형은 과도기적인 기체로서 소량생산에 그치게되며 곧 최고의 전투기인 Bf <BR>109F-4형으로 이어지게
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243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rotte.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rotte.jpg</A>"
width=400 <BR>align=righ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비행중인 Bf 109F 2기 편대 (로터), <BR>매끈한 유선형의 외형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아마도 모든 Bf 109F시리즈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것은 F-4형일 것이다. 이 <BR>형은 폭이 넓은 신형 프로펠러로 교체하여 DB 601E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의 모양이 바뀌게되어 <BR>외형으로 기존형과 구분이 가능하다. 무장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기축의 15mm MG 151 기관포를 새롭게 개발된 20mm MG 151 <BR>기관포로 바꾸어 장착하게 되었다. 이
신형기관포는&amp;nbsp;구경 증가에 따라 파괴력이 훨씬 증가한 반면 탄도학적으로도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BR>있는 우수한 무기였으며
총 200발의 20mm 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Bf 109F-4형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열대형인 Bf <BR>109F-4/Trop형과
전폭기형인 F-4/B형의 아형이 있으며 야전에서 필요에 따라 2문의 MG151 20mm기관포를 주익에 부착할 수 있었던 <BR>R1 야전키트
(탑재탄수 120발)의 장착이 가능하도록 개선되기도 했다. 이 야전키트를 장비하는 경우 Bf 109F-4/R1으로 불렸다고 한다.
<BR>당연하게도 이 야전키트를 장착하는 경우 파괴력은 엄청나게 증가하지만 주익의 부하가 증가되어 F형 특유의 우수한 기동성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BR>초래했으므로 주로 적의 폭격기 요격과 같은 임무에 사용되었다.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은 500kg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BR>이중에서도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별명과 함께 놀라운 활약상을 펼치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의 <BR>애기로서 전설적인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이외에도 F형의 개량형으로는 기관포를 제거하고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한
장거리 정찰기형으로 개조된 <BR>Bf 109F-5형과 F-6형의 개량형이 있으며, 특이한 것으로 Bf 109F-1형의 동체 두 개를 나란히
연결하여 쌍발기로 개조한 Bf <BR>109Z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 Z는 독일어로 쌍동이 (Zwilli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거리
전폭기인 Me 609의 개발을 위한 <BR>시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1기만 제작된 원형기는 지상에서 날아올라 보지도 못하고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0 width=578
align=center&gt;<BR>&lt;TBODY&gt;<BR>&lt;TR&gt;<BR>&lt;TD
<BR>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R>width=574
bgColor=#ccffcc&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B&gt;Messerschmitt Bf 109F-4/R6
<BR>Frederick&lt;/B&gt;&lt;/FONT&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BR>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R>width=574
bgColor=white&gt;<BR>&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9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r6-3d.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r6-3d.jpg</A>"
width=550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BR>style="BORDER-RIGHT: black 1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R>width=574
bgColor=#ffffcc&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엔진: <BR>다이믈러 벤쯔 DB 601E
(1300마력)&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전폭:
<BR>10.94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전장:
<BR>9.25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전고:
<BR>3.58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기체중량:
<BR>1964kg&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최대속도: <BR>628km/h (고도
7,260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최대고도: <BR>39370피트
(13120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항속거리:
<BR>794km&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size=2&gt;무장: MG <BR>12.7mm 기관총 2정 (기수), MG 151
20mm 기관포 (기축)&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 0px 20px;
LINE-HEIGHT: 150%" align=justify&gt;&lt;FONT
<BR>size=2&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옵션으로 R6 주익 <BR>기관포 야전 키트 장착
가능&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0 width=653
align=center&gt;<BR>&lt;TBODY&gt;<BR>&lt;TR&gt;<BR>&lt;TD
<BR>style="BORDER-RIGHT: black 1px solid;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solid; 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R>width=643
bgColor=#ffff99 height=2015&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red
size=2&gt;&lt;B&gt;* Bf109 기종의 축기관포 문제 해결 과정&lt;/B&gt;&lt;/FONT&gt;
<BR>&lt;/P&gt;<BR>&lt;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이 부분은 Bf
109의 기관포 무장의 변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BR>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다른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게시판에 올려주신 내용이 매우 좋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의 <BR>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amp;nbsp;&amp;nbsp;&amp;nbsp; ^_^&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lt;B&gt;Question (램프의
바바님)&lt;/B&gt;&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
궁금한게 있는데요..총을쏘다보면 총신이 과열되지않습니까? 그런데 엔진축에 총신이 <BR>있었다면..과열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lt;B&gt;Answer (Kweassa님)&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초기 109 기종의
생산이 시작되었을 때 <BR>끝까지 골치를 썩인 부분이 바로 기대되었던 축기관포의 설치문제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공군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1940년의 영국항공전 시점까지도 <BR>해결되지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본격적인 해결은 잠시 뒤로 미루고 대안적인 무장을 한
Bf109E-3/E-4 기종이 영국항공전에서는 <BR>사용되었죠.&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주로 발생한 문제는 과열, 재밍현상, 그리고 지나친 진동.. 이 세가지
문제였는데요, 결국은 <BR>기본적으로는 기관포 자체의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V-4, V-5, 그리고 V-6 기종을 시험하는 동안 축에
설치된 기관총에서 과열문제가 <BR>발생했기 때문에 양산형 Bf109B 기종에서는 축 무장을 제거하고 단지 두정의 기관총만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양산형 B형에서부터 E
기종에 이르기까지는 기나긴 시험단계였는데요, 프로펠러 축의 사이사이에 <BR>흡기와 배기 구멍을 두고 소소한 방열판을 설치하는 등의 쿨링 기법을
사용하여 발열문제는 어느정도 해결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BR>Bf109C-2형에서는 두정의 카울 기관총과 한정의 축 기관총, 도합 세정의
기관총이 장착된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Bf109D <BR>기종에서는 축에 기관총 대신, 원래 구상한 대로 &amp;nbsp;외를리콘
MG-FF 20mm 기관포를 설치하려고 했었는데요, 여전히 기계식 블로백 <BR>타입인 &amp;nbsp;MG-FF 기관포의 진동 및 장전장치의
고장이 큰 골치덩어리였다고 하네요.&amp;nbsp;&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결국, 영국항공전에 들어가기 직전, 양산형 Bf109E-1형에서는 축
무장을 다시 제거하고, <BR>두정의 카울링 기관총에 두정의 날개 기관총, 도합 네정의 기관총을 무장한 형태로 생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기에 생산된 E-1 기종은 주익의 <BR>기관총을 MG-FF 20mm 기관포로 업그레이드 하여 E-4와 비슷한 무장을 갖추게
되었구요.&amp;nbsp;&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따라서, 후기 Bf109E-1형의 주익 20mm 기관포 설치형태에 조금 손을 본 것이 <BR>Bf109E-3형이 되었는데요,
포기를 모르는 독일공군은(-_-;), 다시 E-3형에서 축에 MG-FF를 장착하려고 했습니다. 성공했더라면 세 <BR>정의 20mm에 두 정의
기관총을 장착한 영국항공전 버젼의 "도륙새"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물론, 결과는 역시 실패.. 여전히 진동 및 고장 <BR>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네요.&amp;nbsp;&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결국, 이 문제는 E형 생산 내내동안 독일공군을 애태우다가, Bf109F형에 가서야 해결이 <BR>됩니다. F형에 들어가서
비로서 Bf109 무장형태의 표준이 완전히 정해져서, 날개 무장을 완전히 포기하고(특수목적을 위해 추가로 날개에 <BR>장착하는 곤돌라식 무기가
아닌 이상..) 카울링에 두 정의 기관총, 축에 한 정의 기관포를 설치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BR>확정되었습니다.&amp;nbsp;결국,
안정적인 전동식 장전 시스템을 갖춘 신형 기관포인 마우저 MG151/15가 개발된 이후에야 Bf109F-2 <BR>기종에 15mm 기관포가, 그
후에 MG151의 20mm 버젼인 MG151/20이 나온 후에야 Bf109F-4 기종에 20mm 기관포가 <BR>설치되었습니다.
&amp;nbsp;&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보다 자세한 정보는 Bf109.com 사이트의 &lt;A <BR>href="<A
href="http://www.bf109.com/frameset.html">http://www.bf109.com/frameset.html</A>"
<BR>target=_blank&gt;&lt;U&gt;http://www.bf109.com/frameset.html&lt;/U&gt;&lt;/A&gt;
&amp;nbsp;링크를 <BR>참조하시길..(영어이긴 하지만요 -_-;).&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lt;B&gt;Question (SV-001/R님)&lt;/B&gt;&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 &amp;nbsp;BF-109의 엔진은 크랭크축과
프로펠러축이 따로따로였나요? &amp;nbsp;그래야만 <BR>기관포를 프로펠러축에 장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TA-152는
어떻게 성형 엔진을 사용했는데도 프로펠러 회전축 기관포를 장착할 수 <BR>있었나요?&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blue size=2&gt;&lt;B&gt;Answer
(Kweassa님)&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B&gt;* DB601/605 엔진에 대해..&amp;nbsp;&lt;/B&gt;&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음.. 질문하신 내용을 보니 -_-; 아무래도 엔진구조를 잘
아시는 분인 것 같아서.. 대충 <BR>답변하면 안될 것 같아, 내연기관이나 기계공학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자료 뒤지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amp;nbsp;&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일단, 조사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비행기에 사용되는 프로펠러 엔진에는 두가지 방식이 있는 것 <BR>같더군요. 비행기의
프로펠러는 프로펠러 섕크(blade shank)라는 장치를 통해 엔진과 연동이 되는데요, 크랭크 축에 프롭섕크가 직접 부착된 <BR>직접프롭회전
방식과, 질문하신 내용 그대로 크랭크축과 별도인 프로펠러축을 통해 부착된 간접회전 방식이 있습니다.&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amp;nbsp;&lt;IMG height=112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pic6-4.gif">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pic6-4.gif</A>"
width=254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그림1) 프로펠러와 프로펠러 섕크&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FONT&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4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pic6-2.gif">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pic6-2.gif</A>"
width=246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amp;nbsp;(그림2) 직접프롭회전방식&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amp;nbsp;2차대전 전투기들의 대부분은 엔진은 크랭크축에 곧장
프로펠러가 연결된 식이 아니라, <BR>크랭크축의 회전력을 다시 프로펠러 축으로 연결하는 간접회전 방식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amp;nbsp;Bf109에 사용된 DB계열 엔진의 구조에 <BR>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제가 아는 한 DB60X계열 엔진의 생산 자체가
각종 신개발 전투기들의 설계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BR>합니다.&amp;nbsp;&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1930년대 중반에 들어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들을 설계하면서 특히 새로운 시대의 전투기에 걸맞는 <BR>무장형태에 대한 많은
논쟁과 연구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주력 무장을 어느 위치에 장착할 것인가가 큰 관심사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BR>아시다시피 크게
두계열로 나뉘는데요, 전투기의 중심선을 따라 무장 을 집중시키는 기수집중방식과, 다량의 무기를 날개 위치에 장착하는 <BR>날개무장방식이었죠.
결론적으로 말해서, Bf109는 처음에 설계될 때 부터 기수집중무장 방식을 염두해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BoB기간에 등장한
<BR>Bf109E형의 경우에는, 아직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날개에 기관포를 장착했다고 하는군요).
&amp;nbsp;&lt;/FONT&gt; <BR>&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따라서, DB엔진의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Inverted-Vee 방식의 설계라고 <BR>하는데, 바로 프로펠러
기관포 장착을 염두해둔 설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amp;nbsp;&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212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109engine1.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109engine1.jpg</A>"
width=371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그림3) DB605&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그림3을 보면 아시겠지만, 엔진 구조 자체가 거꾸로 선 "V"자 형태이죠. 두개의 실린더 블럭이 <BR>"V"자 형태로
접합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구경이 꽤 큰 프로펠러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V"형 엔진이었지만, DB엔진의 <BR>영원한
라이벌로 인식되는 롤스-로이스사의 멀린계열 엔진들은 바로 선 "V"형입니다.&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이것이 왜 축기관포 설치에 관건이 되는가하면, 전쟁 중반에 들어서 총신이
짧은 신형 기관포들이 <BR>등장했지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각국에서 전투기를 설계할 때 까지만 해도 20mm기관포는 굉장히 거대한
신무기였습니다. 총신이 엄청나게 긴 <BR>신무기였기 때문이죠. 따라서, 전투기에 엔진을 설치한 후, 프롭축 가운데에 20mm기관포를 두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봐서 DB엔진과 같은 <BR>거꾸로선 V형이 필수조건이었던
셈입니다.&amp;nbsp;&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92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mg151.gif">http://airwar.hihome.com/gwp/bf109/kweassa/mg151.gif</A>"
width=446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그림4) MG151/20 20mm 기관포&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왜냐하면, 머리 속으로 전투기의 구조를 그려보면 아시겠지만, 제일 앞에
프로펠러 헙과 카울링이 <BR>위치하고, 그 뒤에 엔진이 위치하고, 엔진 내부에는 20mm기관포의 총신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엔진
뒤에는 20mm 기관포 본구조 및 <BR>탄창이 위치하는데요,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같은 식의 바로선 \"V\"형 엔진의 경우
프로펠러-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일자로 연결하면, <BR>기관포 본체가 놓이는 위치와 콕핏의 계기판 기계구조를 설치하는 위치가 겹치게
됩니다.&amp;nbsp;&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굳이 해결하자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수집중방식 보다는 날개무장을 <BR>선택하고 있던 판에,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축기관포를 위한 설계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었던거죠.&amp;nbsp;&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반면, Bf109의 구조를 보면, 프로펠러
헙-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잇는 일직선을 <BR>그어보면, 기관포 본체는 콕핏 기계부속 아래에 위치하게 됩니다. (실제로 Bf109
콕핏을 보면, 조종레버 뿌리의 앞쪽에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이 <BR>있는데, 그것이 MG151/20 기관포 본체의 일부분을 감싸고 있습니다) 딱
들어맞는 구조입니다. 원래부터 전투기 설계자가 엔진 형태를 잘 알고 <BR>있으면서 그것을 염두해두고 있지 않은 한 그런 식으로 딱 들어맞는
형태는 나오기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Bf109 기종도 시제기를 <BR>만들면서 여러 형태의 엔진을 시험해봤지만, 설계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가 최종적인 엔진 종류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BR>없죠)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그 밖에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하여,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Bf109.com에서 설명하고 있는 <BR>DB605엔진 구조에 대한 내용을 조금 번역해보겠습니다. 엔진 구조물에 대한
전문용어가 많아서 -_-; 그냥 일부 단어는 원어로 냅뒀으니 <BR>양해해주시길.. &amp;nbsp;&amp;nbsp;(&lt;A
<BR>href="<A
href='http://www.bf109.com/engine.html)."><U>http://www.bf109.com/engine.html</U></A>).</FONT></P'>http://www.bf109.com/engine.html)."&gt;&lt;U&gt;http://www.bf109.com/engine.html&lt;/U&gt;&lt;/A&gt;).&lt;/FONT&gt;&lt;/P</A>&gt;<BR>&lt;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navy size=2&gt;"...크랭크축은 six-throw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의 <BR>stell forging 주조 기법으로 만들어져있고 여섯개의 평형추를 지니고 있다. 납-청동 합금으로 만들어져 강철로
보강된 여섯개의 베어링에 <BR>의해 지지되고 있는데, 하나의 throw 내에서 동작하는 커넥팅 로드는 한 쪽은 롤러 베어링을 통해 plain
rod 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BR>쪽은 plain bearing을 통해 forked rod가 plain rod에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피스톤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 <BR>있으며 floating-type 핀들로 고정되어
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4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4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navy
size=2&gt;"...프로펠러 축은 내부에 기관포를 위치시킬 수 있도록 비어있으며, <BR>1.55 대 1, 혹은 1.88 대 1의
reduction ratio를 지닌 스퍼 기어를 통해 회전한다. 축 기관포는 엔진 뒷면의 테두리에 네 <BR>개의 지주와 나사로 고정된다.
프로펠러 축의 테두리는 8개의 구멍과 96개의 톱니가 달려 있는데, 이것이 당시 독일의 표준
<BR>생산형태였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Ta152H의 Jumo213E 엔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DB엔진 보다 자료가 적기 때문에 별로 <BR>쓸만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문외한인지라, 정확히 무얼 질문하신지도 잘
이해를...&amp;nbsp;&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어쨌건, 혹시 참고가 될까 하여, Jumo213E 엔진의 그림이 있는 사이트 주소는 아래에 적어
<BR>놓습니다.&lt;/FONT&gt; &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A <BR>href="<A
href='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U>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U></A>)</FONT></P'>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gt;&lt;U&gt;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lt;/U&gt;&lt;/A&gt;)&lt;/FONT&gt;&lt;/P</A>&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red
size=2&gt;&lt;B&gt;* 영광의 정점에서&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Bf 109F형은 독일공군이 누린 영광의 시절을 상징하는 기체일 것이다.
형님겪인 E형과 함께 <BR>1941년초에 영국본토 항공전의 말미에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Bf 109F형은 당시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 Mk I,
II를 훨씬 상회하는 <BR>비행성능으로 영국공군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에 놀란 영국공군이 성능개량형인 스핏화이어 Mk V형을 서둘러
제작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무렵 <BR>영국본토 항공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영국본토 항공전에서의 전과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lt;IMG
height=28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4.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4.jpg</A>"
width=438 <BR>align=right border=1&gt;&lt;/FONT&gt;&lt;FONT color=blue
size=2&gt;[ 동부전선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우아한 모습을 <BR>자랑하는 Bf 109F, 독소전 초기 소련공군에는 이 기체에 맞설
만한 기체가 없었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Bf 109F형이 명성을 떨친 곳은 바로 독일공군의 주 전장으로 새롭게 떠오른 동부전선과 <BR>북아프리카의 사막이었다. 물론
이 양대 전선에는 Bf 109E도 참가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Bf 109F의 생산량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며 이미 <BR>독일공군 전투기 부대의
실질적인 주역은 Bf 109F형이었다. Bf 109E는 Bf 109F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서 점점 일선에서 물러나게
<BR>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히틀러의 원대한 꿈이었던
소련 정복을 위해 동부전선으로 대거 집결한 독일공군은 세계 최강의 <BR>전투기인 Bf 109F를 앞세워 한수아래의 소련공군을 일방적으로
격파했다. 1941년 6월, 독일의 완벽한 기습으로 시작된 독소전에서 전쟁을 <BR>치룰 준비가 제대로 되있지 않았던 소련공군기들은 하늘과
땅에서 일방적으로 무참하게 격추되거나 파괴되었다. 전투의 양상은 너무나 일방적인 것으로 <BR>독일공군은 거의 매일 2차대전이 시작된이래 최고의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독일공군에는 최고 조종사로 추앙받던 베르너 묄더즈를 <BR>선두로하여 격추 스코어 100기를 넘는
슈퍼에이스들을 즐비하게 배출되었다. 당시 소련공군이 보유한 I-15, I-153, I-16과 같은 구식 <BR>전투기들은 Bf 109F에게는
그야말로 공중 표적에 불과한 것이엇으며 비교적 신형이던 야크-1이나 LaGG-3 같은 경우도 Bf 109F에 <BR>맞서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전쟁이 시작되기전 스탈린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인해 고급 공군 장교들이 많이 처형되어 소련공군 조종사들이 혼란에 <BR>빠져 있었으며
이렇다보니 실전에 대비한 훈련수준이 매우 낮았었으므로 영국과 미국에서 급히 공여된 허리케인, P-39, P-40등의 전투기들을 <BR>가지고도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32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winter.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jg51-winter.jpg</A>"
<BR>width=550 border=1&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눈으로 뒤덮인 동부전선의 차가운 겨울에서 작전중인 Bf 109F
<BR>]&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한편, 또하나의 전장이던
북아프리카에서는 1941년 말부터 1942년 중반까지 독일공군이 <BR>영국공군을 몰아붙이면서 롬멜의 지상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이 무렵의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는 Bf 109E, F형이었으며 이중에서도 <BR>비행성능이 뛰어난 F형은 P-40 계열기와 허리케인을 주로 사용하던 영국
사막공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무럽까지는 영국공군이 <BR>북아프리카에 스핏화이어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의 질적인
격차가 너무나 컸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특히 영국공군 전투기부대를 상대로 158기의 엄청난 격추기록을 달성하며 북아프리카 하늘의 전설이 <BR>된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가 주로 사용하던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 하늘의 왕자로서 독일공군 조종사들의 사랑을 한몸에 <BR>받았다고
한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height=349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engine.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bf109f-engine.jpg</A>"
width=550 <BR>border=1&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blue size=2&gt;[ 열사의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Bf 109F-2/Trop, 허리케인과 P-40 <BR>계열기들을 제물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Bf 109F형은 그 등장시기가 독일공군이 모든 전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으며 <BR>독일에 대항하는
모든&amp;nbsp;적기들을 공격하여 단숨에 섬멸하는 최강의 전투기로서 명성을 떨쳤다. F형은 전투기끼리의 제공권 다툼에서 가장 큰
<BR>위력을 선보였으며, 1941년과 1942년의 1년여의 기간동안&amp;nbsp;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평가받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당대의 <BR>라이벌인 스핏화이어 Mk V와의 비교 평가에서도 전반적으로 대등하거나 우세한 성능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모든
전선에서&amp;nbsp;오로지 <BR>공격에 공격을 거듭하던 독일공군의 창끝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center&gt;&lt;FONT color=red size=3&gt;&lt;B&gt;◆ Bf 109F 일러스트
Colloection <BR>◆&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2-trop.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2-trop.jpg</A>"
width=550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로 진출한 Bf 109F-2/Trop형이다. JG 27 <BR>전투비행단 3연대의 기체로서 기수에는
'제자우 크로이츠'라고 불리는 튜튼 기사단의 방패가 연대마킹으로
<BR>사용되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jpg</A>"
width=550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2년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헝가리 사단 소속의 Bf 109F-4, <BR>당시 헝가리와의 동맹을 상징하기 위해서
꼬리날개에 헝가리 국기를 그려넣은 기체이며 실제는 독일 조종사들이 탑승하고
<BR>있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trop.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trop.jpg</A>"
width=550
<BR>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떤 JG 27 전투비행단 2연대 소속의 <BR>Bf 109F-4/Trop형이다.
이기체는 걸출한 비행성능으로 영국 사막공군을 하늘에서&amp;nbsp;초토화 시켰다. 동체에는 기체 번호가 급히 다시 <BR>그려진 것을 볼 수
있으며 기수에는 2연대의 상징인 '베를린의 곰'이 그려져
<BR>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01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trop2.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109f-4-trop2.jpg</A>"
<BR>width=550
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2년
8월, 기종을 Bf 109F-4/Trop형으로 교체한 직후의 JG 27 <BR>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gt;&amp;nbsp;&lt;/P&gt;<BR>&lt;TABLE
style="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 width=652 align=center
<BR>border=1&gt;<BR>&lt;TBODY&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white&gt;<BR>&lt;P style="MARGIN-LEF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BR>align=center&gt;&lt;IMG height=220 <BR>src="<A
href="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bf109f-4-jabo.jpg">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bf109f-4-jabo.jpg</A>"
<BR>width=550
border=0&gt;&lt;/P&gt;&lt;/TD&gt;&lt;/TR&gt;<BR>&lt;TR&gt;<BR>&lt;TD width=642
bgColor=#ccccff height=89&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left&gt;&lt;FONT color=navy size=2&gt;1942년,
지중해 지역에서 영국 함선들의 공격에 사용된 전폭기형인 Bf <BR>109F-4/B형이다. 러더에 그려진 마킹은 격추마크가 아니라 격침시키거나
대파시킨 함선들을
<BR>의미한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BR>&lt;P&gt;&amp;nbsp;&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red size=2&gt;&lt;B&gt;영광은
끝나가고...&lt;/B&gt;&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2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2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1941년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렸던&amp;nbsp;한해동안 총 2628기의 Bf 109E와 <BR>Bf 109F형이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1942년 여름이 지나면서부터는 독일군의 전성기가 끝나면서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상황이 점점 <BR>어려워 지면서
독일군이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 서로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후에는 <BR>점점
독일이 수세로 몰리게 되면서&amp;nbsp;절정의 영광을 누렸던 Bf 109F형도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점점 후계기인 Bf
<BR>109G형에게 주력의 위치를 내주고 전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Bf 109F형의 종말은 공격의 선봉에서 적의 전투기를 제압하던 순수한
<BR>제공전투기로서의 Bf 109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이는 후계기인 Bf 109G형이 비록 수적으로는 모든 Bf 109의
<BR>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생산되기는 했지만 적기를 제압하는 순수한 제공전투기라기 보다는 점점 요격기에 가까운 수비형 전투기로 평가
받기 <BR>때문이다. 이제 Bf 109는 창에서 방패로 역할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justify&gt;&lt;FONT color=red
size=2&gt;&lt;B&gt;foxmouse: &lt;/B&gt;&lt;/FONT&gt;&lt;FONT color=blue
<BR>size=2&gt;그동안 업데이트가 너무 지연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이야기거리와 볼거리를 넣고 싶다보니 마치 미궁속을 헤메는 것처럼 감을
잡지 <BR>못했었습니다. 그동안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Bf 109편의 마지막회로 예정된 '제국의 수호자'편을 기약하면서 Bf
109E, <BR>F형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lt;/FONT&gt;&lt;/P&gt;<BR>&lt;P style="MARGIN-LEFT:
5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50px" <BR>align=justify&gt;&lt;FONT
size=2&gt;&amp;nbsp;&amp;nbsp;&amp;nbsp;&lt;FONT color=blue&gt;&lt;B&gt;불타는 하늘
<BR>(airwar.hihome.com)
&lt;/B&gt;&lt;/FONT&gt;&lt;/FONT&gt;&lt;/P&gt;</P></FONT></STRONG></FONT>






align=center>src="http://airwar.hihome.com/gwp/bf109/part2/gwp-pic-bf109f-4-jabo.jpg"
width=550 border=0>


align=left>1942년, 지중해 지역에서 영국 함선들의 공격에 사용된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이다. 러더에 그려진 마킹은 격추마크가 아니라 격침시키거나 대파시킨 함선들을
의미한다.


 


align=justify>영광은 끝나가고...


align=justify>1941년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렸던 한해동안 총 2628기의 Bf 109E와
Bf 109F형이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1942년 여름이 지나면서부터는 독일군의 전성기가 끝나면서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 지면서 독일군이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 서로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후에는
점점 독일이 수세로 몰리게 되면서 절정의 영광을 누렸던 Bf 109F형도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점점 후계기인 Bf
109G형에게 주력의 위치를 내주고 전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Bf 109F형의 종말은 공격의 선봉에서 적의 전투기를 제압하던 순수한
제공전투기로서의 Bf 109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이는 후계기인 Bf 109G형이 비록 수적으로는 모든 Bf 109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생산되기는 했지만 적기를 제압하는 순수한 제공전투기라기 보다는 점점 요격기에 가까운 수비형 전투기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이제 Bf 109는 창에서 방패로 역할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align=justify>foxmouse: size=2>그동안 업데이트가 너무 지연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이야기거리와 볼거리를 넣고 싶다보니 마치 미궁속을 헤메는 것처럼 감을 잡지
못했었습니다. 그동안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Bf 109편의 마지막회로 예정된 '제국의 수호자'편을 기약하면서 Bf 109E,
F형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align=justify>   불타는 하늘
(airwar.hihome.com)

 1944년에 이르러 독일공군은 모든 생산력을 과거 폭격기나 공격기 생산에서 연합군의 폭격을 막을 수 있는 국지 방어 전투기의 생산에 집중시키게 됩니다. 1944년 9월 14일 RLM은 대량생산 될 수 있는 이러한 전투기에 대한 계획안을 각 회사에 제출하게 합니다. 생산은 1945년 1월1일에는 이미 양산 단계에 있어야 하므로 상당히 촉박한 시일 이었죠. 요구 사항에는 전략물자의 최소한의 사용, 숙련공이 아니어도 제조할 수 있는 제조 방법의 간략화, 그리고 2000kg으로 중량의 한도이며 500m 이내의 활주로에서 이류이 가능해야 하며, 30mm 기관포 2문을 장비해야 한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전투기가 바로 이 He-162입니다. 이 비행기는 매우 야심찬 계획 아래에서 출발했는데 설계는 10월 30일까지 끝내야 했고 시제기가 12월 10일에는 날라야 했습니다.

실제로 He-162의 설계는 RLM에 Mock-up이 9월 23일에, 설계 완성은 10월 29일에 공장으로 전달되었고 12월 6일에 시제기가 Fulgkapitaen Peter에 의해서 20분의 비행동안 최고시속 840km/h와 고도 6000m를 기록하면서 날라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행에서 접착제 불량으로 랜딩기어 도어 하나가 비행중에 이탈되었고 12월 10일 공군 장성과 정부 관료 앞의 시범 비행에서 오른쪽 날개의 전연부가 저고도 비행중에 찢어져 나갔고 Peter는 이 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개발계획은 일사천리로 전개되어 1945년 1월 16일에는 3,4번째 시제기가 날라오르게 됩니다. 이들은 주익이 약간의 하반각을 가지는 윙팁의 장착으로 연장되었고 수직미익의 각도가 안쪽으로 굽어지고 면적이 증가되었으며 30mm MK-108이 작은 기체에는 무리라고 판단되어 MK 151/20의 20mm 기관포 2문으로 대체되게 됩니다. 그리고 무게 중심을 정면으로 옮기기 위해 기수부에 추가로 무게추가 들어가게 됩니다.

 첫 배치는 1945년 1월에 Rechlin의 Erprobungskommando(시험비행대) 162에 이루어졌고 실전에서의 테스트는 Parchim의 1./JG 1에 1945년 2월부터 전환 훈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5월 8일 영국군이 이 비행장을 점령하면서 사실상 이 기체는 큰 활약을 못하고 끝나게 됩니다.

1./JG1 소속기로 기수의 빨간색 화살표가 이 부대의 특징입니다. 옆에 Mirage IV도 보입니다.

하면은 RLM76 상면은 RLM83 LichtGrun단색으로 판명됩니다. 원래 다른 기체들은 대부분 RLM82/83 또는 RLM 81/82의 위장을 하고 있지만 이 기체는 단색입니다. 오리지날 대로의 복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수부로 상당히 소형 기체입니다. 기수 아래에 보이는 총구가 MG 151/20 20mm기관포의 총구입니다.

캐노피부는 버블탑 형에 방탄유리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엔진은 생산의 용의성과 설계의 단순화를 위해 위에 장착하는 방식입니다. 엔진은 BMW사의 BMW 003A-1로 800kg의 추력을 가집니다.

정면부로 엔진부 내부와 정면의 피토관등이 잘 보입니다. 높이는 엔진을 합쳐서도 2.55m밖에 안되어서 그런지 상당히 작은 비행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안쪽으로 약간의 상반각을 가진 수평미익과 수직미익입니다. 120223번이라는 기체 Serial number가 보이는데 이 기체의 History는 나중에 구해지는데로 추가하겠습니다.

 전방 메인기어로 이 기체는 tricyle방식의 랜딩기어 구조를 가집니다. 도어부는 단순하게 1개의 도어로 이루어집니다.

 후방 랜딩기어부로 개폐장치는 랜딩기어에 연관되어 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입니다.

◇ Messerschmitt Me 262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01. 10. 1

1944년이 끝나가던 겨울의 유럽하늘에서 P-47을 타고 초계비행중이던 2명의 미군 조종사는 그들의 머리위를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처음보는 1기의 비행기를 보았다.

"우와! 저게 뭐야.. 꼭 C-47같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야! 너 저렇게 빠른 C-47을 본적있어? 지금 시속 500마일은 되겠어.."

 

"저놈의 꼬리날개는 P-51을 닯았는데..?"

 

"너 저렇게 칠해진 머스탱을 본적있어? 독일군 마크잖아! 맙소사.. 프로펠러도 없어.."

 그러나 이기체는 그들의 앞에서 먼거리를 선회해서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P-47기들은 급히 회피기동을 한후 이 전투기를 추적했다. 이 빠른 전투기가 그대로 일직선으로 날아갔다면 도저히 쫒아갈 수 없었을 텐데, 이 전투기는 다시 선회를 시도했다. 분명히 다시 공격해오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P-47기들은 이 제트기의 안쪽에서 선회를 하면서 공격 위치를 내주지 않았고, 무리하게 최대 출력으로 상승 선회를 하던 제트기의 한쪽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타원을 그리면서 강하하기 시작했다. P-47의 조종사들이 사격을 하기위해서 위치를 잡기시작하자 이 비행기의 조종사가 탈출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이 기체는 지상으로 떨어져버렸다. 이 모습을 본 P-47 조종사중 한명인 피트 피터스는 귀환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히 그 비행기의 조종사는 초보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엔진도 고장난 듯 했다. 아마도 우리를 향해 무리하게 선회하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 엄청난 속도를 제대로 이용하는  노련한 에이스였다면 아마 우리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독일 공군의 비밀무기였던 세계최초의 실용 제트전투기 Me 262였다. 1944년- 45년 까지 연합군에게 큰 위협으로 간주된 제트전투기 Me 262는 그러나 위와 같은 일화처럼 우수한 조종사의 부족과 자주 말썽을 일으키는 엔진으로 인해서 처음에는 기대했던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기체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술이 개발되고 계속 되는 개량으로 결국 연합군 폭격기부대의 가장 위험한 적수가 되었다.

* 개발 *

이 제트기의 개발은 대전이 발발하기 전이었던 1939년 1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독일의 선도 항공기 업체였던 하인켈사와 메서슈미트사는 제트엔진의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제트전투기의 개발을 시작했다. 하인켈사는 기술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었으나 정치적으로 앞서나가던 메서슈미트사가 먼저 제트전투기의 개발을 수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미 세계최강의 공군을 가지고 있던 독일공군은 이 미래 전장의 주역이될 제트기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이 비행기가 꼭 필요할 것이라는 빌리 메서슈미트 박사의 믿음에 따라 메서슈미트사의 설계팀이 비밀리에 외로이 개발을 진행해 나갔다.

1942년 시험비행을 준비중인 Me 262V3 초창기의 Me 262 시제기들은 이와같이 뒷바퀴가 후미에 있는 프로펠러기의 디자인을 따랐다. 양산형으로 가면서 기수에 앞바퀴가 장치되어 근대 제트전투기의 세발자전거식 바퀴배열로 바뀌게 된다.

1941년 드디어 원형 1호기 Me 262V1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초창기였던 제트엔진의 진척이 늦었다. 기대와 달리 계속되는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BMW003 터보제트엔진의 개발이 늦어지자, 할 수 없이 시제기는 프로플러엔진 유모210을 달고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1942년 3월 드디어 BMW003엔진이 완성되자 드디어 제트비행기로서의 첫 비행을 시행할 수 있었는데 엔진이 갑자기 말썽을 일으켜 간신히 추락만을 면할 수 있었다.

[ 편대비행중인 시제기들의 사진, Me 262의 측면 모습을 잘볼 수 있다. ]

결국 BMW사의 엔진에 실망한 메서슈미트사는 융커스 유모 109-004A-0 터보제트엔진으로 변경하기로 했고 1942년 7월에 드디어 성공적인 첫 제트비행이 실시 되었다. 놀랍게도 이 엔진이 아직 미완성 단계였음에도 그 최고속도는 시속 700km나 되었다. 이후 계속적인 개량으로 드디어 1943년 11월이 되자 시속 800km를 넘는 이 제트전투기는 양산이 가능한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무렵 이 제트전투기를 시험비행해본 아돌프 갈란트장군은 이때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치 천사들이 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전투기 5대보다 나는 이 전투기 1대를 선택하겠다."

아돌프 갈란트는 이후 이 제트전투기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실전배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그런데 공군원수 괴링이 히틀러에게 이 신무기를 보고하러 간 순간부터 일이 잘못되기 시작했다. 당시 연합군의 맹공에 시달리던 히틀러는 어떻게 하면 연합군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었는데 괴링이 이 굉장한 속도의 비행기에 대해서 양산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자, 갑자기 그의 뇌리에 적의 전투기가 따를수 없는 엄청난 속도의 폭격기에 대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히틀러는 "이 비행기는 폭탄을 달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네, 총통각하 이론적으로는 폭탄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만..."이라고 괴링이 대답하자 히틀러는 곧장 폭격기로서 이 비행기를 생산하라고 지시했다. 갑자기 최고의 전투기로 탄생한 비행기가 폭탄 몇 개 운반하는 폭격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 히틀러의 고집에 의해서 탄생한 Me 262 A-2a 슈트룸포겔, 동체 아래쪽에 500kg 폭탄 2발을 장착하고 있다. 중량문제로 기수의 기관포 4문중 2문은 철거되었다. ]

이시점에서 폭탄을 장착하도록 설계를 변경하는 것도 어려웠을뿐더러 이 기체가가진 전투기로서의 잠재력이 희생당하는 것을 우려한 공군의 조달책임자 에르하르트 밀히장군은 히틀러의 명령을 무시하고 몰래 계속 전투기로서 개발을 진행해 나갔다. 1944년 5월경 히틀러는 자신의 명령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격노한 히틀러는 밀히를 소환해서 소리를 질러대며 책임을 추궁했다. 그러나 밀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히틀러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총통각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의 폭격기를 격추시킬 전투기이지 폭격기가 아닙니다. 게다가 저 비행기가 폭격용 항공기가 아니라 전투기라는 사실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밀히는 곧바로 해임되어 한직으로 쫒겨났다. 이후 히틀러는 폭격기 이외의 용도로 이 비행기를 생산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돌프 갈란트를 비롯한 공군내의 제트전투기 지지파들은 계속 이 비행기를 전투기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전황이 점점 위급해지자 1944년 9월에 이르러 마침내 히틀러가 태도를 바꾸어 전투기로서 생산을 허가했다. 하지만 사실 제트엔진도 끊임없는 말썽으로 계속 개량을 해야했다. 사실상 히틀러가 간섭을 안했다 하더라도 어차피 1944년 중반 이전에는 실전에서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전배치가 늦어지는 사이에 이미 전세는 완전히 연합군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 신형 제트기가 등장을 한다해도 엄청난 수적열세를 극복하기는 이미 물건너간 상황이었던 것이다.

Me 262에 장착되는 융커스 유모 109-004B-4 터보제트에진의 모습. 기체의 원형이 완성된 상태에서 엔진 개발이 지지부진해짐에 따라 실전 배치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항공기술에서 연합군을 항상 앞서 나갔던 독일 기술의 정수이다.

* Me 262의 형식 *

Me 262역시 여타 독일공군의 전투기처럼 필요에 따라 많은 개량을 하여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주로 활약한 기체는 Me 262A-1a로서 4문의 30mm MK108 기관포를 기수에 장비한 형이다. 독일군에게 슈발베(바다제비)라고 불리운 형으로 초기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유모 109-004B-4 터보제트엔진을 장비하고 있었다.

Messerschmitte Me 262A-1a  Schwalbe

분 류

단좌 쌍발 제트 전투기

동 력

융커스 유모 109-004B-4 (추력 : 1984파운드) 2기

최고속도

시속 870km

상승속도

분당 1200m

항속거리

845km

무 장

30mm Mk 108 기관포 4문

옵션 : R4M 공대공 로켓 24발

 

1945년 3월 화이트 3라는 기체명을 가지고 있던 JG 7 소속의 Me 262A-1a이다. 기체의 전형적인 도색을 볼 수 있다. 전후 Me 262를 몰아볼 수 있었던 척예거는 훗날 미공군이 한국전쟁에서 사용했던 F-80 슈팅스타의 성능이 Me 262와 아주 유사했다고 말했다. 독일이 미군의 항공기술보다 5년정도 앞서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미군에게 노획된 Me 262A-1a/U4 형으로서 가장 독특한 변종이다. 기수에 장포신의 50mm Mk214-50 기관포가 장비되어 있는 것으로 연합군 폭격기를 잡기위한 무장이다. 시제기 2기만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

그리고 2발의 500kg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던 전투폭격기형인 Me 262A-2a형이 개발되었는데 이 기체는 히틀러가 고속폭격기로서 개발할 것을 주장하여 탄생한 기체로 슈트룸포겔 (폭풍의 새)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폭탄 장착에 따라서 기수의 기관포는 30mm Mk 108 2문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폭탄 몇발 떨어뜨리자고 이 우수한 전투기를 폭격기로서 사용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야전 지휘관들에 의해 전투기로 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 두가지형이 Me 262의 주된 기체로 생산되었으며 그외에 여러가지 야전 변형들이 있으나 대부분 소수만 생산되었고 실전에서의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1945년 KG-51에서 활동중이던 Me 262A-2a형이다. 엔진앞쪽에 폭탄이 보인다. 이론적으로는 500kg 폭탄 2발을 장착할 수 있었으나, 고속 비행에 맞는 정확한 조준기의 결여와 폭탄으로 인해서 이륙거리가 길어짐에 따라서 대개 전투요격기로 사용되었다.

* 실전 기록 *

1944년 10월 3일 드디어 세계최초의 제트전투기 부대가 오스나브뤼크 부근의 두 기지에 실전 배치되었다. 부대의 편성은 Me 262 전투기 30대로 되었고 동부전선에서 250기의 격추기록을 달성하고 있었던 발터 노보트니 소령이 최초의 제트비행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노보트니는 이 부대를 열렬히 교육했으며 초기의 몇가지 전술적인 문제점을 알아내고 곧장 개선하도록 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우리의 목표는 전투기가 아니다. 우리의 Me 262를 가지고 적의 전투기와 선회 공중전을 벌이려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이 기체는 적의 어떠한 전투기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와 상승력, 화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적 전투기들을 따돌린후 연합군의 폭격기들을 공격하고 이후에 적의 전투기가 반격해오면 즉시 이탈하라!"  

1944년 11월 코만도 노보트니 부대를 지휘하던 발터 노보트니의 기체이다. 그는 세계최초의 제트비행부대 지휘관으로서 동부전선에서 눈부신 격추기록을 올린후 이 비행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총 격추 스코어 258기를 기록한후 기지로 귀환하여 착륙을 시도하던중 피격되어 전사했다.

이른바 코만도 노보트니 (노보트니 비행부대)라고 불리우던 이 비행대는 연합군의 폭격기 부대의 상공에 갑자기 나타나서 30mm 기관포를 퍼붓고는 갑자기 사라지는 전법을 구사했다. 기수에 장비된 30mm 기관포 4문의 화력은 제대로 맞기만 하면 몇초내에 미군의 중형 폭격기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항상 충분한 출격대수 확보가 어려워 4-5기 이상을 넘어서는 편대로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때까지 미군 폭격기를 호위하던 P-51D 머스탱의 조종사들은 격추시킬 독일기를 찾아서 폭격기의 한참 앞에서 비행하는 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독일의 Bf 109나 FW 190은 무스탕보다 속도가 떨어졌으므로 미리 먼거리로 마중나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 유리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들어와 무스탕을 완전히 따돌리고 폭격기를 공격하고 사라지는 Me 262로 인해서 폭격기들의 피해가 커가게 되자 폭격기편대의 바로 옆에 달라붙어 돌진해오는 Me 262에게 사격을 가하는 수동적인 호위 전술로 바꾸어야 했다..

[ JG 7 소속의 Me 262A-1a, 엔진과 기관포 정비를 받기위해 뚜껑을 열어놓았다. ]

이 코만도 노보트니는 첫 한달동안에 연합군 항공기 22대를 격추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Me 262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조종사의 부족과 미군전투기의 압도적인 수적우세, 그리고 아직 문제가 많았던 엔진으로 인해서 부대의 희생이 늘어가고 있었다. 이 초창기의 제트엔진은 12시간마다 완전 분해 정비를 시행해야 했고, 저속으로 시행하는 이륙과 착륙시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으며, 엔진의 부족한 가속력으로 인해서 이착륙시에 적기가 내습해오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Me 262를 이착륙시에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Bf 109, FW 190 전투기 편대가 필요했다.

전후에 미군이 촬영하여 공개한 Me 262의 조종석 내부이다. 당시의 러더 페달의 모양이나 조종간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계기판은 상당히 이전의 프로펠러기들과 유사하다.

그러나 마침내 이 비행대는 1944년 11월 8일 지휘관인 노보트니를 잃으면서 더 이상 전투에 참가할 수 없었다. 이날 Me 262 5기 편대를 이끌고 폭격기 요격에 나섰던 노보트니는 258기째의 적기를 격추했으나 격렬한 미군 전투기들의 반격으로 3기의 Me 262를 잃었으며 노보트니의 Me 262마저 착륙을 시도하던 중 P-51 머스탱 편대의 공격을 받아 땅에 쳐박히면서 폭발하고 말았다. 마침 지상에서 이모습을 지켜보던 아돌프 갈란트는 우수한 부하의 손실에 슬퍼하면서 이 부대를 작전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 P-47의 건카메라에 잡힌 Me 262 최후의 순간, 가장 취약했던 착륙 직전에 포착된 것으로 잠시후 기총사격을 받고 격추되었다. ]

한편, 제트전투기가 성과를 올리기 시작하자 독일공군은 Me 262만으로 구성된  JG-7을 창설했다. 이 부대는 1945년 3월부터 2개월정도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이기간동안 연합군의 4발 중폭격기 300여대를 포함한 470여대의 적기 격추를 기록하는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이때부터는 Me 262의 주익아래에 24발의 공대공 로켓탄 R4M을 장비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단 한발만 명중해도 미군의 중폭격기를 산산 조각낼 수 있는 신무기였던 R4M은 예상대로 큰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 미군에게 노획된 JV44소속의 Me 262, 최후의 순간 갈란트의 지시로 엔진부분이 파괴되어있다. ]

또하나의  Me 262비행부대인 아돌프 갈란트 지휘하의 JV44도 1945년 4월 4일부터 채 한달도 안되는 기간동안 연합군기 56대를 격추하며 맹활약했다. 그러나 이미 독일은 붕괴된 상태였고 이런 전과도 연합군에게는 극히 적은 손실에 불과했다. 그리고 1945년 5월 6일 독일의 항복으로 종전이 되면서 이 제트기는 더 이상 날 수가 없었다.  Me 262는 총 1400여대가 생산되었다고 하며 이중 실전에 배치된 것은 절반정도였다고 한다. 종전이 임박한 무렵에는 완성품 Me 262 수십대가 실전부대에 넘겨지지도 못한채로 연합군에게 노획되기도 했다.

일러스트로 보는 전형적인 Me 262의 전투방식 (1945년 3월경)

- 1 -

 미군의 B-17 폭격기들이 영국기지에서 출격한다. 독일 영공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호위기로서 따라온 P-51D나 P-47 전투기들이 따라붙게 된다. 호위 전투기들은 Me 262의 출현에 따라 밀착 방어를 하게 된다.

- 2 -

Me 262의 예상 접근로에 유럽기지에서 발진한 미군의 전투기들이 미리 발진하여 차단하기 위한 공중 초계를 시작한다.

- 3 -

미군의 폭격기대가 독일 영공에 나타나면 독일의 레이더가 감지하고 방공 전투기부대에 발진 명령이 떨어진다.

- 4 -

일단 Bf 109G나 FW 190과 같은 레시프로 전투기들이 먼저 출격하여 미군의 전투기들과 전투를 벌인다. 이동안 Me 262는 출격 대기상태에 있게 된다.

- 5 -

미군 전투기들이 독일의 전투기들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는 연락이 있게되면 Me 262가 즉시 출격을 하여 폭격기대 쪽으로 날아간다.

- 6 -

날아오른 Me 262는 호위전투기를 피해서 우수한 상승력으로 폭격기대와 호위전투기보다 높은 고도로 올라가서 공격 위치를 잡는다.

- 7 -

이후 호위 전투기의 방어가 취약한 곳을 찾아 급강하 하며 30mm 기관포나 R4M 로켓탄을 퍼붓는다. 이후 호위전투기의 출현이 없으면 다시 상승하여 같은 공격을 반복한다.

- 8 -

하지만 대개 미군의 호위전투기들이 첫 번째 공격이후에는 Me 262를 방해한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공격비행을 하지 않고 즉시 이탈하여 기지로 귀환한다.

- 9 -

마지막으로 기지 상공에서 착륙하기위해 감속하는 Me 262. 하지만 이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착륙 자체도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데다가, 이때를 노리고 덤벼드는 미군의 전투기들의 위협이 있으며 가속능력이 부족하여 미군 전투기의 습격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 마치면서 *

독일의 마지막 희망을 짊어지고 전장에 나섰던 Me 262는 단지 독일공군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의미를 떠나서 2차대전이 끝난후 다가올 제트시대의 새물결을 선도한 존재로서 항공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걸작항공기임에 틀림없다.

Fockewulf Fw190



      1941년 중반에 처음 등장할 때 이전 전투기보다 기동성이 우수하며, 무장이 강력한 FW190은 독일공군의 막강한 전투기로서 Bf 109를 빠르게 대체해 나갔다. FW 190A-5는 1943년 4월부터 출고되기 시작하였으며 1943년 후반과 1944년 초반에 나오기 시작한 FW 190A-8은 A형이 마지막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 최후에는 Fw 190D가 나왔다  Fw 190D "long-nose"형은 공냉식 엔진을 단 Fw190A형에 Junkers Jumo213 12기통 수냉식 엔진을 적용한 것이다. 많은 점에서, "Dora"는 포케불프 전투기의 가장 성공적인 형이 되었다.하지만 너무 늦게나온 이기체는 그리많은 활략은 못했다.

FW 190A-5와 FW 190A-8 성능 제원

  동력

  BMW 801D 14기통 복사 공냉식 엔진 1기

  마력수

  MW 50 메탄올-물 장치 사용하여 이륙시 1700

  최고속도

  해면에서 시속 355마일
  (A-5)  19685 피트에서 시속 407 마일
  (A-8)  20670 피트에서 시속 408 마일

  최고 하강
  속도

  시속 525 마일

  상승속도

  (A-5)  분당 2830 피트   26250 피트까지 12분
  (A-8)  분당 2450 피트   19685 피트까지 9.1분

  항속거리

  23000피트에서 시속 298 마일로 비행시 497 마일

  표준무장

  (A-5) 7.9 밀리 MG 17 기관총 2정  1정당 실탄 1000발
              앞쪽 엔진 덮개 위에 장착
           20 밀리 MG 151 기관포 2정  1정당 실탄 200발
              날개 밑 부위에 장착
           20 밀리 MG FF 기관포 2정  1정당 실탄 55발
              날개 바깥쪽 장착
  (A-8) 13 밀리 MG 131 기곤총 2정  1정당 실탄 400발
               앞쪽 엔진 덮개 위에 장착
           20 밀리 MG 151 기관포 2정  1정당 실탄 250발
              날개 밑 부위에 장착
           20 밀리 MG 151 기관포 2정  1정당 실탄 125발
              날개 바깥쪽에 장착        

  변형 선택

  (A-5) Wfr. Gr. 21 로케트탄 2개  날개 밑 장착
  (A-8) 551 파운드 폭탄 1개     지연신관내장  동체 및에 장착
            110파운드 폭탄 4개      양날개 밑에 2발씩 장착
            79갤런 보조탱크 1개    동체 밑에 장착
            20밀리 MG 기관총 2정     1정당 실탄 120발    각날개 밑에 장착
            30밀리 MG 기관포 2정     1정당  실탄 60발     각날개 밑에 장착
            21센치 Wfr. Gr. 로케트탄 발사기 2개   각날개 밑에 장착


 

Fw 190 A-6/R11; 1./NJG10

Fw 109 A-8; 1./JG 1

Fw 190 A-8; Einheit

Fw 190 D-9; 4./JG 2

Fw 190 D-9; III./JG 54

Focke-Wulf Fw 190 A-5 der 5./JG 54

Focke-Wulf Ta 152 H-1

 

Messerschmitt Bf 109

 

 




       Bf 109 또는 Me 109 라고 불리우는 35,000대의 생산댓수를기록한 메서슈미트 Bf 109 는 대전초 독일의 전투기는 사실상 이기종 하나였다Bf 109 가 대전초에는 세계 최고의 전투기였다 하지만 이기체를 연합군의 중폭격기 요격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화력과 방어력 위주로 개량 발전해 나갔다 그결과 기동성과 선회력이 떨어져서 점점 연합군의 신형 전투기에 뒤지게된다...하지만 독일의 슈퍼에이스들 대부분이 이기체 종전때가지 타고 있었다..

 

BF 109G-6와 Bf 109G-10 성능제원

    (따로 표시된 것 이외에는 두형이 동일하다)
  동력
  (G-6)   다이뮬러 벤츠 DB 605A 12기통 수냉식 엔진 1기
  (G-10) 다이뮬러 벤츠 DB 605D 12기통 수냉식 엔진 1기
  마력수

  (G-6)  이륙시 1475    MW 50 장치이용시 1800      18700피트에서 1355
  (G-10) MW 50사용 이륙시 2000                          16730피트에서 1800

  최고속도

  (G-6)  MW 50사용시 해면고도에서 시속 340 마일
            22640 피트에서 시속 386 마일
  (G-10) MW 50사용시 해면고도에서 시속 342 마일
             24280 피트에서 시속 426 마일

  최고
  하강속도

  시속 500 마일

  상승속도

  (G-6)   분당 3346 피트   18799 피트까지 6분
  (G-10) 분당 3500 피트   19685피트까지 5.8분

  한계고도

  350 마일  보조탱크 장착시 620 마일

  표준무장

   13밀리 MG 131 기관총 2정   1정당  실탄 300발
   위쪽 엔진 덮개위에 장착 
  (G-6에만 해당) 20 밀리 MG 151 기관포 1정   1정당 실탄 200발
           앞머리의 프로펠러 중앙부에 장착
  (G-10에만 해당) 30밀리 MK 108 기관포 1
  1정당 실탄 60발
           앞머리의 프로펠러 중앙부에 장착

  야전변형
  선택

   551 파운드 폭탄 1개     지연신관내장  동체 및에 장착
   110파운드 폭탄 4개      양날개 밑에 2발씩 장착
   79갤런 보조탱크 1개    동체 밑에 장착
   20밀리 MG 기관총 2정     1정당 실탄 120발    각날개 밑에 장착
   30밀리 MG 기관포 2정     1정당  실탄 60발     각날개 밑에 장착
   21센치 Wfr. Gr. 로케트탄 발사기 2개   각날개 밑에 장착


◇ Messerschmitt  Bf 109 ◇

♠ Part 1 - 전설의 시작 ♠

♠ Part 2 - 영광의 날개 ♠    ♠ Part 3 - 제국의 수호자


First Update - 2000. 8. 13 & Second Update - 2004. 7. 16

인류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제 2차 세계대전의 항공전을 논하는데 있어서 독일공군을 빼놓을 수 없고, 이 독일공군을 논하는데 있어서 메서슈미트 Bf 109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Bf 109는 2차 대전에서 활약한 여러 전투기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투기중 하나이며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었던 강력한 독일공군을 상징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 걸출한 전투기는 2차대전의 항공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국이 자랑하는 불멸의 스핏화이어와 쌍벽을 이루면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비행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메서슈미트라는 이름은 들어본적이 있다고 할 정도인데, 심지어는 메서슈미트하면 모든 독일전투기를 총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Bf 109 또는 Me 109라고도 알려진 이 전투기는 2차 대전 전기간동안 총 3만5천여 대가 생산되어 유럽의 하늘을 누볐다. 이 생산대수는 역사에 기록된 전투기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라고 한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회에서는 독일의 천재 항공기 설계사인 빌리 메서슈미트 박사가 남긴 전설적인 전투기 Bf 109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What is the name of this fighter?!!  Bf 109 ?? ...Me 109 ??

이 전투기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다 보면 어떤 서적에는 Bf 109로 기술되기도 하고 어떤 서적 (주로 미국쪽의 서적)을 보면 Me 109라고 기술하기도 하는데....결론적으로는 둘다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쟁중에 독일공군이 사용한 거의모든 문서에서 이 기체를 Bf 109라고 기술하고 있어서 메서슈미트 박사의 항공기 중 109, 110에게는 Bf를 붙이는 것이 더 옳을 것이고 이후에 개발된 기체들 예를 들어 Me 262, 163등에는 Me를 붙이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9와 110은 메서슈미트 박사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라 이 전투기들이 설계될 당시에 그가 몸담고 있었던 항공기 회사였던 Bayerische flugzeugwerke의 이름에서 약자를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Me 109라는 기술은 주로 연합군측에서 이 이 기체를 호칭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일부 항공전사가들은 생산 공장의 이전시기를 더욱 세분화해서 109E형까지는 Bf를 붙이고 메서슈미트 항공사로 생산이 이전된 109F형부터는 Me를 붙이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불타는 하늘에서는 이 기체를 Bf 109로 통칭하기로 한다.

 

* 부활하는 유럽의 독수리

항공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전쟁이 첫 선을 보였던 1차대전 당시에 알바트로스, 포커 트라이데커(삼엽기)등 연합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여러 우수한 전투기를 선보이면서 최첨단의 항공기술을 자랑했었던 독일은 1차대전의 패전이후 독일의 재무장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베르사이유 조약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동안 영불 연합국의 치밀한 감시로 인하여 독일의 항공산업은 크게 위축될 위기에 놓였었으나 독일은 비밀리에 항공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특히 히틀러 집권이후에는 점점 더 강화되는 독일의 재무장 분위기속에서 독일의 항공기 제작사들은 수많은 군용 항공기들을 제작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빌리 메서슈미트라는 천재적인 항공공학자가 설계하고 있었던 새로운 전투기가 장차 장차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게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 1930년대초반 독일공군의 재건이 비밀리에 추진될무렵 주력 전투기로 사용되었던 하인켈사의 He 51 ]

1934년, 베르사이유 조약의 허점을 이용해 서서히 항공전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던 독일공군은 당시 전투기부대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주력 전투기들이었던 하인켈사의 He 51과 아라도사의 Ar 68과 같은 복엽전투기들이 비록 복엽기로서는 훌륭한 전투기이기는 하나 영국과 프랑스 공군기들에 정면으로 맞서 상공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래의 하늘을 제압할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야심찬 계획이 발표되자 이미 신예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던 독일의 유명항공사들이 사운을 걸고 경쟁적으로 참가했다. 특히 아라도, 하인켈, 포케불프, 메서슈미트의 4개 항공사가 단 하나뿐인 승리자의 자리를 놓고 최종적인 경쟁을 하게 되었다.

(바로 이 차기 전투기의 개발을 시작하는 타이밍이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서 약간 빨랐으며 이 결정적인 시기에 한발 앞서 나갔기 때문에 훗날 독일공군이 개전후 수개월동안 영불 연합군의 공군전력을 압도하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 차기 전투기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

독일공군의 미래를 짊어지게될 차기 전투기 선정 과정에서 경쟁은 매우 치열했으며 4개 항공사는 각기 독창적으로 설계한 우수한 시제기들을 내놓았다.  

아라도사의 Ar 80V1, 바이예리쉐 플룩쪼이베어케 (Bayerische Flugzeugwerke, BFW)의 Bf 109V1, 하인켈사의 He 112V1 그리고 포케불프의 Fw 159V1이 그것으로서 이후 몇 개월간 이 기체들은 사운을 건 치열한 공중전(?)에 빠져 들었다. 이중에서 포케불프사의 기체는 자국산인 610마력의 융커스 유모 210A를 장비하고 있었는데 아직 이 엔진의 신뢰성이 검증되지 않았던 데다가 생산량도 충분치 못해서, 나머지 기체들은 신뢰성이 높고 출력이 강했던 695마력의 영국산 롤스로이스 케스트랄 V 엔진을 장비한 상태였다. 

[ 아라도사의 Ar 80V1, Ar 68의 뒤를이어 주력 전투기의 자리를 노렸으나 경합의 초반에 탈락하고 말았다. ]

 

[ 포케불프사의 Fw 159V1, 이런 파라솔윙의 촌스런 모습은 차기 전투기감으로는 어림도 없어보인다. ]

2차대전중 비행기 엔진에 대해서는 첨단 기술을 자랑했던 독일이지만 이무렵까지만해도 바르세이유 조약의 후유증으로 독일의 엔진개발 능력이 과도기에 있었기 때문에 3개 항공사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자국산 엔진을 고집하기보다는 더욱 안정적인 자국산 엔진이 개발될때까지는 외국산 엔진을 잠시 채용하여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얻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 하인켈사의 He 112V1, Bf 109V1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으나 경쟁에서 탈락한 안타까운 기체이다. ]

이들 4개 기종의 경합은 1935년 10월 트라베뮌데에서 본격적인 성능비교 테스트가 실시되면서 본격화 되었다. 하지만 단기간의 시험비행만으로도 어느정도 우열이 가려졌는데 하인켈사의 기체와 BFW (바이예리쉐 플룩쪼이베어케)사의 기체가 나머지 기체들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 것이다. 이로서 경쟁은 이들 양사의 2파전의 양상이 돼 버렸다. 이들 기체는 모두 전급속제 저익 단엽기였으며 주익하면에 인입식 랜딩기어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비행성능에서도 매우 비슷한 성능을 보였다. 이 치열했던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Bf 109V1으로 결정되었는데, 이렇다보니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후발 업체인 BFW사가 제작한 Bf 109V1이 하인켈의 He 112V1을 제치고 독일공군의 차기 주력기로 선정된 과정에서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다.

[ 당당히 경합에서 1위를 차지하여 차기 주력 전투기로 선정된 BFW사의 Bf 109V1 ]

Bf 109를 선정한 공군측의 공식 발표에는 상승성능 및 최고속도에서 Bf 109가 He 112를 압도했으며 조종성도 더 양호하며 대량 생산이 수월하기 때문에 BFW의 기체를 주력 전투기로 선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시험비행기간동안 하인켈사의 He 112V1은 부드러운 유선형의 디자인과 공기역학적인 설계로 인해 비행특성이 좋아서 많은 조종사들의 호평을 받았었으며 특히 주익 랜딩기어의 폭이 약간 더 넓어 이착륙시에 안정성이 더 높다는 점과 탁트인 시야를 자랑하는 조종석의 구조가 Bf 109V1의 그것에 비해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에 이 결정이 정경유착에 의한 특혜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하인켈사의 기체가 Bf 109와 동시에 주력전투기로 발탁되었다면...하는 아쉬움은 있을 수 있지만 그당시 독일공군의 입장에서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쫒기보다는 확실한 한가지 기체를 선정해서 집중적으로 개발,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했으며, 홈지기 개인적으로는 Bf 109가 주력전투기로 선정된 것이 결과론적으로 볼 때는 매우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 foxmouse: 이 흥미로운 독일공군의 차기 전투기 경합에 대해서는 얼마뒤에 업데이트가 예정된 '비운의 전투기 He 112, He 100'편에서 보다 상세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

 

* 영광을 향한 청사진

사실 Bf 109는 그 원형기가 세상에 선보이기 10여년 전부터 이 전투기의 개발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1927년 다른 명문 항공기 제작사에 비해서 뒤늦게 군용기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던 Bf 사는 기술력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독일 항공공학계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빌리 메서슈미트 박사를 영입했으며 메서슈미트 박사의 요구로 1933년에는 아라도사에서 설계를 담당하고 있었던 발터 레델 박사까지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 두 항공공학자는 고성능 소형전투기의 개발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들에 의해서 훗날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되는 Bf 109의 청사진이 그려진 것이다.

[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항공공학자 빌헬름 메서슈미트, 스핏화이어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레지널드 미첼과 함께 가장 유명한 항공 공학자였다. ]

이전에 성공적인 민간용 단발 단엽기로 평가받는 Bf 108을 설계해본 적이 있었던 메서슈미트 박사의 주도하에 시작된 차기 전투기의 개발사업은 레델 박사의 합류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들은 새로운 전투기의 개발 방향을 당시 한창 개발이 추진되고 있었던 독일의 엔진기술이 허용하는 한까지 작고 날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기본적인 동체의 설계는 한창 개발이 진행중이던 자국산 융커스 유모 엔진이나 벤쯔사의 엔진을 탑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이 기체는 한눈에 독일 전투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쭉쭉 뻗은 직선과 각이진 전통적인 독일 전투기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메서슈미트 박사는 이 항공기를 가볍고 날쌘 전투기로서 개발하기를 원했으므로 기체는 최대한 경량화되어 원형기의 익면하중 (wing loading)은 1평방 피트당 24파운드가 채 안될정도였다. 하지만 메서슈미트 박사와 레델 박사는는 이 기체가 주력전투기로 선정되면 수많은 개량을 거치게 될 것이고 점점 기체 중량이 증가하여 익면하중도 같이 증가하리라는 것을 직감했으므로 이에 대비하여 몇가지 예비적인 장치를 도입했다. 필요시에 양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주익 앞전에 자동으로 작동되는 슬롯 (autonomic leading edge slot)을 도입하여 실속에 가까운 속도에서 보조익의 조종을 원할하게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최대 10도까지 전개되는 넓은 보조익 (aileron)과 플랩 (flap)도 고안되었다. 주익의 부담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 주익에는 무장을 장착하지 않도록 설계되었고, 랜딩기어의 작동부를 동체쪽에 위치하도록 설계했으며 이로 인해 랜딩기어가 안에서 밖으로 접히는 특이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 109V1의 정면 모습, 커다란 공기흡입구와 2날 프로펠러, 바깥쪽으로 접히는 폭이 좁은 랜딩기어등의 특징이 보인다. ]

이렇게 탄생한 원형기 Bf 109V1은 첫 비행을 1935년 9월에 실시했으며 이후 몇차례의 시험비행후에 사소한 문제점들을 수정하고 1935년 10월 차기 전투기 경쟁에 참가하기 위해서 트라베뮌데로 보내졌다. 이 사이에도 메서슈미트와 레델박사는 계속 개선작업에 착수하여 1936년 1월에는 2번째 원형기인 Bf 109V2를 제작했다. 이 기체에는 109V1에서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고 장착을 하지 않았던 융커스 유모 210A 엔진이 장비되었다. 그동안 이 엔진도 신뢰성이 입증되고 안정적인 공급량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형은 목재로된 고정식 2날 프로펠러를 장비했으며 엔진 상부에 프로펠러 사이로 발사되는 2정의 MG 17 기관총을 장착할 수 있는 여유공간이 만들어 져서 기수의 형태가 변하게 되었다. 이 형이 양산 전투기형인 Bf 109A로 발전하게될 예정이었다.

[ Bf 109의 조종사를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 조종석의 협소함과 후방시계의 불량함으로 테스트 기간동안 조종사들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

하지만 이무렵 숙적 영국공군이 차기 전투기들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는 첩보가 입수되었는데 이 전투기들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이 8정이나 되는 기관총을 고정무장으로 장비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독일공군을 긴장시켰다. 영국 전투기들의 고정무장은 주익에 설치된 7.7mm 브라우닝 기관총이었는데 이것이 8정이나 된다면 그 화력은 당시 기준으로 볼 때는 정말로 대단한 것 이었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2정의 7.92mm MG 17 기관총만으로는 대적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산술적으로 볼 때 Bf 109A형에 장비될 예정이던 2정의 MG 17 기관총은 기총탄 확보를 위해 기수의 연료탱크를 조종석 뒤쪽의 동체로 이동시켜 공간을 확보한 결과 각 기관총당 1000발씩의 탄약을 탑재할 수 있었다. 반면 영국 전투기들은 기관총 8정이 모두 주익에 위치해 있었는데 각 기관총당 300발씩의 탄약을 탑재할 수 있었다. 총 탑재 탄수를 비교해보면 Bf 109A의 2000발에 비해서 영국 전투기들은 2400발로 우위에 있었으며 8정이나 되는 기관총이 동시에 발사되므로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화력에서 약 4배의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었다. 비록 사격 지속 시간은 Bf 109A쪽이 3배정도 더 길었지만 야전부대의 조종사들은 실제 공중전에서는 순간적으로 승부가 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집중되는 화력이 더 중요하다며 화력 강화가 절실함을 요구했다.

[ 조종석의 구조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

더구나 항공기술과 엔진의 발달로 각국의 전투기들은 목재골조에 천을대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던 1차대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점점 금속으로된 외피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특히 엔진이나 조종석등의 취약부위를 장갑판으로 강화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2정의 기관총으로는 점점 성능이 좋아지는 적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이에 독일공군은 1차대전 수준의 무장인 MG 17 2정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려 Bf 109A의 양산을 전격적으로 취소시키고 Bf 사에 최소한 3정의 MG 17 기관총을 장비할 수 있는 개량형을 제작하라는 요구를 했다. (이런 이유로 제작이 중단된 Bf 109A는 완성에 이르른 기체가 없었다고 함.)

그런데 문제는 Bf 109의 설계 자체가 소형의 날렵한 전투기로 추구되다보니 추가적인 기관총을 탑재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Bf 109A의 주익은 너무 얇아서 주익에 각 1정의 MG 17 기관총을 간신히 장착할 수는 있었지만 여기에 탄약을 공급할 탄창의 부피가 커서 공간을 확보할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에 벨트식의 급탄장치를 통해서 주익 전체에 탄약을 탑재하는 방법이 시도되었으나 몇가지 기술적 어려움으로 완전히 실용화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결국 고민끝에 엔진의 V자형 실린더 사이의 공간에 기총을 설치하는 방법이 시도되었다. 여기에는 충분히 MG 17 기관총과 탄약이 수납될수 있었으므로 약간의 개량을 통해서 프로펠러축의 정가운데를 통해서 발사되는 기관총의 탑재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추가적인 기관총 1정을 엔진 축을 통해서 발사하는 방식을 채택한 3번째 원형기 Bf 109V3형이 제작되었으며 이것이 무장강화형인 Bf 109B의 모태가 되었다.

[ 화력 강화의 해법으로 제시된 MGFF 20mm 기관포, 초기에는 기축에 장착이 시도되었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았으며 Bf 109E형에 이르러서야 표준 무장으로서 주익에 장비가 가능하게 된다. ]

얼마후에는 기축의 기총을 MG FF 20mm 기관포로 대체하여 화력을 더욱 강화하고 영국의 차기 전투기들에 비해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강력한 무장을 가지도록 한다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이 기관포는 스위스의 오리콘 사가 제작해서 실용화했던 대공 기관포를 약간 개조하여 전투기에 장착이 가능하도록 변형시킨 것이었다. 만일 이 기관포의 장착이 실용화만 된다면 화력의 열세를 단숨에 만회할 만한 야심찬 계획이었으며 이 기관포의 성능 시험을 위하여 Bf 109V4 ~ V7까지의 원형기들이 제작되었다.

[ MGFF 20mm기관포를 기축에 장착한후 테스트 비행에 나선 Bf 109V4, 하지만 이 기축선 기관포는 끊임없이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켜서 끝내 양산단계에서는 채용되지 못했다. ]

하지만 기축에 시범적으로 설치된 MG FF 기관포는 엔진룸의 높은 온도로 인해 쉽게 과열되어 몇발의 사격후 탄약공급이 정지해 버리거나 발사시에 기체에 불규칙한 진동을 유발하는 등의 잦은 말썽을 유발했고 결국 시간에 쫒긴 Bf사는 일단 기축 기관포의 실용화를 안정성이 검증될 때까지 무기한 연기하고 양산형에는 3정의 MG 17 기관총을 표준무장으로 하는 Bf 109B-0형의 양산을 시작했다.

 

* Bf 109B (최초 양산형) *

촉박하게 양산이 결정되기는 했지만 Bf 109B형은 몇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양력 증가를 위한 주익 설계로 인해서 기체의 착륙시에 필요한 받음각이 다른 기체에 비해 컸으며 지상에 접지하기 바로 전에 좌측으로 기우는 현상이 있었던 데다가 폭이 좁은 강착장치로 인해 이착륙시에 숙련된 조종사들을 필요로 했으며 미숙한 조종사들이 조종하기에는 위험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여기에 고속 비행을 하는 경우 주익에 불안정한 진동이 발생한다는 점이 가끔 보고되었으며 꼬리날개의 안정성에도 불안요인이 있다는 점들이 제기 되었다.

하지만 독일공군 원수 괴링은 이런 문제점을 보고받은 후에 이런 것은 비밀리에 해결하도록 하고 독일공군이 다시 부활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라이벌인 영국과 프랑스에게 독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도록 기만하기 위해서 하루빨리 이 '놀라운 전투기'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독일공군의 선전기관은 이 전투기의 성능을 과대 포장한 내용의 선전물을 각국에 유포했으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기간중에 각국의 유력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Bf 109V1의 시범 비행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후 한동안 기체의 성능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더 이상의 공개 비행이 없어 1년여가지난 1937년에는 외국 언론들이 이 검증되지 않은 비밀 전투기의 성능에 대해서 '별 것 아닐 것이다.'라는 식의 회의적인 기사들을 싣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독일공군은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공군을 얕보지 못하도록 그들의 실력을 전세계에 과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1937년 7월 스위스의 쮜리히에서 개최될 예정인 국제 항공대회에 3기의 Bf 109B로 구성된 시범비행팀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Bf 사는 이 전투기의 불안요인들을 어느정도 해결한 상태였으므로 독일공군은 이 전투기의 성능에 자신이 있었다. 단, 여전히 이착륙시에는 숙련된 조종기술이 필요했으므로 대회 참가자들은 공군내에서 최고의 비행기술을 가진 조종사들중에서 선발했다.

[ 당시 리히토펜 비행단의 칭호를 가지고 있던 JG 132에 최초로 배치된 Bf 109B ]

스위스에 모습을 나타낸 3기의 Bf 109B (Bf 109B-1, Bf 109B-2, Bf 109V13)은 군용기 부문의 거의 모든 종목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고 속도, 평균 속도, 상승률, 하강능력 등등에서 발군의 성능을 자랑하는 Bf 109B앞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 만한 라이벌은 없었다. 사실 이 3기의 109중 기록 수립에 앞장선 Bf 109V13은 대회 참가를 위해서 960마력의 다이믈러 벤쯔 DB600 엔진을 장착한 특별 모델이었다. 몇 개월뒤인 1937년 11월, 이 기체는 1000마력급의 DB601엔진을 장착하고 시속 614km라는 놀라운 속도를 과시하여 전투기 부문의 세계 속도 신기록을 이전의 기록에 비해 시속 50km이상 빠른 것으로 갈아치웠다. (이 Bf 109V13은 후에 Bf 109E형의 근간이 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DB600, 601 엔진은 아직 양산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태여서 실험적으로 제작된 기체였지만 이 벤쯔 엔진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Bf 109는 더욱 힘찬 도약을 하게될 것이다.)

[ 국제 항공대회에서 놀라운 속도를 과시하며 세계를 놀라게했던 109V13, 훗날 Bf 109E로 발전하게되는 시제기이다. 외형에서도 DB 601엔진 장착에 따라 Bf 109E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

사실 이무렵 선전에 광분했던 독일공군은 속도기록을 위해 새롭게 설계한 기체를 이용해 1939년 4월 26일 시속 759km라는 경이적인 속도 기록을 수립했는데 이 기체의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외국언론에서는 'Me 109R'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 기체는 순전히 최고 속도 기록만을 위해 1기가 제작된 것으로 Bf 109의 계보에는 속하지 않는 전혀 다른 기체였다. (사실 이 기체는 경쟁사였던 하이켈이 He 112를 개량해서 Bf 109의 최고속도기록에 도전장을 내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서 속도기록이외에는 전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이 기체는 후에 Bf 209라는 공식적인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37년에는 635마력의 융커스 유모 210D 엔진을 장착한 Bf 109B-1이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했으며 이무렵 리히토펜 비행단의 호칭을 가지고 있었던 JG 132가 가장 먼저 Bf 109를 수령한 전투비행단이 되었다. 이 기체는 13,100피트의 고도에서 시속 473km의 최고속도를 나타냈으며 9.8분만에 19,685피트의 고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때 고정식 피치의 목재 프로펠러가 한계를 나타냈으므로 Bf 109B-2형에서는 미국의 해밀턴사로부터 프로펠러 기술을 사들인후 2단계 피치를 가진 금속 프로펠러로 교체하게 되었으며 엔진도 2단 변속 슈퍼차져를 장착한 670마력급의 융커스 유모 210E, 210G엔진을 장비하게 되었다.

 

* 스페인에 나타난 하늘의 마왕

이무렵 독일공군은 스페인 국민당의 프랑코장군의 요청으로 점차 국제 대리전이 되어가고 있었던 스페인 내전에 콘돌 군단이라는 명칭의 파견 부대를 참전시키고 있었다. (사실은 요청이라기 보다는 독일측의 적극적인 의지에 의해 파견이 결정된 상태였다.) 이때 공화당을 지원하고 있었던 소련공군이 신예전투기인 폴리카르포프 I-15, 16을 선보이면서 콘돌군단이 주로 사용하던 He 51 복엽전투기의 성능상 열세가 명확해졌다.

[ 스페인 국민당군의 도색을 하고 있는 독일 콘돌군단의 Bf 109B ]

이에 1937년 7월경에 독일공군은 스위스에서 국제 항공대회가 열리던 비슷한 시기에 24기의 완전무장된 Bf 109B를 급히 콘돌군단으로 보냈다. 독일공군에게 있어서 스페인 내전은 그들이 개발한 신예기들의 성능을 실전에서 테스트해볼 수 있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였다. Bf 109와 더불어 장차 전유럽의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게될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도 스페인 내전을 통해 그 진가를 과시하게 된다.

이 Bf 109B 전투기들은 아직 주익의 미세한 진동과 꼬리날개의 불안정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전투에 투입되자마자 그 특유의 상승력과 고속성능을 이용해서 물을 만난 고기처럼 맹활약하여 기대이상의 큰 성과를 올렸다. 이 전투기들은 주로 폭격기 엄호 임무나 적 전투기 소탕작전에 투입되어 적기들을 보이는 족족 떨어뜨렸던 것이다. 특히 독일공군을 일시적으로 긴장시켰던 소련의 신예 I-15, I-16 전투기들을 잡는데 매우 효과적인 무기로 인정받게 되었다.

[ 주기중인 콘돌군단의 Bf 109B ]

재미있는 것은 공중전중에 피탄되어 손상된 Bf 109B 1기가 급강하를 시도하던중 꼬리날개가 분리되어 추락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장면을 목격한 소련 조종사들사이에서 'Bf 109는 너무 경량화를 추구한 나머지 기체구조가 약해서 급격한 기동을 하다가는 기체가 분해되 버린다.'라는 소문이 떠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Bf 109의 기체강도는 그렇게 허약한 것이 아니었으며 대부분의 거친 기동을 무리없이 소화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선입견은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지속되었으며 일부 독일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어서 급격한 선회를 꺼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 Bf 109C & D *

하지만 실전에서 Bf 109B형이 드러낸 가장 큰 문제점은 뭐니뭐니해도 무장이 7.9mm MG 17 기관총 3정으로 너무 빈약하다는 점이었다. 1차대전에 비해 전투기들의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구조가 튼튼해져서 적기를 포착한 순간에 단시간의 사격으로 적기를 비행불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이 절실하게 요구된 것이다.

[ 두 번째 양산형인 Bf 109C - 외형상으로는 공기흡입구의 형태가 약간 커진 것 말고는 B형과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

이에 BFW사는 다시 20mm MGFF 기관포를 기축에 설치하도록 해보았지만 실전에서 사용해본결과 이전에 지적된 문제점들 (몇발 발사하지 못하고 작동이 정지해 버리거나 사격시에 심한 진동이 발생하는..)이 다시 발생해 신뢰성이 떨어져 조종사들로부터 더 불평만 사는 경우가 많아 결국 기축 기관포는 또 다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안으로 기수에 2정의 기관총, 주익에 2정의 기관총을 장착하여 총 4정의 MG 17 기관총을 장착하는 쪽으로 무장 강화의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로인해 주익에 고르지 못한 진동이 자주 발생하게 되자 보조익과 앞전 슬롯의 밸런스를 다시 조정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 문제가 해결된후에는  주익의 무장을 2문의 20mm MGFF 기관포로 강화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이 무장 강화형의 연구를 위해 제작된 시제기들이 Bf 109V8, V9로서 두 번째 양산형인 Bf 109C 시리즈의 근간이 되었다.

이처럼 Bf 109C는 기본적으로 Bf 109B의 틀을 유지하면서 무장을 강화하는 형태로 생산되었으며 엔진은 융커스 유모 210G엔진을 도입했는데 이 엔진은 연료 직접 분사방식을 실험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엔진중 하나였다. 이 연료 직접 분사방식을 이용하게 되자 기화기를 사용하던 이전의 엔진에 비해서 급격한 선회나 급강하, 기수를 급격히 앞으로 숙이는 마이너스 G등의 거친기동을 할 때 엔진에 연료공급이 순간적으로 끊기는 현상이 사라지게 되어 조종사들로부터 매우 좋은 평가를 었얻다. 훗날에는 이 엔진이 미래의 공중전에 혁명적인 기능을 수행하게될 것이며 Bf 109의 비밀무기 역할을 하게된다.

[ 콘돌군단에 파견되어 실전 테스트를 받고 있는 Bf 109C ]

양산형인 Bf 109C-1형의 무장은 기수와 주익에 각 2정씩 장착된 총 4정의 MG 17 기관총으로서 이었으며 기축에도 1정의 기관총을 추가하여 5정의 기관총을 장비한 Bf 109C-2형도 시험적으로 제작되었으나 역시 기축 기관총의 안정성에 문제가 제기되어 Bf 109C-1형이 주로 생산되었다. 1938년 8월 훗날 스페인 내전에서 최고의 에이스로 등록하게되는 유명 조종사 베르너 묄더즈의 지휘하에 12기의 Bf 109C-1으로 이루어진 전투비행대가 파견되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베르너 묄더즈는 공중전술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Bf 109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편대전술인 로터 (Rotte)와 슈밤 (schwarm)을 고안하여 독일공군의 표준 편대전술로 정착시키게 된다. Bf 109C형은 총 58기정도만이 생산되는 과도기적인 기체였다.

한편, 이런 무장강화를 위한 개량과는 별도로 더욱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려는 시도가 추진되고 있었는데 이무렵 독일에는 출력이 무려 960마력에 달하는 다이믈러 벤쯔 DB600엔진이 개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엔진은 Bf 109B형의 동체에 장착되어 성능 시험을 받았으며 보다 개선된 DB600A 엔진이 생산되자 이를 장착한 기체들이 계속 성능 시험을 받게 되는데, 이때 제작된 시제기들이 Bf 109V10~V12까지의 기체들이다.

[ Bf 109C형과 D형의 비교사진, 두 기체가 사용한 엔진에 따라 기수에 큰 변화가 오게된다. ]

이 벤쯔 엔진의 장착은 Bf 109의 성능을 한차원 높게 만들었다. 시제기들이 보인 최고 속도는 Bf 109B형에 비해 시속 50km나 증가한 시속 523km를 기록했으며 작전 가능한 고도도 31,170피트로 높아졌다. 결국 Bf 109C형의 무장을 유지하면서 엔진을 DB600A로 장착하는 새로운 양산형 Bf 109D-1형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DB600A엔진을 장착한 Bf 109D형은 1개 연대분량의 기체만 생산된후에 생산이 중단되게 되는데 이것은 다이믈러 벤쯔사가 DB600A의 생산을 중단하고 보다 야심차게 개발중인 보다 새로운 DB601엔진을 생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 원형기인 Bf 109V1부터 Bf 109D형까지의 외형의 변화 ]

이 DB601엔진은 공중전에 혁신적인 기능을 수행하게될 연료 직접 분사방식을 본격적으로 채용하고 있었으며 슈퍼차져의 기능도 보다 강화되어 출력이 무려 1000마력에 달하게될 이른 바 '꿈의 엔진'이었다. 이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는 기체의 개수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DB601엔진의 양산이 시작될 때까지 Bf 109D형의 생산은 중단되었으며 융커스 유모 210D엔진을 대신 장착하고 생산된 647기의 Bf 109D형은 대부분 차기 모델인 Bf 109E가 실전배치될 때까지 임시로 독일공군 전투기부대에 배치되어 일부 기체들은 스페인내전에서 실전테스트를 받았지만 대부분 훈련기로 전용되거나 스위스, 헝가리등에 판매되었다.

결국 당대 최고의 엔진중 하나인 DB601을 장착하게되는 새로운 Bf 109가 운명적인 탄생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전격전의 하늘에서 독일공군의 신화를 창조하게되는 Bf 109 가문의 진정한 맡형인 Bf 109E형이다.

 

* 일러스트레이션 *

1937년 최초의 양산형으로 실전 배치되기 시작한 Bf 109B-1이다. JG 132가 그 Bf 109를 최초로 운영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부대는 Bf 109B-1을 이용해서 실전 테스트를 많이 실시 했으며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병합 작전, 체코 침공 작전시에 상공에서 무력 시위를 전개했다.

 

1938년 베를린의 수도방공 사령부 소속 Bf 109B-1, 이무렵까지 수직 꼬리날개에 사용된 붉은 바탕의 검은색 하켄크로이츠 (철십자)의 형태가 약간 달라진 것에 주목!

 

1938년, 자국의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된 국제 비행대회에 독일측이 참가시켰던 Bf 109D이다. 총 5기의 팀으로 참가했었으며 역시 거의 모든 부문에서 대부분의 상을 휩쓸어 버렸다. 이 기체는 몇차례의 데몬스트레이션 비행에 사용되었으며 몇 개월후 추락하여 폐기되었다.

 

1939년, JG 26 전투비행단에 배치된 기체로서 전반적으로 단조로운 진한 녹색으로 도색되어 있다. 수직 안정판의 하켄 크로이츠 마크는 이후 크기가 축소되고 위치가 바뀌게 되었다. 이 기체는 Bf 109E의 실전 배치에 따라 곧 훈련부대로 인도되었다.

 

1939년 초 베른부르크에 주둔중이던 제 102 전투비행연대 (JGr 102) 소속의 Bf 109D-1, 본기는 유모 210D 엔진을 장착했던 모델로 DB600A를 장착했던 형에 비해서 기수의 형태에 차이가 있다.

 

스페인내전에 실전테스트를 위해 파견된 Bf 109D-1, 이후 전쟁이 끝나자 나머지 잔여기체들은 신생 스페인공군에게 공여되었다.

 

                       Bf 109 사진과 그림....

       

      Bf 109 F-4/Trop; 6./JG 53

      Bf 109 E-4/B; III./SKG 210

      Bf 109 K-4; I./JG 27

      Bf 109 G-2; II./JG 51

       Bf 109 F Schwarze 4./JG 77 Lt. Heinz L?emann

      Bf 109 E des JG 27

      6./JG 3

      Flugzeugf?rer 6./JG 53 in Sylt 1941

독일해군의 수상함대


 

  비스마르크 (Bismarck)

  제조
  Blohm & Voss (Hamburg) 1940년 취항. 1941년 침몰.

  제원
  배수량:50995톤, 길이:247m, 선폭:36m, 최고속도:30.1knts

  무장
  380mm포 8문, 150mm포 15문, 105mm포 16문, 37mm포 16문, 20mm포 12문

  티르피츠-텔피츠- (Tirpitz)

  제조
  Kriegemarinewerft (Wilhelmshaven) 1941년 취항. 1944년 침몰.

  배수량 52,700톤. 비스마르크의 자매함으로 기타사항 동일.

  샤른호르스트 (Scharnhorst)

  제조
  Wilhemshaven Navy Yard 1939년 취항. 1943년 침몰.

  제원
  배수량:38,100톤, 길이:230m, 선폭:30m, 최고속도:32knts

  무장
  283mm포 9문, 150mm포 12문, 105mm포 14문, 37mm포 16문, 20mm포 10문

  그나이제나우 (Gneisenau)

  제조
  Deutsche Werke 1938년 취항.

  샤른호르스트호의 자매함으로 기타사항 동일.

  제펠린 (Zeppelin)

  미완성의 항공모함. 1940년까지 80%의 공정을 마치고 제조중단.

  제조
  
Deutsche Werke (Kiel)

  제원
  배수량:28,100톤, 길이:251.50m, 선폭:31.3m, 최고속도:32knts

  무장
  150mm포 16문, 105mm포 12문, 37mm포 22문, 20mm포 28문
  항공기탑재 40대 (Ju87C-Stuka 18대, Me-109 22대)

  그라프 슈페 (Graf Spee)

  제조
  Deutsche Werke (Kiel) 1936년 취항. 1939년 침몰.

  제원
  배수량:16,230톤, 길이:185.9m, 선폭:21.39m, 최고속도:28.5knts

  무장
  280mm포 6문, 150mm포 8문, 105mm포 6문, 88mm포 6문, 37mm포 8문, 20mm포 10문

  세여 (Scheer)

  제조
  Wilhemshaven Navy Yard. 1934년 취항.

  배수량:15,440톤. 그라프 슈페의 자매함으로 기타사항 동일

  뤼츠초프-뤼초우- (Lützow)

  제조
  Deschimag 1939년 취항.

  제원
  
배수량:19,042톤, 길이:199.5m, 선폭:21.2m, 최고속도:32knts

  무장
  203mm포 8문, 105mm포 12문, 37mm포 12문, 20mm포 6문

  프린츠 오이겐-외젠- (Frinz Eugen)

  제조
  
Germania 1940년 취항. Hipper급

  뤼츠초프와 같은 Hipper급으로 기타사항 동일.

  블뤼허 (Blücher)

  제조
  
Deutsche Werke (Kiel) 1939년 취항.

  프린츠 오이겐과 같은 Hipper급으로 기타사항 동일.

 

1.5
12,000
15,000
28,000
200,000
6,500,000
11,000,000

이 숫자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이 모두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 유대인 그리고 학살에 관련된 숫자입니다. 세계 최악의 전쟁이라 할만한 제 2차 세계대전 숫자로 그 끔찍했던 역사를 돌이켜 보겠습니다.


1.5m
하인리히 히믈러(나치 독일 친위대 SS의 대장)가 1940년 휘하 SS 부대에 하달한 유대인 총살시 지켜야할 사격 거리. 반드시 유대인의 목덜미 뒷 부분을 겨냥하여 1.5m 이내에서 사격하라 지시했다. 이 명령으로 SS 부대원의 상당수가 미치거나 자살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낳아 1942년 철회했다. 게릴라와 소련군 포로는 3m, 집시, 폴란드인 등은 4m 이내에서 총살

12,000명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된 유럽의 가톨릭 성직자 및 수도자들 그리고 가톨릭교회 관련 인사들의 수

15,000명
1942년 나치 독일군이 1주일 동안 소련에서 총살한 사람들의 수. 당시 주러 나치 독일군 사령부는 ‘몹시 놀라우면서 매우 만족스러운 성과’라는 자체 의견을 달아 본부에 이를 보고하였다.

28,000명
나치 독일이 생체 실험용으로 학살한 사람들의 수

200,000명
나치 독일이 1933년부터 1945년 패망 때 까지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며 살해한 장애인의 수

6,500,000명
나치 독일이 1933년부터 1945년 패망 때 까지 학살한 유대인의 수

11,000,000명
나치 독일이 1940년 프랑스를 점령한 뒤, 전 유럽에서 유대인 말살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입안한 이른바 ‘마다가스카르계획’에서 제시한 제거 대상 전체 유대인의 수


가장 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렇듯 광기에 휩싸인 히틀러와 나치 일당은 단순히 학살에만 치중한 것이 아닌 생체실험에도 열을 올렸다. 지금도 가끔 흑백사진으로 볼 수 있는 당시의 기록들은 처참한 그 자체이다.

나치의 대표적인 생체실험

1. 감압실험 (대표적 연구자 : 지그문트 라셔)
이 실험은 공군 조종사들이 비행기에서 탈출했을 때 그들이 고도에 따라 어떠한 압력을 상태를 가지고 그것의 고통을 대처하기 위해 시작하였습니다.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방에 들여보낸 후 압력을 감소시키는 실험이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실험 대상자들의 대다수가 죽거나 인체 내의 심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2. 냉동실험 (대표적 연구자 : 지그문트 라셔)
공군 조종사, 해군 선원들을 위한 실험으로 그들이 얼마나 저온의 해상에서 버틸 수 있고,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녹이는 것이 빠른지를 연구하였습니다. 이 실험은 얼음물이 든 탱크에 발가벗겨 묶어 넣은 후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많은 이가 죽었으며 몸을 녹이는 실험에는 여러 방법 중에 성교를 통한 해동 방법도 실험하여 여러 여자들이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너무 끔찍해서 모자이크 처리 했습니다.)

3. 말라리아 실험
말라리아에 대한 위험과 치료법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1000이상으로 많이 실험되었습니다. 이 실험이 끝나고 희생자들은 죽거나 영원한 장애,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4. 이페릿 가스 실험 (대표적 연구자 : 헤르타 오베르휴저, 발데마르 호벤, 아우구스트 히르트)
페릿 가스는 1차 대전 때 쓰인 독가스의 일종으로 이 실험은 전장에서 독가스가 쓰였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를 주제로 하였습니다. 또한 실험의 현실 도를 가중시키기 위해 실험 대상들의 몸에 못, 톱밥, 철 조각 등 다양한 것으로 몸을 비벼 일부러 상처를 낸 후에 자행되었습니다.

5. 술폰아미드 실험 (대표적 연구자 : 헤르타 오베르휴저, 발데마르 호벤, 프리츠 피셔, 카를 겝하르트)
특별한 화학 물질인 술폰아미드의 효과를 실험시키기 위해 자행되었으며 특히 그것이 육군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지를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이 물질에 사용 대상자들은 다양한 박테리아를 주입했는데 연쇄상구균, 가스 괴저, 파상풍균을 투입하였습니다. 또한 실험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유리조각, 철 조각, 나뭇조각으로 실험 대상자들을 비볐으며 이때 술폰아미드를 투입하여 그 효과를 본 것이며 이외에 다른 약물들도 쓰였다합니다.

6. 뼈, 근육, 신경 재생, 뼈 이식 실험 (대표적 연구자 : 헤르타 오베르휴저, 프리츠 피셔, 카를 겝하르트)
이 실험은 외과 시술을 위해 특히, 육군의 부상병들을 위하여 실험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희생자들은 영원히 장애가 되거나, 몸의 일부가 절단되고, 평생에 고통을 겪게되었습니다.

7. 바닷물 실험
이 실험은 공군의 조종사와 해군의 선원들을 위하여 실험되었습니다. 여기서 실험대상들은 음식과 물을 먹지 못하였고 오직 화학 처리된 바닷물만 마셨습니다. 이 실험으로 여러 실험들과 같이 많은 희생이 치러졌습니다.


(해수 실험의 희생자)

8. 전염병, 황달 실험 (대표적 연구자 : 발데마르 호벤)
이 실험은 여러 질병들에 대한 치료와 관찰을 위해 시작되었고 특히 육군을 위한 도움을 주기 위해 자행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질병과 황달액을 투입 받았으며 결국 다른 실험들처럼 많은 희생을 야기했습니다.

9. 불임 실험 (대표적 연구자 : 카를 클라우베르크, 아돌프 포코르니, 빅토르 브라크)
이 실험에 목적은 의학 발전이나 야전의학의 발달을 위해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은 오직 유태인들을 비롯한 나치가 혐오하던 인종들의 절멸을 위해 자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의 목표는 최소한에 방법으로 더 이상의 인종 증식을 막기 위한 방법 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약물, X-레이, 거세 방법이 고안되었습니다. 이 실험의 피해자는 자그마치 400,000명이라고 합니다.

10. 발진티푸스 실험
이 실험은 발진티푸스를 황열병, 천연두, 파라티푸스, 콜레라 등을 비롯하여 여러 바이러스의 위험과 치료법, 백신 법을 개발하기 위해 자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을 할 때마다 90% 이상이 죽었으며 바이러스를 위한 백신 개발에서도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11. 독 실험 (대표적 연구자 : 발데마르 호벤, 요하임 무르고브스키)
이 실험은 다양한 독극물에 대한 효능을 실험하기 위해 자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엄청난 독이 투입되어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으며 더 나아가 독을 간편한 도구에 이용하여 쓸 수 있게 확장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12. 소이탄 실험
이 실험은 화상에 대한 반응과 이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다양한 화상치료제의 효과를 보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이 실험도 다른 실험처럼 많은 희생을 야기했으며 특히 이 실험의 피해자들은 약의 후유증과 화상의 상처로 고통받았습니다.

13. 안락사 실험 (독보적인 연구자 : 카를 브란트)
이 실험은 오직 카를 브란트만이 추진한 실험이며 어떻게 하면 사람을 안락사 할 수 있을지, 어떤 방법이 좋을 지를 연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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